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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 민간인 학살 사건 증 하나] 산청・함양 양민학살 사건(山清・咸陽良民虐殺事件

Bawoo 2019. 1. 16. 22:46


산청・함양 양민학살 사건 (山清・咸陽良民虐殺事件)

 한국전쟁 당시 1951년 2월 7일 국군 11사단 9연대 3대대가 지리산 공비 토벌 작전인 작전명 제5호 '견벽청야'를 수행하면서 민간인을 통비 분자로 간주해 골짜기에서 내려오면서 차례차례로 3개면 4개 마을 705명을 집단학살한 사건을 말한다. 산청군 금서면 가현·방곡마을과 함양군 휴천면 점촌마을, 유림면 서주마을이 그 해당지역이다. 이들 국군은 9일 거창군 신원면으로 넘어가 11일까지 719명을 또 학살했다. 이로써 산청·함양·거창에서 희생된 민간인은 모두 1424명. 하나의 사건이지만 현재는 '산청·함양사건'과 '거창사건'으로 분리해 추모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추모공원도 따로 있다.

산청함양사건 추모공원.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들의 묘비를 세우고 확인되지 않은 희생자 유골은 남녀 합동묘에 안치해 놓았다.


'산청·함양사건 추모공원'은 산청군 금서면 방곡리에 있다. 2004년에 묘역이 만들어지고 2008년에 공원 조성을 완료했다. 이곳을 찾았을 무렵에는 '제27회 합동추모제'를 며칠 앞두고 있어 새로이 정비하느라 트럭이 수시로 드나들었다. 풀을 뽑고 있는 서너 명의 아지매들에게 다가가다가 먼저 눈이 간 곳은 '미등록 희생자들의 묘'다. 남녀 두 기의 묘로 이뤄져있는데 일가족이 다 희생됐거나 해방 이후 주민등록 없이 이곳 골짜기에 들어와 살던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신원을 확인할 길이 없는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온 동네가 음력 정월 초하룻날 밤이면 다 제삿날 아이가. 아침에는 차례 지내고 밤에는 제사 지내는 기제. 여게는 제사 지내 줄 사람이 없으니 동네 사람들이 같이 지내주기도 하제. 제사상에 젯밥 한 그릇 더 올리면 되니까."

방곡마을에서 품일 하러 온 아지매는 "믄 좋은 일이라꼬 자꾸 말하게 하노"라며 말문을 닫았다.

마을 끝자락으로 가면 '가현희생장소 보존지역'이 있다. 검은 비석에는 '산청·함양사건 그 첫 번째 희생 장소'라고 밝혀놓았다. 비의 뒷면에는 123명의 희생자 명단, 옆면에는 '희생당한 영혼이여 영원한 안식 이루시고 이 나라를 길이 지켜주소서'라는 구절이 새겨져 있었다. 두 번째 희생 장소인 방곡마을, 세 번째 희생 장소인 휴천면 동강리 점촌마을 앞에도 검은 비석이 차례차례 세워져 있다.

유골 발굴 시 이곳 방곡마을에서는 80kg들이 여섯 가마니가 쏟아졌다고 한다. 마을은 전부 불타고 어른들은 죽어갔는데, 그곳에서도 총알 3발을 맞고도 살아난 아이도 있었고 요행히 빗나간 총알 덕분에 시신더미를 헤집고 나온 사람도 있었다. 살아남은 이들은 "군인들이 사람들을 새끼줄로 엮고 파놓은 구덩이에 들어가게 한 후 사살했다"고 말한다. 또 이들은 60년이 더 지난 지금도 "살아남아도 사는 게 아니었다"고 말한다.

네 번째 희생 장소는 강 건너 유림면 서주마을이다. 오봉천을 따라 내려온 3대대는 자혜마을 아래 나루에서 배를 타고 지곡 모실마을로 건넜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리고 알려진 대로 모실, 손곡 등 주민들을 서주마을 강변 논바닥에 모아놓고 학살을 한 것이다.

이제 물길은 유림교를 지나 산청군 생초면 곱내들로 흐른다. 그곳에서 남강 물길을 만나 오래도록 숨을 죽이고 있다. 아무리 토해도 가시지 않는 '붉은속울음' 같은 것이다.[경남도민일보에서 발췌]




Sancheong and Hamyang massacre
South Gyeongsang map.png
South Gyeongsang, South Korea.
LocationSouth Korea
Date7 February 1951
TargetCommunist sympathizer civilians
Attack type
Massacre
Deaths705[1]
PerpetratorsSyngman Rhee capitalist forces


The Sancheong and Hamyang massacre (Korean: 산청・함양 양민학살 사건,[1][2] Hanja: 山清・咸陽良民虐殺事件) was a massacre conducted by a unit of the South Korean Army 11th Division during the Korean War. on 7 February 1951, 705 unarmed citizens in Sancheong and Hamyang, South Gyeongsang district of South Korea were killed. The victims were civilians and 85% of them were women, children and elderly people.[1][3][4] The 11th Division also conducted the Geochang massacre two days later. The division's commanding general was Choe Deok-sin.[5]

On 20 February 2006, the National Archives of Korea reported that files concerning the massacre had been found.[4]

On 7 November 2008, a memorial park for the victims was established in Sancheong.[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