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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미술관에 간 화학자: 두번째 이야기 - 전창림

Bawoo 2020. 1. 13. 22:11


미술관에 간 화학자: 두번째 이야기(미술관에 간 지식인 시리즈 5)

미술관에 간 화학자: 두번째 이야기- 명화에 담긴 과학과 예술의 화학작용

[소감] 서양미술에 관해 쓰인 교양 수준의 책은 많다. 그러나 서양화의 필수재료인 물감에 대하여 쓰인 책은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처음이다. (전편 포함) 소개된 작품은 서양화에 대한 책을 좀 읽은 이들에겐 다 익숙한 그림이지만 이 작품들이 어떤 기법, 물감을 사용하여 그렸고 작품 변색의 원인이 무엇인가를 밝혀내는 건 전문가라야만 가능한 일이다. 적은 지면에 많은 이야기를 담으려다보니 소개된 화가에 대한 내용이 적어 좀 아쉽지만 그런대로 많은 도움이 되었다. 복습 겸해서.^^]

[책소개 - 인터넷 교보문고]

<미술관에 간 화학자 : 첫 번째 이야기>가 출간된 지 10년이 훌쩍 지났다. 강산도 변한다는 짧지 않은 세월 동안 과학계와 예술계는 물론 교육계에서까지 분에 넘치는 격찬을 받아왔다. 덕분에 많은 독자들로부터 사랑받으며 쇄를 거듭하고 있고, <미술관에 간 화학자 : 두 번째 이야기>까지 출간하는 소중한 기회를 얻었다.
<미술관에 간 화학자 : 두 번째 이야기>에서도 전편 못지않은 흥미진진한 미술 속 화학이야기를 빼곡하게 담아냈다. ‘갈색으로 시든 해바라기에 무슨 일이?’에서, 고흐의 <해바라기>가 시간이 흐를수록 어두워지는 이유를 분석했다. 고흐가 아를의 강렬한 태양 아래서 크롬 옐로(chrome yellow)라는 물감에 왜 그리 집착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화학자의 시선으로 바라봤다. ‘절규하는 하늘의 색’에서는 뭉크의 <절규>에 등장하는 붉은빛 하늘에 대한 기상학자들의 매우 독특한 연구를 소개했다. 스페인 국민화가 고야의 ‘블랙 페인팅’ 작품을 다루면서, 빛을 모두 흡수하는 완전히 어두운 색이 왜 존재할 수 없는지도 알기 쉽게 설명했다. 미술사의 끝나지 않은 논쟁인 ‘선과 색의 싸움’도 매우 흥미롭다. 미술사의 고전적인 논쟁에서 한발 더 나아가 선으로부터 수학을, 색으로부터 화학을 이끌어냄으로써 예술적 사고가 어떻게 과학적으로 확장할 수 있는지를 풀어냈다. 이밖에도 ‘금빛의 화가’ 클림트가 작품에 애용했던 ‘금박’ 이야기, 영국의 풍경화가 컨스터블이 그린 공기의 색, 치명적인 악녀(팜 파탈)를 그리는 화학적 기법 등 불후의 명화 속에 숨겨진 화학적 에피소드들로 미술 감상의 재미를 더했다.


저자 : 전창림
한양대학교 화학공학과와 동 대학원 산업공학과를 졸업한 뒤 프랑스 파리 국립 대학교(Universite Piere et Marie Curie)에서 고분자화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결정구조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파리 시립 대학교에서 액정을 연구하다가 ‘해외 과학자 유치 계획’에 선정되어 귀국한 뒤 한국화학연구소에서 선임연구원으로 근무했다. 현재 홍익대학교 바이오화학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프랑스 유학 당시 화학 실험실과 오르세 미술관을 수없이 오가며 어린 시절 화가의 꿈을 화학자로 풀어낸 저자의 연구 분야는 미술에서의 화학 문제, 즉 물감과 안료의 변화, 색의 특성 등이다. 저자는 <화학세계>와 <한림원소식>(한국과학기술원) 등의 과학 저널에 미술 에세이를 연재하고 홍익대학교 예술학부에서 ‘미술재료학’ 강의를 하는 등 미술과 화학 또는 예술과 과학의 접점을 찾는 일을 해오고 있다.
고분자화학과 색채학, 감성공학에 관한 많은 논문을 발표했으며, 지은 책으로 <명화로 여는 성경> <그리기 전에 알아야 할 미술재료> <알기 쉬운 고분자> <첨단과학의 신소재> <마담 라부아지에 뭘 사실건가요> <알고 쓰는 미술재료> <통권복음서>가 있고, 옮긴 책으로 <세상을 바꾸는 반응> <누구나 화학> <미셸 파스투로의 색의 비밀> <아크릴> <1001가지 성경 이야기> <파노라마 성경 핸드북> 등이 있다.


목차


머리말 _명화에 담긴 화학과 예술 그리고 인생 이야기

1장 신과 인간에 관하여
ㆍ천상계를 그린 물감의 비밀 _엘 그레코
‘매너리즘’에 빠진 위대한 화가ㆍ _미술관 카페에서 나누는 미술사 토크
ㆍ예술과 과학에 투영된 명과 암 _마사초
ㆍ비너스의 변증법 _보티첼리
ㆍ예술이라는 옷을 입은 나체 _티치아노
비뚤어진 성적 욕망을 향한 화학의 경고 _미술관 카페에서 나누는 과학 토크
ㆍ육체의 질량을 스캔하는 빛 _틴토레토
ㆍ어둠 속에서 길을 잃은 빛의 화가 _카라바조
ㆍ살을 그린 화가 _루벤스
퍼스널 컬러와 색채과학 _미술관 카페에서 나누는 과학 토크

2장 선과 색에 관하여
ㆍ환하게 웃음 짓는 색에 관한 보고서 _할스
ㆍ세상만물의 조화로운 이치를 그리다 _푸생
ㆍ가장 위대한 걸작에 담긴 빛과 색의 은유 _벨라스케스
<시녀들>에서 벨라스케스가 바라본 왕의 위치는 왼쪽일까, 오른쪽일까ㆍ
_미술관 카페에서 나누는 과학 토크
ㆍ어느 고독한 화가의 낯선 풍경 속에서 _라위스달
ㆍ퇴색한 물감만큼 허무한 로코코의 초상 _바토
ㆍ초록과 분홍의 은밀하고 농밀한 조화 _프라고나르
ㆍ선과 색의 싸움 _앵그르
수학의 선이냐, 화학의 색이냐 _미술관 카페에서 나누는 과학 토크

3장 이성과 감성에 관하여
ㆍ어둠을 그린 화가 _고야
블랙과 그레이 이야기 _미술관 카페에서 나누는 과학 토크
ㆍ위대한 걸작을 퇴색시킨 물감에 관하여 _제리코
ㆍ공기의 색 _컨스터블
ㆍ동력을 그린다는 것 _터너
증기의 힘 _미술관 카페에서 나누는 과학 토크
ㆍ천사를 매장하다! _쿠르베
부상당한 남자 품에 묘령의 여인이ㆍ _미술관 카페에서 나누는 과학 토크
ㆍ어느 목가적인 그림에 얽힌 오해와 진실 _밀레
ㆍ아카데미즘의 수호 _부그로
아카데미의 역사 _미술관 카페에서 나누는 과학 토크

4장 빛과 어둠에 관하여
ㆍ표절인가, 재창작인가ㆍ _마네
거인들의 표절 논쟁 _미술관 카페에서 나누는 과학 토크
ㆍ악녀를 그리는 화학적 기법 _모로
ㆍ갈색으로 시든 해바라기에 무슨 일이ㆍ _고흐
고흐의 <해바라기> 컬렉션
ㆍ위대한 작품ㆍ 거대한 그림! _고갱
ㆍ절규하는 하늘의 색 _뭉크
ㆍ분열할 것인가, 분리할 것인가! _클림트
분리파 이야기 _미술관 카페에서 나누는 미술사 토크
ㆍ미술사에서 가장 슬픈 화학작용 _모딜리아니
사랑도 화학이다ㆍ _미술관 카페에서 나누는 과학 토크


출판사서평


“전문가의 시대에서 교양인의 시대로 옮겨가는 지금,
교양 있는 전문가가 쓴 품격 있는 책!”
2008년경 <미술관에 간 화학자 : 첫 번째 이야기>가 처음 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은 이 책의 제목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미술관에 간 화학자ㆍ’ ‘도대체 화학자가 왜 미술관에 간 거지ㆍ’
하지만, “미술은 화학에서 태어나 화학을 먹고사는 예술이다. 미술의 주재료인 물감이 화학물질이기 때문이다. 또 캔버스 위 물감이 세월을 이기지 못해 퇴색하거나 발색하는 것도 모두 화학작용에서 비롯한다”는 저자의 짧은 코멘트에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무릎을 쳤다. 물감이 화학물질이고 그림이 변색하는 게 화학작용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대다수의 미술전문가들조차 놓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책을 펼치는 순간, 다빈치에서 미켈란젤로, 렘브란트, 모네는 물론 장승업과 김홍도에 이르기까지 거장들의 작품 속에 숨겨진 화학이야기가 세상에 공개됐다. 그렇게 <미술관에 간 화학자>는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과학계와 예술계를 비롯한 각계각층으로부터 격찬을 받았다. 또 지난 12년 동안 과학 분야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며 많은 독자들로부터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대학교수인 저자에 따르면, 이 책이 나온 뒤 ‘미술관에 간 화학자’로 불리면서 많은 곳에서 미술과 화학을 주제로 강연 요청을 받고 있고, 또 다양한 매체에 기고도 하는 등 제법 유명인(!)이 되었다고 한다. 상아탑 안에서 강의와 연구, 논문 집필에만 몰두해오던 어느 과학자의 전문지식이 미술과의 통섭을 통해 일반 대중들 사이로 퍼져나간 것이다.
<미술관에 간 화학자>에 붙은 수많은 서평 가운데 인터넷서점에 올라온 독자들의 감상평은 이 책이 어떻게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또 십년이 넘는 세월 동안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해 왔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보편성이 있는 지식과 경험을 교양이라고 한다면, 시대는 점점 전문가의 시대에서 교양인의 시대로 이동하는 듯하다. 교양 있는 전문가가 쓴 품격 있는 책!”
“학창 시절 가장 싫어했던 과목이 화학이었다면, 가장 좋아했던 과목은 미술이었다. 극과 극에 해당하는 두 과목을 하나로 묶은 이 책은 호기심 그 자체다!”

과학계와 예술계 각계각층의 찬사와 성원 속에
<미술관에 간 화학자 : 두 번째 이야기> 출간!
과학계와 예술계 각계각층의 찬사와 성원 덕분에 <미술관에 간 화학자 : 두 번째 이야기>를 출간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얻게 되었다. 전편을 뛰어넘는 흥미진진한 미술 속 화학이야기를 가지고 다시 독자들 곁으로 돌아온 것이다.


ㆍ물감의 화학반응을 감지했던 화가와 그렇지 못했던 화가
16세기에 활동했던 매너리즘의 거장 엘 그레코는 <오르가스 백작의 장례식>에서 천상계의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기 위해 납(Pb)을 주성분으로 하는 연백(鉛白, white lead)을 사용했다. 물감 중 연백이 단조로운... 흰색이 아니라 창백한 느낌의 독특한 흰색을 띄는 것은 바로 납 성분 때문이다. 하지만 엘 그레코가 연백의 화학적 성분을 정확히 간파한 뒤 사용했는지에 대해서는 어떤 문헌에도 기록된 게 없다. 다만, 화가들의 색에 대한 통찰력은 종종 그 어떤 색채 관련 화학 실험보다도 섬세하고 정교하게 구현되곤 한다. 이는 화학자인 저자가 실험실을 나와 미술관을 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20~21쪽).
한편, 화가가 물감의 성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서 작품이 변색한 경우도 적지 않다. 프랑스 낭만주의 거장 제리코는 대작 <메두사의 뗏목>을 그릴 당시 갈색(brown)을 내는 ‘역청’이라는 안료를 사용했는데, 이것이 시간이 지날수록 그림에 균열을 일으키고 회갈색으로 변색시켰다. 역청은 독일어로 ‘비튜멘(bitumen)’이라고도 하는데, 천연 아스팔트나 그 밖의 탄화수소를 모체로 하는 물질을 가열했을 때 생기는 흑갈색 타르다. 역청 안료는 18세기에 영국 화가들이 즐겨 사용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발생하는 균열과 변색의 결함 때문에 지금은 물감으로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제리코는 <메두사의 뗏목>을 그리기 위해 수많은 습작과 현장 답사 심지어 시체가 부패하는 과정까지 꼼꼼하게 지켜보는 등 치밀하게 준비했지만 물감에서만큼은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199~200쪽).

ㆍ다빈치와 미켈란젤로에 앞서 인간의 몸을 완벽에 가깝게 그렸던 화가
인간의 몸을 해부학적으로 완벽하게 구현했던 작품으로 다빈치의 <비트루비안 맨(Vitruvian Man)>과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을 첫 번째로 꼽는다. 하지만, 이 두 거장보다 수십 년 앞서 인간의 몸을 완벽에 가깝게 그렸던 이가 있었으니 바로 이탈리아 출신의 화가 마사초다. 마사초는 <성삼위일체>란 작품에서 원근법을 도입한 최초의 화가로 유명하지만, 명암법(키아로스쿠로, chiaroscuro)으로 인간의 육체를 입체적으로 그린 최초의 화가란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몇몇 미술사가는 키아로스쿠로를 르네상스 미술이 이룩한 최고의 혁신으로 꼽는다. 마사초가 <에덴동산에서의 추방>을 그리기 전에는 어느 누구도 이런 입체감을 표현하지 못했다. 아담과 이브의 몸에 밝음과 그늘을 지게 하여 원통형 물체의 입체감과 질량감을 표현하는 기법을 마사초가 처음 시도한 것이다. 밝음과 어둠을 가르는 ‘빛’은 광화학(photochemistry)의 중요한 연구 분야이기도 한데, 빛을 흡수한 물질의 화학반응에 따라 명암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마사초는 빛의 화학반응을 그림에 투영함으로써 육체의 입체감과 질량감을 사실적으로 구현한 최초의 화가였던 셈이다(36쪽).

ㆍ고흐의 <해바라기>가 갈색으로 시든 이유ㆍ
고흐의 <해바라기>가 노란색에서 갈색으로 변색하는 이유를 화학적으로 밝힌 대목도 흥미롭다. 네덜란드와 벨기에 과학자들은 수년에 걸쳐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에 전시된 <해바라기>를 관찰해왔다. 그 결과 그림 속 노란색 꽃잎과 줄기가 올리브 갈색으로 변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과학자들은 변색의 원인으로 고흐가 이 그림을 그릴 당시 밝은 노란색을 얻기 위해 크롬 옐로와 황산염의 흰색을 섞어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추정했다. 고흐가 크롬 성분이 들어있는 노란색 물감을 다량으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고흐는 노란색 계통의 물감을 즐겨 썼고 그 중에서도 크롬 옐로(chrome yellow)를 많이 사용했다. 크롬 옐로는 납을 질산 또는 아세트산에 용해하고, 중크롬산나트륨(또는 나트륨) 수용액을 가하면 침전되어 생성된다. 다시 이 반응에 황산납 등의 첨가물을 가하거나 pH를 변화시키면 담황색에서 적갈색에 걸친 색조가 생긴다.
크롬 옐로는 값이 싸서 고흐처럼 가난한 화가들이 애용했다. 하지만 납 성분을 함유하고 있어서 대기오염 중 포함된 황과 만나면 황화납(PbS)이 되는 데, 이것이 검은색이다. 결국 현대 산업사회로 접어들수록 변색의 우려가 클 수밖에 없었고(298쪽), 고흐의 <해바라기>도 예외가 아니었다.

ㆍ수학의 선이냐, 화학의 색이냐ㆍ 선과 색의 싸움
‘선과 색의 싸움’이라는 미술사의 고전적인 논쟁에서 한발 더 나아가 선으로부터 수학을, 색으로부터 화학을 이끌어내는 다이어그램도 꽤 신선하다(177쪽).
푸생에서 앵그르로 이어지는 선우위론에 따르면, 회화는 소묘(드로잉) 없이 어떠한 형상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반면, 색은 빛에 의해 변해버리는 우발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르네상스 시대 예술가들이 도달하고자 했던 완벽한 균형과 조화는 선을 통해서 이뤄졌다. 선이 없다면 원근과 대칭법, 이상적 인체 비례 등도 고안할 수 없으며, 이는 수학적 사고와 원리를 기반으로 한다.
이에 대해 루벤스와 들라크루아를 중심으로 한 색우위론자들의 반론도 만만치 않다. 선이란 원래 없으며 그건 단지 색면이 만나는 경계일 뿐이다. 선이 이성이라면 색은 감성인데, 감성이 결여된 이성만으로는 예술이 성립할 수 없다. 또 색의 본질과 변화는 화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회화의 주재료인 물감이 화학물질이기 때문이다(176쪽).

ㆍ화가들이 애용했던 색과 물감에 대한 화학적 에피소드들
이 책은 특히 화가들마다 애용했던 고유한 색과 물감에 얽힌 화학적 에피소드를 전편에 비해 좀 더 비중 있게 다뤘다. 스페인의 국민화가 고야는 검은색으로 유명하다. 고야는 1820년경 마드리드 교외에 2층 저택을 구입해서 모든 벽면을 검은색으로 칠한 뒤 14점의 연작을 그렸는데, 사람들은 이를 가리켜 ‘블랙 페인팅(Las Pinturas Negras)’이라 불렀다(190쪽). 고야는 부조리로 오염된 세상을 향한 경멸적 항의 메시지를 담아 블랙 페인팅을 그렸지만, 검은색은 화가들이 썩 달가워하지 않은 색이었다. 인상파 화가들은 빛을 탐구해 오면서 검정에 해당하는 빛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들의 팔레트에서 검은색 물감을 걷어 내기도 했다. 이처럼 검정에는 빛을 반사하지 않고 모두 흡수해 버리는 성질이 있다. 하지만 빛을 모두 흡수하는 완전히 어두운 색은 물질로써 존재하지 않는다. 빛을 완전히 흡수한다는 것은 반사되지 않는 무한한 공간이나 블랙홀을 의미하기 때문이다(192쪽).
이밖에도 오렌지색으로 초상화 속 모델이 환하게 웃는 모습을 부각시켰던 네덜란드 초상화가 프란츠 할스(100쪽), 초록과 핑크의 보색 대비로 불륜의 현장을 은밀하고 에로틱하게 묘사했던 로코코 화가 프라고나르(154쪽), 실제로 보이는 풍광보다 더 자연스러운 색채를 그리기 위해 일생을 바친 영국의 풍경화가 존 컨스터블(208쪽), 섬세하고 부드러운 붓질을 위해 물감에 오일을 지나치게 많이 첨가해 그림의 보존성을 훼손한 바토(144쪽) 등 화가와 그들의 작품에 담긴 화학이야기가 풍성하게 담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