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vard Grieg
Holberg Suite, Op. 40
북구의 몰리에르’라 불리는 극작가 루드비그 홀베르그(Ludvig Baron Holberg, 1684~1754)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는 해에 작곡되었다. 홀베르그가 생전에 듣던 음악 양식에 착안해 바로크시대의 작곡기법을 활용한 재치 있는 작품이다.
100년을 거슬러 올라간 시간여행
홀베르그와 그리그의 고향인 베르겐 시는 당시 〈피아노 협주곡〉과 〈페르귄트〉로 대성공을 거둔 그리그에게 기념식에 쓰일 곡으로 중창곡을 부탁했다. 그리그는 직접 홀베르그 기념비 건립에 기금을 보태기도 하는 등 호의적이었지만, 당시 몸 상태도 좋지 않을뿐더러 중창곡을 작곡해 한겨울 야외에서 지휘해야한다는 사실에는 적잖이 불평했다. 그는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 “뭐, 나는 형편없는 곡을 쓸 테고, 눈보라와 폭풍우가 몰아치는 가운데 합창단 입속으로 비가 들이치겠지. 그리고 나는 겨울외투에 우비에 우산까지 쓰고 지휘를 하고 있겠고 말이야.”라고 불평했지만, 그 속에서 재미있는 발상을 해낸다. 그리그와 닮기도 한 홀베르그의 풍자와 위트, 때로는 깊은 철학적 면모를 생각하면서, 그가 살면서 즐겼을 100여 년 전의 음악을 현대적으로 풀어낼 생각을 한 것이다. 작곡 양식도 바흐와 헨델 등에 의해 유명해진 프랑스풍 모음곡의 형식을 빌려 〈고풍스런 양식에 의한 모음곡〉이라 불리게 되었고, 당시로서는 현대적인 19세기 낭만주의적 표현에다 노르웨이 민속음악을 덧입혔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작품의 특성을 반영해 〈홀베르그 시대로부터〉(Fra Holberg tid)로 그리그가 직접 제목을 붙였고, 궁정에서의 춤곡으로 사용되던 양식이었음을 떠올리며 종종 〈가발시대〉(Periwigged)라고 농담조로 일컫기도 했다.
불평으로 시작된 작품은 대성공을 이루고
시간여행에 착안해 바로크풍의 고전모음곡형식(전주곡, 사라반드, 가보트와 뮤제트, 아리아, 리고동)을 빌리기는 했지만, 그리그는 이 작품에 선율과 리듬이 어느 정도 흡사한 것 말고는 새로운 음악적 발상을 가득 채웠다. 특히 아리아(Air)의 경우에는 화음진행이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성공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그리그는 이 곡에 대해 스스로 흡족해 했는데, 의뢰받은 중창곡을 완성하기 두 달 전에 이 곡을 완성하였고, 베르겐에서 기념비가 완공된 며칠 후 초연되자마자 큰 성공을 거두었다. 처음에는 피아노곡으로 작곡하였고, 이듬해 현악합주로 편곡했다. 두 버전 모두 인기를 누렸고, 추후에는 축하용 음악으로 쓰이기 위해 관현악곡으로 편곡하기도 했다. 당시의 저명한 비평가였던 한슬릭(Eduard Hanslick)은 노르웨이 작곡가들이 흔히 이국적인 면모를 보이는 것에 비해 이 작품은 옛 양식을 새로운 음악적 영감으로 채우면서도 잘 정제되어 있고, 숙고하여 작곡한 것을 느낄 수 있다며 극찬했다. 오늘날까지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한 연주곡으로 사랑받고 있다.
5개의 모음곡, 5개의 상상력
5개의 모음곡인 이 작품은 도입부로서의 전주곡과, 네 개의 춤곡으로 이루어진다. 전주곡(Praeludium)은 우아한 프랑스풍과는 다르게 활기가 넘치며 기분 좋게 흥을 돋운다. 소나타 형식의 축소판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뒤이은 춤곡들을 위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사라반드(Sarabande)에서는 긴 서정적 선율을 3박자의 춤 리듬에 맞추어 노래하면서, 폭넓은 음역과 깊은 음색을 표현한다. 우아한 궁정의 무도회장이 떠오르는 가보트(Gavotte)는 이내 민속음악 분위기인 뮈제트와 대조된다. 아리아(Air)각주1) 는 그리그의 작품 중 특히 아름다운 곡으로 손꼽히는데, 바흐의 〈G 선상의 아리아〉를 모델로 했다는 주장도 있다. ‘종교적으로’(Andante Religioso)라고 표기된 것처럼, 현악의 중저음을 강조하였다. 마지막 리고동(Rigaudon)에서는 노르웨이 농민들의 피들(바이올린의 일종)의 소리가 묘사되며 피들 연주자로도 유명했던 그리그 자신의 모습도 투영시켰다.
[글-석상아 : 서울대학교 작곡과 이론전공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협동과정 음악교육전공 석사과정을 수료하였다./ 출처:클래식 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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