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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시대-위 문후 시절의 관료]서문표(西門豹

Bawoo 2017. 5. 12. 23:50


서문표(西門豹, ? ~ ?)는 위 문후의 신하이다. 지방의 장관이 되어 선정을 베풀었으며 강물을 끌어들이는 관개사업을 벌여 농업생산력을 높였다.

일화

당시 업 지방에는 하백의 첩을 골라 수장시키는 관습이 있었다. 첩을 고르는 사람은 70세를 넘긴 무당이었고, 재물을 모으는 것은 그 지방의 세 장로였다. 또 무당에게는 4명의 제자 무당들이 있었다.

서문표는 부임한 후 무당에게 다음에는 더 나은 처녀를 하백에게 첩으로 바치겠다고 말하고 오라면서 무당을 수장했고, 그후에는 무당이 오지 않는다고 무당을 모셔오라며 4명의 제자를 수장시켰다. 그리고 수장한 사람들이 오지 않는다면서 세 장로까지 수장시켰다. 그런 다음, 하백에게 첩을 바치는 관습을 없애고, 하백의 보복을 우려하여 12개의 수로를 만들도록 했다. 하백은 파도를 일으켜 지방을 물에 잠그려 했지만 파도는 12갈래의 수로에 흘러들어, 오히려 백성들의 논밭에 물을 대주어 버렸다. 그러자 하백은 더욱더 격노했다.[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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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나라 문후(文侯)는 평소 어진 정치를 펼쳐 세상 사람들의 칭송을 많이 받았다. 특히 그는 인재를 보는 안목이 있어 적재적소에 유능한 인물 등용을 잘했다. 서문표는 백성들의 원성이 자자한 업 땅의 현령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그는 업 땅에 부임하자 우선 그곳의 장로들을 모아 놓고 백성들이 고통 받고 있는 이유를 물었다. 한 장로가 나섰다.
“이 고장에는 물의 신이 있는데 해마다 처녀를 바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때문에 백성들의 살림이 갈수록 어렵습니다.”

서문표는 좀 더 자세히 듣고 싶었다. 장로가 말을 이었다. “업 땅의 삼로(三老)와 관리들은 물의 신이 아내를 맞이하는 행사 비용을 해마다 수백만의 세금을 강제로 받아가지만 실제 사용하는 것은 불과 이삼십만이고 나머지는 삼로와 관리, 그리고 무녀가 삼등분해 가져갑니다. 해마다 때가 되면 무녀가 집집을 돌아다니다가 미녀를 발견하게 되면 ‘이 처녀를 물의 신 아내로 준다’라고 말한 뒤 곧 준비를 합니다. 처녀를 목욕시키고 새 명주옷으로 단장하여 강가에 붉은 장막을 둘러친 금단의 방을 만들어 들어가게 합니다. 장막 안에 고기와 술과 밥을 차려 놓은 채로 열흘이 되도록 기다립니다.  

드디어 시집가는 날이 되면 곱게 단장해 놓은 미녀를 꽃가마에 태워 그대로 강물에 띄웁니다. 강으로 밀려들어간 가마는 얼마 동안은 물에 떠 있지만 깊은 강 속으로 곧 가라앉아 버리지요. 그렇기 때문에 반반한 처녀를 둔 집에서는 대무(무녀 우두머리)가 와서 흰 깃이 달린 화살을 마당에 세우기 전에 가족 모두가 다른 곳으로 도망을 쳐 버립니다. 그래서 마을은 쓸쓸해지고 남아 있는 사람들의 생활이 점점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물의 신에게 미녀를 바치지 않으면 홍수가 나서 마을을 휩쓸고 사람들이 모두 죽는다는 말은 오래 전부터 전해 오는 풍습이니까 힘없는 백성들이야 따르지 않을 수가 없지요.”  

장로들의 자초지종을 전해들은 서문표가 말했다. “잘 알았소. 때가 되어 무녀와 삼로들이 처녀를 강에 띄우는 날 나에게 알리시오. 나도 참석할 것이오.”
드디어 그날이 다가왔다. 연락을 받은 서문표는 군사를 대동하고 행사가 벌어지는 강가로 나갔다. 그곳에는 삼로와 관리, 호족, 장로 등과 구경꾼들만 무려 삼천여 명이나 되었다. 70세가 넘은 무녀의 우두머리 대무는 명주옷을 입은 여 제자를 열 명이나 거느리고 있었다. 서문표가 삼로들 앞으로 가서 물의 신에게 시집 갈 처녀를 불러 달라고 했다. 얼마나 미인인지 확인해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고을 현감의 부탁을 무시할 수 없었다. 장막 안으로 사람을 보내자 처녀가 나왔다.

처녀를 본 서문표는 이까짓 게 무슨 미인인가 하면서 코웃음을 쳤다. 그는 늙은 대무에게 일렀다. 물의 신한테 직접 가서 현감이 훨씬 잘생긴 미인을 곧 찾아 보낼 터이니 기다리라고 여쭈라 했다. 말을 마친 서문표는 바로 힘센 군사들에게 명령하여 늙은 대무를 번쩍 들어 강물 던져 버렸다. 잠시 기다리던 서문표는 대무가 돌아오지 않는다고 마중을 가라며 무녀 하나를 다시 강물에 던졌다. 곧이어 같은 방법으로 또 한 명을 던져 넣었다.  
그 뒤 여자들만 보내니까 물의 신한테 설명을 잘 못하는 것 같으니 삼로들에게 수고를 해 달라며 그들 세 명도 한꺼번에 강물에 던져 넣었다. 그런 다음 서문표는 강을 향해 허리 굽혀 절을 한 뒤 한동안 꼼짝도 않고 서 있었다. 남아 있는 관리뿐만 아니라 호족과 장로들은 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 잠시 뒤 돌아 선 서문표는 무녀와 삼로들까지 아직 돌아오지 않으니 이번에는 관리와 호족 한 사람씩이 마중을 가야 한다고 협박을 했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모두 이마가 땅에 피가 나도록 비벼대며 살려달라고 애원을 했다. 

그 사건이 있은 뒤로 업 땅의 관리나 백성들은 간담이 서늘해져 누구 하나 물의 신에게 처녀를 바치자는 말은 감히 입초에도 올리지 않았다. 서문표는 그렇게 미신을 없앤 뒤 즉시 인력을 징발하여 12개의 수로를 파서 황하의 물을 끌어들여 농사에 혁신을 기했다. 당시 백성들은 수로 만드는 것을 큰 공사라 생각하고 싫어했다. 서문표는 이렇게 말했다.
“백성들에게 정책을 이해시킬 필요는 없다. 그 정책의 결과가 그들에게 유리하면 그것으로 족하다. 지금 당장은 누구나 나의 명령을 싫어하겠지만 그들의 손자 대가 되면 틀림없이 내가 시킨 일이 올바르고 유익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때 서문표의 말처럼 업 지방은 현재에 이르기까지 발전된 수리사업 덕에 백성들은 풍족한 생활을 마음껏 누리고 있다. [천지일보-박종윤]


정보-책 388쪽. "기지로 지방세력을 누른 척현'이란 소제목하의 글(385~388쪽)중에 실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