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chaikovsky, String Sextet 'Souvenir de Florence'
차이콥스키 현악 6중주 ‘피렌체의 추억’
Pyotr Ilyich Tchaikovsky
1840-1893
Copenhagen Festival Ensemble
Liza Ferschtman, violin
Marie Hanskov, violin
Lars Anders Tomter, viola
Dmitri Golovanov, viola
Morten Zeuthen, cello
Toke Møldrup, cello
Odd Fellow Palace, Copenhagen, 2012.11.18
Copenhagen Festival Ensemble: Tchaikovsky, String Sextet 'Souvenir de Florence'
1890년 1월, 발레 <잠자는 숲 속의 미녀>의 초연을 성황리에 마친 차이콥스키는 거의 탈진 상태에 빠졌다. 후원자 폰 메크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이제 더 이상 힘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국외나 국내를 막론하고 모든 연주회 일정을 취소하고 이탈리아로 가서 넉 달 정도 쉬면서 다음 오페라 작업을 해야겠습니다.”라고 토로했다. 1월 30일 피렌체에 도착한 그는 푸슈킨의 희곡에 기초한 오페라 <스페이드 여왕>의 작곡에 매달려 6주에 걸쳐 초안을 잡았고 다시 6주 뒤에는 대부분의 작업을 마쳤다. 워낙 감정 이입을 잘하는 그였기에 비극적인 마지막 장면을 위한 곡을 쓰면서는 많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리고 그 직후 <피렌체의 추억>에 착수했는데, 어쩌면 이 작품은 그런 상태에서 탈출하기 위한 몸부림은 아니었을까?
이례적인 편성, 만만찮은 산고
<피렌체의 추억>은 여러 모로 이례적인 작품이다. 먼저 현악 6중주라는 형태가 러시아 실내악에서는 보기 드문 구성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비단 러시아뿐 아니라 다른 나라들을 둘러봐도 이 분야의 명작은 브람스 정도 외에는 찾아보기 어렵다. 또 차이콥스키의 작품세계에서 실내악이라는 장르가 차지하는 비중을 보아도 그런데, 그가 남긴 실내악곡은 8편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차이콥스키는 왜 이런 작품을 썼던 것일까?
일단 1890년 7월에 폰 메크 부인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그 이유를 어느 정도 추측해볼 수 있다. “이 곡은 집에서 간단히 편곡하여 연주할 수 있기 때문에 당신은 연주회에 가실 필요가 없습니다.” 당시 폰 메크 부인은 와병 중이라 외부 출입을 삼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하필 현악 6중주라는 형식을 취한 이유까지 설명되지는 않는다. 이 곡의 첫 스케치가 이루어진 시점은 1887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당시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실내악 협회로부터 작품 의뢰를 받아 놓고 있었다. 아마도 그가 굳이 6중주라는 형태를 택했던 것은 가급적 많은 회원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낯선 장르에 대한 도전은 만만치 않은 산고를 안겨주었다. 작곡 초기에 그는 여섯 개의 성부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일단 관현악용 악보를 작성한 다음에 그것을 6대의 현악기를 위한 악보로 ‘재편곡’하는 식으로 작업을 진행시켜 나갔다. 시간이 지나면서 요령이 생겨 작업은 한결 수월해졌지만, 그런 우여곡절은 야릇한 결과로 이어졌다. 오늘날 이 곡은 ‘현악 6중주’보다는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으로 더 각광받고 있는 것이다.
피렌체의 상징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을 중심으로 보이는 피렌체 전경. 기원전 59년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아르노 강에 식민지를 세우고 ‘꽃피는 마을’이란 뜻의 라틴어 ‘플로렌티아’(Florentia)라고 이름 지었으며, 여기서 영어와 불어에서 피렌체를 가리키는 Florence(영어론 ‘플로렌스’, 불어론 ‘플로랑스’로 발음)가 파생되었습니다. 피렌체(Firenze)는 이탈리아어입니다.
러시아인의 눈에 비친 이탈리아, 그리고 추억
이 곡에 관한 또 하나의 쟁점은 매력적인 부제에 있다. ‘피렌체의 추억’, 또는 보다 낭만적인 뉘앙스의 ‘플로렌스의 추억’이라는 부제는 당연히 ‘이탈리아적’인 이미지를 환기시킨다. 다시 말해서 멘델스존의 <이탈리아 교향곡>에서 느낄 수 있는 밝고 쾌활한 기운이나 이탈리아의 토속적인 소재를 기대하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이 곡에서 마주치게 되는 ‘이탈리아’는 다분히 제한적이다. 이를테면 첫 악장에서는 그 열기와 격정이 부각되지만 그조차 어딘지 음울한 기운을 띠고 있으며, 느린악장에서 전해오는 정서도 남국의 한가로운 여유라기보다는 북구의 우수를 가득 머금은 회상에 가깝다. 무엇보다 이 곡은 대체로 단조를 기반으로 전개되며, 후반 두 악장에는 러시아의 민요나 춤곡의 선율과 리듬이 적용되어 있다. 즉 이 곡에 투영된 이탈리아는 어디까지나 러시아인 차이콥스키의 눈에 비친 이탈리아라고 해야겠다. 아울러 부제에 명시된 ‘추억’ 역시 이탈리아에서 떠올린 러시아의 추억이며, 한편으론 보다 먼 과거에 관한 회상이기도 했으리라.
모두에 인용한 편지의 내용은 이렇게 이어진다. “지난주는 안 좋은 일들을 당하여 극도로 저조한 기분으로 보냈습니다. 원인은 이전에 당신과의 편지에서 ‘어떤 사람’이라고 말한 바 있던 한 여인 때문이었습니다.” 그 여인은 바로 그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준 부인 안토니나 밀류코바였다. 1877년에 시작된 그녀와의 악연은 그때까지도 지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피렌체는 10여 년 전에 그가 악몽 같았던 결혼생활에서 탈출하기 위해 헤매고 다녔던 도피처들 가운데 하나였다. 1878년 11월 그곳에서 폰 메크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런 구절이 실려 있었다. “클라랑스에서 되찾았던 마음의 평정을 다시 잃어버리고 감상적인 기분에 젖어들 때가 많습니다. 제 자신도 왜 그런지 모르는 우울증에 빠져 산악 지역에서 당신에게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얼마나 유치한지 저도 모르겠군요. 완전히 행복한 느낌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국경을 넘어 이탈리아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만, 미친 짓이었죠. 여기서는 이전보다 더욱 비참한 느낌뿐입니다.”
RNO soloists: Tchaikovsky, String Sextet 'Souvenir de Florence'
Russian National Orchestra soloists
Tatiana Porshneva, violin
Alexei Khutoryansky, violin
Sofia Lebed, viola
Grigory Chekmarev, viola
Olessya Gavrikova, cello
Maxim Tarnorutsky, cello
Moscow Orchestrion concert hall, 2010.11.27
1악장: 알레그로 콘 스피리토
d단조, 3/4박자. 두터운 화음 반주를 타고 등장하는 맹렬한 제1주제로 시작된다. 그 역동적이고 정열적인 악상이 전체의 분위기를 주도하는 가운데, ‘돌체 에스프레시보 에 칸타빌레’의 제2주제가 부드러우면서도 우수 어린 표정으로 대비를 이룬다. 발전부에서는 제1주제의 모티브를 자유롭게 변형시킨 진행과 대위법적인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마지막은 화려하고 극적인 코다로 장식되는데, 차이콥스키는 여기에 <스페이드 여왕>에서 따온 두 개의 주제를 삽입했다.
2악장: 아다지오 칸타빌레 에 콘 모토
D장조, 3/4박자. 차이콥스키 특유의 애절한 울림으로 가득한 도입부에 이어 부드럽게 노래하는 제1주제가 등장한다. 기타 연주 같은 피치카토 위에서 펼쳐지는 이 D장조 선율은 세레나데 풍으로 제1바이올린에서 첼로로 이어지며, 보다 표정이 풍부한 F♯장조의 제2주제를 이끌어낸다. 중간에 휩쓰는 듯한 움직임의 에피소드가 등장하는데, 여기서 모든 악기가 활 끝으로 연주하는 리듬은 남부 이탈리아의 민속춤곡인 타란텔라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3악장: 알레그레토 모데라토
a단조, 2/4박자. 단조와 장조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러시아 민요풍의 스케르초 악장. 주부에서는 은근한 추진력을 지닌 리듬과 장중한 표정이 교묘히 어우러지며, 트리오에서는 농민들의 잔치를 그린 듯한 흥겨운 리듬과 익살스런 표정이 부각된다.
4악장: 알레그로 비바체
d단조, 2/4박자. 소박한 러시아 춤곡풍의 리듬을 지닌 d단조의 제1주제와 매끄럽게 흐르는 C장조의 제2주제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소나타 형식의 피날레. 제시부와 재현부에서 제1주제는 푸가토로 발전하는데, 이 푸가토는 차이콥스키가 특히 자랑스러워했던 부분이다. 제2주제는 D장조로 재현된 후 장대하고 격렬한 클라이맥스로 치달아 올라 극도의 흥분 속에 마무리된다.
이 곡은 1890년 11월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차이콥스키의 아파트에서 비공개로 초연되었다. 연주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실내악협회 회원들이 맡았고, 차이콥스키 자신 외에도 글라주노프, 랴도프, 라로슈 등이 참석했다. 이후 차이콥스키는 주로 후반 두 악장을 개정하여 1892년 6얼에 악보를 출판했고, 같은 해 11월 24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공식 초연을 가졌다. 이때는 레오폴트 아우어가 이끄는 앙상블이 연주를 맡았는데, 차이콥스키는 평소 아우어의 칸틸레나(서정적인 선율) 연주 능력을 높이 평가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이 무렵 폰 메크 부인과의 관계는 이미 단절된 상태였다.
글 황장원(음악 칼럼니스트) 클래식음악 감상실 ‘무지크바움’ 실장과 한국바그너협회 사무간사 역임. 무지크바움, 부천필 아카데미, 성남아트센터, 풍월당에서 클래식음악 교양강좌를 맡고 있다. <객석>, <스테레오뮤직>, <그라모폰>, <라무지카> 등에 칼럼을 기고했고 현재 서울시향 프로그램 노트를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