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의 태종 이세민 때의 당나라 개국공신 24명을 말한다. 이들의 초상을 능연각이란 누각에 걸어두고 기렸기'능연각공신'이라고 부르며 모두 24명이다.
[능연각이십사공신 명단]
제1위 귀척호족 영관인걸 장손무기(長孫無忌)
- 태종의 오랜 친구이자 태종의 황후의 오빠이기도 했다. 정관의 치에 많은 이바지를 하였으나 고종 때에 측천무후가 권력을 잡은 후 사천으로 좌천되어 자살하였다.
- 이정과 함께 파촉 공략에 공을 세웠으며 이후에도 여러번 공을 세웠다.
- 태종 때 벼슬 자리에 올라 여러 요직을 거쳤으며 방현령과 함께 정관의 치에 크게 이바지 하였다.
- 수나라 말기 이밀에게 협력하다 당고조에게 귀순하여 태자 건성의 측근이 되었다. 이후 건성이 후계자 싸움에서 이세민에게 패한 후 그의 인격에 끌린 태종에게 발탁되어 재상에까지 이르렀다.
- 당나라가 일어나자 바로 이세민의 세력에 가담하여 측근으로 활동하였다. 두여회와 함께 공평하고 옳은 정치를 펴서 정관의 치에 크게 이바지 하였다.
- 본명은 고검. 젊었을 때 문사를 두루 섭렵했고, 민첩했으며 기억력이 좋았다. 정관의 치를 이끄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제7위 탈삭함진 지용쌍전 악국공 위지경덕(尉遲敬德)
- 당나라의 여러 전투에서 공을 세웠고 현무문의 정변 때도 참가하여 이세민이 권력을 잡는데 큰 공을 세웠다. 도가에서는 진숙보와 함께 잡귀를 쫓는 신으로 여겨진다.
- 이효공과 함께 파촉 공략에 공을 세웠으며 이후에도 여러번 공을 세웠다.
- 양나라 황제의 후손으로 태종대에 재상을 지냈다.
- 뛰어난 장수로 당나라 건국에 많은 공을 세웠다.
- 이세민의 휘하에서 활약한 장수로 많은 공을 세웠다.
- 수나라의 장수였으나 당군에게 포로가 된 후 귀순하였다. 이후 여러 차례 전투에서 공을 세웠다.
- 여러 전투에서 공을 세워 당나라 건국에 이바지 하였다.
- 당고조의 딸인 평양소공주와 결혼한 당고조의 사위이다.
제15위 태원종룡 만절부종 비국공 장손순덕(長孫順德)
- 이세민 밑에서 큰 공을 세운 유능한 장수이지만 탐욕스러웠다. 어느 날 장손순덕이 뇌물을 받는 일이 생겼는데, 태종은 벌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비단을 내려 그의 잘못을 깨우치게 했다고 한다.
- 여러 전투에서 공을 세웠으며 당태종의 고구려 원정 때 수군을 지휘하였다.
- 정관 7년 양주 도독으로 있던 장공근이 죽자 태종은 친히 교외로 행차하여 장공근의 죽음을 슬퍼하며 곡을 하여 조상하였다.
- 여러 전투에서 공을 세웠으며 서돌궐에서 내란이 발생하자 행군총관에 임명되어 공을 세웠다.
- 수나라의 양제를 받들었으나 그리 중용되지는 않았다. 태종에게 신임을 받아 은청광록대부에 이르렀으며 왕희지의 서법을 익혀 구양순, 저수량과 함께 당나라 초의 3대가로 일컬어진다. 특히 해서의 1인자로 알려져 있다.
- 실력있는 정치가로 이세민에게 크나큰 도움을 주었다.
- 돌궐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활동하였고 역사서 편찬에도 참여하였다.
- 돌궐을 격파하는 공을 세웠고 당태종의 고구려 원정에도 종군했었다. 고종 때의 고구려 원정에도 참가하여 평양을 함락시키는 공을 세우기도 했다.
- 여러 전투에 참여하여 당나라 건국에 큰 공을 세웠고 현무문의 정변 때도 참가하여 이세민이 권력을 잡는데 큰 공을 세웠다. 도가에서는 위지경덕과 함께 잡귀를 쫓는 신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출처: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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