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dia Boulanger
[1887~1979]
20세기의 가장 영향력있는 작곡 교수 중 한 사람이다.
불랑제의 가족은 2대에 걸쳐 파리 음악원과 관계를 가졌는데 그녀의 아버지이자 첫번째 스승인 에르네스트 불랑제는 성악 교수로 봉직했다. 불랑제는 1897~1904년 파리 음악원에서 정식교육을 받았는데 가브리엘 포레에게서 작곡을, 그리고 샤를르 마리 비도어에게 오르간을 배웠다. 나중에 파리 음악원에서, 그리고 개인적으로 작곡을 가르쳤다. 아울러 몇몇 소품을 출판하기도 했으며 1908년에는 칸타타 〈라 시렌 La Sirène〉으로 로마 대상 경연에서 2등을 수상했다. 재능을 타고난 작곡가였던 그녀의 자매인 릴리가 죽은 후 그녀는 자신의 작품을 '쓸모없는' 것으로 비하하면서 작곡을 중단했다.
1921년 불랑제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지휘자인 발터 담로쉬가 미국의 음악가들을 위해 퐁테느블루에 설립한 아메리카 음악원과의 오랜 협조관계를 시작했다. 그녀는 그녀의 첫 미국인 제자인 아론 코플란드가 작곡한 〈오르간과 관현악을 위한 교향곡 Symphony for Organ and Orchestra〉의 초연 당시(1925) 오르간 연주를 맡았으며 1938년에는 보스턴과 뉴욕 필하모닉,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첫 여성 지휘자로 등장하기도 했다. 1937년에 이미 그녀는 런던에 있는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최초의 여성 지휘자이기도 했다.
1930년대말, 불랑제는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의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을 녹음했고 하인리히 쉬츠와 포레의 거의 연주되지 않는 작품들을 정상에 올려놓았으며 옛 프랑스 음악의 부흥에 힘썼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 미국에 머물렀던 그녀는 주로 워싱턴 D. C. 음악대학과 메릴랜드 주 볼티모어에 있는 피보디 음악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프랑스로 돌아와서는 다시 파리 음악원과 아메리카 음악원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1949년에는 아메리카 음악원의 교장이 되었다.
불랑제의 제자들 가운데는 아서 버저, 레녹스 버클리, 에슬리 블랙우드, 마크 블릿츠스타인, 엘리엇 카터, 아론 코플런드, 데이비드 다이아몬드, 장 프랑세, 로이 헤리스, 다리우스 미요, 월터 피스톤, 버질 톰슨 등이 있다. 음악교사로서 그녀는 항상 개인적인 레슨만 했고 이론 교과서의 집필 같은 일은 하지 않았다. 그녀의 목표는 제자들이 개개의 재능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미적 이해를 확장시켜주는 데 있었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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