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악 감상실 ♣/[1860년 ~1880년]

[미국]Charles Ives[찰스 아이브즈]

Bawoo 2017. 9. 8. 23:34

Charles I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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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ober 20, 1874 – May 19, 1954) was an American modernist[1] composer. He is one of the first American composers of international renown,[2] though his music was largely ignored during his life, and many of his works went unperformed for many years. Over time, he came to be regarded as an "American original".[3][

찰스 아이브스는 독특한 미국적 작품을 작곡했던 미국 최초의 모더니스트 작곡가였다. 그는 코네티컷의 작은 마을에서 자랐다. 그의 아버지는 음악에 대해 전통적이지 않은, 즐거운 방식으로 접근했던 밴드마스터이자 음악 선생님이었다. 아이브스의 아버지는 동시에 2개의 다른 조성으로 선율들을 연주하곤 했고, 가끔씩 아이브스에게 노래를 불러달라고 부탁한 다음 ‘틀린’ 조성으로 피아노 반주를 하기도 했다. 이러한 오픈 마인드와 실험적 접근은 아이브스의 평생 동안 함께했다.

아이브스는 예일대학교를 졸업하고, 보험 회사에 다니면서, 남는 시간에는 음악에 몰두했다. 이후 10년 동안, 그는 엄청난 양의 음악을 작곡했고, 그의 사업도 번창했다. 그는 1954년까지 살았지만, 그의 대부분의 작품은 1차 세계대전 이전에 작곡되었다.

찰스 아이브스

작곡자이자 보험설계사


아이브스의 음악은 눈에 띄는 독특한 혼합물이다. 그는 급진적인 실험주의자였고, 그럼에도 미국 작은 마을의 가치를 믿는 인물이었다. 그의 작품 대부분은 야구, 추수감사절, 마칭 밴드, 대중가요, 독립 기념일, 불꽃놀이, 미국의 문학 등 미국의 문화를 주제로 하였다. 아이브스는 홀로 일하면서 아방가르드한 혁신들을 발전시켰다. 그는 거친 불협화음으로 음악을 작곡했다. 한때, 아이브스는 자신의 필사본에서 음들을 ‘수정하는’ 사보가에게 “잘못된 음들을 수정하지 말아주세요. 잘못된 음들이 맞는 겁니다.”라는 메모를 남겼다. 그는 특별히 (반음을 1/2로 나눈) 4분음으로 조율된 피아노를 위해 작품을 썼다.


그는 〈콘코드 소나타(Concord Sonata)〉에서 피아니스트에게 팔꿈치로 음들을 누를 것을 요구했고, 어떤 곳에서는 한 번에 16개의 음을 나무판으로 연주하라고 지시했다. 그는 “사람이 10개의 손가락만 가진 것이 작곡가의 잘못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아이브스의 가장 유명한 작품은 〈대답없는 질문(The Unanswered Question, 1908)〉으로, 2개의 다른 악기 그룹이 분리되게 앉아서, 동시에 다른 음악을 연주한다. 그리고 그의 표제 작품 ‘풋남의 캠프(Putnam’s Camp)’는 2개의 마칭 밴드가 서로 다른 선율을 연주하여 마주 지나쳐가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찰스 아이브스의 음악은 당시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아이브스의 작품이 연주되기 시작한 것은 1940년대에 이르러서였고, 한참이 흐른 후에야 그가 진정으로 독창적인 미국 최초의 음악 천재임이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보경/서양음악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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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일어난 현대음악의 모든 경향들을 총망라하여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넘치는 곡들을 발표했다.


[대표작]〈아메리카 주제에 의한 오르간을 위한 변주곡〉, 〈대답 없는 질문〉, 〈콩코드 소나타〉,

〈뉴잉글랜드의 세 곡>

찰스 아이브스는 1874년 미국 코네티컷 주 댄버리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어려서 바이올린, 피아노, 코르넷, 플루트 등 각종 악기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음악 신동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남북전쟁 당시 북군의 최연소 군악대장으로 활동했다. 아이브스는 12살 때부터 아버지의 밴드에서 드럼을 쳤다.

아이브스의 아버지는 실험정신이 강한 사람이었다. 두 개의 악단이나 합창단에게 같은 곡을 서로 다른 조성으로 연주하게 하는 등 당시로서는 꽤 파격적인 음향 실험을 즐겼다. 아버지의 이러한 시대를 뛰어넘는 실험정신 덕분에 아이브스는 일찍이 전통적인 조성으로부터 자유로운 음악적 감수성을 키울 수 있었다.

14살 때 아이브스는 정식으로 봉급을 받는 교회의 오르가니스트로 취직했다. 이때 예배를 위해 찬송가를 비롯한 여러 편의 교회음악을 작곡했다. 그중에서 유명한 것이 〈아메리카 주제에 의한 오르간을 위한 변주곡(Variations for Organ on 'America')〉인데, 이 곡은 현대의 오르가니스트들도 연주하기 어려운 난곡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아이브스 자신은 이 곡을 연주하는 것이 야구를 하는 것보다 재미있다고 했다.

1894년, 아이브스는 예일 대학에 들어갔다. 그리고 호라티오 파커 교수 밑에서 작곡을 배웠다. 하지만 그는 교수의 유럽 중심적이고 보수적인 교육 방식에 불만을 품었다. 이 시절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에 당시 그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있다.

파커 교수에게 얘기 좀 해 주세요. 모든 불협화음이 반드시 해결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아이브스는 음악뿐만 아니라 스포츠도 좋아했다. 예일 대학 시절에는 학교 축구팀 선수로 활약했다. 이 시절에 작곡한 〈가스등의 밤(Calcium Light Night)〉과 〈예일―프리스턴 축구 경기(Yale―Princeton Football Game)〉는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쓴 것이다. 그 후 그는 〈교향곡 1번(Symphony No.1 in D minor)〉을 졸업 작품으로 제출하고 예일 대학을 졸업했다.

대학을 졸업한 아이브스는 음악가의 길을 걷지 않았다. 1899년, 찰스 레이몬드라는 보험회사에 들어갔는데, 음악을 업으로 해서는 가족을 부양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학에 다니고 보험회사에서 일하는 동안에도 교회 오르가니스트의 일은 계속했다. 1907년, 보험회사가 파산하자 아이브스는 친구인 줄리안 미리크와 함께 직접 보험회사를 차렸다. 그의 회사는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으며, 그는 보험업계에서 성공한 기업인으로 이름을 날렸다. 1918년에는 《상속세와 생명보험의 관계》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1908년, 하모니 트위첼이라는 여성과 결혼한 그는 뉴욕으로 거처를 옮겼다. 주중에는 뉴욕에서 일하고, 주말이나 휴가 때는 코네티컷에서 시간을 보냈다. 보험회사 사장으로 바쁘게 일하면서 틈날 때마다 작곡을 했는데, 사람들은 보험회사 사장이 작곡을 한다는 사실을 신기하게 생각했다. 그가 의욕적으로 창작에 몰두한 시간은 1900년부터 1918년까지 20년이 채 안 된다. 이 시기에 그는 작곡가로서 놀라운 창작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작품은 그의 생전에 연주되지 않았다. 악보들은 서랍 속에서 잠자고 있었으며, 음악은 작곡가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할 뿐이었다.

1907년, 아이브스는 심장발작을 일으켰다. 그 후로도 크고 작은 발작이 그를 괴롭혔다. 그러다가 1930년에 반신불수가 되었고,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사업은 물론, 작곡도 할 수 없었다. 그 후 25년간 그는 고통 속에서 살았다. 그러다가 말년에 영광의 시간이 찾아왔다. 사람들이 뒤늦게 작곡가로서 그의 진가를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들은 그를 미국이 낳은 위대한 작곡가라고 칭송했다. 1946년에 미국 문예협회 회원으로 선출되었으며, 1947년에는 1901년부터 1904년까지 작곡한 〈교향곡 3번(Symphony No.3 'The Camp Meeting')〉이 퓰리처상을 받는 영광을 누렸다. 1950년대에는 그때까지 연주되지 않았던 그의 작품들이 많이 연주되었다. 이렇게 말년에 이르러 작곡가로 명성을 누다가 1954년에 8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찰스 아이브스는 서양 클래식 음악의 전통이 거의 전무한 미국에서 태어났다. 파격적인 음향 실험을 즐겼던 아버지 덕분에 어떤 고정 관념에도 구애받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음악을 작곡할 수 있었다. 유럽 현대음악을 접한 적이 없는 그가 다조(多調), 무조(無調), 복합리듬, 미분음 등 그 이후 유럽에서 일어난 현대음악의 모든 경향들을 총망라했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다.

아이브스의 작품에는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넘친다. 1906년 작인 〈대답 없는 질문(The Unanswered Question)〉도 이런 작품 중 하나이다. 작곡가는 이 곡을 '존재에 대한 해묵은 질문'이라고 했다. 조성이 불분명한 트럼펫과 조성이 없는 플루트 앙상블, 삼화음을 쓰면서도 조성음악답지 않게 흘러가는 현악기 앙상블로 이루어진 일종의 콜라주이다. 이들이 세 개의 실존적인 질문에 각기 다른 방식으로 대답한다. 플루트 앙상블이 무대에서 번갈아 또는 동시에 연주를 하고, 객석 2층에 위치한 트럼펫은 '질문'을 할 때마다 위치를 옮긴다. 이렇게 연극적인 요소를 도입해 '문답'의 의미를 부각시키고 있다. 마지막에 트럼펫이 객석 앞으로 나와 최후의 질문을 던지지만, 대답 없는 정적만 남는다. 청중에게 앞으로 음악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일종의 화두를 던지는 것이다.

파격적인 실험정신 외에 아이브스의 작품 세계를 특징지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요소는 '미국'이다. 그는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땅의 역사와 풍광을 음악에 담았다. 〈뉴잉글랜드의 세 곳(Orchestral Set No.1 'Three Places in New England')〉, 〈어둠 속의 센트럴 파크(Central Park in the Dark)〉, 〈로버트 브라우닝 서곡(Robert Browning Overture)〉, 〈할로윈(Hallowe'en)〉, 〈콩코드 소나타〉, 〈미국을 주제로 한 오르간을 위한 변주곡〉 등이 이런 작품에 속한다. 이 중에서 〈콩코드 소나타〉는 피아노 소나타 제2번으로, 원제는 '콩코드, 매사추세츠 1840―1860(Concord, Mass 1840―1860)'이며, 1911년에서 1915년 사이에 작곡했다. 콩코드는 매사추세츠 주 보스턴의 서북쪽에 있는 작은 마을로 미국 독립 운동의 중심지였다. 1840년부터 1860년까지 이곳에 미국의 작가와 사상가들이 모여들었는데, 이 곡의 각 악장에는 이들 사상가와 작가들의 이름이 붙어 있다. 1악장 〈에머슨〉, 2악장 〈나다니엘 호손〉, 3악장 〈올코트 가 사람들〉, 4악장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인데, 조성이나 일정한 박자가 없는 무조음악, 혹은 여러 개의 조성을 가진 다조음악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곡에서는 갑작스런 분위기의 변화, 높고 낮음, 크고 여림, 빠르고 느림, 복잡한 리듬의 불협화음과 단순하고 서정적인 부분이 서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사상가들의 사상을 대변하는 부분은 추상적이고, 콩코드 마을의 자연 풍광을 노래한 부분은 서정적이다.

〈뉴잉글랜드의 세 곳〉 중 제3곡 〈스톡브리지의 후사토닉〉의 배경이 된 후사토닉 강


1903년에 시작해 1914년에 완성한 〈뉴잉글랜드의 세 곳〉도 미국의 이야기를 담은 곡이다. 제1곡 〈보스턴 공원의 세인트 고던즈〉는 전주곡 혹은 환상곡풍의 느린 악장이다. 복잡한 화음, 무조, 여러 개의 리듬 등 아이브스 음악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 준다. 이렇게 기법적으로는 혁신적이면서도 잠재적으로 포스터의 노래 같은 미국 민요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것이 특징이다. 제2곡 〈코네티컷 주 레딩의 퍼트남 장군 야영지〉에서는 미국 마을의 즐거운 축제와 피크닉의 분위기를 그렸다. 다조성, 무조성, 복합 리듬 속에 〈양키 두들〉의 단편을 집어넣었는데, 전체적으로 행진곡의 느낌을 준다. 제3곡 〈스톡브리지의 후사토닉〉은 작곡가가 어린 시절에 경험한 기도 집회의 분위기를 담은 평온한 찬미가이다.

그 밖의 작품으로는 퓰리처상을 받은 〈교향곡 3번〉, 〈축제 교향곡〉, 〈유니버스 교향곡〉, 〈톤 로드〉, 스케르초로 작곡한 〈포장도로 위에서〉, 〈무지개〉, 〈연못〉,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위한 〈네 개의 소나타〉, 2대의 4분음 피아노를 위한 〈3개의 피아노곡〉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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