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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을 든 여인 카미유의 임종
Woman with a Parasol – Madame Monet and Her Son, 1875 . ‘양산을 든 여인’
어릴 적부터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듣던 성경 말씀은 ‘믿음, 소망, 사랑 가운데 으뜸은 사랑’이라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 내용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들으면서 하나님께서 언제, 어디서나, 내가 어떤 곤경에 처해 있어도 나를 무한히 사랑하신다는 사실에 행복함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과 이웃을 많이 사랑하지 못하는 제 자신에 대해 죄책감을 갖곤 했습니다. 사랑이란 말은 이렇듯 제게 가장 중요하지만 동시에 참으로 어려운 단어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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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화가가 사랑을 작품 주제로 삼았습니다. 어떤 화가는 아내 사랑을, 어떤 화가는 자식 사랑을, 또 어떤 화가는 부모 사랑을 화폭에 담았습니다. 가족이 누구보다 먼저 일차적인 대상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러한 작품들 가운데 특히 제 마음을 두드린 그림은 인상파를 대표하는 프랑스 화가 클로드 모네(Claude Monet·1840~1926)의 ‘양산을 든 여인’(Woman with a Parasol, 1875)입니다.
모네는 많은 작품을 야외에서 그렸습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빛은 풍경이든 사람이든 새로운 생명을 부여했습니다. ‘양산을 든 여인’을 자세히 보면 모네는 자연의 모습과 사람의 표정을 정밀하게 재현하지 않았습니다.
빠르고 다소 거친 붓의 터치를 대번에 느낄 수 있습니다.
그가 관심을 둔 것은 순간의 포착입니다. 빛이 만들어낸 자연의 아름다움과 인물의 생동감이라는 효과에 주목했지요. 그 결과 이 작품은 앞선 시대의 작품들과 구별되는 새로운 아우라를 창조했습니다.
이러한 감상에 더해, 모네가 화폭에 담은 이들이 아내 카미유와 아들 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이 작품의 사랑스러움은 한층 배가됩니다.
무명 화가에 가깝던 모네는 집안의 극심한 반대를 무릅쓰고 모델 카미유 동시외와 결혼했고 카미유는 아들 장을 낳았습니다. 모네에겐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인지 작품에는 환한 사랑과 따뜻한 평화가 넘쳐흐르는 듯합니다.
화가에게 가족이란 어떤 의미일까요. 이 시리즈에서 맨 처음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을 다룰 때 그의 가족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결혼하지 않은 고흐에게도 가족은 무척 소중한 존재였습니다.
하물며 결혼한 모네에게 가족의 소중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겠지요. 게다가 이 작품을 그릴 때 모네는 가난한 화가였습니다. 아르장튀유에서 비록 남이 알아주지 않았지만 자기만의 화풍에 몰두할 때였죠. ‘양산을 든 여인’은 가난한 날 모네의 사랑과 행복을 담은 작품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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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pression, sunrise, 1873 - Claude Monet
이러한 자기만의 예술을 추구했기에 모네는 경제적으로 곤궁했음에도 ‘양산을 든 여인’과 같은 밝고 사랑스러운 작품을 그릴 수 있었습니다. 이 작품에 담긴 경쾌한 화사함은 인상파에 앞선 시대를 장식한 자크 루이 다비드의 신고전주의적 엄격함, 외젠 들라크루아의 낭만주의적 화려함과는 분명히 다른 새로운 근대적 감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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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을 든 여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까닭은 요즈음 현실에 대한 제 생각 때문입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큰 관심을 모은 현상의 하나는 ‘나 홀로 삶’입니다.
혼밥(혼자 밥 먹기), 혼술(혼자 술 마시기), 혼영(혼자 영화 보기) 현상에서 볼 수 있듯이 혼자 지내는 것은 이제 평범한 풍경이 됐습니다. 살다 보면 이따금 친구가 성가시고, 경우에 따라선 가족마저 부담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더불어 지내는 것보다는 혼자 일하고 여가를 즐기는 게 더 편안하기도 합니다.
나 홀로 살아가는 것을 꼭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습니다. 공동체의 지나친 구속은 개인의 자립심을 키우지 못하고 의존적인 성격을 강화하기 때문에 나 홀로 일상을 보내는 게 긍정적이기도 합니다.
어차피 인생은 혼자 왔다가 혼자 떠나는 긴 여행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공동체의 유대 못지않게 튼튼한 개인의 자율성을 지켜나가는 게 더 중요한 과제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로서는 우리 사회가 이렇게 개인화하는 과정이 아쉽습니다. 그 까닭은 ‘나 홀로’라는 말의 이중적 의미에 있습니다. 이 단어를 보며 독립심보다 외로움이 더 크게 다가오는 건 저만이 아니겠지요.
가족이란 어떤 존재일까요. 그리고 어떻게 사는 게 행복한 인생일까요. 상담학을 공부해온 저는 이에 대한 답변으로 미국 하버드대에서 진행된 연구 하나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이 연구는 75년간 724명의 인생을 추적한 성인발달 연구 프로젝트입니다. 이 프로젝트의 가장 중요한 교훈은 가족·친구·공동체와의 사회적 연결이 긴밀하면 긴밀할수록 더 행복하고 건강하며 오래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데 있습니다.
모네의 사랑이 완벽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모네는 두 번 결혼했습니다.
첫 번째 아내 카미유가 살아 있을 때 모네는 유부녀인 알리스 오슈데와 사랑에 빠졌지만, 그렇다고 카미유를 떠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슈데는 병든 카미유를 돌봤고, 카미유가 죽고 난 다음 모네와 결혼했습니다.
모네의 이런 행동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과 비판이 있습니다. 우리 문화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모네가 서른두 살의 젊은 나이에 죽은 카미유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지켜주려 한 것은 사실로 보입니다.
Claude Monet - Camille Monet sur son lit de mort.. Camille Monet on Her Deathbed .‘카미유의 임종’
‘카미유의 임종’(Camille on her Deathbed, 1879)은 카미유의 죽음을 그린 작품입니다.
아침 햇빛이 방 안을 비출 때의 순간입니다. 막 세상을 떠난 카미유의 가슴에 꽃다발이 놓여 있습니다. 카미유는 눈을 감고 오른쪽으로 고개를 약간 돌린 채 깊은 잠에 빠진 듯한 모습입니다. 화폭 전체에서 느낄 수 있는 거친 붓질은 사랑하는 여인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과 탄식을 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작품 전체를 감싸는 분위기는 깊은 슬픔 그 자체입니다.
꺼질 수밖에 없는 불꽃을 안간힘을 다해 되살리고 싶은 모네의 마음이 보입니다.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모네가 끝까지 자신의 곁을 지킬 것을 아는 카미유 역시 안심하고 있었던 것일까요.
카미유는 두려운 죽음과 만나고 있지만 평화로운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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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까운 것은 우리 사회에서 나 홀로 삶이 더욱 증가한다는 점입니다.
가족의 중요성을 일방적으로 강조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가족보다는 다소 외로운 나 홀로 삶이 더 나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족의 시대가 저물어가는 현실에 마음 한구석이 쓸쓸해집니다. 이런 이야기를 쓰는 것으로 보아 저도 제법 나이가 들었나 봅니다.
● 1973년 서울 출생
●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문학박사, 미국 스탠퍼드대 사회학과 방문학자
● 現 샤론정신건강연구소 소장, JTBC ‘사건반장’ 고정 패널
● 저서 : ‘자기대상 경험을 통한 역기능적 하나님 표상의 변화에 대한 연구’ 등
/ 신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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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ude Monet, photo by Nadar, 1899.
Le déjeuner sur l'herbe (right section), 1865–1866, with Gustave Courbet, Frédéric Bazille and Camille Doncieux, first wife of the artist, Musée d'Orsay, Paris
Camille Monet on a Garden Bench, 1873,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Claude Monet's Camille (The Woman in the Green Dress), 1866
Carolus-Duran, Alice Hoschedé, second wife of Claude Monet and mother of Blanche Hoschedé Monet, 1878
Alice Raingo Hoschedé Monet (February 19, 1844 – May 19, 1911) was the wife of department store magnate and art collector Ernest Hoschedé[1] and later of the Impressionist painter Claude Monet.[2]
After Camille Monet's death in 1879, Monet and Alice (along with the children from the two respective families) continued living together at Poissy and later at Giverny.
Still married to Ernest Hoschedé and living with Claude Monet, the Le Gaulois newspaper in Paris declared that she was Monet's "charming wife" in 1880.
Ernest Hoschedé died in 1891 and Alice agreed to marry Monet in 1892.[15]
https://en.wikipedia.org/wiki/Claude_Monet
https://commons.wikimedia.org/wiki/Claude_Monet
https://en.wikipedia.org/wiki/Alice_Hosched%C3%A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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