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 Piano Concerto No. 2 in Bb major, Op. 83 Johannes Brahms 1833-1897
이탈리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브람스는 1881년 3월 빈 근교에 있는 프레스바움에 머물면서 새로운 피아노 협주곡을 구상해냈다. 여행에서 받은 인상과 샘솟은 영감을 토대로 대단히 빠른 속도로 작곡하여 불과 3개월 정도가 지난 뒤에 피아노 협주곡의 대부분의 파트를 완성할 수 있었고, 그 해 여름 무렵에 총보를 완성했다.
그리고 그는 ‘절친한 친구이자 스승인 에두아르트 막센(Eduard Marxsen)’에게 자신의 두 번째 피아노 협주곡을 헌정했다. 1881년에야 비로소 브람스는 자신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이 대가에게 만족스러운 음악을 처음으로 바쳤다는 사실은 브람스의 신중한 성격을 드러내기에 충분하다. 1881년 11월 부다페스트에서 초연되었다
Kotaro Fukuma performing with the Israel Philharmonic the Brahms Concerto no 2 in B flat major op 83 at the finals of the Arthur Rubinstein International Piano Master Competition. Conductor: Asher Fisch.
1악장 : Allegro non troppo 1악장 도입부는 호른과 피아노가 대화를 나누며 서사적인 스케일을 지닌 거대한 무엇인가가 다가올 것을 예고하는 듯하다. 리토르넬로 형식에 근거를 두고 있는 이 악장은 오케스트라 반복 악구와 독주자의 긴장감 넘치는 대화가 인상적으로서, 극적인 선율을 제시한 뒤 독주자가 당당하게 이것을 강조하는 전통적인 방식을 차용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전의 다른 곡들, 혹은 다른 작곡가들의 협주곡들에 비해 음역이 넓고 조성도 유동적이되, 그 변화는 명확하게 보이지 않고 오히려 모호하기까지 하다. 그리하여 독주자와 오케스트라의 대조를 위한 리토르넬로 형식의 의미는 이 악장에서는 경쟁이나 대비의 효과 없이 서로의 성격을 공유하는 듯 보인다. 심지어 피아노는 도입부에서 엄청난 음량과 스케일로 자신의 우세함을 미리 선보였기에 카덴차 없이도 오케스트라와 대등한 위치에 이미 올라서 있다.
2악장 : Allegro appassionato 브람스가 의도했던 스케르초 악장으로서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하나 됨을 통해 남성적인 힘과 역설적인 표현력을 강하게 부각시킨다.
3악장 : Andante - Più adagio 실내악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안단테 악장. 독주 첼로의 감동적이고도 유려한 멜로디가 피아노를 이끌어내고, 피아노는 나선형으로 느릿하게 상승하며 두 대의 클라리넷과 트리오를 이루다가, 이내 오보에와 독주 첼로가 캐논풍의 대화를 만들어나간다
4악장 : Allegretto grazioso - presto 보통의 협주곡 양식에서는 피날레 악장에서 해결을 위한 통쾌함을 요구해왔던 것과는 달리, 이 협주곡의 마지막 악장은 앞선 악장들에 비해 지나친 요구 없이 비교적 완만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여섯 개의 주요 주제들이 끊임없이 발전을 거치며 변형되어나가는 모습과 피아노 독주 부분의 경탄스러울 정도의 어려운 테크닉 등등, 내면적으로는 대단히 치밀하고 복잡한 내용과 구조를 담고 있다. 천진난만함과 난해함의 공존을 보여주는 이 악장은 Un poco piu presto의 경과부를 거치며, 브람스의 장대하면서도 ‘작은’ 협주곡의 마지막 절정을 향해 대범하게 돌진해나간다.
전통 3악장 형식에서 벗어나 4개의 악장으로 구성
피아니스트로서도 탁월한 재능을 지녔던 브람스는 젊은 시절부터 피아노 협주곡에 대한 악상에 사로잡히곤 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무자비할 정도로 철저했던 완벽주의자로서, 자신의 [현악 4중주 1번]을 발표하기 이전에 작곡한 20여곡의 습작 현악 4중주 모두를 폐기해버렸을 정도다. 더군다나 슈만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을 피아노에 대한 애정과 협주곡 양식에 대한 의무감을 표출해야만 했던 그가 단 두 개의 피아노 협주곡만을 남겼다는 사실 또한 그가 그 이전에 얼마나 혹독한 자기검열을 거쳤는가를 반증해 준다. 게다가 두 곡 사이의 작곡 시기는 거의 4반세기 정도의 격차를 두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스타일과 관점 또한 현저하게 상이하다.
<그문덴 박물관의 브람스실의 브람스가 치던 피아노도 보인다>
[1번 협주곡]은 끝없이 진행되는 연속성과 불타오르는 듯한 비르투오시티, 폭풍우를 연상시키는 듯한 다이내미즘 등등을 연상시키며 젊은 브람스의 대범하면서도 열정적인 모습을 반영한다. 그러나 [2번 협주곡]은 독창성과 표현력에 있어서 여전히 작곡가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 극단적인 표현을 자제하며 여유로움과 사색을 즐기고자 하는 노대가의 관조적인 모습을 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피아노 협주곡 2번]의 가장 독창적인 면모는 협주곡의 전통적인 3악장 형식에서 벗어나, 극적인 효과를 배가시키는 스케르초 악장이 하나 더 포함되어 있다는 점을 손꼽을 수 있다. 그는 친구인 엘리자베스 폰 헤르초켄베르크 (Elisabeth von Herzogenberg)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매우 활기찬 작은 스케르초를 가진 작은 피아노 협주곡 하나를 작곡했다.” 이 말은 통상적인 규모를 넘어선 확장된 구조에 대한, 혹은 1악장 하나가 전통적인 3악장 형식이 보여주어야 하는 것 이상의 구성을 담고 있는 것에 대한 작곡가 자신의 유머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4악장 구성 때문인지 이 협주곡은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교향곡 형식의 작품으로 종종 오해받곤 하거나, 피아니스트의 비르투오소적인 자기 과시가 없기 때문에 더더욱 교향악적인 작품으로 낙인찍히곤 했다.
그러나 피아노 협주곡은 본질적으로 자기과시를 위한 장르도 아니고 교향곡으로서의 이디엄을 흉내낸 장르 또한 아니다. 오히려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성악곡 가운데 아리아 형식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에, 독주자 개인이 오케스트라에 대등한 위치를 점유하며 하나의 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카리스마와 테크닉(결코 외향적인 이유만은 아닌), 그리고 이를 감싸주며 전체의 흐름과 구조를 리드해나가는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의 거시적인 시각의 조화야말로 협주곡 장르의 독립적인 이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독주자와 오케스트라가 이루는 장엄한 조화
< 도입부 피아노의 엄청난 음량과 스케일은 이 곡의 매력 중 하나다>
이러한 관점에서 비발디, 텔레만, 바흐를 비롯한 협주곡 장르의 대가들 이후 모차르트와 하이든, 베토벤, 베버, 슈만을 거친 뒤, 특히 현대화된 피아노라는 악기에 부합한 협주곡 양식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이 바로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인 것이다. 협주곡 양식이라는 측면에 있어서 형식적으로 확대된 것은 물론이려니와 피아노와 오케스트라에 대한 역할 분담 또한 다양해진 발전적인 모습을 담고 있는 이 협주곡은, 브람스 개인의 정서적인 측면에 있어서도 이전보다 한층 원숙하고 사색적으로 변화한 동시에 완벽주의적인 성격 또한 더욱 정교해졌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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