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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경률의 사극 속 역사인물] 49 – 진령군 : 부정부패의 고리, 비선실세

Bawoo 2016. 11. 12. 21:39


['비선실세' 진령군과 개에게 벼슬 준 나라]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 역사에서 악마의 디테일은 정사보다 야사에 곧잘 드러난다. 올해 초 종영한 드라마 '장사의 신'에 등장한 무당 진령군도 '매천야록' 등에 소개된 바 있다. 구한말의 지식인 황현은 이 책에서 진령군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명성황후가) 몸이 좋지 않을 때 무당이 아픈 곳을 만져 주면 증세가 줄어들었다. 날마다 총애가 더해지니 무당의 말이라면 들어주지 않는 것이 없었다. (중략) 중전이 무당을 '진령군(眞靈君)'으로 봉했다. 무당은 아무 때나 대궐에 나아가 임금과 중전을 뵈었다."

진령군은 1882년 임오군란 당시 궁궐에서 도망쳐 충주에 숨어 있던 명성황후에게 접근했다. '정적' 대원군이 국장을 선포하는 바람에 발이 묶인 그녀였다. 절망에 빠진 왕비에게 무당은 환궁 날짜를 점쳐 주며 희망을 불어넣었다. 이후 청나라가 개입하고 대원군이 중국에 끌려가면서 명성황후는 점괘대로 궁궐로 돌아갔다. 물론 무당도 함께였다.

1884년 갑신정변에 식겁한 왕과 왕비는 진령군에게 더욱 의존하게 되었다. 진령군은 비선실세로 국정과 인사에 개입했다. 높고 낮은 지방관들이 그의 손에서 나왔다. 조정 대신들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아부하기 바빴다. 진령군을 누이라 부르기도 하고, 수양아들을 자처하기도 했다. 무당의 아들 김창열은 버젓이 대신들과 자리를 나란히 했다.

진령군이 부린 ‘여우의 위세’는 당대 권력자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뇌물 좋아한 고종 부부에게, 매관매직에 열중한 외척 민씨들에게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라고 하진 않았을 터였다. 국정의 탈을 쓰고 부정축재가 행해졌다. 신하들도 바로잡으려 들지 않았다. 오히려 진령군에게 줄 서서 일신의 영달을 꾀할 뿐이었다.

비선실세는 국가기강을 흔들었고, 조선은 부정부패로 물들었다. 나라살림을 맡은 관리가 세곡선(稅穀船 : 세금으로 낸 곡식을 실어 나르던 배)을 통째로 빼돌리고는 침몰했다고 거짓보고를 올렸다. 권세가의 자제들은 돈을 써서 과거급제를 사고, 벼슬을 쇼핑했다.

부정부패는 조정과 민간, 서울과 지방을 가리지 않고 만연했다. 충청도에 '개 감역'이 생긴 사연이 재미있다. 어느 부유한 과부집에 '복구'라는 개가 있었다. 힘 좀 쓰는 길손이 지나다가 담장 너머 개 부르는 소리를 듣고 관아의 감역(監役 : 종9품) 벼슬에 그 이름을 올렸다. 과부에게 아들이 있는 줄 알고 대가를 요구하려 한 것이다.

그 시절엔 진령군 말고도 비선실세가 넘쳐났다. 명성황후의 양오빠 민승호에게는 젊은 후처가 있었다. 그녀는 민승호가 죽은 후에 아들을 낳았는데 불륜의 씨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세간에서는 그 아이를 꿈속에서 남편을 만나 얻었다고 하여 '몽득(夢得)이'라 불렀다. 몽득이 엄마도 명성황후를 등에 업고 호가호위했는데 고관대작들이 깍듯이 떠받들었다.

구한말의 비선실세는 나중에 죄상이 드러나도 제대로 처벌하기가 어려웠다. 부정부패의 공범들이 정관계 요로에 포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894년 7월 안효제가 진령군을 죽이라고 상소하자 승정원에서는 임금에게 올리지 않고 기각했다. 요즘으로 치면 청와대 비서진이 단체로 직무유기를 한 것이다.

1894년은 동학농민항쟁과 청일전쟁이 터진 해였다. 나라가 바람 앞의 등불처럼 흔들리고 백성의 저항이 들불처럼 번지는데, 조정에선 국정농단의 진상을 외면하고 덮어줬다. 결국 진령군에 대한 처벌은 잠시 옥살이를 시키고 재산 일부를 압수하는 선에서 끝났다.

‘매천야록’의 저자 황현은 1910년 일제에 의해 나라를 잃자(경술국치) 지식인으로서 책임을 느끼고 자결로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그는 망국을 부른 악마의 디테일을 기록으로 남겼다. 황현이 묘사한 비선실세는 뇌물, 매관매직, 횡령 등 부정부패의 고리였다. 책 속의 한 구절이 유독 눈에 밟힌다.

“나라는 반드시 스스로 그르치고 난 다음에 남들이 들이친다(國必自伐而後人伐之)."

[권경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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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충자료 -namu.wiki/w/진령군  ]



眞靈君 [?~1895년]

1. 개요

조선시대 말기의 무속인. 2016년 10월에 터진 대한민국의 정치현안 덕분에 새삼스럽게 주목을 받게 된 인물이다. 로마노프 왕조에게 라스푸틴이 있었다면 조선에는 진령군이 있었다.

2. 역사

1882년 임오군란때 성난 군사들에게 죽을 뻔한 왕후 민씨(명성황후)가 간신히 충주 장호원까지 도망갔다 50여 일만에 환궁하니 백성들은 놀랐다. 그런데 왕후는 한 여인을 데리고 와 진령군이란 작호를 받게 해 주었으니 이는 7종 천민으로 취급받던 무당에게 군봉을 내린 것으로, 여자가 당호(堂號)를 받지 않고 군호(君號)를 받은 것은 조선 역사상 유일무이한 사례였다.

진령군이 이토록 파격적인 출세를 한 계기는 왕후가 죽음의 공포와 절망속에서 지낼 때 점을 쳐 주었기 때문이다. 왕후가 숨어 지내기 하도 갑갑하여 민응식이 불러온 무당이 진령군이었는데 자칭 관우의 딸이라 하였다 한다. 이때 진령군은 명성황후가 곧 환궁할 것이며 그 날짜까지 알려줬는데 우연의 일치인지 그녀가 예언한 그 날짜에 환궁하게 되자 명성황후를 따라 나선 것이다.

그 후 그녀는 대궐로 들어가 살며 부귀를 누리게 되었다. 그런데 날마다 왕실을 위해 산천 기도는 물론이요, 굿판과 제사는 쉴 날이 없었다. 게다가 명성황후는 임금께 아뢰어 봉군의 은전, 즉 진령군이라는 작호를 내렸다. 이렇게 신분상승을 한 그녀는 양반을 벼슬에 임명하고 내쫓는 것도 마음대로일 만큼 권세를 휘둘렀다. 진령군에게는 김창렬이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당상관의 관복을 입고 다니며 실세 노릇을 하자 조정의 고위 관료들 중 몇몇은 진령군과 의남매를 맺거나 의자(義子)가 되기까지 했다.

허약한 세자(순종)의 병을 고친다고 굿판을 벌이고 금강산 1만 2천 봉에 쌀 한 섬과 돈 천 냥, 무명 한 필씩을 얹은 것도 이때 일이다. 그로 인해 국고가 탕진되고 있어도 명성황후는 아랑곳하지 않고 진령군만 믿었다. (...) 게다가 자신이 관우의 딸이라고 자칭하면서 나랏돈으로 서울 북방에 관우 사당인 북묘를 건립하고 이곳을 본거지로 삼아 억만금을 벌었는데, 왕과 왕비는 여기 자주 찾아와 점도 치고 굿도 벌였다.

진령군의 세도가 세상을 흔든지도 어느덧 11년. 대담무쌍하게 목숨을 걸고 진령군을 통렬히 규탄하는 상소를 올린 선비가 있었으니 사간원 정언 안효제였다. 고종은 대로하여 그를 전라도 먼 섬으로 귀양 보냈다. 3년 뒤 안효제는 귀양이 풀렸고 다시 벼슬이 내려졌으나 사양한 후 낙향해 버렸다.

그러나 요지부동이던 진령군의 영화도 드디어 망할 날이 왔으니 그때는 고종 31년(1894년)이었다. 청일전쟁에서의 승리로 친일 내각이 들어서자 개화파 새 정부는 진령군을 잡아 들여 옥에 가두었다가 진령군이 모아 놓은 억만금을 모두 몰수한 뒤 풀어 주었다. 그녀는 북묘인 관우 사당에서도 쫒겨나 삼청골 오막살이에서 숨죽이고 근근이 살다가 이듬해 8월 을미사변 때 일본인들 손에 강력한 후원자였던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그 충격인지 얼마 뒤 따라 죽었다.

3. 드라마

드라마 찬란한 여명에도 등장한다. 배역은 김경아라는 배우가 맡았는데, 후일 왕희지라는 예명으로 활동하게 되는 배우다. 이 드라마에선 효옥이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본래는 춘선이라는 기명을 가진 평양의 관기로 7살때 아버지가 누명을 쓰고 곤장을 맞아 죽고, 기적에 오르게 되었다. 천주교를 믿고 있었고, 개화사상에도 눈을 떠있었는데, 그로 인해 박규수의 추천으로 유홍기의 문도가 되어 개화파의 인물들과도 교류를 가졌다. 그 과정에서 이 드라마 초-중반부 주인공 급이라 할 수 있는 이동인과의 로맨스도 있게 된다.

민자영에게 개화 사상을 심어주기 위해 무당으로 민자영에게 접근하였다. 그러다가 역사대로 임오군란 때에 공(?)을 세워 진령군에 책봉된다. 이로 인해 스승인 유홍기에게 책망을 듣게 되고, 김옥균, 박영효 등의 2세대 개화파들과도 척을 지게 된다.

이후 본격적으로 타락하여 역사대로 매관매직 등의 여러 악행을 일삼는다. 갑신정변 이후에는 일본으로 망명한 김옥균을 암살하기 위해 여러 차례 음모를 꾸미기도 한다.

최후엔 갑오개혁 이후 흥선대원군을 암살하기 위해 자객을 고용하여 운현궁으로 침투시켰으나 실패하였고, 결국 이에 단단히 빡친 흥선대원군의 명으로 저잣거리 한복판에서 참수 당하게 된다. 참수형이 집행되기 전에 백성들에게 돌을 맞는건 덤......

드라마 장사의 신 - 객주 2015에도 나온다. 김민정이 맡았는데 아무래도 픽션과 역사적 사실을 버무린 드라마다 보니 천봉삼을 좋아하던 주모였다가 갑자기 무당이 되는등 실제와는 다른 내용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