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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장편소설]눈 속에 핀 꽃 - 김민환

Bawoo 2018. 9. 19. 22:35

 

 

[소감]

대학교수로 정년퇴직하고 섬에서 홀로 생활하고 있는 주인공에게 첫사랑-윤희란 이름-의 딸로부터  연락이 오면서 풀어내는 박정희 전 대통령 군사독재 기간 중 1960년대 중반부터 70년 중반까지 시기에 젊은 시절을 살아간 이들의 삶과 사랑 이야기.

주로 K대생-아마 고려대일 듯-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가독성이 뛰어나 밤을 새워 읽어냈다.

등단 작가가 아닌 탓에 작품의 구성이나 문장력에 미흡한 점이 있으면 -그런 작품이 몇 번 있었다-가차 없이 책장을 덮으려고 했는데 이런 기우를 일거에 날려버리고 빠져들게 만든 탓이었다. 가독성이 뛰어난 이유는 문장이 단문 구조로 되어 있는 점도 있겠으나 그보다는 다음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까 궁금하게 만든 요인이 더 크게 작용했다..

독자인 내가 살아간 방식은 작중 인물과 다르고 시간상으로도 몇 년 늦지만, 나도 젊은 시절 겪었던 일이기에 내용이 쉽게 이해된 점이 많이 작용했을 수도 있겠다.   

일찍부터 소설을 쓰고 싶었으나 생업이 남을 가르치는 일-대학교수-인지라 시간을 내지 못하다가 퇴직 후 비로소 시간이 나 쓴 것일, 작가의 자전적 요소가 많이 담겨있음을 느낄 수 있는 작품. 일반적인 구성-맺어지지 못한 첫사랑-하긴 첫사랑이 평생 해로로 이어진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 것인가. 백에 하나둘 정도?^^- 여인의 소생이 연락해오면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을 말한다-이고 익히 체험해 온 내용이지만 식상한 느낌이 없이 재미있게 읽었다.

 

작품 제목은 조선조 '홍원주란 분의 매화'란 시에서 따온 것이고. 매화는 주인공 '영운'의 첫사랑인 '윤희'를

뜻하는 것 같다. 주인공-작가-이 한시에 조예가 깊은 걸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2021. 5. 1 수정]

 

 

 

 

[책소개-다음 책]

노자는 물과 같이 사는 것이 가장 아름답다고 했다.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한다. 모든 생물은 물이 없으면 살 수 없다. 둘째, 물은 결코 다투지 않는다. 막는 것이 있으면 돌아가고, 걸리는 것이 있으면 나뉘어 가며, 웅덩이를 만나면 채우고 지나간다. 셋째,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 결코 높은 곳을 탐내지 않고 아래로 아래로 흐른다. 물은 그렇게 하여 상생相生의 바다에 이른다.
김민환의 소설 『눈 속에 핀 꽃』은 물처럼 살고자 한 젊은이들의 이야기이다. 동세와 원호가 그렇고 중언이 그러하며, 주인공 영운이 사랑한 부잣집 딸 윤희가 그렇다. 그들은 하나로 얽혀 물길을 이루며 흐른다.
주인공인 영운과 윤희는 서로 사랑하면서도 좀처럼 거리를 좁히지 못한다. 자칫 지루할 법한데 작가는 진한 감성의 바늘로 독자를 찌르며 이야기를 끌어간다. 끝내는 윤희가 영운을 떠나지만, 영운이 윤희를 조용히 보내고 만 것은 물처럼 사는 것이 아름답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실연이 애잔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아련하면서도 따스하게 다가오는 것은 소설을 흠뻑 적시는 그 물 스러움 덕분일 것이다.
- 임권택

 

김민환 교수와 나는 1966년에 같은 대학에 입학했다. 그해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125달러로 한국은 세계 최빈국이었다. 절량농가 근절, 식량 증산, 기아 퇴치 같은 국정지표가 전국 관공서 외벽에 현수막으로 걸려 있었다. 빈곤은 역사로부터 유습된 사회경제적 모순의 산물이었지만 박정희 군사정권은 그 빈곤으로 장기독재를 정당화했고, 억압, 차별, 비리, 부패와 국가 폭력은 일상의 질서로 자리 잡았다.
김 교수의 소설은 그 시대를 20대로 지나온 지식인의 청춘 회고록이다. 이 소설에는 사랑, 혁명, 배움을 동시에 모두 이루어내려고 현실의 절벽에 몸을 부딪치는 젊은이들이 등장한다.
젊은이들에게 이 열망들은 서로 끌어안고 스며서 한 덩어리이고, 따로 따로 분리되어서는 무의미했다.
세상은 부서지고, 주저앉고 거꾸로 돌아가기를 거듭하면서 조금씩 나아갔는데, 한 걸음 나아갈 때마다 많은 젊은이들이 열정과 희생을 바쳤다.
청춘의 열정은 과학이나 논리나 이념이라기보다는, 들끓는 복받침일 터인데, 이 열정이 없이는 인간의 미래는 성립되기 어렵다는 것을 이 소설은 보여준다.
김 교수와 나는 이제 망팔望八이다. 돌아보면 먼 길이었지만, 갈 길은 더욱 멀어서 끝이 없는데, 여기쯤에서 한 생애는 저녁을 맞는다.
아직도 이 먼 길을 젊은이들이 가고 있다.
_ 김훈

 

 

저자소개

저자 : 김민환
고려대 신문방송학과를 나와 대학원에서 언론학을 전공해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남대 신문방송학과를 거쳐 고려대 미디어학부로 옮겨 교수 생활을 하다 2010년 8월에 은퇴했다.
고려대 언론대학원 원장, 한국언론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2013년에 첫 장편소설 『담징』(서정시학)을 썼다.

 

목차

1. 1월 1일 0시 5분
2. 묵시
3. 화려한 허무
4. 불화
5. 창랑滄浪의 물
6. 일엽편주
7. 절대비밀
8. 하늘 일
9. 매화

 

 

[책 속으로]

1월 1일 0시가 되면 5분간 저와 제 가족의 건강을 비는 기도를 올릴 거구요, 0시 5분에 마음에 담아둔 여학생에게 편지를 쓸 거예요. 반쯤은 장난삼아 한 말이지만 행동으로 옮겨야 할 것 같았다.(중략)
그러나 영산포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장흥으로 가는 사이에 생각이 흔들렸다. 윤희에게 다가가려면 아직 그를 떠나지 않은 결핵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아야 했다. 그런 사실을 남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그로서는 죽기만큼 싫었다.
장흥에서 다시 집으로 가는 버스로 갈아탄 뒤에는, 오래전부터 위통을 앓는 아버지와, 그 밑에 주렁주렁 매달린 동생들 얼굴이 떠올랐다. 윤희가 어떤 집안 출신인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지만, 어쨌거나 간에 그들과 윤희는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았다. 마을 앞 정거장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가며, 영운은 윤희에게 편지를 쓰지 않기로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고 해서 그리움마저 끝난 것은 아니었다.
_ ‘1월 1일 0시 5분’ 중에서

나는 화영을 사랑하는가? 사랑이 그리움이라면, 화영을 애태워 그리워하는가? 그건 아니었다. 사랑이 담는 것이라면, 그가 곁에 없을지라도 그를 넘쳐흐르도록 가슴에 담고 있는가? 그것도 아니었다. 따져 보면 윤희보다 화영이 못 할 게 없었다. 얼굴이야 화영이 빼어났다. 그럼에도 화영을 진하게 그리워하는 것도, 마음에 깊이 담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유가 무얼까? 영운이 내린 결론은, 윤희와 화영에 대한 감정의 차이가 선택의 주체성 여부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었다. 윤희의 경우 영운이 주체로서 윤희를 선택했기 때문에 능동적이었지만, 화영의 경우 영운은 하나의 객체로서 화영의 선택을 받은 것이어서 수동적이게 마련이었다.
_ ‘노랑나비’ 중에서

그때 누군가가 뒤에서 영운의 점퍼 뒷덜미를 움켜잡았다. 학교를 출입하는 성북서 형사 ‘기러기’였다.
“얀마. 너 제정신이냐?”
철인이 영운을 보며 끼어들었다.
“이 사람 누구냐? 내가 딱 한 방에 보내불까?”
‘기러기’가 철인을 제치고 말을 이었다.
“우리한테 붙들리면 따귀 몇 대 맞고 군대 끌려가면 끝이야. 그러나 지금은 달라. 군인들이 널 잡으려고 안달이 났어. 걔들한테 붙들리면 넌 죽어. 매 맞아 골병들고, 깜방 살아.”
‘기러기’가 덜미를 놓았다.
“나 출근 중인데, 널 여기서 봤다고 서에 전화해서 형사들 풀 수밖에 없어. 빨리 먼 데로 튀어. 아주 먼 데로.”
_ ‘두더지와 기러기’ 중에서

“너, 가정형편 어렵잖아? 공부 잘하지, 글 잘 쓰지…. 빨리 가족들 먹여 살릴 궁리를 해야지…, 왜 데모 배후조종을 해?”
“배후조종한 적 없습니다.”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지금 홀로 남은 어머니 생각이 어떠실 것 같아? 자랑스러울까? 아들 잘 뒀다고 말이야.”
영운의 가슴 깊은 곳에서 울컥 뜨거운 것이 치솟았다.
“부모 얘기는 하지 마세요. 씨팔.”
영운은 스스로 놀랐다. 아니, 내 입에서 욕설이 나오다니. 조끼가 눈을 치켜떴다.
_ ‘아버지’ 중에서

“예전에 말예요. 영운 씨가 편지에서 삶의 세 가지 지표에 대해 말했어요. 가난하게 산다. 가난한 사람들과 더불어 산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산다. 그땐 깊은 뜻을 몰랐는데, 이제 알 것 같아요. 그 점, 영운 씨한테 감사드려요.”
윤희는 말을 마치고 느티나무 아래로 가 노파의 머리 손질에 매달렸다. 영운은 뒤통수나 이마 정도가 아니라 정수리를 해머로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문득 전에 원호가 한 말이 생각났다. 니가 부르나라로 가더라도 프로나라는 잊지 말기 바란다. 대학원에 가는 것으로 방향을 바꾸었음을 알린 날, 원호가 그렇게 말했었다. 그럼 부르나라에서 태어나 전문성을 강조하던 윤희는 어느새 프로나라로 이민 온 것인가? 나는 프로나라에서 태어났고, 지금도 그 나라에 몸담고 있지만, 마음은 이미 그 나라를 떠난 것인가? 영운은 우두커니 서 있다가 돌아섰다. 발걸음을 떼는데 다리가 후들거렸다. 발이 허공을 내딛는 것만 같았다.
_ ‘격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