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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일본 방산 비리 사건]지멘스(Siemens) 사건

Bawoo 2018. 7. 31. 23:06



지멘스(Siemens) 사건


일본해군은 메이지 초기부터 영국, 독일 등에서 함선 및 무기들을 대거 구입했는데 이 때문에 외국의 조선회사들은 서로간의 입찰경쟁이 격화되었다. 이 때문에 해군의 고급 기술장교들과 감찰관들이 이러한 조선회사 및 군수회사로부터 일본대리점 개설과 입찰수수료 명목으로 뒷돈을 받아 챙기는 일이 종종 일어났다.

 

메이지 말기에서 다이쇼 초기에 이르던 시기는 번 출신(주로 초슈, 사쓰마 출신)의 군벌에 대한 비판이 높아가던 시기였는데 당시 군대의 예산문제는 일반인에게도 큰 관심의 대상이였다. 1913년(다이쇼 2년)에는 제 1차 헌정운동으로 초슈 파벌과 육군의 공격에 진행되고 있었는데 지멘스 사건은 사쓰마 파벌과 해군에 비판이 쏟아지는 계기가 되었다.

 

지멘스 사건은, 당시 독일 지멘스 사의 사원이던 카를 리히텔이 회사의 중요서류를 훔쳐 낸 후 거액을 타낼 욕심으로 지멘스의 도쿄 지점장을 협박하려다가 실패하자 로이터 통신의 특파원이던 앙드르 플레에게 서류를 팔아넘긴 후 독일로 귀국했다가 공갈미수혐의로 기소된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1914년 1월 21일에 외국의 통신사들은 리히텔에 대한 베를린 법정의 판결문에서 그가 훔친 서류 속에 일본해군 장교가 지멘스 사에 발주명목으로 리베이트를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고 보도했다. 1월 23일에 제 31차 일본의회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야당이던 입헌동지회(立憲同志會) 소속의 시마다 사부로(島田三郞)의원은 이 보도를 문제삼아 의회를 강력하게 추궁했다.

 

당시 야마모토 칸베(山本權兵衛)수상의 내각은 이 회의에서 해군확장안과 그 재원인 영업세, 직물소비세, 통행세의 증세 예산안을 제출했는데 이에 반대하는 국민들에게 공격대상이 되어 신문들은 연일 해군의 방만한 태도와 부패를 보도하였는데 일본해군은 내부에서도 고발이 속출하여 여론이 들끓었다.

 

1월 말부터 2월 초에 걸쳐 관계자의 수사와 가택조사가 이루어져 2월 7일에 후지이 테루고로(藤井光五郞) 기관소장, 사와자키 대좌가 검거되면서 해군 군법회의에 회부되었다. 이에 2월 10일, 야당이던 입헌동지회, 입헌국민당, 중정회(中正會)는 중의원에 내각탄핵 결의안을 상정했다.

 

이 날 도쿄 히비야 공원에선 내각탄핵 국민대회가 열렸는데 탄핵결의안이 164대 205으로 부결되었다는

소식이 접해지자 운집한 군중들은 크게 분노하여 국회의사당을 포위하고 구내에 침입해 관헌들과 충돌했다. 현 정부의 관료와 군인이 결탁한 이 뇌물스캔은 크게 확대되어 3월 12일에 영국 빅커스 사의 일본대리점인 미쓰이(三井)물산도 걸려들었다.

 

당시 미쓰이 물산의 중역이던 이와하라는 1910년에 순양전함 콘고(金剛)를 빅커스 사에 주문하기 위해 해군 고관들에게 뇌물을 준 혐의가 포착되어 체포되었는데 여기에 고마다 요이치(飯田義一), 야마모토 조타로(山本條太郞) 등 미쓰이 물산의 관련자들이 줄줄이 기소되었다.

 

그 결과, 함정본부(艦政本部)의 본부장이던 마쓰모토 카즈(松本和) 중장이 콘고의 건조당시 미쓰이 물산의 손을 거쳐 빅커스 사로부터 약 40만엔의 뇌물을 받아낸 것이 들통났다. 그 사이 귀족원은 해군예산 7,000만엔을 삭감하는 것을 가결하여예산안은 양원 협의회의 부조화에 의해 성립되지 못해 3월 24일에 야마모토 내각은 총 사퇴했다.

 

이에 후속으로 등극한 제 2차 오오쿠마 내각의 오오쿠마 시게노부 수상은 해군정화의 목소리를 받아들여

새로이 야시로 로쿠로(八代六郞)를 해군상에 임명해 개혁을 추진하여 5월 11일에 야마모토 전 수상 및 사이토 미노루(齊藤實)전직 해군상을 예비역에 편입시켰다.

 

5월 19일 군법회의에서 마쓰모토 카즈 전 해군함정본부장은 미쓰이 물산으로부터 뇌물을 요구한 혐의로 징역 3년에 추징금 40만 9,800엔이 청구되었고 부하인 사와자키 대좌는 해군무선통신소 교신장비 설치를 명목으로 지멘스 사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징역 1년에 11,500엔의 추징금 판결이 내려졌다.

 

도쿄 지방재판소는 7월 18일에 야마모토 조타로 등 미쓰이 관계자 전원에게 유죄판결을 내려 이들을 집행유예 처리했다. 9월 3일 군법회의에서 후지이 테루고로 소장은 빅커스 사 외에도 다른 회사로부터 뇌물수수 혐의가 포착되어 징역 4년 6개월에추징금 368,000엔의 판결이 내려지면서 사법처분은 완료되었다.

 

그러나 곧 제 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인해 3명의 해군군인을 유죄로 한 것만으로 사건은 종결되고 산업계와 군부, 정관계의유착관계는 엄밀하게 조사되지 못했다.

 

 출처 : 일본경제논평사 <일영병기산업과 지멘스 사건>

[출처] 지멘스 사건|작성자 도위창/정보-책 태평양 전쟁사 1권 2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