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hler, Symphony No.7 'Lied der Nacht'
말러 교향곡 7번 ‘밤의 노래’
Gustav Mahler
1860-1911
Paavo Järvi, conductor
Frankfurt Radio Symphony Orchestra
Rheingau Musik Festival 2011
Wiesbaden, 2011.08.12
말러 교향곡 7번은 말러의 교향곡들 가운데서도 가장 어려운 작품으로 손꼽힌다. 그러나 실상 이 곡을 들어보면 흥미진진한 소리로 가득한 음악적 만화경 같아서 그 다채로운 음향세계에 집중한다면 의외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말러의 교향곡 7번 역시 교향곡 5번과 마찬가지로 어두운 분위기에서 빛나는 승리의 음악으로 마무리되는 5악장 구성의 교향곡이다. 그러나 광명이 찾아오는 시점은 조금 다르다. 교향곡 5번에선 3악장을 전환점으로 하여 4, 5악장에서 사랑과 기쁨에 찬 빛의 음악이 찾아오지만, 교향곡 7번에선 마지막 5악장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결코 찬란한 광명의 음악을 들을 수 없다. 무려 네 악장에 걸쳐 어두운 밤의 음악이 흐르고 있는 탓에, 작곡가 자신이 표제를 붙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교향곡 7번은 종종 ‘밤의 노래’라 불리기도 한다. 이는 이 교향곡의 2악장과 4악장에 ‘Nachtmusik’(밤의 음악)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5악장만큼은 밝고 찬란한 음악임에도 교향곡 7번을 ‘밤의 노래’라 부르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아마도 밤의 음악이 너무나 오래 계속되는데다 5악장의 찬란함이 너무나 갑작스러워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리라.
밤의 신비롭고 관능적인 이미지
악장별 작곡 순서만 보아도 교향곡 7번의 핵심개념은 ‘밤’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말러는 1904년 여름에 먼저 ‘Nachtmusik’(밤의 음악)이란 제목의 2악장과 4악장을 먼저 완성한 후 이듬해 여름에 나머지 1, 3, 5악장을 완성했다. 작곡 순서로 볼 때 밤의 악장인 2, 4악장을 바탕으로 나머지 악장들이 탄생한 셈이다. 따라서 교향곡 7번의 ‘밤’은 어떤 의미인지를 이해하는 것이 이 교향곡을 이해하는 열쇠가 될 것이다.
1908년에 말러 교향곡 7번이 프라하에서 초연될 당시 말러의 숭배자들은 이 교향곡에 ‘밤 여행’(Nachtwanderung)이라는 타이틀을 붙이자고 제안했는데, ‘밤 여행’이라는 아이디어는 독일 낭만주의 문학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주제다. 7번의 ‘밤의 노래’ 악장들을 작곡할 당시 아이헨도르프의 시에 심취했었던 말러는 이러한 ‘밤 여행’의 아이디어에서 음악적 영감을 얻었던 것 같다. 낭만주의 문학에서 ‘밤 여행’은 매우 위험한 개념이기도 하다. 낭만주의 작가 호프만이 말했듯 밤은 내면의 평화와 고요한 시간일 뿐만 아니라 어두움의 세계에 속한 초자연적인 힘이기도 하기에. 밤은 우리에게 안식을 주면서 동시에 우리를 위협할 수도 있다. 그것이 밤이 지닌 이중성이다. 이러한 이중적 이미지는 말러의 음악 속에서 장·단조의 교차와 불규칙한 악절로 표현되면서 긍정과 부정이 뒤섞인 묘한 불안감을 풍긴다. ▶밤은 우리에게 안식을 제공하지만, 위협적인 시간이기도 하다.
Haitink conducts Mahler Symphony No.7 'Lied der Nacht'
Bernard Haitink, conductor
Symphonieorchester des Bayerischen Rundfunks
Gasteig, München, 2011.02.18
위협적인 죽음의 왈츠와 되찾은 환희
‘밤의 음악’이란 타이틀이 붙어 있는 2악장에서 본격적인 밤으로의 행진이 시작된다. 행진이 시작되기 전 주위를 환기시키는 호른의 멜로디가 힘차게 울려 퍼지고 멀리서 이에 답하는 메아리가 들려온다. 몇 차례의 부름과 응답이 이어진 뒤 밤 속으로 향하는 불안한 행진이 시작되는데 그 행진곡은 밤에 대한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나타내듯 장조와 단조가 교차하며 희망과 절망의 공존을 표현해낸다.
3악장은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무시무시한 음악이다. 말러는 이 악장에서 19세기 빈을 상징하는 왈츠 리듬을 넣어 ‘죽음의 왈츠’라는 독특한 음악을 만들어냈다. 말러는 도입부에 ‘그림자처럼’(schattenhaft)이라는 지시를 써 넣었는데, 과연 첫 도입에서부터 그림자와 같이 불확실한 혼돈만이 있을 뿐 명확한 선율을 찾아낼 수가 없다. 여기저기서 멜로디의 파편과 날카로운 악센트가 갑작스럽게 튀어나왔다가는 황급히 사라져버린다. 이는 마치 우리 눈앞에 어지럽게 출몰하는 유령의 그림자 같은 음악이다.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은 끊임없는 음의 연속, 탄식하는 듯한 목관의 선율, 여기저기에 악센트가 붙은 기괴한 왈츠가 이어진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 모든 음악의 단편들을 조각조각 이어 붙인 몽타주 음악이 연주되면서 기괴한 악마의 춤은 막을 내린다.
두 번째 ‘밤의 음악’인 4악장은 달콤한 바이올린 솔로로 시작된다. 2악장이 밤으로의 행진곡이라면 4악장은 밤의 세레나데다. 독주 바이올린의 비상하는 선율은 밤의 낭만적 감성을 일깨우며 로맨틱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연인의 창가에서 부르는 전통적인 세레나데와 마찬가지로 이 악장에도 기타와 만돌린 등의 발현악기(손가락으로 현을 퉁겨 연주하는 현악기)가 편성되어 세레나데의 분위기를 강조한다. 밤의 신비로움과 관능적인 분위기가 감도는 4악장에 대해 음악학자 슈페히트는 “사랑과 신비로운 속삭임, 연못의 파문, 그리고 오래된 마을 광장에 서 있는 보리수의 살랑거리는 소리들로 가득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밤의 신비롭고 로맨틱한 분위기가 펼쳐지는 4악장.
5악장이 시작되면 갑자기 노골적인 C장조의 온음계 화성과 기쁨에 들뜬 오케스트라의 환희가 터져 나온다. 그 순간 여태까지의 부정적이고 어두웠던 밤의 이미지는 완전히 사라져버린다. 길고 긴 밤 여행으로 인한 여독이 채 풀리기도 전에 아무런 예비도 없이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팀파니의 타격과 C장조의 노골적인 장3화음은 듣는 이를 어리둥절하게 한다. 지나치게 밝고 화려해서 도무지 이런 갑작스런 환희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그래서 철학자이자 음악학자인 아도르노는 5악장에 대해 “화려한 외부와 궁핍한 내부 사이의 불균형”이라 비판했고, 음악학자 데릭 쿡 역시 이 악장을 실패작으로 보기도 했다. 그러나 바그너의 <마이스터징어 전주곡>과 레하르의 <유쾌한 미망인> 왈츠의 인용구, 그리고 우아한 미뉴에트와 터키 풍의 삽입구 등 잡다한 음악의 메들리로 이루어진 이 찬란한 음악이 듣는 이의 마음을 한껏 들뜨게 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추천음반
말러 교향곡 7번의 추천음반으로는 지휘자의 통찰력과 오케스트라의 뛰어난 기량이 돋보이는 클라우디오 아바도와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음반(DG)과 분석력이 돋보이는 미하일 길렌과 남서독일 오케스트라의 음반(Hänssler), 화사한 음향이 살아난 마이클 틸슨 토머스와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음반(RCA)과 베르나르트 하이팅크와 베를린 필하모닉(Philips)의 음반이 있다.
글 최은규(음악평론가) <교향곡은 어떻게 클래식의 황제가 되었는가>의 저자.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및 동대학원 석사,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 부수석 및 기획홍보팀장을 역임했다. 월간 <객석> <연합뉴스> 등 여러 매체에서 음악평론가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예술의 전당, 풍월당 등에서 클래식 음악을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