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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단원 김홍도 그림에는 중팔선도(中八仙圖)가 숨어 있다

Bawoo 2014. 1. 19. 23:32

 

 

 

단원 김홍도 그림에는 중팔선도(中八仙圖)가 숨어 있다

 

 

 


 - 단원의<장터길>, <벼 타작>, <점심>,  <무동도>, <심관>, <군선도>

<신행>, <포의풍류도>,  등은 두보의 <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 또는

<팔선도(八仙圖)>를 의미하고 있다 -

 

 

 

들어가는 말에서...

 

단원 김홍도의 그림을 보면 풍자와 재치가 넘친다. 그러나 이렇게 단순무식하게 풍자와 재치라고만 하는 것은 단원의 그림을 제대로 깊이 있게 해석하는 것이 못된다. 사실 김홍도의 풍자는 서민들의 생활 속에서 신선도를 그려내고자 했다.

 

예를 들어 김홍도의 <씨름도>는 21명의 도모들은 여신 또는 선녀들로서 그 모티브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제 김홍도의 <장터길>과 <점심> 그림에서 나는 당나라 두보(杜甫)의 <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를 풍자적으로 그린 '신선풍속화'라는 사실을 밝히고자 한다.

 

단원 김홍도는 신선도를 의외로 많이 그렸다. 단원의 그림에서 신선도로 알려지지 않은 그림들에서도 신선도 특히 여덟 신선을 그린 이른바 '중팔선도(中八仙圖)' 개념을 찾아낼 수 있다. 김홍도의 <장터길>과 <점심>은 '팔선도(八仙圖)' 중에서도 두보의 <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를 그린 <술 취해 돌아오는 음중팔선도>라는 해석을 해두고자 한다.

 

신선도 그림에는 <팔선도(八仙圖)>가 기본이며, 그 중에 두보의 <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의 주제를 그린 <음중팔선도(飮中八仙圖)>도 여러 가지가 존재한다. 명말청초(明末淸初)의 화가 진홍수(陳洪綬)의 <음중팔선도권(飮中八仙圖卷>이 존재한다.

 

그렇만, 조선시대에는 단원 김홍도의 <지장기마도(知章騎馬圖)>가 당나라 두보의 시 <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에 그 모티브를 가지고 그린 그림이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김홍도의 <지장기마도(知章騎馬圖)>는 두보의 <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에 나오는 여덟 명의 '술 신선'들 가운데 첫번째 나오는 지장(知章) 술 신선 이미지에서 그 모티브를 가져온 것이다.

 

*명말청초(明末淸初)의 화가 진홍수(陳洪綬)의 <음중팔선도권(飮中八仙圖卷>

김홍도가 영향을 받았을 그림으로 보인다.

 

*김홍도의 <지장기마도(知章騎馬圖)>

 

 

그림의 오른쪽에 있는 화제는 두보의 시 <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의 첫 귀절을 쓰고 왼편에는

甲子臘念丹邱寫于瑞墨齋(1804년동지후단구12월20일 서묵재에서 그렸다)라고 쓰고 있다.

 김홍도 그림에는 기본적으로 여덞 신선의 <팔선도> 그림의 구도를 가지고 있는 것은 구체적으로 '팔선도'의 전통 그림에서 자연스럽게 표현하여 얼핏 보면 잘 드러나지 않게 하고 있다. 본래 전통 <팔선도>는 한 명의 여 신선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김홍도 그림에서는 한 명의 여자와 일곱 명의 남자를 모델로 생활 풍속도를 그려낸다. 때로는 그 한 명의 여신선은 암시적으로 생략하면서 일곱 남자를 주로 그려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흥미로운 사실을 찾아낼 수 있다.

 

전통적인 신선도가 사상에서 <팔선도(八仙圖)> 그림은 여덟 신선의 유래는 바다 건너 온 것으로 중국의 <팔선도(八仙圖)>는 자주 바다와 함께 그리고 있으며, 그 가운데 여 신선은 '어머니' 또는 최상의 지위로 표현하여 그리기도 하는 배경에는 놀랍게도 신라 시조신화에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필자는 신라 시조신화에 나오는 선도성모 및 알영(아리영) 신선이 일본에는 물론 당나라와 송나라에도 영향을 미친 결과라는 것을 밝혔다.

 

 

1. 중국의 바다 건너는 <팔선도(八仙圖) 전통은 신라에서 건너간 팔선(八仙)  

 

한자의 '船(배 선)'자가 노아방주 여덟가족을 의미한다는 일부 기독교인들의 해석은 우스개에 가깝다. 배를 타고 팔선들이 바다를 건너는 팔선과해도와 船자가 연관되었을 뿐 노아홍수심판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장생불사의 신선은 바다와 연관되어 있었다. <도화원기>에서 무릉도원에 사는 사람들은 영원히 늙지 않고 산다는 신선은 서양의 '<피터 팬>에서는 늙지 않는 소년 피터 팬으로 묘사된다. 피터 팬의 스토리 역시 스코틀랜드 소설로서 신세계 네버랜드(Never Land)라는 섬의 바닷가에서 인어와 해적, 그리고 인디안들을 만나는 바다 무대를 배경하고 있다.

 

'신세계'를 상징하는 율도국과 홍길동 이야기 또한 신선 아이 길동(吉童)이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피터 팬과 서로 같은 현 세상의 자연에서 젊은 소년으로서 영생한다는 신선도의 맥락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있다.

 

File:Peter pan 1911 pipes.jpg

*팔선도에 나오는 신선처럼 피리를 불고 있는 피터 팬 그림. 1911년

 

 

팔선(八仙)이라고 하면 그 이름들이 하선고(何仙姑, 유일한 여신선)、한상자(韓湘子)、조국구(曹国舅)、남채화(藍采和)、한종리(漢鍾離)、이철괴(李鉄拐)、여빈동(呂洞賓), 장과로(張果老) 여덟 신선을 말한다.

 

그렇데 유일한 여신선인 하선고(何仙姑)는 본래 송(宋) 나라 때 기록은 '하리랑(何二娘)'이었다. 그 칭호가 변경된 것은 훨씬 후대의 기록에 나온다. 그 변경의 이유는 여신선의 하리랑(何二娘)의 기원이 신라시조 아리영(娥利英, 알영)에게서 유래했기 때문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유일한 여신선인 하선고(何仙姑) 즉 하리랑(何二娘) 여신선이 나머지 일곱 남자 신선들보다 상위이면 중심으로 그려진다는 사실이며, 더더욱 그러한 팔선도(八仙圖)는 바다를 건너는 장면으로 그려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팔선도(八仙圖) 구도는 신라의 신선풍류도가 중국으로 건너갔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여러 정황을 보여준다.

 

 

*팔선과해회도(八仙过海繪圖). Eight Immortals Crossing the Sea

팔선: 何仙姑、韓湘子、曹国舅、藍采和、漢鍾離、李鉄拐、呂洞賓。船外:張果老

하선고(何仙姑) 여신선이 나머지 신선들을 싣고 노를 저으며 바다를 건너고 있다.

힘센 남자 신선이 아닌 여신선이 노를 젓는다는 것은 여신선의 위치가

이들 일곱신선의 어머니 신선 즉 선모(仙母) 신선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바다를 건너는 신선에 대한 신화는 '예수가 물 위를 걸었다'는 스토리 구조에도 같은 맥락으로 적용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예수는 '죽어도 죽지 않는다'는 장생불사의 신선도를 주장했으며 물 위를 걷는다는 것은 팔선들처럼 바다를 건너는 신선도에 이어져 있는 것이다.

 

12 제자와 7 아들은 서로 유사한데가 있다.   본래 여신선을 중심으로 바다를 건너는 팔선도(八仙圖) 그림이 남자 신선을 강조하기 시작하면서 술 마시는 '술 신선'으로 풍자하는 것으로 시와 그림에서 표현되기도 했다.

 

그러한 배경이 두보(杜甫)의 <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와 그 시를 그린 명청대의 <음중팔선도(飮中八仙圖)>이다.  두보가 '음중팔선'이라고 한 사람들은 시와 술을 사랑한 여덟 명의 주당 시인들로 이들 '음중팔선'은 본래 전통 '팔선'의 신선들에 대하여 두보가 유명한 술꾼들로 대치한 인물들이다.

 

그들 여덟 술꾼 시인들은 하지장(賀知章), 여양왕진(汝陽王進), 이적지(李適之), 최종지(崔宗之), 소진(蘇晋), 이백(李白), 장욱(張旭), 초수(焦洙) 여덟 명이다. 엄격히 말하여 이들은 신선이 아니지만, 술과 시를 좋아하는 인물들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여신선은 생략되어 남자들만 여덟 명으로 하여 두보는 그 각각의 인물들을 한 귀절씩 묘사하여 시를 읊은 것이 두보(杜甫)의 <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이다. 그  시 가운데 '첫 술꾼 신선'으로 지장(知章) 신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쓰고 있는데 단원 김홍도가 이 인물에 대해서만 그림을 따로 그린 것이  <지장기마도(知章騎馬圖)>이다. 

 

知章騎馬似乘船(지장기마사승선)

지장은 말타기를 배 타듯 하네

   

眼花落井水底眠(안화낙정수저면)

몽롱하여 우물에 빠져 잠이 들었네

 

당나라는 신라와 교류하던 나라였다. 당나라와 송나라 문화에서 신라의 해신의 영향이 있다는 필자의 주장은 그동안 지나치게 모든 문화가 당나라에서 신라로 왔을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성 사대주의를 타파할 것이다. 

 

바다와 관련한 신선풍류도는 해신 숭배와 함께 신선사상이 신라에서 비롯되어 당나라로 건너갔던 많은 증거들이 있다. 두보의 <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 시의 시작에서 바다를 언급한 것은 예사롭지 않다.

 

두보는 신라의 바다와 배 중심의 팔선도를 당나라의 대륙 중심의 말로 대치하고 바다 대신에 우물로 대치한 것을 볼 수 있다. 두보는 그의 <음중팔선가>의 첫 귀절에서,

 

 "지방은 말타기를 좋아하여 배 타듯 하네/ 몽롱하여 우물에 빠져 잠이 들었네"라고 한 것은 그의 전체 <음중팔선가>의 무대 배경의 변경을 시사해 놓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두보의 '바다 배경 팔선도의 내륙화' 과정은 이태백이 고래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이백기경상천(李白騎鯨上天)' 시나 그림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태백은 바다가 아닌 고래도 없는 동정호에서 술이 취해 달놀이를 하다가 물에 빠져 죽었다.

 

그런데 그런 이태백이 고래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것은 다분히 외래적인 영향의 변경에서 나온 것임을 엿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신라에서 온 고래해신에서 연원한 바다의 여신선을 배경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나라의 양대 거장 시인인 두보(杜甫)의 <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와 이백이 고래타고 하늘로 갔다는 <이백기경상천(李白騎鯨上天)>은 신라의 신선풍류도가 바다를 건너가 '우물'의 노래가 되고 '동정호'의 호수 노래가 된 것이다.

 

고래를 타고 하늘로 올라간다는 기경상천(騎鯨上天)은 신라의 연오랑과 세오녀처럼 고래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기경과해(騎鯨課海) 또는 죽어서 고래해신이 된다는 신라의 문무대왕의 분골경진(粉骨鯨津)을 의미한다.

 

본래 팔선은 여덟 신선이 바다를 건너는 것을 의미했으며, 그 중 중심 신선이 유일한 여신선인 하선고(何仙姑) 신선이다. 팔선도(八仙圖)가 바다를 건너는 <팔선과해도(八仙过海圖)>가 본래의 그림 뜻이었다.

 

고래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기경과해(騎鯨課海)'의 의미가 위의 그림에서도 보여주듯이 <팔선과해회도(八仙过海繪圖)>에서 고래 대신 여신선인 하선고(何仙姑) 신선이 노를 젓는 이미지로 대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하선고(何仙姑) 여신선의 명칭은 '하리랑(何二娘)' 여신선으로서 신라시조 아리영(娥利英)이었다는 것은 <삼국유사>에서 알영(閼英)으로도 표기하고 또 아리영(娥利英)으로도 표기하면서 "바닷가에 나타나 죽은 용 즉 고래 뱃속에서 살아나온" 인물로 쓰고 있다는 것에서...

 

신라의 아리영(娥利英) 여신이 바다를 건너 신라 바닷가로 온 것처럼 신라의 아리영(娥利英) 여신선이 당나라로 건너가  '하리랑(何二娘)'으로 칭해졌던 것이다. 나중에 하선고(何仙姑) 로 그 명칭을 변경했다.

 

그러나 그 팔선도의 전설은 바다를 건너오는 신라의 아리영(娥利英) 여신선을 지울 수가 없어 팔선도 그림에서 남자신선들이지만 배에 타고 있고 여신선인 아리영(娥利英) 즉 하선고(何仙姑)  여신선이 노를 젓는 장면으로 나오게한다.

 

그뿐만 아니라 하선고(何仙姑) 여신선은 다른 7명의 남신선들과는 달리 수레를 타고 따로 시녀들의 시중을 받는 '선모(仙母)'의 풍채로 그려지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여 중국의 전통 <팔선도(八仙圖)>와 더불어 두보(杜甫)의 <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와 그에 따른 그림이나 이백이 고래타고 하늘로 갔다는 <이백기경상천(李白騎鯨上天)>은 모두 신라의  '선모(仙母)' 아리영(娥利英)여신의 영향인 것이다.

 

여신선과 일곱 남신선으로 구성된 '팔선(八仙)'이라 한 것도 사실 신라의 처용에 대한 <삼국유사>의 기록에서 보이는데로 '용왕 어머니와 그 일곱 아들'의 개념에서 볼 수 있으며, 제주도를 중심한 바리공주와 그 일곱 아들로 무속에도 남아있는 것으로 신라의 여덟 신선에서 유래한 것이다.   

 

중국의 <팔선도(八仙圖)>의 기원을 추적해 보면 모호하고 그 과정이 당송대에 형성된 뒤에 여러 다른 명칭의 변경의 과정을 밟으면서 여러 다양한 표현으로 그려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바다를 건너는 여덟 신선과 그 가운데 유일한 여신선이 '선모(仙母)'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선모(仙母)'란 신라의 해신이며 태양신인 동신성모를 말하는 선도성모(仙桃聖母)의 '仙母'를 말하는 것이다. 하선고 여신선이 들고 있는 지물은 荷花(하화)인데 본래 何仙姑(하선고) 여신선의 꽃이라는 의미가 아니었겠는가.

 

하선고(何仙姑)에서 '仙姑'란 신선들을 낳은 시어머니라는 뜻이 들어 있다는 것이 보인다.

아리영(娥利英) 여신선이 선모(仙母)의 위치에 있는 고래 뱃속에서 나온 것은 그 고래가 선도성모(仙桃聖母)를 의미한다.

 

그리고 모계 계승에서 아리영(娥利英) 여신선이 선모(仙母)를 이어받아 당나라 송나라 바닷가 해신 신앙으로 건너가  '아리영'이 '하리랑(何二娘)'으로 표현되었다가 나중에는 중국의 꽝뚱 지역의 하(何) 씨 무당과 선고(仙姑) 무당으로 혼합 연결시켜 송나라 때 명칭인 '하리랑(何二娘)'이 갑자기 '하선고(何仙姑)'라는 칭호로 바뀌게 된 것이다.

 

 문화와 인물 신화와 종교 철학이 모두 중국에서 신라나 고려로 왔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인도에서 왔다는 허황옥이 '중국을 거쳐 왔다'고까지 해야 할 것이 아니라 그보다 석탈해가 중국이나 인도가 아닌 "왜국 동북 일천리 용성국(고래나라)에서 왔다"는 것에 대하여 시선을 돌려야 한다.

 

"왜국 동북 일천리에서 신라로 왔다"는 바다와 그 신화와 해신 문화는 "신라에서 당나라로 갔을 수 있는 개연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이 아리영(娥利英) 여신선이 송나라 기록에서 '하리랑(何二娘)'으로 표기되었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중국화의 과정을 밟아 '하선고(何仙姑)'라는 여신선으로 표기된 것이다.

 

그렇게 하여 '하선고(何仙姑)'라는 여신선이 중국의 전통 팔선도(八仙圖) 그림들에서 일곱 남자 신선들을 바다에서 태워 가는 '고래'와 같은 의미의 '풍랑을 이기며 노를 저어 배를 모는 선모(仙母)'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두보(杜甫)의 <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에서 술 취한 팔선 중에 첫번째인 지장(知章)을 "우물로 들어가 잠들었네"라고 한 것은 우물을 통하여 바다로 연결한 신라인들의 기록에도 이어져 있다.

신라에서는 우물을 통하여 바다로 가는 용녀신화들이 상당히 존재한다.

 

여덞 술 신선들을 묘사하면서 첫 술 신선으로 지장을 언급했으며 말타는 것을 바다에 배타는 것으로 비유하고 우물로 들어갔다는 내용은 본래의 팔선에서 신라 해신에서 유래했을 하선고(何仙姑) 여신선 즉 용녀와 우물과 연관한 신라의 신화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2. 김홍도 그림들에 숨어 있는 팔선도(八仙圖) 

 

김홍도는 과연 두보의 <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의 처음 나오는 단 한 명만을 그린 <지장기마도(知章騎馬圖)>만 그리고 모든 팔선 전체는 그리지 않았을까? 나는 그 열쇠를 김홍도의 그림 <장터길>에서 먼저 찾아낸다.

 

그리고 수많은 단원 김홈도 그림들의 구도에서 숨은 팔선도(八仙圖)를 찾아낸다. 다빈치 그림에서만 비밀이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전통 그림에서도 놀라운 신라의 오리지날 전통의 강력한 영향이 중국을 거쳐 다시 조선시대에서 그려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1) 김홍도의 <장터길>에서 찾아내는 '팔선도(八仙圖)

 

두보(杜甫)의 <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의 술이 취한 신선들을 김홍도는 장에 갔다 오는 사람들에게서 찾아 그의 <장터길>에 여덞 명의 조선시대 '飮中八仙'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아니 보다 멀리는 신라 시조 아리영(娥利英) 여신과...

 

<처용가(處容歌)>의 處容(처용)과 그 여섯 형제의 어머니 용왕이자 선도성모를 중심한 '동해 바다의 여덟 고래신선' 팔선(八仙)에서 김홍도의 '팔선도'가 그 맥을 이어 오고 있다는 자부심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김홍도, 장터길. 문화재청 사진

*<장터길>. 김홍도. 보물(寶物) 제527호.

두보(杜甫)<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의 술취한 여덞 신선을 김홍도는

장터에 다녀오는 사람들로 표현했다.

나귀를 거꾸로 탄 사람이 둘 씩이나 보니며 자세가 흐트러진 술취한 모습들을 그리고 있다.

 

김홍도의 위의 그림은 <장터 길>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술이 취해 돌아오는 <장터에서 돌아오는 길>이며, 그것은 김홍도의 <장터에서 돌아오는 음중팔선(飮中八仙)>이라 해야 명확한 그림 이름이 될 것이다.

 

위의 그림이 단순하게 <장터 길>이 아니라 김홍도가 그린 <지장기마도(知章騎馬圖)>가 두보(杜甫)의 <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에서 한 명의 술꾼만을 소재로 하여 그린 것을 넘어 전체 보(杜甫)의 <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를 장터에서 돌아오는 조선시대 사람들에게 적용시킨 것이다.

 

김홍도의 이 그림은 그림의 가치에서 이미 청(淸)나라 화가 상관주(上官周)가 그린 <飮中八仙圖>(1703년)이나 일본의 카이호유쇼(海北 友松;1533~1615)가 그린 <飮中八仙圖>이 단순히 술 취한 사람으로 그린 그림인데 비하여 그 보다 훨씬 더 사실적인 음중팔선(飮中八仙)를 그린 명작이라 할 수 있다.(아래 그림들에서 비교할 것)

 

*청대(淸代) 상관주(上官周) 작, <飮中八仙圖>. 1703년.

 

 

*<음중팔선도>. 일본. 카이호유쇼(海北 友松;1533~1615) 작. 도쿄 국립박물관.

 

김홍도의 <장터길> 그림이 두보의 <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 또는 신라시대로부터 내려오는 '팔선(八仙)'의 전통에서 모티브를 가지고 그렸다는 것은 다음의 여러가지 이유에서다.

 

 

1) 김홍도는 <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에서 음중 팔선 가운데 첫 술 신선인 지장(知章) 신선에 대한 모티브로 <지장기마도(知章騎馬圖)>를 이미 그린 경험이 있다는 것

 

2) 제일 앞서 가는 '술 신선' 뒤에 따라가는 종자를 제외하면 모두 여덞 명이라는 것

 

3) 장터에서 돌아가는 장면인 것은 모두 자세가 흐트러진 술취한 모습이라는 것.

 

4) 여덞 술 꾼들은 보다 격조있게 '신선'에 걸맞게 말을 타고 돌아가는 장면으로 '신선' 의미를 강조했다는 것.

 

5) 이미 김홍도는 <지장기마도(知章騎馬圖)>에서 말 탄 술꾼 신선을 그린 대로 두보의 <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에서 "지장은 말타기를 배타듯 하네(知章騎馬似乘船)라는 귀절에서 '배 대신에 말'을 모든 나머지 신선들에서도 강조한 것.

 

6) <팔선도>에서 자주 나오는 나귀를 뒤로 타고 가는 술 신선이 두 명이나 그렸다는 것. 전통 <팔선도>에는 나귀를 거꾸로 타고가는 장과로 신선이 팔선 가운데 들어있다

 

7) <팔선도>에서 여자 신선인 하선고 신선처럼 김홍도는 그의 <장터길>에서 오른쪽에 등을 보이고 있는 규수의 모자 쓴 여성이 한 명 있다는 것

 

김홍도는 분명하게 두보의 <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에서 지장(知章) 신선만 그린 것이 아니라 여기 <장터길>에서는 여덞 술 신선 모두를 그렸다는 필자의 판단이 그릇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김홍도와 같은 시대인 청나라 때에 화가 상관주(上官周)의 <飮中八仙圖>가 존재했다. 김홍도는 청나라 그림 <청오자(靑烏子)> 그림을 이미 영향 받아 같은 주제의 그림을 그린 바도 있는 것이다. 김홍도는 이미 그의 그림에서 <팔선도>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시대 배경과 그 영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여기에 필자는 김홍도 그림들에서 '팔선도 개념'으로 그려진 작품을 찾아내 새로운 해석을 해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김홍도의 국제적인 감각에 대해서 좀더 시선을 돌려야 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그 국제적인 감각은 중국이나 일본의 영향이 아니라 오히려 신라에서 국제화된 보다 깊은 뿌리에 대해서도 알아내야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장터 길>에만 그치지 않고 단원 김홍도는 두보의  <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를 모티브로 하는 <음중팔선도> 또는 <팔선도(八仙圖)>>를 모티브로 한 그림들이  몇개 더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고자 한다.

 

내가 김홍도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 농사짓는 사람들의 생활을 그린 그의 <벼 타작> 그림에서 왜 '신선 놀음'을 강조했을까 의아했다. 이제 나는 그 장면이 '팔선도'를 모티브로 한 '신선과 7머슴'의 풍자성 풍속화라는 사실을 밝히게 될 것이다.  

 

 

2) 김홍도의 <벼 타작>, <점심>, <신행(新行>은 팔선도(八仙圖) 시리즈 그림

 

김홍도는 동양 전통의 많은 그림들 특히 신선도 그림들을 접했다. 김홍도의 <벼 타작> 그림은 단순하게 머슴들을 부리는 주인의 거드름이 아니었다. 전체적으로 신선도를 풍자적으로 그린 것이다.

 

특히 신선도의 대표적인 여덞 신선을 그린 동아시아의 오랜 <팔선도(八仙圖)>의 조선시대 농사 타작 일에서 보이지 않게 암시 적용하여 풍자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의 <벼 타작>에서 왜 여뎗명이 아닌지에 대해서는 전통 <팔선도(八仙圖)>가 가지는...

 

여덟 명의 신선들 가운데 유일하게 여신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대입한다면 쉽게 해석이 될 수 있다. 김홍도의 <벼 타작>에서 생략된 여신선은 갓 쓴 선비 신선의 안주인으로서 곧 점심을 들고 올 여인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필자의 해석이 아전인수식이라 의심할지는 이 글의 주제인 김홍도의 <장터길>과 이어지는 <점심> 그림에서 보다 명확해질 것이다. 먼저 단원 김홍도의 <벼 타작>은 곧 그 뒤를 이어서 나타나는 <점심> 그림의 전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벼 타작> 그림은 여섯 명의 남자가 타작을 하고 선비가 주인으로서 '신선놀음' 처럼 바라보는 장면이다. 그러나 두보의 <음중팔선가>를 그린 청나라의 <음중팔선도>의 영향일 수도 있다는 필자의 해석은 흥미로운 분석을 통해서 얻어낸 결과이다.

 

아래의 김홍도 <벼 타작> 그림은 전통적인 <팔선도>의 영향으로서 여덟 신선 중에 여신선이 생략되어 있다. 그러나 김홍도의 <벼 타작>은 그의 또 다른 <점심>의 전신 작품이라고 보아야 한다.

 

일곱명의 남자들은 곧 유일한 '여 신선'이 가져오는 점심에서 술을 마시는 장면이 강조된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김홍도의 <점심>은 그의 <벼 타작>에 이어진 그림으로 <타작마당의 음중팔선도>가 되는 것이다.

 

*<벼 타작>. 김홍도.

주인 선비 옆에는 술독이 놓여 있다.

곧 술과 점심을 가져올 김홍도의 이어지는 <점심>의 전신 작품으로 보아야 한다.

 

*김홍도 작. <점심 팔선도>

두보의 <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에서 모티브를 가지면서도

여기에서 김홍도는 술을 마쉬되 각각 그 '술 그릇'이 다른 것으로 표현하여

팔선도의 여덟 신선들의 지물들이 다르다는 것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안주인은 술그릇 대신에 아기에게 '젖그릇'을 물려주고 있다는 것이 가장 핵심이다.

 

 

위의 김홍도 그림 <점심>은 때로 <새참>이라는 칭호로도 쓰이는데 점심을 먹으면서 특히 술을 마시고 있는 장면이 강조된 모두 8명의 '팔선도' 그림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위의 김홍도 그림의 <점심 팔선도>를 필자가 더욱 구체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 술잔들의 모양들이 팔선도의 암팔선의 각각을 닮도록 형상화했다. 위쪽에 첨부한 팔선도의 암팔선 모양들과 위의 <점심팔선도>에서 김홍도가 '술잔들'의 모양이 어떻게 유사한지 비교해 보라. 놀라울 정도로 팔선도의 암팔선을 김홍도는 상징하려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전통 <팔선도>에서 여덟신선을 그릴 때에 유일한 여 신선이 들어가는데, 그러한 여신선의 의미로 어머니 여신선도 포함시키고 있다. 아이들은 팔선에 들어가지 않고 '어머니'를 강조하기 위하여 동원된 그림이라 할 수 있다.

 

머슴이 일곱이면, 여성인 노비가 점심(또는 새참)을 가져올 수도 있을텐데, '어머니'를 강조하기 위하여 아기 젖을 물리는 등 두 아이를 그린 것은 <팔선도>에서 하선고(何仙姑) 여신선이 '선모(仙母)'임을 드러낸 의도로 보아야 하는 것이 김홍도의 그림 저의를 제대로 해석해주는 것이 되는 것이다.

 

좀더 세밀하게 해석하면 <벼 타작>에서 생겨난 쌀을 가지고 담근 술을 <점심>에서 마실 수 있다는 것이며, 벼 타작을 하는 고생을 하지만, 먹을 것이 나오는데 그것도 7명의 '머슴'이 강조되었던 것이다. 

 

그런 머슴 7명의 배경이라면 여자 머슴인 노비를 보냈을텐데 머슴 강조가 아니라 모두 신선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노비 아닌 '선모(仙母)'가 직접 새참과 술을 가지고 나온 것이다. 

 

말하자면 그녀는 두보의 시에서도 다른 <음중팔선도> 들에서 생략되었던 여신선  하선고(何仙姑) 이 표현된 것이며 바로 신라의 여신 아리영(娥利英, 알영) '선모(仙母)'의 메타포를 풍속화로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단원은 <벼 타작>에서 점심 특히 술을 가져오는 '여 신선' 안주인을 암시했다는 것은 힘든 타작 일을 하는 머슴들이라도 술 새참을 먹는 '신선들' 이어지는 그의 또 다른 작품 <점심>에서 보여준 것이다. 

 

<벼 타작>에서는 전통 팔선도(八仙圖) 가운데 여신선을 생략하여 점심을 가지고 곧 안주인이 나타날 것이라는 암시를 담고 있는 입체적인 기법을 쓰고 있는 것이다. <점심>에서 김홍도는 젖통을 내놓고 젖을 먹이는 모습으로 강조하였다.

 

하여 아이들을 키우게 되어 후손들이 번성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일곱 신선들의 어머니라는 선모의 위치를 확실하게 드러내주고 있는 <점심>에 이어지는 그림은 장가가는 아들을 따라 가는 말탄 어머니와 일곱 신선을 그린 <신행(新行>에 이어져 있다.

 

아래의 김홍도 작 <신행>에서 팔선도가 보인다면 이제 김홍도 그림에서 신선도의 팔선 구도는 그의 중요한 구도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신행>에는 일곱 남자에 여인이 한 명으로 전통 신선도가 사상의 '팔선도' 구도의 기본 패턴을 유지하고 있다.

 

*<신행>. 김홍도.

일곱 남자에 여인이 한 명으로 팔선도 구도의 기본 패턴을 유지하고 있다.

 

위의 단원의 <신행> 그림에서 여신선은 앞선 <점심>에서 '어머니 신선'의 상징을 재현하고 있다. 말타고 장가가는 아들의 어머니일 것이다. 팔선도의 하선고 여신선은 일곱 남자 신선들의 '어머니' 위치에 있다는 사실은 앞서 논급했다.

 

이렇게 직접 여신선을 나타낸 <점심>과 <신행>에 선재하여 암시적으로 생략한 <벼 타작>처럼 김홍도는 주인과 일하는 사람들의 그림에서 안주인이 '여신선'으로 암시적으로 생략한 그림을 그의 또 다른 그림 <기와 이기>, <무동도>, <에서도 보여주고 있다.

 

 

3) 김홍도의 <기와 이기>, <무동도>, <심관(審觀)>에서 숨어 있는 팔선도(八仙圖)  

 

두보의 <음중신선가>에서처럼 신선은 술 취한 분위기에서도 '술 신선'을 찾아낼 수 있다면, 신들린 무속적인 춤추는 자리에서도 술취한 것과는 또 다른 신들린 '춤 신선'을 찾아낼 수 있다.  단원은 <벼 타작>에서 그리고 <기와 이기>에서 술 가져오는 '여 신선'으로서 안주인을 생략했듯이 그의 <무동도>에서도 '여신선' 무당을 암시적으로 생략했다.

 

*<기와 이기>. 김홍도.

여섯 명의 일하는 남자를 바라보고 있는 주인 남자를 포함하여 모두 일곱 명의 남자들이 그려져 있다.

여기에 곧 나타날 암시되어 있는 '여 신선' 안주인을 합하여 '팔선도'가 된다.

 

기와를 이는 일을 묘사한 <기와 이기> 그림은 <벼 타작>을 닮아 있는 구도를 가지고 있다. 주인 선비가 드러누워 바라보는 대신 서서 지붕을 쳐다보는데 그 손에 지팡이가 들려 있다. 신선이라는 의미이다.

 

위의 김홍도의 <기와 이기 팔선도>에서 왜 선비 주인이 지팡이를 가지고 있는지는 나머지 일꾼들도 신선으로서 그 손에 그들 각각의 특징을 가지는 신선들의 상징 보물을 암시하려 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팔선도> 그림에서 여덟 신선들이 각각 가지고 있는 상징물인 이른바 암팔선(暗八仙)은 표주박(葫芦), 검(剑), 파초선 부채(扇), 어고(鱼鼓), 음양판(阴阳板), 피리(笛子), 약초바구니(菜篮), 연꽃(荷花)을 여덞가지이다.

 

주목할 것은 이들 일곱명의 '일꾼 신선들'의 손에는 신선들이 가지는 각각의 다른 상징물인 이른바 암팔선(暗八仙)이 묘사되어 있다는 점이다.

 

1.지팡이 든 선비 주인,

2.기둥의 먹줄 든 사람,

3.기와를 던져 올리려 잡고 있는 사람.

 

4.진흙을 끌어올리려 새끼줄을 잡고 있는 사람.

5.새끼줄에 달아 올리려 진흙뭉텅이를 만들어 잡고 있는 사람.

6. 기와를 붙이려 망리를 왼손에 들고 기와를 한 손으로 받는 사람.(아래에서 막 던져 올린 기와를 잡기 직전의 순간포착 그림임.

 

7. 기와 바닥에 상한 나무가지를 대체시키려 나무를 깎는 대패를 든 사람.

8. 암시적으로 생략된 새참을 들고 오고 있을 안주인.  

 

이제 왜 김홍도는 선비 주인의 손에 지팡이를 들리게 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팔선도>의 모든 여덟 신선들은 그 손에 각각의 다른 상징물을 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기와 이기>라는 김홍도의 위의 그림을 <기와 이기 팔선도>라고 명명해도 반대할 사람들이 별로 없을 것이다.

 

지하에서 김홍도는 그의 그림을 이와같이 해석하고 있는 21세기 오두 김성규의 그림 비평을 기뻐하여 마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모두 일곱 명의 '남자 신선들'만 그려져 있으나 팔선 가운데 유일한 여신선은 <무동도>에서 여성인 무당이 '여신선'으로 암시되어 있는 것에서도 발견된다.

 

더불어 이와같은 암시적으로 생략한 김홍도의 '팔선도' 구도의 작품은 단원의 다른 작품으로 그림강상하는 그림인 <심관(審觀)>에서도 구현하고 있다.  김홍도의 <심관(審觀>은 일곱 명의 갓 슨 사람이 그림 감상하는 풍경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팔선도 개념을 가지고 인물들은 모두 같은 팔선이라는 의미에서 전체적으로 어떤 통일성을 유지하는 인물들로 그리고 있다. <장터길>에서 모두 말을 타고 있다면, <기와 이기>에서는 모두 각각 다른 암팔선 상징물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무동도>에서는 모두 모자를 쓰고 있고, <심관(審觀)>에서도 모자를 쓰고 있다. '팔선'의 동위 개념을 보여주려 한 것이다. 김홍도의 <심관(審觀)>에 포함된 인물은 모두 7명의 남자들이다. 그들은 특정 그림을 감상하고 있다. 과연 그 그림은 어떤 그림일까?

 

<팔선도>의 유일한 '여신선'이 그림 속의 인물로 암시되어 있다고 해석될 수 있다. 이 그림은 단언컨대 인물도일 것이며 그 주인공은 여성일 것이라는 것이 필자의 해답이다. 그리하여 <심관(審觀)>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팔명이 되는 <팔선도>가 되는 것이다. 

  

* <審觀)>. 김홍도. 보물(寶物) 제527호

모두 7명의 남자들이 그림을 감상하고 있다.

그림은 어떤 그림일까? <팔선도>의 유일한 '여신선'이 그림의 인물로

암시되어 있다고 해석될 수 있다.

 

*<무동도>. 김홍도.

<팔선도>로서 '여신선'인 무당이 암시되어 모두 '팔선'이 된다.

 

<심관>에서처럼 <무동도>에서도 김홍도는 '여신선'을 암시적으로 생략하고 있는 기법을 사용했다. <무동도>는 단순한 춤이 아니다. 지나가는 거지가 추는 춤이라면 여섯 악공이 연주할리 만무하다. 배경 무대가 없음으로 잔치마당은 아닌 마당에서 벌어지는 제의적인 무당의 굿마당의 분위기임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일곱 신선에서 생략한 나머지 한 명은 여성인 무당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신명나는 춤이라는 그 신명나는 신은 여신으로서 생략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암시적으로 생략된 여신선은 하선고 즉 하리랑이며 아리영 여신을 상징하고 있는 셈인 것이다.

 

 

4) 김홍도의 여러 <군선도(群仙圖)> 그림은 팔선도(八仙圖) 구도

 

김홍도는 그의 <군선도(群仙圖)>로 칭해지는 몇가지 그림들에서 하나에서는 남자 신선 일곱과 여신선 대신에 사슴으로 대신 그리고 있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보이되 동물을 여신선 대신에 그려 모두 여덞 명의 신선을 그린 것이다.

 

뿔 달린 사슴이 여신선일 수 있다는 것은 충분한 역사적 배경으로 설명될 수 있다. 사슴 뿔과 금관은 신라시대에 왕보다 오히려 왕비의 상징으로 강조되었다는 것을 경주 <황남대총>에서 발굴된 왕비의 금관이 왕의 금관보다 화려한데서 증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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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의 <군선도(群仙圖)>

일곰 남자 신선과 여신선을 상징하는 뿔달린 사슴을 합해 모두 '팔선도' 구도를 가지고 있다.  

 

*<군선도(群仙圖)>. 김홍도.

일곱명의 신선이 그 상징물들을 들고 그려져 <팔선도>의 구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나머지 신선의 하나인 여신선은 음양풍수의 여신 대지지모로 생략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위의 <군선도>에서 김홍도는 팔선도의 신선들이 가지는 모든 상징물들을 포함하여 일곱 신선들을 그렸다. 그런데 여신선이 생략되어 있다. 그 이유는 그의 팔선도에서 여성을 생략하거나 사슴으로 대신한 것처럼 대지의 여신으로 생략했을 것으로 보인다.

 

<팔선도(八仙圖)>에서 유일한 여신선인 하선고(何仙姑) 신선은 나머지 일곱 남자 신선들에 대하여 어머니 신선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앞서 논급해다. 음양풍수지리에서 대지는 여신을 의미하여 명당은 여신의 음부를 상징하는 혈(穴)로 표현한다.

 

김홍도의 생략의도를 떠나 위의 <군선도> 그림은 분명하게 피리를 들거나 지팡이를 들거나 모든 일곱 신선들은 모두 암팔선(暗八仙)이 가지는 각각의 상징 보물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는데서 <팔선도>의 구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5) 김홍도가 '팔선도'를 그렸다는 증거처럼 그린 <포의 풍류도(布衣風流圖)>

 

김홍도가 팔선도(八仙圖)를 모티브로 그의 많은 그림들을 그리고 있다는 것을 그는 스스로 자신의 <포의 풍류도(布衣風流圖)>에서 적나라하게 '팔선도'의 상징물들만을 그리고 있다.

 

이것은 그야말로 <포의 풍류도(布衣風流圖)>라고 해야할 것이 아니라 <팔선도>에서 여덟 신선들이 가지는 각각의 '암팔선(暗八仙)'을 모두 그리고 있다는데서 그림 이름은 <암팔선(暗八仙) 풍류도>라고 해야 마땅할 것이다. .   

 


*<포의풍류도(布衣風流圖)>. 김홍도.  

여덟 신선들이 각각 소지하는 상징물들을 팔선들 대신에 그리고 있다.

그 기본은, 표주박(葫芦), 검(剑), 파초선 부채(扇), 어고(鱼鼓),

음양판(阴阳板), 피리(笛子), 약초바구니(菜篮), 연꽃(荷花) 이다.

  

위의 <포의 풍류도(布衣風流圖)>를 필자처럼 '팔선도'로 해석하는 사람들은 지금까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보다 더 분명하게 '팔선도'를 그리고 있다는 것은 그 상징물들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여덟 신선들의 각각의 상징인 이른바 팔보 즉 암팔선을 대신에 그리고 있는 것이다. 단원은 '팔선'에 대하여 푹 빠져 있는 것을 이 그림에서 증명이 되는 것이다.

 

 '암팔선(暗八仙)'이라고도 하는 팔보(八宝)는 팔선들 각각의 상징물을 말하는데 해당 신선과 그 상징 보물은 다음과 같다.연꽃(荷花 본래는 미역)을 들고 있으면 하선고(何仙姑), 파초선(芭蕉扇)을 들고 있는 신선은 종리권(钟离权)...

 

표주박(葫芦)을 들고 있으면 철괴리(铁拐李), 약초 또는 꽃바구니(花篮)를 들고 있으면 남채화(蓝采和), 검(剑)을 들고 있으면 여동빈(吕洞宾), 피리(笛子)를 들고 있으면 한상자(韩湘子), 곡괭이처럼 생긴 어고(鱼鼓)...

 

때로는 털이 달린 불진(拂尘)으로도 표현)를 들고 나귀 또는 노새를 거꾸로 타고 있으면 장과로(张果老), 음양판 또는 옥판(玉板) 또는 단판(檀板)을 들고 있으면 조국구(曹国舅) 신선을 뜻한다. 신선도의 감상은 이들 상징 보물로 그 주인공을 판별할 수 있는 것이다.

 

이들 팔선들의 각각의 상징물인 암팔선(暗八仙)은 본래 고래해신의 선모의 일곱 아들들이 가지는 상징물인 칠보(七寶)에서 선모인 어미고래 자신까지 합한 팔보(八寶)라고 한 것이다. <삼국유사>의 소 모는 노인이 철쭉꽃을 따다 바친 수로부인편에 보면...

 

수로부인이 강릉의 동해 바다 속을 들어갔을 때에 '칠보궁전(七寶宮殿)을 다녀왔다'고 표현한 그 칠보(七寶)는 <처용가>에서 말하는 처용이 그 막내로 소개된 "용왕 고래여신의 일곱 아들"을 의미하며 용왕 여신까지 합하여 모두 여덟 신선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여신선 어머니는 그 상징물이 미역이어야 하는데 불교시대에 연꽃으로 대체된 것이다. 그러니까 팔보(八寶)는 모두 본래 고래토템 여신숭배시대의 고래 몸에 속한 '여덟 보물들'이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후대의 '암팔선(暗八仙)'으로 변이된 오리지날 '고래팔보(鯨八寶)'로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이 될 수 있다. 밤에도 빛난다는 고래 눈알을 상징하는 보주 구슬을 들고 있으면 하선고(何仙姑) 선모(仙母)...

 

고래 꼬리지느러미처럼 생긴 파초선(芭蕉扇)을 들고 있으면 종리권(钟离权), 바다에서 마실 물이 필요하니 신라의 고래잡이 호공(瓠公)처럼 표주박을 들고 있으면 철괴리(铁拐李), 연오랑과 세오녀처럼 해조(海藻)를 따는 미역 바구니를 들고 있으면 남채화(蓝采和)...

 

만파식적을 만들었던 외뿔고래의 뿔을 대신한 검(剑)을 들고 있으면 여동빈(吕洞宾), 피리소리를 내는 고래를 부르는 피리(笛子)를 불고 있으면 한상자(韩湘子), 귀신고래가 내는 북소리처럼 귀신고래를 부르는 어고(鱼鼓)를 두드리고 있으면 장과로(张果老)...

 

암수 고래의 심볼을 의미하는 음양판을 들고 있으면 조국구(曹国舅)를 뜻한다. 문화의 상징물은 시대와 문화가 전수된 그 환경에 따라 변이되어 왔다. 이들 팔보는 고래토템 숭배 문화를 가졌던 신라 신화와 그 고래문화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필자는 확신해 마지 않는다.

 

단원이 살던 조선시대의 음양신선풍류도는 신라시대의 신선풍류도를 이어받고 있다. 팔선도의 상징물들만을 그린 단원의 <포의 풍류도(布衣風流圖)>에 글씨로 씌어져 있는 화제는 아래와 같다. 어쩌면 평생을 자유롭게 글을 쓰면서 살았으면 하는 내 마음과도 비슷할 정도로 단원 김홍도는 그 자신이 청렴한 선비로서 신선의 삼매경에서 그의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을 느끼게 해 준다.

 

紙窓土壁終身(지창토벽종신)  

종이 창문과 흙벽속에서 평생동안


布衣嘯詠其中 (포의소영기중) 

벼슬없이 시를 읊으며 살리라

 

이로써 필자는 <팔선도(八仙圖)>를 바탕하여 아주 많은 그림을 그린 단원 김홍도를 '팔선도화가(八仙圖畵家)'라고 명명하고자 한다. 동아시아 <팔선도(八仙圖)> 그림에서 유일한 여 신선인 하선고(何仙姑) 신선은 송(宋) 나라 때에 '하리랑(何二娘)' 신선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그 '하리랑'은 신라시조 여신인 알영 즉 아리영(娥利英)의 신선도가 당나라와 송(宋) 나라에 영향을 미친 결과인 것이다.팔폭병풍에 <군선도병>만 그린 것으로 알려진 단원 김홍도는 그의 다른 많은 그림들에서 <팔선도(八仙圖)>를 찾아냈다.

 

이러한 팔선도 개념으로 김홍도 작품을 해석한는 가장 깊고 확실한 도석(圖釋)을 해낸 사람이 필자라고 자부해 마지 않는다.우리가 흔히 '팔폭병풍'이라고 할 때 그 팔폭은 팔선의 상징적인 구도를 가진 팔록병풍이라고 할 수도 있다.

 

<周易>의 팔괘가 원형을 이루는데 비하여 팔폭병풍은 여덟 신선을 그리는 의미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팔이란 팔각정이나 팔각 옥개석이 그렇듯이 이 세상의 모든 만상을 의미한다.

 

*팔선도. 바다를 건너는 요소와 유일한 여신선인 하선고 신선이 중심이며

팔폭 병풍 소재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여덟 신선의 팔선 경지는 신선들이 노니는 명승지에 대해서도 팔경(八景)이라는 말을 쓴다. 신선은 명승지에서 거하는 명승 신선이기도 하다. 이러한 팔경 신선도 영향은 오늘날까지 전국을 팔도(八道) 명칭이 남아 있다.

 

하여 행정구도에도 영향을 주었으며 팔도(八道)의 도(道)는 신선도의 도(道)에 이어져 있다.

 김홍도는 그의 대표적인 <군선도병>이 팔폭 병풍으로 그려져 있듯이 김홍도는 조선시대 민간 풍속에서 서민들의 삶 속에서 신선의 기상과 그 숨은 기운을 펼쳐 그림 속에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단순한 풍자가 아니라 신선으로 서민들을 대입하려는 그 깊은 신선도가적 종교심을 김홍도에게서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따라서 김홍도는 단순하게 민간 풍속을 그린 것이 아니라 서민들의 애환 속에서 신선의 경지를 포착했다. 

 

특히 '팔선도' 개념 속의 여덟 신선들 상징하고 암유해 그려내고자 한 의도들을 그의 대표적인 작품들인 <장터길>, <벼 타작>, <점심>, <무동도>, <심관>, <군선도>, <신행>, <포의풍류도> 등에서 찾아낼 수 있게 된 것이다.

 

단원 김홍도는 팔선도의 대가이며 팔선도를 생활 풍속도에 응용했다는 면이 그의 작품 해석에서 주요한 위치에서 평가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나는 이 글을 통하여 새로운 해석으로 제시했다.

 

출처 : 장계인의 그림 이야기
글쓴이 : 무우거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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