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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일의 책장수]조신선[曺神仙]

Bawoo 2018. 5. 8. 22:36



정약용, 조수삼, 조희룡의 공통점은? 모두 조신선이라는 일개 책쾌에 대한 전기를 지었다는 점이다. 조선 후기에는 수많은 책쾌가 있었다. 조신선 이외에도 배경도(裵景度), 홍윤수(洪胤琇) 같은 책쾌의 이름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홍윤수는 몰락했으나마 양반 출신이었다. 그런데 책쾌로서 전기에 등장한 이는 조신선 이외에 없다. 조신선이 책쾌 중 단연 돋보인다는 의미다.

아래는 정약용에 의해 입전된 내용인데, 일개 책거간꾼이 신선으로 설정되었다는 것이 흥미롭다. 정약용의 전집에는 모두 5편의 전이 있는데 〈조신선전〉도 그중 하나다.


조신선(曺神仙)이라는 자는 책을 파는 아쾌(牙儈: 중간 상인)로 붉은 수염에 우스갯소리를 잘하였는데, 눈에는 번쩍번쩍 신광(神光)이 있었다. 모든 구류(九流) · 백가(百家)의 서책에 대해 문목(門目)과 의례(義例)를 모르는 것이 없어, 술술 이야기하는 품이 마치 박아(博雅)한 군자와 같았다. 그러나 욕심이 많아, 고아나 과부의 집에 소장되어 있는 서책을 싼값에 사들여 팔 때는 배로 받았다. 그러므로 책을 판 사람들이 모두 그를 언짢게 생각하였다. 또 그는 주거를 숨겨서 어디에 사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어떤 사람은 그가 남산 옆 석가산동에 산다고 하나, 이 역시 분명치 않다.

건륭(乾隆: 청 고종의 연호) 병신년(정조 즉위년, 1776) 무렵 내가 서울에 와 있을 때 처음 조신선을 보았는데, 얼굴과 머리가 사오십은 된 것 같았다. 그런데 가경(嘉慶) 경신년(순조 즉위년, 1800)에도 그 모습은 조금도 늙지 않고 한결같이 병신년과 같았다. 근자에 어떤 사람이, 도광(道光: 청 선종의 연호) 경진년(순조 20, 1820) 무렵에도 역시 그랬다고 하였으나, 그때는 내가 직접 보지 못했다. 옛날에 소릉(少陵) 이공(李公)이 말하기를, “건륭 병자년(1756, 영조 32) 무렵에 내가 처음 보았는데, 또한 사오십쯤 되어 보였다” 하였다. 앞뒤를 모두 계산해 보면 1백 살이 넘은 지 이미 오래니, 그 붉은 수염이 혹 무슨 이치가 있는 것 아닌가?

외사 씨는 논한다.

도가에서는 마음을 깨끗이 하고 욕심을 적게 갖는 것을 신선이 되는 근본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조신선은 욕심이 많으면서도 오히려 이처럼 늙지 않았으니, 혹 말세가 되어 신선도 시속(時俗)을 면할 수 없어서인가?

- 정약용, 〈조신선전〉, 《다산시문집(茶山詩文集)》 제17권각주1)

위 전을 보면 조수삼이나 조희룡의 〈조신선전〉과 별다른 차이점이 없다. 그런데 왜 일개 책장수에게 신선이라는 칭호를 붙였을까? 다산 선생은 이 글에서 조신선의 극단적인 양면, 즉 신선과 장사치를 그리고 있다.

우선 신선으로서의 면모부터 보자. 붉은 수염에 우스갯소리를 잘하고, 눈에는 번쩍이는 광채가 있는가 하면, 모든 책이란 책은 샅샅이 모르는 것이 없고, 여기에 술술 이야기하는 품이 군자와 같다고 한다. 더욱이 1백 살이 넘은 지 이미 오래다. 지금도 평균 연령이 여든을 넘기기 어려운 판이다. 조희룡은 한 술 더 뜬다. 조신선은 늘 나이를 예순 살이라고 한다면서, 일흔이 된 어떤 노인이 자기가 아이 때 조신선을 보았는데 그때도 예순이라고 했다고 한다. 이어 조희룡은 어림셈 쳐 조신선의 나이를 ‘백 살이 넘은 지 오래라’ 하고는, 그런데도 얼굴 모습은 마흔이 못 되어 보인다고 적어 놓았으니 저 말을 믿어야 할지 판단이 안 선다. 조신선을 신선으로 등극시키려니 그러하겠지만서도 조신선이라는 인물의 특이함은 충분히 읽을 수 있다.

하지만 다산은 조신선이 장사치답게 욕심이 많았다는 점도 놓치지 않았다. 하필이면 고아나 과부의 집에 소장되어 있는 서책을 싼값에 사들였고, 팔 때는 배나 이윤을 챙겼다. 지금도 우리는 서점을 운영한다면 일반 장사꾼과는 다르게 보는데, 책을 판 사람들이 모두 그를 언짢게 생각할 정도로 이윤을 챙긴 이유는 무엇일까? 그렇다고 가족을 위해 썼다는 기록도, 그 자신이 부유하다는 기록도 없다. 조수삼이나 조희룡의 〈조신선전〉에서도 그 대답은 알 수 없다.

다만 조희룡의 〈조신선전〉에 그가 신선이 된 연유를 한 자락 놓고 있다. 그것은 ‘육서자오(鬻書自娛: 책 파는 것을 스스로 즐겼다)’ 네 자다.

鬻書自娛
책 파는 것을 스스로 즐겼다.
文字仙一則
글신선이 되는 한 방법이다.

- 조희룡, 〈조신선전〉, 《조희룡전집》 6

책 쓰는 것을 스스로 즐겼다.
책 보는 것을 스스로 즐겼다.

그런데 신선이 될까?


참고문헌

조희룡, 〈조신선전〉, 《조희룡전집》 6, 한길아트, 1998, 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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