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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후레왕조 초대황제]레러이(베트남어: Lê Lợi/ 黎利 여리), 고황제(高皇帝)

Bawoo 2017. 5. 25. 23:55



레 태조
Lê Thái Tổ
黎 太祖
Le Loi statue.JPG
본명레러이(Lê Lợi/黎利/여리)
재위1428년 ~ 1433년
별명평정왕(平定王)
남산동주(藍山洞主)
출생일쩐 왕조 쓰엉푸(昌符) 9년 8월 6일
(1385년 9월 10일)
사망일후 레 왕조 투언티엔(順天) 6년 8월 22일
(1433년 9월 5일)
배우자공자고황후(恭慈高皇后)
부친레코앙(黎曠/여광)
모친찐응옥트엉(鄭玉蒼/정옥창)
전임자-
후임자태종(Thái Tông/太宗)
왕조레 왕조
존호순천숭운예무영무대왕
(順天承運睿文英武大王)
묘호태조(Thái Tổ/太祖)
시호통천계운성덕신공예문영무
관명용지홍의지명대효고황제
(Thống Thiên Khải Vận Thánh Đức
Thần Công Duệ Văn Anh Vũ
Khoan Minh Dũng Trí Hoàng Nghĩa
Chí Minh Đại Hiếu Cao Hoàng Đế
/統天啓運聖德神功睿文英武
寬明勇智弘義至明大孝高皇帝)
연호투언티엔(順天) 1428년 ~ 1433년


후 레 왕조 태조(베트남어: Lê Thái Tổ黎太祖, 쩐 왕조 쓰엉푸(昌符) 9년 8월 6일 (1385년 9월 10일) ~ 후 레 왕조 투언티엔(順天) 6년 8월 22일 (1433년 9월 5일))는 베트남 대월국후 레 왕조(黎朝)의 초대 황제(재위 : 1428년 ~ 1433년)이다. 휘는 레러이(베트남어: Lê Lợi黎利 여리)이며, 시호는 고황제(高皇帝)이다. 1400년대 초부터 베트남명나라의 식민지가 되자 그는 의병을 조직하여 독립전쟁을 전개하였으며 1428년 명나라군을 베트남에서 몰아내고 독립에 성공하였다. 국내를 5도로 나누고 모든 제도를 정비하였으며, 유학을 진흥시켰다. 명나라와 조약을 체결한 뒤에는 명나라에 조공을 보내고, 그로부터 안남국왕(安南國王)에 책봉되기도 했다.


생애

레러이는 랑손의 호족(豪族)가문 출신이었으나 명나라 영락제(永樂帝)가 베트남을 침공, 안남국을 멸망시키고 식민지화 하자 1418년 궐기를 선언하여 의병을 조직하고 전국적인 독립전쟁을 일으켰다. 그의 궐기에 영향을 받아 베트남 각지에서 명나라 군대를 몰아내야 된다는 여론이 확산되고 각처에서 의병 궐기에 영향을 미쳤다. 1419년 명나라 토벌대가 파견되자 처음에는 승리하였으나 계속 패주하여 후퇴, 1423년 랑손에서 패퇴하였으나, 지형을 이용한 게릴라 활동을 시도, 이후 게릴라 전을 계속하여 1424년 승리를 거둔 뒤 공세를 시작하여 게안과 탄호아를 함락, 해방시켰다. 탄호아를 수복한 뒤 계속 북상하여 명나라군을 격파하고 승리하였다 이후 명나라 조정과 명나라 군대를 본토로 철수하는 조건으로 강화조약을 체결하여 베트남의 독립을 회복시켰다. 1427년 왕으로 추대되어 국호를 다시 대월(大越)이라 정하고 통킹(東京, 하노이)에서 즉위하였다. 그는 국내를 5개 도(道)로 나누어 행정관을 파견하였고, 사상적 측면으로는 중국으로부터 유교를 받아들여 장려하였다.

가족

3대조

  • 증조부 : 추존 황제 고상조(Cao Thượng Tổ/高上祖) 명황제(Minh Hoàng đế/明皇帝) 레호이(Lê Hối/黎晦/여회)
  • 증조모 : 추존 황후 보자고명황후(Phổ Từ Cao Minh Hoàng hậu/普慈高明皇后) 정씨(Đinh thị/丁氏)
  • 조부 : 추존 황제 현조(Hiển Tổ/顯祖) 소덕지인택황제(Chiêu Đức Chí Nhân Trạch Hoàng đế/昭德至仁澤皇帝) 레딘(Lê Đinh/黎汀/여정)
  • 조모 : 추존 황후 현자가숙흠순택황후(Hiển Từ Gia Thục Khâm Thuận Trạch Hoàng hậu/顯慈嘉淑欽順澤皇后) 응우옌꾸앗(Nguyễn Quách/阮廓/원곽)
    • 백부 : 여종(黎從)
  • 부친 : 추존 황제 선조(Tuyên Tổ/宣祖) 헌문예철복황제(Hiến Văn Duệ Triết Phúc Hoàng đế/憲文睿哲福皇帝) 레코앙(Lê Khoáng/黎曠/여광)
  • 모친 : 추존 황후 정자의문장헌복황후(Trinh Từ Ý Văn Trang Hiến Phúc Hoàng hậu/貞慈懿文莊獻福皇后) 찐응옥트엉(Trịnh Ngọc Thương/鄭玉蒼/정옥창)

형제

  • 맏형 : 소효대왕(Chiêu Hiếu đại vương/昭孝大王) 레혹(Lê Học/黎浥/여읍)
    • 조카 : 충무대왕(Trung Vũ đại vương/忠武大王) 레탓(Lê Thạch/黎石/여석) (? ~ 1421년) - 또 다른 칭호는 진헌숙왕(Chân Hiến Túc vương/眞憲肅王).
  • 동생 : 홍유왕(Hoằng Dụ vương/弘裕王) 레쯔(Lê Trừ/黎除/여제) - 또 다른 칭호는 남국공(Lam quốc công/藍國公).
    • 5세손 : 레 주이 방(Lê Duy Bang/黎維邦/여유방) - 후 레 왕조 제15대 황제 영종(Anh Tông/英宗).

후비

  • 공자고황후(Cung Từ Cao Hoàng Hậu/恭慈高皇后) 팜 티 응옥쩐(范氏玉陳/Phạm Thị Ngọc Trần/범옥진)- 생전 칭호는 현비(Hiền phi/賢妃). 레 태종이 즉위한 후에 황후로 추존됨.
  • 신비(Thần phi/宸妃) 찐 티 루(Trịnh Thị Lữ/鄭氏?/정?) - 레러이의 정실.
  • 혜비(Huệ phi/惠妃) 팜 티 응히에우(Phạm Thị Nghiêu/范氏?/범?)
  • 정숙비(Trinh Thục phi/貞淑妃) 쩐 티 응옥히엔(Trần Thị Ngọc Hiền/陳氏玉?/진옥?)

황자

  • 장남 : 군애왕(Quận Ai Vương/郡哀王) 레뜨떼(Lê Tư Tề/黎思齊/여사제, ? ~ 1438) - 진비 소생. 태자에 책봉되었으나 뒤에 군왕(郡王)으로 강등되었다.
  • 차남 : 양군공(Lương quận công/良郡公) 레응우옌롱(Lê Nguyên Long/黎元龍/여원룡) - 공자고황후 소생. 후 레 왕조 제2대 황제 태종(Thái Tông/太宗).

황녀

  • 장자공주(Trang Từ Công chúa/莊慈公主) 레응옥쩌우(Lê Ngọc Châu/黎玉呂/여옥여)
  • 공주 레응옥응히아(Lê Ngọc nghĩa/黎玉義/여옥의) 



[출처: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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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필리핀 뿐만 아니라, 남쪽에 있는 베트남과도 전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특히 베트남의 역사는 끊임없는 외세의 침략 역사이다. 중국과의 항쟁 1천년, 프랑스와의 투쟁 100년, 다시 미국과의 싸움 8년. 베트남 역사는 끊임없이 침략자에 억눌린 가난과 질병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은 그 어떤 이념도 아닌 그들의 가족과 민족을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그 오랜 세월을 견뎌온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과 자연 조건의 영향으로 베트남 사람들은 그들만의 끈기와 인내를 지니게 되었다.

1천년 이상 중국 왕조의 식민지였던 베트남은 938년 하롱베이 부근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독립했다. 그러나 명나라 영락제 때 다시 식민지가 되었다. 이후 레러이(黎利·1385~1433)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레러이는 1418년부터 독립운동을 시작했으며, 전쟁에서 전력이 기울 땐, 멀리 달아나 전투력을 보전하고 재기를 노려야 한다는 전략으로 접근했다. 명나라군이 진격하면 높은 산으로 달아나 유격전을 벌였고 명군이 후퇴하면 끈질기게 쫓아가 공격하는 방식을 택했다. 매복과 유인, 기습이 성과를 거두면서 베트남군의 전쟁 능력도 점차 강화됐다. 결국 1427년 명나라 10만 대군을 전멸시키며 베트남을 재독립시켰다. 매복과 유인, 기습을 중심으로 한 레러이의 전공법은 20세기 베트남전에서도 사용되었다.  

베트남의 역사는 중국 통일왕조들과의 생존 투쟁이 무엇보다 가장 큰 줄기를 이룬다고 볼 수 있다. 베트남 역사 속 베트남의 전쟁 영웅들이 보여준 삶의 모습 속에서 국난을 극복하는 지도자들의 자질을 찾을 수 있다. 몇 배나 강대한 적국이 침략해 올 때 베트남의 전쟁 영웅들은 어떻게든 분열된 지도층을 하나로 묶고 백성의 지지를 받으며 병사들의 희생을 끌어냈다. 베트남 전쟁 영웅들이 보여준 실제 삶의 모습이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분명히 크다.  

베트남 사람에게 공통으로 흐르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백의 민족`이라는 단어가 있다면 베트남 사람에겐 일종의 `자존감`이 있는 듯 보였다. 1세기에 걸쳐 계속된 식민지와 내전, 그리고 강대국과의 전쟁 등을 거치면서도 굴하지 않았던 역사가 바로 그것이다. 일견, 우리에겐 그들이 민주주의 국가가 아닌 공산주의 국가로 `적대적` 시각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이데올로기를 넘어 민족의 자존심, 나아가 언제라도 내 조국을 위해 총을 들 수 있다는 자존감으로 보아야 옳을 듯 싶다. 

영토의 크기, 인구의 숫자가 그 나라의 국력을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다. 그 나라 국민들의 투철한 정신 상태, 자존감, 협동심이 그 나라의 국력이다. 어떤 나라에게도 당당한 베트남의 모습을 보면서, 최근 시진핑 주석 앞에서 90도로 절을 하며 친서를 전한 중국 특사의 모습을 보니 우리의 민족적 자존심이 더욱 상처를 받는 것 같아서 슬프다.     [김동찬 김천대 교수-    베트남의 자존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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