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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독립운동의 아버지]호세 리살(스페인어: José Rizal)

Bawoo 2019. 12. 26.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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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 리살
José Protasio Rizal
Jose rizal 01.jpg
작가 정보
출생 1861년 6월 19일(1861-06-19)[1]
라구나 주 칼람바[1]
사망 1896년 12월 30일(1896-12-30) (35세)[2]
마닐라 바굼바얀에서 총살형에 처해짐.
직업 필리핀 혁명 관련 개혁가, 독립운동가, 의사
언어 타갈로그어
국적 필리핀의 기 필리핀
학력 산토 토마스 대학교
유니버시다드 센트랄 데 마드리드
종교 가톨릭
필명 페페[3][4]
활동기간 1883년 ~ 1896년
장르 시문학, 소설
배우자 조세핀 브랙켄
주요 작품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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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 프로타시오 리살 메르카도 이 알론소 레알론다(스페인어: José Protasio Rizal Mercado y Alonso Realonda, 1861년 6월 19일 ~ 1896년 12월 30일) 혹은 호세 리살(스페인어: José Rizal)은 의사, 저술가, 시인, 언론인, 교육가이며 필리핀의 독립 운동가이다. 스페인 치하에서 필리핀의 해방을 주창한 필리핀의 독립운동가였으나 안드레스 보니파시오 등의 무장투쟁론에 반대하고 스페인의 개혁과 자치 운동을 주장하였다. 필리핀의 독립운동을 지도하였고 필리핀 독립의 아버지로 추앙받고 있다.[5] 그는 ‘놀리 메 탕헤레(나를 만지지 마오)’(Noli Me Tángere)[6], 훼방꾼(El Filibusterismo)[7]의 작가이며, 많은 시와 에세이를 남겼다. 그는

1896년 12월 30일 스페인 식민지 군에 의해 처형당했다.[8][9]



생애

유학 생활

의사가 되기 위해 스페인으로 유학을 갔으며, 마드리드에서 《놀리 메 탕헤레》(Noli Me Tángere, Touch Me Not의 라틴어)라는 소설을 발표하여 유명해졌다. 《놀리 메 탕헤레》에서 그는 식민지 지배의 모순을 날카롭게 비판, 스페인 인들이 자국인들에게만 특혜를 주고 식민지 필리핀인들을 차별하는 것을 적나라하게 묘사하였다.

식민지 출신의 젊은 유학생이 발표한 이 소설은 당시 개방적인 분위기와 자유주의적인 분위기가 확산되어가던 스페인의 문화계와 마드리드의 지식인층, 학생들 사이에서 급속도로 확산되었고 스페인의 식민통치에 대한 비판 여론이 스페인에서 나오게 되었다. 결국 호세의 서적은 불온서적이 되고, 그는 스페인 정부의 추방령에 따라 퇴학당하고, 필리핀으로 되돌아오고 말았다.

호세 리살 초상화, 후안 루나작 (1894년)


의사의 꿈을 접고 필리핀으로 되돌아오게 된 호세는 필리핀의 해방에 대한 열망으로 뭔가를 실현하고자 필리핀 민족 동맹을 결성하여 스페인 식민통치를 비판하였다. 그는 스페인의 압제하에 필리핀의 노예 상태에 통분, 저서를 통하여 민족의 자각·해방의 기운을 촉진시켰다. 그러나 안드레스 보니파시오 등의 무장투쟁론에 반대하고 스페인의 개혁과 자치 운동을 주장하였다.

1892년 필리핀 독립 운동의 지도 기관인 필리핀 연맹을 결성하여 독립 운동을 지휘하던 중 그의 활동을 주목한 스페인 총독부에 의해 체포되어 민다나오 섬 다피탄으로 유배되었고, 무장 투쟁론자들의 배후로 몰리게 되었다.

투옥과 처형

그 뒤 인트라무로스(Intramuros)내에 있는 산티아고 요새(Fort Santiago) 감옥으로 이감되어 수감생활을 하던 중 1896년 필리핀 혁명의 배후 조종자로 지목되어 마닐라 시내(현재의 리살 공원지)에서 공개 총살형을 당하였다. 그의 죽음은 필리핀인들에게 독립 의지를 불사르는 계기가 되었고, 호세 리살은 필리핀 독립의 아버지로 추앙되었다.

사후

그 뒤 그의 영향을 받은 에밀리오 아기날도, 아폴리나리오 마비니 등 많은 청년들이 필리핀의 독립 투쟁에 가담하는 계기가 된다. 오늘날 필리핀에서는 그를 "독립 운동의 아버지"로 추앙하고 있다. 그가 죽은 12월 30일호세 리살의 날로 기념되며 필리핀의 수도인 마닐라의 로하스 거리(Roxas Street)에 그를 기념해 세운 리살 공원과 그의 동상이 있다.

마닐라에서 공개 처형 당했으며 그가 처형당한 곳은 후일 필리핀 독립 이후 '리살 공원'(Rizal Park)이 세워졌다. 리살 공원 한쪽에는 호세 리살의 처형 장면을 재현해 놓은 동상들이 설치되고 후일 관광지화되었다. 그가 수감된 산티아고 요새 감옥 근처에는 호세 리살 기념관이 세워졌다. [위키백과]

관련 항목

  리살의 희생으로 필리핀인들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는 것 말고는 어떤 대안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처형되기 전날, 산티아고 요새에 갇혀 있을 때 리살이 지은 〈마지막 이별〉은 19세기 스페인 시의 걸작으로 꼽힌다.
리살은 마닐라에 있는 아테네오 데 마닐라와 산토토마스대학교에서 배웠으며 스페인의 마드리드대학에서 의학과 교양학을 공부했다. 파리와 하이델베르크에서 의학 공부를 계속했고, 1886년 타갈로그어로 〈나에게 손대지 말라〉이라는 첫번째 소설을 발표했으며, 여기에서 가톨릭 탁발수사들의 사회지배가 낳은 죄악상을 격렬하게 파헤쳤다. 이어 〈체제전복〉(1891)을 발표하면서 필리핀 개혁운동의 주요대변자로서 명성을 다졌다. 부모와 친구들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1892년 귀국하여 마닐라에서 비폭력 개혁단체인 '필리핀 동맹'을 결성했으며 이 때문에 민다나오 북서부의 다피탄으로 추방되었다. 1896년 민족주의 비밀결사단체인 카티푸난이 폭동을 일으켰다. 리살은 그 단체와 무관했고 폭동에 참가하지도 않았으나 체포되었다. 스페인 군당국은 그를 재판에 회부, 유죄판결을 내려 마닐라에서 공개적으로 총살하였다.

아버지는 중국계 필리핀인으로 부유한 지주이며 사탕수수 재배 농장주였고 어머니 테오도라 알론소는 당시 필리핀에서 최고의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이었다. 리살은 마닐라에 있는 아테네오 데 마닐라와 산토토마스대학교에서 배웠으며 스페인의 마드리드대학에서 의학과 교양학을 공부했다.

뛰어난 학생이었던 그는 곧 스페인에 유학온 필리핀 학생 단체의 지도자가 되었고 조국에 대한 스페인 식민통치의 개혁에 힘썼으나 필리핀 독립을 주장하지는 않았다. 그는 개혁에 있어 최대의 적은 당시 심각한 혁명을 겪고 있던 스페인이 아니라 정치·경제면에서 필리핀을 마비상태에 빠뜨린 프란체스코·아우구스티누스·도미니쿠스 수도회 탁발수사들이라고 보았다.

파리와 하이델베르크에서 의학 공부를 계속했고, 1886년 타갈로그어로 〈나에게 손대지 말라 Noli me tangere〉이라는 첫번째 소설을 발표했으며, 여기에서 가톨릭 탁발수사들의 사회지배가 낳은 죄악상을 격렬하게 파헤쳤다. 이어 〈체제전복 El filibusterismo〉(1891)을 발표하면서 필리핀 개혁운동의 주요대변자로서 명성을 다졌으며 안토니오 모르가의 〈필리핀의 역사 Sucesos de las Islas Filipinas〉의 주석판(1890, 재판 1958)을 내어 필리핀 원주민은 스페인이 필리핀에 오기 전부터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주었다.

그는 운동의 지도자가 되어 바르셀로나에서 간행되는 신문인 〈라 솔리다리다드 La Solidaridad〉에 수많은 글을 발표했다(→ 선전운동). 발표한 글에서 나타나듯이 리살의 정치강령은 필리핀을 스페인의 한 주(州)로 통합하고 스페인 국회에 대표자를 파견할 것, 스페인 탁발수사를 필리핀 탁발수사로 교체할 것, 집회·결사의 자유와 필리핀인과 스페인인의 법적인 평등을 보장할 것 등을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다.

부모와 친구들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1892년 귀국하여 마닐라에서 비폭력 개혁단체인 '필리핀 동맹'(Liga Filipina)을 결성했으며 이 때문에 민다나오 북서부의 다피탄으로 추방되었다. 여기서 4년 동안의 유배기간중 과학을 연구했고 학교와 병원을 세우기도 했다.

1896년 민족주의 비밀결사단체인 카티푸난이 폭동을 일으켰다. 리살은 그 단체와 무관했고 폭동에 참가하지도 않았으나 체포되었다. 스페인 군당국은 그를 재판에 회부, 유죄판결을 내려 마닐라에서 공개적으로 총살하였다. 그의 희생으로 필리핀인들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는 것 말고는 어떤 대안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처형되기 전날, 산티아고 요새에 갇혀 있을 때 리살이 지은 〈마지막 이별 Útimo adiós〉은 19세기 스페인 시의 걸작으로 꼽힌다.[다음 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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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역사 이야기]필리핀의 독립 운동과 호세리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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