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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알프스 교향곡'

Bawoo 2017. 7. 17. 21:35



Richard Strauss, Eine Aloensinfonie Op.64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알프스 교향곡’

Richard Strauss

1864-1949

Bernard Haitink, conductor

Wien Philharmoniker

Royal Albert Hall, London

BBC Proms 2012

 

Bernard Haitink/Wien Philharmoniker - Richard Strauss, Eine Aloensinfonie

 

 

우리나라는 산이 많은 나라다. 추운 겨울, 버스를 타고 가다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창밖의 산들을 바라보면 가끔씩 알프스 산맥이 떠오르기도 한다. 후기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51세 때인 1915년 완성한 대작 <알프스 교향곡>은 유럽의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알프스 산맥의 풍경을 묘사한 걸작 교향시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독일 뮌헨에서 태어난 바이에른 주 출신이다. 그는 후기낭만파 작곡가로서의 예술적 역량을 발휘했는데, 당대에 벌어진 음악 논쟁에서 처음에는 고전적 형식을 지향한 보수적 브람스파의 입장을 취했지만 점차 미래음악을 추구한 진보적 바그너파로 노선을 전향했다. 그래서 진보적 음악 형식이었던 표제음악적 교향시를 쓰게 됐다. 음악을 통해 회화적 내용이나 문학적 내용을 묘사한 음악을 교향시라고 한다.

알프스를 등반하며 마주치는 22개의 풍경들

1908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뮌헨의 서남쪽 60km쯤에 있는 가르미슈 파르텐키르헨에 산장을 지었다. 지휘 활동을 하지 않을 때는 아름다운 산장에서 작곡에 몰두했는데, 알프스의 봉우리들이 훤히 보이는 곳이어서 산을 사랑한 작곡가는 이 은신처를 마음에 쏙 들어 했다고 한다. <알프스 교향곡>의 대부분은 이 산장에서 완성되었다. 그럼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등산을 즐겨했을까? 그렇다고 보기는 힘들다. 슈트라우스는 1891년 폐렴을 앓았고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까지 직면했다. 이듬해에는 늑막염과 기관지염을 앓는 등 잦은 병치레 이후에도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등산같이 힘든 운동은 그에게 무리였다고 한다. 알프스 중턱의 평화로운 풍경.

한편, <알프스 교향곡> 창작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것은 1878년 작곡가가 14세 때 겪은 등산 체험으로 알려져 있다. 슈트라우스는 1878년 8월 말, 독일 뮌헨과 가르미슈 사이에 있는 무르나우에서 출발해 가까운 산으로 등산을 떠났다. 그러나 한밤중인 2시에 출발해 5시간쯤 산 비탈길을 오르다가 도중에 길을 잃어버리고 만다. 좁은 길조차 없는 어두운 길을 3시간이나 걸어 내려와야 했고 총 12시간쯤 걸었다고 한다. 험한 산 속에서 비바람에 온몸이 흠뻑 젖어버린 슈트라우스는 우연히 근처의 농가를 발견했고 거기에 머물 수 있게 되어 큰 사고의 위험을 모면했다. 작곡가는 그때 그곳에서 고생스러웠던 산행의 경험을 음악적으로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바로 다음날 피아노로 그 상황을 표현해 보았다고 한다.

<알프스 교향곡>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관현악을 위한 연주회용 곡으로 쓴 가운데 마지막 작품으로, 새벽부터 해질 때까지 알프스 산맥의 변화하는 모습을 그렸다. 교향곡이지만 표제를 갖고 있고, 악장 형식도 자유롭게 구성돼 있다. 이 곡은 교향곡이란 제목이 붙어 있지만 형식상 교향시로 분류된다. 그리고 각 악장이 세분화된 형식이 아니라 전체가 쉬지 않고 하나의 악장으로 이어진 형태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표제라고 해서 <알프스 교향곡>에 반듯한 정리된 타이틀이 붙어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악보 여기저기에 ‘해돋이’라든가 ‘정상에서’라는 짧은 문구가 적혀 있는 것에 불과하다.

이 곡에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등산을 하면서 마주치게 되는 여러 가지 장면을 자연을 묘사하듯 세심하게 그렸다. 그러나 어려움을 극복하며 정상에 오르는 등산의 근면한 과정, 자기 극복 과정에 큰 의미를 부여한 것은 아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리스트의 교향시를 관철하는 관념인 ‘암흑에서 광명으로’라는 음악적 문법에 동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순히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알프스 교향곡>을 통해 자연의 아름다움을 솔직하게 묘사하고 싶었을 뿐만 아니라, 자연을 향한 인간의 강렬한 동경을 묘사하듯이 그리려 했을 뿐이다.

Fabio Luisi/Staatskapelle Dresden - Richard Strauss, Eine Aloensinfonie

Fabio Luisi, conductor

Staatskapelle Dresden

Royal Albert Hall, London

BBC Proms 2009

호른을 12개나 사용한 대규모 오케스트라 편성

곡은 크게 5개의 부분으로 나뉜다. 전체적으로 (1) 서주: 출발 전의 정경 (2) 제1부: 정상에 이르기까지 (3) 제2부: 정상에서의 기분 (4) 제3부: 하산 (5) 피날레: 도착의 감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출발부터 하산까지 등산 과정을 차례대로 묘사하고 있는 셈이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알프스에서 마주치는 여러 가지 풍경이 정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1. 밤 2. 일출 3. 등산 4. 숲속으로 들어가다 5. 시냇가를 걷다 6. 폭포에서 7. 환영 8. 꽃피는 초원에서 9. 목장에서 10. 깊은 숲에서 길을 잃다 11. 빙하에서 12. 위험한 순간 13. 정상에서 14. 환상 15. 안개가 낀다 16. 해는 점차 희미해지고 17. 비가 18. 폭풍 직전의 고요 19. 천둥번개와 폭풍, 하산 20. 일몰 21. 여운 22. 밤 ― 이런 순서로 22개의 장면들이 나란히 모여 단일 악장을 이룬다. 각각의 곡에서 R. 슈트라우스가 발휘하는 뛰어난 관현악법이 깊은 인상을 남기며,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생생한 음악적 묘사가 놀라움을 안겨준다.

각 장면이 묘사하고 있는 줄거리를 모아보면 다음과 같은 재밌는 드라마가 만들어진다. 알프스 산맥을 등산하는 사람들이 산을 오르다가 장엄한 일출을 만나게 되고, 찬란하게 묘사된 폭포와 목장의 종소리가 들리는 알프스의 초원을 지나가게 된다. 그러다 아찔한 빙하와 마주치게 되고 위험한 순간들을 극복하며 산 정상에 도달하게 된다. 감격스러운 정상 정복 이후 내려오는 길에서 폭풍우가 밀어닥칠 것이라는 복선이 조용히 깔린다. 마침내 폭풍이 몰아치게 되고 위협적인 순간들이 펼쳐진다. 격렬한 폭풍이 지나간 후 알프스에는 다시 밝은 태양이 솟아오른다. 하산 길에서 등산객은 지금껏 산 속에서 겪은 일들을 조용히 되돌아본다. 알프스 산행을 회상하는 이 에필로그에는 아름다운 선율에 담겨 이 작품의 대미를 멋지게 장식한다.

깎아지를 듯이 솟아 있는 알프스의 봉우리. 음악은 정상의 감흥을 드라마틱하게 묘사한다.

<알프스 교향곡>과 관련된 유명한 일화가 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알프스 교향곡> 리허설을 지휘하고 있었을 때, 천둥치는 대목에서 악장이 바이올린 활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순간 슈트라우스는 연주를 멈추게 하고는 단원들을 보고 빙그레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여러분 잠깐 쉬어야겠소. 지금 비가 막 내리기 시작했는데 악장이 그만 우산을 떨어뜨렸으니 말이오.” 뛰어난 지휘자로도 명성을 날렸던 슈트라우스는 이렇게 유머와 재치로 부드러운 연습 분위기를 만들어 나갔다고 전해진다.

또 <알프스 교향곡>은 흔히 볼 수 없는 대규모 오케스트라 편성으로도 유명하다. 당시 구스타프 말러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서로 겨루듯이 오케스트라 편성 규모를 확대하기 시작했다. 말러의 <천인 교향곡>도 그랬지만 슈트라우스는 <알프스 교향곡>에서 호른을 12개나 사용했다. <알프스 교향곡>의 악기 편성을 자세히 살펴보면 현악기, 관악기, 타악기에 헤켈호른, 콘트라바순, 테너 튜바, 하프 각 4개와 오르간, 글로켄슈필, 탐탐, 첼레스타, 트럼펫 두 대, 트롬본 두 대, 그 밖에 천둥소리 등의 음향효과를 내는 기구 등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 후기낭만파 음악의 새로운 실험, 혁신적인 관현악법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추천음반

카라얀 지휘/베를린 필(DG, 1980)은 날씨 좋은 날 해상도 높은 사진으로 찍은 알프스의 광경 같다. 변화하는 산의 모습이 잘 다듬어진 베를린 필의 음색과 겹쳐진다. 동틀 무렵 일출 장면의 총주는 눈부시도록 아름답다. 카를 뵘/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연주(DG, 1958)는 슈트라우스 전문가답게 곡의 곳곳을 잘 알고 있는 지휘자의 해석이 효과에만 치중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묘사하고 있다.

앙드레 프레빈/빈 필(Telarc, 1989)은 녹음이 좋다. 곳곳에서 현과 목관의 아름다운 울림이 귀를 즐겁게 한다. 마지막으로 가장 최근 녹음인 베르나르드 하이팅크/런던 심포니의 실황(LSO Live, 2010)은 콘세르트헤보우를 지휘한 구반(Philips, 1990)을 능가하는 우수한 녹음과 연주로 21세기 이 곡의 새로운 레퍼런스가 될 만하다.

 

류태형(음악 칼럼니스트) 현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전 대원문화재단 사무국장, 전 <객석> 편집장 역임. 옛 음반과 생생한 공연의 현장을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처럼 누비길 즐겨 한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 오늘의 클래식>명곡 명연주 2011.07.06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66&contents_id=5600

 

가져온 곳 : 
카페 >클래식 사랑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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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라라와복래| 원글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