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靖
(? ~ 649)
당나라의 인물. 능연각 공신 중 한 명. 자는 약사(藥師).
당나라 초기를 대표하는 명장으로 당태종 휘하에서 돌궐 정벌, 토욕혼 정벌 등 많은 전공을 세웠으며, 중국 왕조 중 강군을 자랑한 당나라 군제의 기틀을 잡은 인물이다.
경조 삼원 사람으로 어려서 뜻과 기개를 짊어지고 문무의 재주와 책략이 있어 장인 한금호가 장수의 책략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 했으며, 수나라에서 전내직장, 마읍군승을 역임했고 이연이 거병할 때 평소에 그와 틈이 있어서 이연이 자신을 죽이려고 하자 사사로운 원한으로 사람을 죽이려는 것에 대해 질책하고 이세민이 그를 위해 굳게 청해 진왕부의 막하에 들었다.
천하를 평정하는 과정에서 이정은 등세락, 염조즉, 소선 등을 토벌하는 것에 공을 세웠고 상주국에 임명되면서 영강현공에 봉해졌다가 검교형주자사가 되었다. 또한 풍앙, 이경도 등을 설득해 항복시키고 영남무위대사, 검교계주총관이 되었다가 623년에는 보공석을 진압하는 것에 공을 세웠다.
동남도행대, 행대의 병부상서, 검교양주대독부장사를 지내고 625년에는 동돌궐이 변경을 약탈하다가 내분이 일어나면서 626년에 정양도행군대총관에 임명되어 이세적 등과 함께 동돌궐을 공격했으며, 도중에 정양도총관에 임명되고 동돌궐을 멸망시켰다.
그런데 이정은 소위로부터 군대에 기강이 해이해 기이한 보물을 모두 잃어버렸다는 이유로 탄핵되었지만
혐의가 풀려 좌광록대부에 임명되었다가 상서우복야로 옮겼다. 634년에는 기내도대사가 되어 장안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병에 걸리자 사직했는데, 644년에 토욕혼이 변방을 노략질하자 서해도행군대총관이 되어 토욕혼을 격파했다.
토욕혼 원정에서 돌아온 후에 군대가 늦게 도착한 일로 질책해서 앙심을 품은 고증생이 반란을 일으켰다고 무고당했다가 혐의가 풀렸으며, 637년에 위국공에 봉해졌고 복주자사에 임명되었지만 이를 사양했다. 649년에 사망해 사도, 병주도독에 추증되고 장례에 쓰일 물품들이 내려졌고 소릉에 배장되어 시호를 경무(景武)라 했다.
당태종과 병법에 대하여 나눈 대화를 기록한 이위공문대[1][2]의 저자로 알려져 있다.[나무 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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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李靖, 571년~649년)은 중국 당나라의 명장으로, 중국 섬서성 장안(長安)에서 출생하였다.
이정은 수나라 말기 군웅들이 할거할 때, 군사를 일으킨 당 고조와 그의 아들 이세민(李世民)에게 협력하였다. 당고조가 당나라를 건국하는 데 공을 세웠고, 이세민이 중앙 권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경쟁 관계에 있던 군웅들을 평정할 때 활약하였다. 이어 행군총관(行軍摠管)이 되어 돌궐을 공격하여 키엘리카안(頡利可汗, Hieli Kağan)을 포로로 잡았고, 토욕혼(吐谷渾)의 침입을 막는 큰 공을 세워 위국공(衛國公)에 봉해졌다. 사후에 당나라 태종의 소릉(昭陵)에 배장(陪葬)되었다.
이정은 당나라의 대표적인 병서 《위공병법》(衛公兵法), 《이위공문대》(李衛公問對)를 저술하였다.
같이 보기
[정보 -책 335~3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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