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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산해경에 나타난 한사군의 위치

Bawoo 2016. 8. 3. 07:03

산해경(山海經)은 약 4천 2백년전부터 쓰여진 중국 고대사서이다.

[산해경(山海經) 해내경(海內經)] 기록에

동해의 안쪽, 북해의 주변에 나라가 있으니 조선(朝鮮)이라 한다. 하늘이 지극히 아끼는 그 사람들은 물가에 살고 사람을 존중하고 사랑한다. [東海之內 北海之隅 有國 名曰 朝鮮 天毒 其人 水居 偎人愛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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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동해]란 [중국의 동해] 즉 우리가 말하는 [서해(황해)]이고, [북해]란 [발해] 즉 [서해 위 바다]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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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산해경의 내용에서 중국대륙 동해안과 난하, 요하 지역도 고조선의 영역이었다. 고조선에 대한 위 기록이 [산해경(山海經)] 의 여러 부분 중에서도 [해내경(海內經)]편에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보면, [해내경(海內經)]이란 산해경 중에서도 [황해의 중국쪽 지역]을 기록한 것으로, 중국고대기록에서 [해(海)]라 하면 [황해]를 뜻한다. ( 우리의 동해는 보통 대해(大海)라 부른다.)

즉 [해(海)] - 황해, [대해(大海)] - 우리의 동해 이다.  

산해경에서 한반도에 대한 것은 [해외동경(海外東經)]편에 기록되어 있다. 중국입장에서 [바다 건너 동쪽] 이라는 뜻이며,  [해내경(海內經)]의 위 기록은 고조선이 [황해의 중국쪽과 발해 부근 지역에 존재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중국대륙 동해안과 난하, 요하 지역은 변한 또는 변조선이라 불리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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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중국기록에는 고조선에 대한 기록이 중국과 가까운 변한(변조선)에 대한 것이 많다. 그래서 [산해경의 해내경(海內經)]에도 [ 중국 동해안과 발해 북쪽]에 고조선이 있다고 써 놓은 것이다. 그런데 산해경의 [해내북경(海內北經)]에 보면 고조선에 대한 기록이 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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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은 열양(列陽)의 동쪽에 있다. 해(海)의 북쪽이고 산(山) 남쪽이다. 열양(列陽)은 연(燕)나라에 속했다. 朝鮮在列陽東 海北山南 列陽屬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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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연(燕)나라는 북경을 중심으로 존재했던 나라이다. 그런 연나라와 조선의 경계가 붙어있었다는 내용으로, [해(海)의 북쪽]이란 말은 발해(황해 북쪽 바다)의 북쪽 즉 만주서부 산해관 부근 지역을 말한다. 그런데 이 귀절에다가 약 1천 7백년전 인물인 중국 진(晋)나라의 학자 곽박(郭璞)이 주석을 붙여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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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지금의 낙랑현(樂浪縣)이다.기자(箕子)의 땅이었다. (열양(列陽)의) 열(列)이란 강 이름이다.

지금의 대방(帶方)땅에 있다. [郭璞云 : 朝鮮今樂浪縣 箕子所封也 列亦水名也 今在帶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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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해경에는 낙랑이 발해의 북쪽에 있다 하고 열양(列陽)의 동쪽에 있다 했다. 곽박은 [열양(列陽) = 대방]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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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이 [해(海 : 발해)의 북쪽]에 있었다는 산해경 원문, 그리고 곽박의 말 등을 보면 낙랑은 위 그림처럼 발해 북쪽에 있었고, 대방(帶方)은 낙랑의 서쪽 즉 열양(列陽)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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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위 지역에서 '臨屯(임둔)'이라는 글자가 적힌 봉니(封泥)가 다량 출토되었다. 그리하여 한사군이 한반도가 아니라 위 지도의 지역에 있었다는 근거가 또다시 확인되었다.

봉니는 신하에게 편지 등을 보내면서 도중에 누가 뜯어보지 말라고 진흙을 바르고 도장을 찍어놓은 것이다. 위 지역에서 [임둔]이라고 써 있는 봉니가 잔뜩 발견되었다는 것은 거기서 [임둔태수] 등이 임금의 봉니를 뜯어보았다는 것이 추정되며,  이곳이 [임둔]이라고 단정할 수 있다.

한사군의 위치는 대강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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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 분포도]

한사군은 변한(변조선)지역에 있었고, 고대한국의 중심영역인 [고인돌지역]에는 들어오지 못했다.

그리고 곽박이 위 그림의 [발해북쪽 한사군 지역]이 기자(箕子)의 땅이었다고 했듯이, 기자(箕子)조선은 고조선의 변방(변한)에 존재했던 것이다. 기자(箕子)조선은 나중에 위만조선으로 바뀌는데, 이 역시 변한(변조선)에서 있었던 일일 뿐, 고조선의 중심지역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다.

산해경(山海經)에서 [해내경(海內經)]편과 [해내북경(海內北經)]편, 즉 '황해바다 중국쪽 지역'에 고조선이 나오고 후대의 중국 학자들이 그곳이 낙랑, 대방이다고 했다는 것, 그곳이 [기자의 땅]이다 했다는 것, 그리고 그 기자조선이 위만조선으로 바뀌었지만, 둘 다 고조선의 변방이었을 뿐이었다는 것이다.

한사군은 요서(만주 서부)에 있었고, 한나라는 한반도에 들어오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자(箕子)는 은()나라의 현인()인데 주()나라의 무왕()이 은나라를 빼앗자, 이러한 행동이 도리에 어긋난다 하여 3천여년전에 고조선으로 망명한다. 은()나라는 동이[]족, 즉 고대한민족이 세운 나라이고, 기자(箕子)는 그 은나라 왕족이었다. 즉 기자(箕子)는 고대한민족의 후손이었고, 중국이 도리에 어긋나게 나가고 있다고 판단하자 [선조의 나라]인 고조선으로 망명한 것이다. 기자조선 마지막 왕인 준왕()의 성()이 청주한씨()다. 즉 기자(箕子) 후손들이 [한(韓)]이라는 성씨를 썼는데, 이는 기자(箕子)가 본래 한민족의 후손이고, [은나라 왕조] 역시 한민족의 후손이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 하겠다. 

갑골문(옛 한자)들은 만주, 중국동해안, 은나라 유적에서 많이 발견되는데, 이는 만주와 중국동해안 즉 고조선 영역에서 쓰이던 한자를 [은나라 왕조]가 중국대륙에 전파했다는 얘기가 되겠다. 만주와 중국동해안에서의 은나라유적보다 더 빠른 갑골문들의 발견은 중국당국이 어이없게도 '동북공정을 감행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중 하나가 되었을 것이다.   

중국 옛 역사책인 [후한서(書)]에 다음과 같은 귀절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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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방(東方)을 [이(夷)]라 한다. [이(夷)]라는 것은 "근본이 되는 뿌리"라는 의미이니, 어질고 살리기를 좋아하여 마치 만물이 대지로부터 솟아나오는 것과 같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한 까닭에 (동이족은) 천성이 훌륭하여 도덕(道德)이 펼쳐지기 쉬워 군자불사지국(君子不死之國 - 군자가 죽지 않는 나라) 라 불리워지게까지 이르게 되었다. 때문에 공자는 구이(九夷)에 가서 살고 싶어했다.
[東方曰夷.] 夷者, 也, 言仁而好生, 萬物 地而出. 故天性柔順, 易以道御, 至有君子不死之國焉. 故孔子欲居九夷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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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귀절에서 [그래서 공자는 구이(九夷)에 가서 살고 싶어했다.(故孔子欲居九夷也)]라는 귀절이 있다.

구이[九夷] = 동이[], 도덕(道德)이 살아있는 곳이므로 공자도 가서 살고 싶어했고, 기자(箕子)는 정말로 고조선으로 왔다.  논어 []에 보면 다음과 같은 귀절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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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께서 동이[夷 = 구이九夷]에 가서 살기를 원하셨다. 어떤 사람이 '누추하지 않겠습니까?' 하니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군자(君子)가 사는데 무슨 누추한 게 있겠는가?  [子欲居九夷 或曰 陋如之何 子曰 君子居之 何陋之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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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 스스로를 군자라 해본 적이 없다. 그러므로 위 글의 [군자(君子)]란 공자 자신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위 글의 [군자(君子)]가 만약 기자(箕子)를 뜻하는 것이었다면 '옛날에 군자가 살았다'고 표현되었어야 했는데 (기자(箕子)는 공자보다 수백년 전 인물.), 위 글은 현재형이므로 [군자(君子)가 사는데 무슨 누추한 게 있겠는가?] 라는 표현은 공자는 당시 동이[夷 = 구이九夷 = 고대한민족] 사람들을 

군자(君子)라 하고 있는 것. 즉 공자는 [군자(君子)의 나라] 즉 당시 고조선에 와서 살고 싶어 했던 것이며, 이에 대해서는 중국의 손꼽히는 정사(正史) 중 하나라는  [후한서(書)]에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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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東方)을 [이(夷)]라 한다. [이(夷)]라는 것은 "근본이 되는 뿌리"라는 의미이니, 어질고 살리기를 좋아하여 마치 만물이 대지로부터 솟아나오는 것과 같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한 까닭에 천성이 훌륭하여 도덕(道德)이 펼쳐지기 쉬워 군자불사지국(君子不死之國 - 군자가 죽지 않는 나라) 라 불리워지게까지 이르게 되었다. 때문에 공자는 구이(九夷)에 가서 살고 싶어했다. [東方曰夷. 夷者, 也, 言仁而好生, 萬物 地而出. 故天性柔順, 易以道御, 至有君子不死之國焉. 故孔子欲居九夷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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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箕子)가 중국에 도리가 무너졌다 하여 고조선으로 망명했던 것처럼 공자도 고조선으로 오고 싶어 했던 것이다.

 

출처 : 심온세상
글쓴이 : 심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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