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文學) 마당 ♣/- 戰後 출생 작가

김현경 작가 『핀 캐리』

Bawoo 2017. 12. 31. 20:01


김현경 작가 『핀 캐리』

방송일
2016/02/21
방송듣기

<라디오 독서실 - 한국인이 사랑하는 우리 문학>

2016 KBS라디오독서실 신춘문예 특선

서울신문 단편소설, 김현경 핀 캐리

<방송시간>

2R 23:00-23:58 (58:12)

3R 10:50-11:40 (50:00)

한민족 18:10-19:00(50:00)

팀장

EP

 

 

<방송시간>

2R 23:00-23:58 (58:12)

3R 10:50-11:40 (50:00)

한민족 18:10-19:00(50:00)

팀장

EP

 

 


 

 

 

 

## 나오는 사람들 (표 중요도순)

★★★ 인숙. 20대여성. 여대생. 표준말이고 흥분하면 사투리. (선은혜)

★★오빠 나의 오빠 인호. 가장. 왜소한. 착한. 경상도. (방우호)

★★엄마 나의 엄마. 경상도. 시골 엄마. 모성애. (이자영)

아버지 나의 아버지. 경상도. 건달. 현재는 투병 중 (이규창)

형식 경상도. 20대남. 나의 고향친구. 볼링장 운영 (석승훈)

직원1 오빠 회사 직원. 인간적 (장희문)

직원2 오빠 회사 직원. 냉정한 (허성재)

이웃 동네 이웃. 경상도 사투리 (이명호)

사촌 중년 여자. 표준말. (서다혜)

기자 남자 기자 (이정민)

기타 볼링장 손님들

 

 

 

 

 

 

 

 

 

방송 2016221()

제작 201623() 15:30

기획 김 우석

기술 김 남희

음악 장 수년

효과 안 익수, 강 우석, 노 동걸

극본 서 현이

제작 강 요한

진행 태 의경

[# 시그널 + 타이틀 + 오프닝]

 

타이틀 라디오 독서실, 한국인이 사랑하는 우리문학.

 

태의경 안녕하세요? 아나운서 태의경입니다.

2016 신춘문예 당선작들을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오늘 함께 하실 작품은

서울신문 소설 당선작이에요.

김현경 작가의 <핀 캐리>입니다.

김현경 작가는 1983년 부산에서 태어났고

연세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네요.

서울신문 최종심은 소설가 최윤, 성석제 두 분이 하셨는데

이런 심사평을 적으셨어요.

구성이 단단하고 초점이 분명하며 인물이 살아 있다. 또한 본심에 오른 다른 작품에 비해 유난히 강렬한 페이소스를 가지고 있었다.’

이런 심사평을 받은 작품, 어떤 작품인지 궁금하시죠...?

KBS라디오독서실 한국인이 사랑하는 우리 문학

김현경 작가의 <핀 캐리>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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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1) 독서실 핀 캐리시그널

 

태의경 핀 캐리 (pin carry) 김현경

 

각각의 플레이어들이 감당할 수 있는 볼링공의 무게는 다르다. 몸무게의 10분의 1 정도 되는 볼링공을 선택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완력에 자신이 있다면 더 무거운 공도 괜찮다. 볼이 무거울수록 흔들림은 적고, 파괴력은 더 커진다. 오빠는 자신의 체중에 비해 다소 무거운 공을 사용하곤 했다. 16파운드짜리 볼링공이 65킬로그램밖에 되지 않는 오빠에게 실제로 버거웠는지, 아니면 적절한 무게였는지는 알 수 없다.

나는 고향으로 향하는 기차에서 오빠의 동영상을 반복해서 되돌려 보았다.

음악1) 업 다운

효과) 기차 안

(스마트 폰 조작).. 인호... 볼링... 오빠 동영상이 많네... 첫 번째 것... (클릭)

효과음 (동영상이라 필 에코. 이어폰으로 듣는 상황) 볼링 소리 먼저

오빠 (필 에코. 기분 좋은) 스트라이크....

 

(독백) 유튜브 검색 창에서 오빠의 이름과 볼링이라는 단어를 함께 치면 열 개가 넘는 동영상이 뜬다. Y시장배 아마추어 볼링 대회의 결승전 영상, 그리고 형식이 제일볼링장이라는 태그를 달아 업로드한 짧은 영상들로, 대부분 볼링공을 던지고 있는 오빠의 뒷모습을 찍은 것이다. 이따금 스트라이크를 치고 나면, 뒤로 돌아 허공을 향해 두 주먹을 내지르며 기뻐하는 모습이 짤막하게 잡히기도 했다.

 

효과음) 기차, 정차 하려고 속도 줄이는

(트렁크 챙긴다. 호흡 같이)

(독백)  기차가 속도를 줄이자 차창 밖으로 눈에 익은 풍경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커다란 모형 볼링핀을 지붕 위에 얹은 제일볼링장간판도 보였다.

 

(트렁크 들고 객차 안, 걸어간다)

(독백) 나는 객차의 출입문을 향해 트렁크 바퀴를 천천히 굴리며 걸어갔다.

음악2) 브릿지

 

효과) 현관. (계절은 여름)

(현관 들어서면서. 낯익은 신발 보고 인상 팍!)... 

(독백)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낡고 찌든 구두가 맨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의 오래된 구두로, 십여 년 전 그를 쫓아낸 오빠가 아버지의 외투와 함께 마당으로 내던졌던 그 구두였다. 앞코가 해지고, 뒤꿈치가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낡은 갈색 구두의 원래 모습이 얼마나 날렵했는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오빠 (에코) 당신은 아바이도 아이다. 한 번만 더 내 눈에 띄만 우리 둘 다 제 명에 몬 삽니데이. 살아생전에 서로 보는 일 없도록 하입시더! (가위 바닥에 툭 내려놓으며) 내가 있는 한, 이 집에 그 종자가 발을 디디 놓는 일은 없을 끼다. 엄마도 맞고 산 세월은 이제 잊으이소.

엄마 (에코. 훌쩍이는 호흡만) 아이고...

 

(독백) 열일곱 살의 오빠는 짐짓 근엄하게 말했다. 자신이 지키고 있는 한 아버지는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고 우리를 안심시켰던 오빠의 말은 그대로 지켜진 셈이다. 하지만 오빠는 이제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고, 아버지는 십 년 만에 나타나 러닝셔츠와 트렁크 팬티 바람으로 거실에 선 채로 나를 맞고 있었다.

 

효과) 현재. 거실. 선풍기 돌아가고 있다.

아버지 왔나? (배 긁고 있다. 태평스레 하품) ~~.

(독백)  닳을 대로 닳은 구두만큼이나 아버지의 몰골은 비참했다. 몸피가 절반 이상 줄어들었고, 정수리의 머리카락은 다 빠져 휑뎅그렁했다.

 

아버지 (긁적긁적) 왔나? 밥은? 너거 엄마는 밭에 갔다. (다정하게) 덥은데 어서 들와서 선풍기 바람 쫌 쐐라.

 

(독백)  약간 새된 소리가 섞인 음성은 그대로였다. 방금 학교에서 돌아온 딸을 맞는 듯 다정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건네고 있는 그를 보면서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아버지는.. 이 집에... 발을 들여놓을 자격이... 없다.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아버지 (눈치 살짝 보며) 그 뭐고...내한테도, 걸리가 있다 카더라. 나도 다 들었는 말이 있다.

(울분. 발악) 걸리고, 권리고 간에 당신에게는 아무것도 없어요. 이게 어떤 집인데!

아버지 ...... (아웃. 방문 닫는 것까지)

 

(독백)  나는 악을 쓰며 소리쳤다. 그는 대꾸도 하지 않고 저벅저벅 걸어서 현관과 맞닿은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내 방이었다. 고향을 떠나고 나서야 갖게 된 내 방. 그가 방 안으로 사라지고 나서야 내가 신발조차 벗지 않고 현관에 서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구두 집어 마당으로 던지며. 울분) 이게 어떤 집인데!!!

(독백) 나는 현관에 놓인 그의 구두를 집어 들어 마당으로 던져 버렸다.

음악3) 브릿지 (조금 슬픈)

 

효과) 부엌

(냉장고 문 열고. 울컥하는 호흡).... 흑흑..

(독백) 냉장고에는 자양강장제 열 병이 두 개씩 나란히 줄을 지은 채 놓여 있었다. 각성 효과가 있다는 자양강장제를 물처럼 마시던 오빠가 세상을 뜬 지도 이 년이 지났지만, 엄마는 냉장실 가장 잘 보이는 선반에 갈색 병에 담긴 드링크를 열 병씩 정리해 놓는 습관을 아직 버리지 못한 것이다.

 

오빠 (에코. 자양강장제 마시고)... 어무이, 내 출근하데이.

(독백) 오빠는 매일 아침 자양강장제를 마시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효과음) 자동차 부딪히는 소리만. !!

(독백) ...사고가 났던 날, 오빠가 몰던 트럭 조수석 바닥에는 빈 드링크제 병이 스무 개 남짓 뒹굴고 있었다.

 

오빠 (에코. 졸리고 기운 없다) 흐흐... 오빠는 졸릴 때 자양강장제 마신다. 그러마 힘이 난대이. (하품) ~)

(독백) 오빠는 자주 졸려했고, 늘 피곤해했다. 일상생활에서도 깜박깜박하는 일이 잦아서 소변을 본 후 변기 커버를 위로 젖혀 놓고 물도 내리지 않은 채, 화장실에서 그냥 나오는 일이 허다했다. 나는 그를 대신해 물을 내리면서 자양강장 드링크제처럼 샛노란 오빠의 오줌이, 거품을 일으키며 변기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곤 했다.

 

효과) 현재.

(방문 열고 들어가 닫는다. 천천히 의자에 앉는것까지)

(독백)  오빠 방에 들고 온 짐을 풀었다. 책상에 놓인 액자 속 오빠는 머리카락을 노랗게 탈색한 채 경직된 얼굴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음악4) 슬프고 짠한 bg 음악 스닉 in

자유분방한 헤어스타일과는 어울리지 않게 심각한 표정을 담은 이 사진이 영정사진이 될 줄은 몰랐다. 사진 액자 옆에는 두 개의 볼링핀이 놓여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볼링핀 모양의 트로피다. 한 개는 2.0리터짜리 생수 병 크기 정도로 크고, 나머지 하나는 막걸리 병만 했다. 오빠가 냉장 트럭에 가득 싣고 다니던 막걸리 말이다. 오빠는 이 지역에서 소문난 아마추어 볼링 선수였다. 그와 한판 붙기 위해 인근의 다른 도시의 사람들이 이곳까지 원정을 오기도 했었다는 건 오빠가 죽고 나서야 알았다. 빈소에서 문상객들이 늘어놓는 오빠의 무용담을, 나는 상복을 입고 빈청에 앉아 참담한 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음악4) bg 업 다운

 

효과음) 교통사고 현장음. 경찰차 소리도 좀 들리고. 사람들 소음도

(독백) 오빠의 사인은 졸음 운전이 불러일으킨 사고로 인한 심박정지였다.

 

기자() 저는 지금 중부내륙고속도로 선산IC 인근에 나와 있습니다. 오늘 오전 640분경, 이곳에서 서울 방면으로 시속 130로 달리던 K주류회사의 냉장 트럭이 가드레일을 들이받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이 사고로 운전자는 이 자리에서 즉사했습니다

 

(독백) 오빠의 사고는 전파를 탈 만큼 큰 사고였다. 새벽부터 출근해 냉장 트럭을 몰고 전국 각지로 막걸리를 배달하다가 사고를 당했으므로 그의 죽음은 당연히 업무상 재해에 해당했다. 사고 전날에도 오빠는 새벽 4시에 출근해 저녁 8시에 퇴근했고, 사고 당일에도 어김없이 새벽 4시에 출근했다. 그러나 회사는 오빠가 죽기 전날 밤 12시까지 볼링을 쳤다는 사실을 문제 삼았다. 나는 엄마에게 절대 회사가 원하는 대로 합의서 따위에 도장을 찍어 주어서는 안 된다고 여러 번 힘주어 말했다.

 

엄마 (멍 해서. 울음 가득) ......알았데이...흑흑...

(독백) 엄마는 멍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는 오빠의 회사 사람들이 찾아와 현란하게 혀를 휘두를 때에도 엄마가 같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는 사실이다.

 

효과) 우리 집 거실

직원1 (드링크제 마시던 것 내려놓으며)... 저희도 유족들에게 이런 말씀 드리는 것 유감입니다만

(OL) 그러니까 하지 마세요! 업무상 재해 맞잖아요.

직원2 (OL) 아드님께서 그날 밤 12시까지 볼링을 치지 않았더라면

어머니 (눈물) 흑흑...인호야...

직원2 과한 취미생활이 화를 불러 일으킨겁니다.

말도 안돼...아니에요!

 

(독백) 나는 오빠를 대신해 회사와 싸웠다. 회사의 주장이 말도 되지 않는 것이라 강변하면서도 새로운 가정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올라 괴로웠다.

 

(속으로) 그날 아침 내가 오빠에게 전화라도 한 통 했더라면 그런 사고를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오빠가 그날 새벽에 뜨거운 국과 밥을 먹고 나간 것이 오히려 졸음 운전의 이유가 되지는 않았을까.

엄마 다 내 탓이데이. 니 오빠가 먹기 싫다는데 내가 꾸역꾸역 아침밥 믹이(먹여) 보냈다. 내가 니 오빠 직있다. 흑흑

(속으로) 만약...만약 내가 서울에 있는 대학을 고집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독백) 내 한 학기 등록금은 당시 식구들이 살던 고향집의 1년치 사글세(年貰)보다 비쌌다. 머릿속에서 새로운 가정이 하나씩 튀어나올 때마다 커다란 대바늘이 심장을 깊게 찔러 대는 느낌이었다. 아버지가 반듯한 가장이었다면, 엄마가 좀 더 야무지게 우리 남매를 건사할 줄 알았더라면, 오빠는 다른 인생을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음악5) 브릿지 (슬픈)

 

효과음) 장례식장.

엄마 (멍 해서 계속 울기만) 흑흑흑흑... 인호야... 흑흑흑흑 인호

이웃 쯧쯧... 저러다 인호 어매까지 잡겠다. 줄초상 난대이.

친척 인숙아, 니가 엄마한테 잘해야 된다.

이웃 맞대이. 이제 너그 엄마한테 남은 사람은 인숙이 니밖에 없다

 

(독백) 친척들은 혹시라도 자신에게 일말의 부담이 돌아오지는 않을까 하는 경계심을 감추고 살아남은 내 책임을 강조했다. 나 역시 하나뿐인 오빠를 잃었다는 말은 차마 내뱉지 못했다. 슬픔 이전에 책임이라는 단어가 목구멍에 와 박히면서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 더구나 촌각을 다투면서 처리해야 할 문제들이 너무나 많았다. 오빠의 시신을 확인하고, 경찰을 면담하고, 장례 절차를 결정하는 것도 온전히 내 몫이었다. 내 동창이자 오빠의 친한 후배였던 형식의 도움이 아니었더라면 곤란한 일이 더 많았을 것이다.

 

형식 인호 행님은 내한테도 친행님이나 다름없다.

 

(독백) 형식은 삼일 내내 장례식장에 머무르며 우리를 도왔다. 그러면서도 장례 기간 내내 내 시선을 피해 의아한 마음이 들게 했다. 오빠의 화장이 진행되는 동안 화장터 앞마당으로 나를 따로 불러 오빠가 남긴 보험금이 있다는 사실을 전해 준 것도 형식이었다.

 

효과) 야외. 약한 소음 (화장터)

형식 장례 다 치아고 말해 줄라 캤는데 행님을 저래 불구디에 보내디리고 나이, 인자 말해도 되겠다 싶어서.

무슨 얘긴데 이렇게 심각해?

형식 ...그 뭐꼬, 볼링동호회에 보험설계사 하시는 행님이 계시거덩. 그 행님한테 인호 행님이 얼마 전에 보험 하나를 들었다. 그기 정확히 말하만, 무슨 내기를 해가꼬 20만 원 정도 인호 행님이 땄는데 그거를 보험 행님이 돈으로 안 주고 인호 행님 이름으로 종신보험을 들어뿌?다 이기라. 첫 달 보험료 대납해 줬다 카민서. 두 달도 안 된 일인기라. 그걸로 그 보험 행님이랑 인호 행님이 싸우고 억수로 난리 났는데, 일이 이래 되고 보이 이런 거를 불행 중 다행이라 캐야 되는 긴지. 사람 운명이라 카는 기 참얄궂다. (담배 연기 내뿜는)

효과음) 바람 좀 불고

 

(독백)  형식은 끝까지 내 눈을 제대로 쳐다보지 않은 채, 나와 반대 방향으로 몸을 돌려 길게 담배 연기를 뿜었다. 화장터에서 나는 매캐한 냄새와 형식의 담배 냄새가 섞여 공중으로 흩날려졌다.

  음악6) 브릿지

 

(독백)  오빠가 내 이름으로 남긴 보험금이 꽤 된다는 소문이 퍼지자 이웃들은 그래도 이제 인숙이네는 걱정 없겠다는 말을 대놓고 했다. 동네 사람들은 아들 죽은 보험금으로 포도밭을 사고 새로 집을 지었다며 수군거렸다.... 돈으로 위로할 수 있는 죽음이란 없다. 오빠는 가난하게 자라, 가난하게 살다가 갔고, 우리에게 적지 않은 돈을 남겼다. 보험금 5억과 회사로부터 받은 보상금 1, 6억이란 돈은, 남은 사람들이 더 이상 가난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는 돈이었다.

 

엄마 (에코) 소원? 내 소원이사 내 땅 내 집 갖는기지. 평생 넘의 집 농사일 도와주고 품삯 받는거 징그럽대이.

(에코) 내 소원은...~~ 학교 앞에 원룸 하나 얻고, 돈 걱정 없이 대학 다니는거지.

오빠 (에코) 내도 소원 있다. 형식이 맹키로 볼링장 아들로 태어나가 볼링이나 실컷 치는기 내 소원이대이.

엄마 (에코. 심각)... 니 소원이 볼링 실컷 치는기가...?

오빠 (에코. 급히 변명) ..? 하하하하 아이다 어매. 내 농담한기다. 볼링은 무신. 하하하하

 

(독백) 오빠는 굳어지는 엄마의 표정을 보고 농담이라며 유난스럽게 웃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꿈은 나와 엄마의 소원을 이뤄 주는 것이라고 했다. 이제 세 사람의 소원은 모두 이루어진 셈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중 그 누구도 행복하지 않다.

음악7) 브릿지

 

효과) 방 안

(휴대전화 클릭클릭 하면서. 호흡 점점 가빠진다)... 뭐야...이게... 매일 밤... 형식이 이 자식을 그냥...

(독백) 장례가 끝난 후, 오빠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휴대전화에 남겨진 형식의 메시지들을 읽으며 나는 호흡이 가빠졌다. 형식은 거의 매일 밤 오빠를 자기네 볼링장으로 불러냈다.

 

효과음) 메시지 전송음 

형식 (필 에코) 행님 오늘 제가 3 3 죽이는 멤버들로 조 짜놨습니더. 판돈이 꽤 커예.

효과음) 메시지 전송음

형식  () 이거는 진짜 빅 매치라요. 컨디션 조절 잘하고 오시이소. 드링크 시원하게 해 놓고 기다리께예.

 

(독백)  오빠의 휴대전화를 들고 읍내에 있는 형식의 볼링장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볼링공을 들고 성큼성큼 걸어가 볼링장 입구의 유리문을 향해 힘껏 던졌다. 창 깨지는 소리와 함께 유리가 산산조각이 났다.

 

효과음) 유리창 깨지는 소리. 와장창

(씩씩) , 이형식! 너 어떻게 우리한테 이럴 수가 있어?

형식 야가, 야가... 머라카노. 니 뭐 잘몬 쳐 묵었나.

너는 왜 이렇게 멀쩡해? (형식의 가슴과 어깨 주먹으로 치며 울부짖는다) 우리 오빠를 노름에 끌어들여 죽게 해 놓고, 어떻게! 이렇게 멀쩡하게 살고 있냐고!

형식 (일단 달랜다) 아이다 인숙아, 그런 기 아이고. 니가 무슨 오해가 있는 갑는데, 행님은 노름을 하신 기 아이고그거는 그냥 친목 도모다. 그라이깐 여기 볼링동호회 회원들끼리 재미로 했던 내기인기라.

그래? 그럼 이 얘기 경찰서 가서 한 번 해 볼까. 매일 밤 판돈이 백만 원에서 이백만원씩 오가는 볼링 게임이 내기인지 도박인지 말이야.

형식 ...니 말 다했나? 니 그래 말하만 나는 뭐 할 말 없을 줄 아나. 그래도 해행님이 우리캉 볼링을 ?기 때문에 그 보험을 들게 된 기지. 동네 사람들이 다 칸다. 너거 집은 행님 죽어 가꼬, 그나마 남은 사람들이 살게 됐다꼬. 6억이 뭐 누구 집 아 이름이가?

(노려 본다)...

 

(독백)  나는 형식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다시 레인 앞에 놓인 볼링공 하나를 들어 카운터 방향으로 던졌다.

 

(볼링공 던지는 호흡)

효과음) 화분 같은 것 깨지는 소리

형식 ! 너 미?나!!!

(독백) 형식이 자리를 비운 카운터에는 아무도 앉아 있지 않았다. 둔탁하게 볼링공이 떨어지고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곧장 볼링장 밖으로 나와 버렸다. 뒤통수에 대고 거칠게 욕을 하는 형식에게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은 채 입구에 잘게 부서져 있는 유리 조각을 밟으면서 그곳을 빠져나왔다.

 

오빠 (에코, 어렵게 말 꺼낸다)...인숙아... 저기...꼭 서울로 대학을 가야겠나?

(에코. 회상. 간절하게)....... 첫 학기 등록금만 마련해 줘. 그다음에는 어떻게든 내가 알아서 해 볼게.

 

(독백) 오빠에게도 집을 떠날 기회가 있었다. 공고 3학년 때 수원에 있는 반도체 공장에 취직이 되었지만 오빠는 고민 끝에 입사를 포기했다. 아들을 멀리 보내기 싫어했던 엄마의 만류 탓이 컸다. 대신 오빠는 집에서 멀지 않은 막걸리 공장에 취직했다.

 

오빠 (다정하게) 인숙아, 오빠야가 볼링부인 거 알제? 오빠야가 볼링 칠 때 제일 어려븐 기 뭐꼬 카만 스페어(spare) 처리다. 한 번에 스트라이크를 못 시키만 두 번째 공 떤질 때 나머지를 다 넘가야 되거덩. 최고 골치 아픈 기 뭐꼬 카만 핀이 몇 개 남지도 안해 가꼬 뚝뚝 떨어지가 있을 때인 기라. 그거를 스플릿(split)이라 카거덩. 양쪽 끝에 핀이 이래 두 개 뚝 떨어져 있으마 결국 한 개를 내삐릴 수?에 없더라 카이. 그라이깐, 식구끼리는 서로 붙어 살아야 처리가 쉽다....히히 뭐 이런 말이다.

 

(독백)  오빠가 한창 볼링에 빠져들던 시기였다. 오빠는 모든 것을 볼링과 연결시켜 이야기하려 들었고, 볼링에 대해 이야기할 때만 환하게 웃었다.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던 나는 그때부터 굳게 다짐했다. 처치 곤란한 스페어, 그래서 포기해야 하는 스페어가 아니라, 아예 다른 레인에 스스로를 세워 보겠다고. 나는 일부러 사투리를 쓰지 않았고, 친구를 깊게 사귀지도 않았다. 이 좁은 동네를 떠나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 가서 온전한 나로 새롭게 살아 보고 싶었다.

  음악8) 브릿지

 

효과음) 굼벵이 꿈틀거리는 소리? 먼저

(독백)  아버지가 들고 온 유리단지 속에는 수백 마리의 굼벵이가 서로 몸이 뒤엉긴 채 꿈틀거리고 있었다.

 

효과음) 굼벵이 꿈틀거리는 소리 계속

지금 뭐하자는 거예요? 이런 게 어디서 났어요?

아버지 어데서 났기는? 샀지. 읍내 건강원에 외상 잽히가 샀다. 읍에 나갈 일 있으만 그 집에 돈 쫌 갖다 주라. 구하기 힘든 기라꼬 억수로 생색내더라. 이따가 너거 엄마 오만 이거 씻거가 한 번 찌놓으라 캐라.

아니, 대체 뭘 믿고 외상을 줘요?

아버지 내 믿꼬 줬겠나? 인숙이 니 인자 부자됐다꼬 소문이 자자하더라.

그래서...! (울컥) 그래서 좋으세요?

아버지 누가 좋다 카더나. 사람들이 그칸다 카는 기지. 나도 참 기가 차가 말도 안 나온다.

 

(독백) 아버지는 유리단지를 손에 든 채 계속 만지작거렸다. 나는 투명한 단지 표면에 희뿌옇게 찍힌 손자국을 보면서 미간을 찡그렸다.

 

얼마를 원해요? 그때 말한 권리라는 게 얼마짜리라고 생각하세요?

아버지 삼오(35).

당장 필요한 용돈 말고요. 얼마를 주면, 이 집에서 나가겠느냐고 물은 겁니다... 많이는 못 줘요. 우리 이제 돈 없어요. 엄마도 농협에 빚내서 비료 사고 농사지어요.

아버지 35만 원이 아이라 35키로. 그기 지끔 내 몸무게다.

 

(독백) 예전의 그는 36인치 사이즈 바지를 입을 정도로 체격이 좋았다.

 

아버지 걱정 마라. 오래 안 있는다. 나도 곧 인호 저트로 갈 끼다. 

(독백) 그의 건강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은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었다. 죽을 병에 걸렸다는 말도 엄살로 보이지만은 않았다. 나는 무슨 병인지 묻지 않았다.

 

그러면서 약은 왜 구해다 먹어요? 무슨 염치로 이래!

아버지 하루를 살아도 쫌 덜 아프까 싶어가 칸다. 내가 이거 한 빙 사 묵는 것도 아깝나? 인호 글마가 살아 있었으만, 내를 이래 멸시하지는 않았을 끼다. 적어도 다 죽어 가는 아바이한테 이래 하는 거는 갱우가 아이라 카이!

오빠 이름 입에 올리지도 말아요. 오빠가 어떻게 살다가 죽었는지 알기나 해요?

아버지 아구구구구 (주저 앉는다)

 

(독백)  더 독한 말로 쏘아 주려는데, 아버지가 갑자기 배를 움켜쥐며 주저앉았다. 놀라 엉거주춤 팔을 뻗었다. 그는 내 손을 뿌리치고 욕실로 달려갔다. 푸른색 타일이 깔린 욕실 바닥에 검붉고 끈적끈적한 피가 흩뿌려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러닝셔츠 앞섶을 붉은 피로 흥건하게 적신 아버지가 욕실에서 나와 방으로 들어가자, 나는 바지를 무릎까지 걷고 욕실로 들어가 샤워기를 틀었다.

 

(수돗물 틀어 바닥에 뿌리다 말고 앉아 흐느낀다)...

(독백) 물을 세게 틀어서 바닥의 끈적끈적한 핏자국을 지우다 말고, 나는 쪼그려 앉아 울었다. 오빠였더라면 아버지를 다시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오빠가 돌아와 어서 이 스페어들을 처리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음악9) 브릿지

 

(옷장 문 연다)

(독백)  방으로 들어가 옷장 문을 열었다. 오빠의 방에는 그가 쓰던 물건과 옷가지 들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오빠의 점퍼 주머니에 하나하나 손을 넣어 보다가 손바닥 크기의 수첩 하나를 발견했다. 수첩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볼링에 관한 메모밖에 없었다. PVC 재질의 수첩 커버에는 제일볼링장 이용권이 스무 장 남짓 끼워져 있었다.

 

(수첩 넘긴다. 호흡 같이)

(독백)  책상에 앉아 수첩을 첫 장부터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수첩은 각 장마다 오빠가 치른 게임에 관한 기록으로 채워져 있었다. 오빠는 자신이 얻은 점수와 딴 돈 혹은 잃은 돈을 먼저 기록하고, 그날 컨디션과 치러 낸 게임의 보완점들을 짤막하게 적어 놓았다. 돈을 잃은 날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작은 액수라도 잃은 날이면, 처리하지 못한 스페어의 위치와 공의 각도까지 그려 가면서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려 들었다.

 

오빠 (에코. 메모하며) 되도록 1회 차 투구에서 스트라이크 존을 공략해 가 성공시키야 한대이. 스페어에 대한 부담이 너무 크다카이.

 

(독백) 오빠가 정신력이 강한 선수는 아니었던 듯하다. 첫 투구에서 스트라이크를 성공하지 못하면, 2회 차 투구에서는 미스가 잦았다. 그럼에도 그의 에버리지가 높은 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더블(두 번 연속 스트라이크)과 터키(세 번 연속 스트라이크)를 심심치 않게 보여 줄 정도로 스트라이크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오빠 (에코. 메모) 일타열피! 일타 열피!!

(독백) 수첩 곳곳에 빨간색 글씨로 쓰인 일타열피!’라는 문구는 계산할 줄 모르는 오빠의 삶을 그대로 보여 주는 것 같았다. 막걸리 상자를 들 때에도 오빠는 남들처럼 한 상자씩 드는 게 아니라 두세 상자를 한꺼번에 겹쳐 옮기곤 했다. 상가에 조문 온 회사 동료들은 남들보다 일 처리가 빨랐던 오빠를 좋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게 일을 허겁지겁 끝내고 그가 달려간 곳은 볼링장이었다.

음악10) 슬픈 bg

  오빠는 볼링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다. 하지만 무언가를 지독하게 사랑한다는 것은,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그것에 매달릴 각오가 필요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그 무엇도 사랑할 수 없는 인간이었다.

  음악10) bg 업 다운

 

(독백) 나는 늦은 아침을 먹고 읍내의 볼링장으로 나갔다. 카운터 앞에서 쿠폰을 내밀자, 형식은 두 눈이 동그레져서 물었다.

 

형식 니 이거 어데서 났노?

이 쿠폰 너네 볼링장 꺼 맞지? 240 사이즈로 줘.

 

(독백) 나는 대답 대신 건조한 목소리로 내 할 말만 늘어놓았다. 형식은 순순히 볼링화를 꺼내 주었다. 푸른색 쿠폰 한 장을 내고 하루 종일 볼링을 쳤다. 평일 낮 시간의 볼링장은 한산했다. 오빠의 옆에서 구경한 적은 있었지만, 직접 볼링을 쳐 본 것은 처음이었다.

 

(볼링 친다. 호흡 같이)

효과음) 공 굴러가는 소리만.

(독백) 나는 부러 볼링공을 세게 바닥에 던지듯 굴렸다. 레인 위로 볼링공을 떨어뜨릴 때마다 쿵 하는 소리가 나며 발끝에 진동이 와 닿았다.

 

(속으로. 울먹임) 미치광이 같으니라고. 이게 뭐라고, 수첩에 공부를 해 가면서까지 쳐. 대단한 박사 나셨어. 그 시간에 집에 일찍 와서 잠이나 잤어야지. 나더러 걱정 말라고 자기가 다 책임진다고 하더니, 결국 이렇게 나한테 다 떠넘기고 혼자 떠난거야...?

 

효과음) 볼링공, 도랑으로 굴러간다.

(독백) 공은 레인 옆의 도랑같이 생긴 회색 거터 속으로 들어가 떼굴떼굴 굴러가기 일쑤였다. 잠자코 지켜보고 있던 형식이 슬그머니 옆에 다가와 이죽거렸다.

 

형식 (이죽) 야야, 그래 가꼬 바닥이 뿌사지겠나. 더 씨기 쾅쾅 떤지 뿌라. 아이고 답답아래이. 그래 하는 기 아이고

비켜!!!

 

(독백) 나는 볼링공을 손에 든 채로 형식을 노려보았다. 순간 형식은 움찔한 기색을 보이며 다시 카운터로 돌아갔다.

 

(볼링 공 던진다)

효과음) 볼링 굴러가는 소리

(독백) 오일이 덧발라져 번들거리는 레인 위로 나는 폭탄을 던지듯 공을 던졌다. 오빠에게 등록금을 부쳐 달라고 했던 내 발등을 볼링공으로 찧어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효과음) 볼링 스트라이크 소리.

사람들3-4 (신나게 웃으며 볼링 치고. 스트라이크!!!)

(독백) 옆 레인에서는 교복을 입은 학생 무리들이 시끄럽게 순서를 바꿔 가며 볼링을 치고 있었다. 카운터에 신발을 반납하며 힐끗 학생들의 전광판을 들여다보았는데, 그들은 10프레임이 아니라 12프레임으로 게임을 마무리 짓고 있었다. 나는 형식에게 시비조로 말을 붙였다.

 

효과음) 볼릴장

(시비조)쟤네들은 왜 열 번이 아니라 열두 번씩 쳐? 내가 쿠폰 손님이라고 홀대하는 거야?

형식 (큰 웃음) 하하하하. 니는 여어가 노래방맨치로 사장이 뽀나스 프레임 더 주고 싶으만 줄 수 있고 그런 덴 줄 아나? 그기 아이라. 쟈들은 10회 차 떤질 때 스트라이크를 해 가꼬, 뽀나스 프레임을 받은 기다.

보너스?

형식 하긴, 니는 맨날 개판 치는 점수만 받아 가꼬 그런 기 있는 줄또 몰랐겠지. 인호 행님이 진짜 뽀나스 게임의 명수였는데. 10회 차를 스트라이크 때리 가꼬 두 번 더 뽀나스 투구를 받아 뿌리민 당해 낼 사람이 없었제....쯧쯧... 나는 그때 저 행님은 진짜 운빨 쥑인다 생각했거덩. 스트라이크를 치도 우째 저 순간에 딱 성공시키민서 뽀나스 투구를 받아 가까. 행님이 내한테 자주 했던 말이 인생 끝까지 가봐야 안다꼬, 두고 봐라 늘 그캤는데.

(눈물 나는데 꾹 참으며) 우리 오빠는, 운 좋은 사람 아니야. 흑흑...

 

(독백)  오빠는 운이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어쩌면 그래서 더욱더 볼링의 운에 집착했는지도 모르겠다. 탁월한 실력에 운까지 따라 준다고 치켜세워 주는 주변 사람들의 부추김이 졸린 눈을 부비며 공을 던지게 하는 힘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빨간색 팬티와 체크무늬 양말을 신은 날이 제일 점수가 좋다며 속옷과 양말 색깔까지 메모해 놓은 오빠의 수첩을 떠올리며 나는 한숨을 쉬었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오빠는 언젠가는 인생의 훅을 만들 수 있다고 믿었던 걸까. 그러나 오빠가 펼치던 인생이란 게임은 너무 빨리 끝나 버렸다. 보너스는커녕 주어진 프레임의 점수 칸을 제대로 채워 보지도 못한 채 종료되어 버린 것이다.

  음악11) 브릿지

 

효과) 한여름. 시골길

.엄마.아버지 (걸어가는 발걸음)

(독백)  엄마와 아버지를 앞세우고 포도밭을 향해 걸었다. 포도송이를 종이 포장하는 작업을 해야 했다.

 

효과) 한여름. 포도밭. 매미소리도 좀 있고

.엄마.아버지 (포도를 종이로 싸는 작업)

(독백)  생각보다 일이 어렵지는 않았다. 다만 온몸에 땀이 줄줄 흐를 정도로 더운 게 문제였다. 아버지가 포도송이를 종이로 감싸면 엄마가 옆에서 그 위를 철끈으로 묶었다.

 

아버지 (포도송이를 종이로 묶는)

엄마 너무 쫄리게 묶으만 안 된다 카이, 포도도 숨을 쉬이야제.

 

(독백) 엄마가 종이를 건네주면서 하는 말에 불현듯 기억하기조차 싫은 오빠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랐다. 입관 전 마지막 인사를 하는 시간이었다. 피투성이로 병원에 실려 왔을 때와는 달리 깨끗한 모습으로 분까지 바르고 누워 있는 오빠의 모습은 차라리 편안해 보였다. 사고 직후 끔찍한 모습을 보지 못했던 엄마는 오빠를 쓰다듬으면서 통곡을 했다. 그리고 장례사를 붙들고 염해 놓은 오빠를 가리키며 애원하듯 말했다.

 

엄마 (에코. 울면서 애원) 우리 아는 답답은 거 싫어하는데, 너무 꽉 쫄라 놨다. 옷도 찡기는 거 싫다 캐가 내가 맨날 한 치수 큰 걸로 사주고 캤는데. 어차피 태울 꺼 아이가. 쪼매만 풀어 주만 안 되겠나. 흑흑... 우리 인호는 저래 답답은 거 싫어한다 안 카능교.

 

(독백)  목구멍에서 넘어온 뜨거운 기운을 억지로 삼키고 있는데, 아버지와 엄마가 나누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지난 삼십여 년간 아무 탈도 없이 서로 의지하면서 산 금슬 좋은 부부인 양, 같은 포도송이를 붙든 채 도란거리는 그들의 모습에 허망한 생각마저 몰려왔다. 엄마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이곳에 내려와 있는 내가 한심했다.

 

효과) 현재. 포도밭

아버지 (숨 차다) 니는 와 하필이믄 포도밭을 샀노. 쪼매난 하우스 같은 거를 샀으만 차라리 좀 핀하고 나슬 낀데.

엄마 우리 인호가 포도를 제일 안 좋아했능교. 맨날 넘우 밭에서 얻어 가꼬 알매이 쪼매난 것만 믹인 기 계속 마음에 걸린다. ... (훌쩍) 제사상에 제일 큰 걸로 올리 줄라꼬 그캤제...인호야! (주저앉아 통곡) 아이고 인호야 흑흑...

 

(독백) 오빠 이야기가 나오자 엄마는 별안간 땅바닥에 주저앉아 꺽꺽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몸속 깊은 곳에서 토해 내는, 비명에 가까운 울음이었다. 한편으로, 별안간이라는 표현을 쓰기에는 철퍼덕 주저앉아 우는 품새가 너무나 익숙하고 자연스러워 보였다. 처음 있는 일이 아닌 듯했다. 어쩌면 엄마는 목 놓아 울기 위해서 이 밭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엄마 (통곡 계속) 인호야...아이고 인호야...

아버지 니 와 이카노. 일나 봐라. 동네 사램들이 들으만 머라카겠노. 내가 니 뭐 우째 했는 줄 알겠다. 동네 우사시럽구로. (엄마 일으켜 세우려한다)

 

(독백) 엄마를 일으키려던 아버지가 오히려 휘청거리면서 흙바닥에 넘어졌다. 아버지는 스스로 일어날 기력조차 없는지 거칠게 숨을 내쉬면서 네 발 짐승처럼 엎드려 있었다. 나는 눈을 찡그린 채, 쓰고 있던 선캡을 벗어 얼굴에 부채질을 했다. 숨이 막히게 더웠다.

음악12) 브릿지

 

효과) 현재. 방 안.

(수첩 넘기며).... (뭔가 이상하다) ? (빠르게 넘긴다)

(독백)  오빠는 죽기 전날까지 도박판을 벌였다. 수첩을 절반쯤 넘기다가 나는 게임일지의 패턴이 이상하게 변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가 생의 막바지에 빠져 있었던 게임은 단순히 볼링 에버리지를 얼마나 많이 내는지를 다투는 게 아니라 누가 점수를 제일 적게 내는지로 승부를 겨루는 게임이었다.

 

형식 인호 행님이 워낙 점수를 많이 내 가 행님 견제할라고 점수 적게 내는 사람이 승자 되는 걸로 룰을 바꾼긴데 행님이 원체 빨리 적응을 한기라. ~~ 역시 행님이더라. 투구 자세하고 뽈을 바꾼기 고마 효과 직빵이대이.

 

(독백) 오빠는 5스텝 대신 4스텝, 평소 쓰던 16파운드의 볼 대신 13파운드 볼을 썼다. 거친 필체로 채워진 오빠의 메모는 꼼꼼했고 진중했다.

 

오빠 (필 에코. 뭔가 그리면서) 10번 핀 하나마 안정적으로 아웃시키마 되는기라. 이기 훅 볼’. 스트레이트로 고마 곧게 전진하다가 핀 앞에서 오른쪽 바깥으로 유도 해 가 10번 핀을 날리뿌야재.

 

(독백)  뉴 게임이라고 이름 붙인 그 게임의 판돈은 날이 갈수록 더 커지고 있었고, 그에 비례해 메모에 담긴 욕망의 크기도 기묘하게 불어났다. 사고 즈음의 오빠는 팬티 한 장을 갈아입는 데에도 예민하게 굴어 엄마가 애인이 생겼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게임 한 판에 한 달치 월급이 오갔으니 그럴 만도 했다.

 

오빠 (필 에코) 1번 핀 하고 5번 핀을 건드리마 절대로 안된대이. 이걸 다 지나서 10번만 날리야 되는기라. 핀 캐리를 경게!하자!!!

 

(독백) 낯부끄러울 정도로 진지하고 치열한 메모로 빼곡하게 채워진 그 수첩을 나는 마당으로 들고 나와 오빠가 남긴 잡동사니와 함께 불태웠다.

효과음) 불 타는 소리만

(독백) 맞춤법도 제대로 몰라서 핀 캐리를 경게하자.’라고 빨간 글씨로 강조해 놓은 오빠의 흔적을 나는 볼품없는 물건을 버리듯 내팽개쳤다. 내 서울살이를 지탱했던 것이 오빠가 쓰러뜨리지 않은 스페어스(spares)라는 걸 잊고 싶었다. 까맣게 내려앉은 잿더미를 발로 밟고 침을 퉤퉤 뱉었다. 수첩에서 빼낸 몇 장의 쿠폰이 손 안에서 구겨졌다.

  음악13) 브릿지

 

효과음) 볼링 스트라이크 소리

(독백) 화가 치솟으면서 무언가 던지고 부숴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볼링장에 갔다. 이 집에서 머무른 대부분의 시간이 그런 나날이었다. 마지막 남은 쿠폰을 내고 벤치에 앉아 볼링화를 갈아 신으며, 나는 심호흡을 했다. 마지막으로, 가장 점수를 적게 내는 볼링을 쳐 보기로 했다.

 

(볼링공 던진다. 호흡 같이)

효과음) 볼링 공 굴러간다. (스트라이크 아님)

(독백)  오른쪽 끝의 10번 핀을 노리고 던졌더니 볼링공은 손에서 떨어지는 족족 레인 밖으로 굴러가기 바빴다. 한 번은 10번 핀에 공이 닿긴 닿았는데, 스치기만 했는지 핀이 살짝 기우뚱하는 데 그치고 오뚝이처럼 말짱하게 섰다.

 

형식 으이고, 속 터지 죽겠네. 니는 우째 핀을 맞차 놓고도 점수를 못 내노? 이거 끼고 한번 해봐라. 아대라 카는기다. 손 대 봐라.

(손 내 민다)

형식 (아대 채우면서) 핀이 맞으만 머하노. 손모가지에 히마리가 없어 가꼬, 핀이 쓰러지지를 안 하는데. 이 아대 차고 한 번 해 봐라. 훨씬 더 힘이 잘 들어갈 끼다.

(혼잣말처럼. 강하게) 딱 하나만 아웃시키고 싶어. 아주 깨끗하게.

형식 한 번에 다 되는 기 아이다. 첨부터 우째 깨끗하이 다 처리하겠노. 부담 가질 필요 엄따. 공짜로 주는 거 아이다. 빌리주는 기다. 신발하고 같이 반납하만 된다.

 

(독백)  단단한 아대를 착용하자 팔목부터 팔꿈치까지 깁스를 한 느낌이었다.

 

(발걸음)

(독백) 공의 구멍에 손가락을 끼우고 천천히 스텝을 밟았다. 확실히 공이 뻗어 가는 기세가 이전보다 좋았다. 10번 핀을 향해 스트레이트로 나아가던 공이 핀 스폿 앞에서 갑자기 왼쪽으로 휘어지면서 1번 헤드 핀을 정확하게 때렸다.

효과음) 스트라이크

(독백) 헤드 핀이 넘어지면서 킹 핀을 때렸고, 또 킹 핀이 주변의 핀들을 쓰러뜨렸다. 스트라이크였다.

 

형식 (중간 off. 박수) 브라보! 핀 캐리 직이네. 일단 공을 쌔리?다 카만 저런 반발력으로 핀 캐리가 나와 줘야 속이 씨원해진다 카이. 아대가 완전 임자 만났는 갑다.

 

(독백) 스트라이크를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손끝에 얼얼하게 느껴지는 감각이 이상한 희열을 불러일으켰다. 볼링핀 간 중심에서 중심 사이의 거리는 30.48이다. 각각 떨어져 있지만 완전히 독립적으로 서 있는 것은 아니다. 무너지는 순간에는 서로의 영향을 강하게 받을 수밖에 없다. 도망가려 해 봤자, 강한 힘이 덮쳐 버리면 결국 한꺼번에 무너지게 마련이다.

 

(공 닦으며. 호흡 같이)

(독백) 오일이 표면 곳곳에 묻은 공을 헝겊으로 닦으며 오빠를 생각했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 힘껏 굴려도 결국 같은 자리로 다시 돌아오는 이 볼링공처럼 매일 새벽 수백 상자의 막걸리를 싣고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낯선 도시까지 가 닿았다가 결국 제자리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오빠의 삶이 이제야 묵직하게 다가왔다. 퇴근 후 지친 몸으로 무거운 볼링공을 던지며 그가 얻어 내고 싶었던 보너스는 무엇인지 나는 계속 외면하려 들었다. 그가 죽고 나서야 그것을 더 고통스럽게 들여다보게 된 것은 아마 그 대가일 것이다.

 

(발걸음. 호흡)

(독백)  희뿌옇게 펼쳐진 눈앞에는 다시 제자리를 찾은 열 개의 볼링핀이 전투 태세를 갖추고 서 있었다. 넘어진 핀이든 남은 핀이든 시간이 지나면 결국 모두 쓸려 나가고, 새로운 프레임이 시작된다. 그것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게임의 법칙이었다. 나는 보너스 프레임에 선 기분으로 허벅지에 힘을 준 채 볼링공에 세 손가락을 끼우고 어프로치 라인에 섰다.

(볼링 치려고 스텝 밟기 시작하면서 엔딩 음악 in)

음악14) BG 음악 업 다운으로 엔딩

<# 작가 초대석 ? 김현경>

 

태의경 핀 캐리

....볼링 스트라이크의 경쾌한 소리가 들리는게 아니라

왜 눈물이 나려고 하는 걸까요.

김현경 작가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김현경 (인사

 

태의경 1. 볼링 잘 치세요?

김현경 (* 가볍게. 연결해서 작품을 쓰게 된 배경 얘기하셔도 돼요.

 

태의경 2. (볼링을 잘 몰라서 여쭤보는건데)

일부러 져서 이기는 게임,

이런 게임이 실제로도 존재를 하나요?

김현경 (* 편하게

 

태의경 3. ‘핀 캐리이 작품 함께 하면서

계속 65킬로그램밖에 되지 않는 인호가 생각이 났어요.

어린 가장이잖아요.

어쩔 수 없이 졸음을 이겨가며 운전대를 잡을 때

인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김현경 (* 작품 속 등장인물 얘기 같이 하시면 돼요.

 

태의경 4. 그리고 인호는 운전을 마친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볼링장을 찾았잖아요.

라인, 어프로치 라인이라고 하나요?

그 라인 앞에 섰을 때 인호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정말 궁금해요.

한 판에 한달치 월급이 왔다 갔다 하는 건데

그 라인에 선 심정은 어땠을까요?

김현경 (* 도박 볼링을 하는 인호의 심정에 대해

 

태의경 5. 볼링이 놓여 지는 간격과 가족 간의 간격.

연결 고리가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어떠세요?

김현경 (* 간격에 대해

 

태의경 6. 아버지 엄마 그리고 나.

서로서로 인호를 죽음으로 몬 게 아닌가 자책을 하잖아요.

뭐 아버지는 대놓고 자책을 하지는 않지만.

어느 집이나 보면, 제일 희생하는 자식이 있거든요.

그래서 이 작품은 볼링을 소재로 하지만

가족관의 관계를 생각하게 됩니다.

인간의 욕망, 욕심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고.

작가께서는 어떤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건가요?

김현경 (* 작품의 주제. 작의

 

태의경 7. 심사위원들의 심사평을 보면

구성이 단단하고 초점이 분명하며 인물이 살아있다

적혀 있거든요.

작품을 쓰실 때 미리 구성과 인물에 대해서 설정을 해놓고

작업을 하는 편이세요?

김현경 (* 소설 쓰는 방법

 

태의경 8. 김현경 작가도 이제 진정한 의미로 출발을 하신건데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으세요?

김현경 (* 편하게

 

태의경 9. 현재 구상해 놓은 작품이 있나요?

김현경 (* 계획 중인 작품

 

태의경 , 지금 구상중인 작품 잘 완성하셔서

올 해 안에 또 다시 이 자리에 모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나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김현경 (* 인사

 

태의경 서울신문 단편소설 당선작이죠...?

핀 캐리의 김현경 작가와 함께 얘기 나눴습니다.

 

[# 후시그널 + 클로징]

 

태의경 박목월 시인의 <2월에서 3월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앞부분입니다.

 

‘2월에서 3월로 건너가는 바람결에는

싱그러운 미나리 냄새가 풍긴다

해외로 나간 친구의, 체온이 느껴진다/

참으로, 2월에서 3월로 건너가는, 골목길에는

손만 대면 모든 사업이

다 이루러질 것만 같다 /

, 서 남, 북으로, 틔어있는 골목마다

수국색 공기가 술렁거리고

뜻하지 않게 반가운 친구들

다음 골목길에서, 만날 것만 같다. ’

 

2월에서 3월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왠지 모르지만 좋은 일을 만날 것 같다면

그건 아마도 저 길 끝에

설렘이 기다리고 있을거라는 믿음 때문 아닐까요.

 

KBS 라디오 독서실,

김현경 작가의 <핀 캐리> 함께 하셨고

음악 장수년 / 효과 안익수, 강우석, 노동걸

/ 기술 김남희 / 극본 서현이 / 제작 강요한

지금까지 진행에 저는 아나운서 태의경이었습니다.

 

다음 주 이 시간에는 한국일보 희곡 당선작

이진원 작가의 <손님> 보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