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장장 15년에 걸친 아시아에서의 세계대전사 『일본 제국 패망사』. 1931년 만주사변, 중일전쟁, 삼국동맹 조약, 미 교섭 결렬, 나치 독일의 유럽 침공, 진주만 기습 전야 등부터 시작해, 일본 육군의 말레이반도와 필리핀 상륙, 싱가포르 함락, 자바섬 장악, 미드웨이 해전, 사이판·레이테섬·이오섬 전투, 가미카제 특공대 출격, 오키나와 사투, 도쿄 공습,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천황 항복 등에 이르기까지 일본 제국의 상승과 쇠망 그 연대기를 모조리 기록한 책이다.
저자 존 톨런드는 미국에서 대표적인 논픽션 작가이자 역사가로 퓰리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이 책은 일본이 진주만 기습을 일으키기까지의 복잡했던 과정과 주요 전투, 그리고 패망에 이르기까지의 상황을 드라마틱하게 묘사하고 있다. 특유의 필력과 세밀한 묘사, 흥미진진한 전개는 독자들로 하여금 완전히 몰입하게 만들어준다. 전쟁의 전개과정을 일목요연한 통사적 구조로 묘사해 시작부터 끝까지 전모를 낱낱이 꿸 수 있도록 했다.
저자 : 존 톨런드
JOHN TOLAND(1912~2004)
선입관이나 편견 없이 역사를 ‘있었던 그대로’ 기록하고 재현하며 극적인 문체를 구사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20세기에 가장 널리 읽힌 전쟁사학자이자 논픽션 작가 가운데 한 명이며, 그의 『아돌프 히틀러』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다.
위스콘신주 라크로스에서 태어나 필립스 엑서터 아카데미에서 공부한 뒤, 윌리엄스 대학에 들어가 1936년에 파이 베타 카파Phi Beta Kappa 회원으로 졸업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미 육군 특수 업무 부서에서 근무했다. 전쟁이 끝난 후 뉴욕으로 돌아와 『룩Look』 『라이프』 『리더스 다이제스트』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 등에 글을 기고하면서 집필가로서 성공적인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극찬을 받은 저서 『마지막 100일: 격동적이고 논란의 여지가 있는 유럽에서의 제2차 세계대전 마지막 날들에 관한 이야기The Last 100 days: The Tumultuous and Controversial Story of the Final Days of World War II in Europe』 외에 『전투: 벌지 이야기Battle: The Story of the Bulge』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 『무인지대: 1918, 세계대전의 마지막 해No Man’s Land: the Last Year of the Great War』 『하늘의 배Ships in the Sky』 『부끄럼 없이But Not in Shame』 등을 썼고, 소설 『전쟁의 신Gods of War』 등을 집필하기도 했다. 논픽션 분야에서 밴 윅 브룩스상을 수상했으며 미국 예술·문학 협회에서 금상을 수상했다.
1972년 논픽션 부문 퓰리처상을 수상한 『일본 제국 패망사』 (원제: The Rising Sun)의 자료 조사를 위해 그는 일본인 아내 도시코와 일본, 이오섬, 오키나와, 타이완, 필리핀, 괌섬, 사이판섬, 싱가포르, 말레이반도, 타이 등 극동지역을 15개월 동안 여행했다. 인터뷰를 한 500여 명의 사람 중에는 천황의 수석 고문인 궁내대신 기도 고이치 후작, 최고 군 지도자들, 도조 내각 구성원들, 그 외 거의 모든 지위를 포괄하는 수백 명의 군 인사, 50명이 넘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생존자들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트루먼 대통령과 니미츠 제독에서부터 수십 명의 전쟁 포로에 이르는 수많은 미국인을 인터뷰해 이 책을 펴냈다.
역자 : 박병화
고려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뮌스터 대학에서 문학박사 과정을 밝았다. 고려대와 건국대에서 문학을 강의했고, 현재는 영어와 독어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저먼 지니어스』 『미국, 파티는 끝났다』 『구글은 어떻게 일하는가』 『소설의 이론』 『사고의 오류』 『공정사회란 무엇인가』 『자연은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슬로우』 『단 한 줄의 역사』 『마야의 달력』 『에바 브라운 히틀러의 거울』 등이 있다.
역자 : 이두영
아주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블레즈 파스칼 대학·클레르몽페랑 제2대학교대학원에서 불문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영어와 불어권 전문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 『특이점의 신화』 『주4일 근무시대』 『애프터 피케티』 『산 아래 작은 마을』 등이 있다.
감수 : 권성욱
울산에서 공무원으로 근무 중이다. 개인 블로그인 ‘팬더아빠의 전쟁사’에서 전쟁사 관련 글을 쓰고 있으며 중국 근현대사와 제2차 세계대전이 전문이다. 저서로는 국내 최초의 중일전쟁 통사인 『중일전쟁: 용, 사무라이를 꺾다』가 있다. 또한 『덩케르크: 세계사 최대 규모의 철수 작전』을 감수했다.
목차
머리말
제1부 전쟁의 뿌리
제1장 게코쿠조
제2장 루거우차오를 향해
제3장 그렇다면 전쟁은 절망적이겠군
제2부 잔뜩 찌푸린 구름
제4장 백지상태에서 다시 시작하라
제5장 운명의 메모
제6장 Z 작전
제7장 이 전쟁은 생각보다 더 빨리 끝날지도 모른다
제3부 반자이!
제8장 우린 뒤돌아보지 않는다
제9장 우리 앞에 놓인 험난한 세월
제10장 헛된 희망과 확실한 패배를 위해
제11장 자비는 전쟁을 더 길어지게 만들 뿐이다
제12장 부끄럽지는 않아도
제13장 전세가 역전되다
제4부 죽음의 섬
제14장 슈스트링 작전
제15장 녹색 지옥
제16장 나는 1만 명의 죽음을 책임져야 한다
제17장 싸움이 끝나다
제5부 힘을 모으다
제18장 생쥐들과 인간의 연합
제19장 마리아나 제도를 향해
제20장 칠생보국하리!
제6부 결전
제21장 정신을 잃지 말 것
제22장 레이테만 전투
제23장 브레이크넥 능선 전투
제24장 괴멸
제7부 쓰라린 결말 너머
제25장 절호의 기회
제26장 불 꺼진 지옥 같이
제27장 에도의 꽃
제28장 최후의 돌격
제29장 철의 태풍
제30장 패잔병
제8부 1억 총옥쇄
제31장 평화를 찾아서
제32장 당신이 걱정해야 할 것은 어떤 결정이 아닙니다
제33장 히로시마
제34장 ……그리고 나가사키
제35장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뎌야
제36장 궁성 반란
제37장 학의 목소리
에필로그
감사의 글
감수자 말
출처
주석
찾아보기
책 속으로
나는 각각의 사건이 스스로 말하도록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얻어낸 결론은 역사에서 단순한 교훈은 없으며 반복되는 것은 역사가 아니라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사실 현재로부터 과거를 배울 때가, 그 반대의 경우보다 더 많다. 예를 들어 미국인들은 전후 아시아에서 자신들이 보여준 잔혹성을 통해 한 세대 전 일본인이 저질렀던 행위에
대한 통찰력을 얻었다. _ 머리말
좀더 이상주의적인 젊은 장교들은 황도파에 속한 반면에 육군성의 간부나 영관급 장교들은 통제파를 지지했다. 더 과격한 민족주의자들은 암살에 나섰다. 예를 들면 혈맹단 단원들은 1932년 2월 11일 전후로 ‘부패한’ 정재계 지도자를 적어도 한 명 이상 살해할 것을 다짐했다. 이날은 전설에 나오는 여신의 5대 후손인 진무가 인간으로서는 처음으로 천황으로 즉위한 지 2592년이 되는 것을 기념하는 날이었다. _ 59쪽
군부에 대한 민간 지도자들의 우위가 미국 민주주의의 초석이라면, 일본은 그 반대였다. 메이지 헌법은 내각과 최고사령부로 결정권을 분할했지만, 정치나 외교 문제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군부 지도자들은 거의 언제나 문관 각료들을 무시할 수 있었다. 자신들이 사임을 무기로 삼아 정부를 무너뜨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군부의 영향력은 물러나겠다는 협박 이상으로 막강했다. 군부의 결정권 독점 현상은 전통이나 다름없었고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결론적으로 그것은 일본을 지배하는 군부의 폭 좁은 사고에 기초한 장군들의, 의도는 좋으나 내용은 부실한 정책이었다. _ 136쪽
책 속으로
나는 각각의 사건이 스스로 말하도록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얻어낸 결론은 역사에서 단순한 교훈은 없으며 반복되는 것은 역사가 아니라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사실 현재로부터 과거를 배울 때가, 그 반대의 경우보다 더 많다. 예를 들어 미국인들은 전후 아시아에서 자신들이 보여준 잔혹성을 통해 한 세대 전 일본인이 저질렀던 행위에
대한 통찰력을 얻었다. _ 머리말
좀더 이상주의적인 젊은 장교들은 황도파에 속한 반면에 육군성의 간부나 영관급 장교들은 통제파를 지지했다. 더 과격한 민족주의자들은 암살에 나섰다. 예를 들면 혈맹단 단원들은 1932년 2월 11일 전후로 ‘부패한’ 정재계 지도자를 적어도 한 명 이상 살해할 것을 다짐했다. 이날은 전설에 나오는 여신의 5대 후손인 진무가 인간으로서는 처음으로 천황으로 즉위한 지 2592년이 되는 것을 기념하는 날이었다. _ 59쪽
군부에 대한 민간 지도자들의 우위가 미국 민주주의의 초석이라면, 일본은 그 반대였다. 메이지 헌법은 내각과 최고사령부로 결정권을 분할했지만, 정치나 외교 문제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군부 지도자들은 거의 언제나 문관 각료들을 무시할 수 있었다. 자신들이 사임을 무기로 삼아 정부를 무너뜨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군부의 영향력은 물러나겠다는 협박 이상으로 막강했다. 군부의 결정권 독점 현상은 전통이나 다름없었고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결론적으로 그것은 일본을 지배하는 군부의 폭 좁은 사고에 기초한 장군들의, 의도는 좋으나 내용은 부실한 정책이었다. _ 136쪽
출판사서평
태평양전쟁 전모를 총체적으로 그린
논픽션 걸작, 최초의 통사
일본 제국의 극적인 몰락의 연대기
방대한 자료로 1936~1945년 도쿄 정계의 최상층부 집중 해부
진주만 공격부터 원폭 투하까지 실제 전장 핍진하게 묘사
교차 인터뷰를 통한 철저한 고증과 객관적 서술, 극적인 문체!
혼란과 모순과 역설에 찼던 태평양 전쟁을 그 절정에서부터 파헤치다
★1972년 퓰리처상 논픽션 부문 수상작
★‘사실과 드라마’를 배합한 뉴저널리즘 논픽션의 금자탑
분석을 시도하기보다는 인간적 관심사를 강조하며, 전장에서든 내각회의에서든 독자를 흥미진진한 클라이맥스로 데려가기 위한 서스펜스를 구축해낸다. (…) 톨런드는 미국의 진보를 가로막기 위한 일본인들의 헛된 노력의 내러티브를 일기와 당대의 해설, 인터뷰를 통해 서사화하고 개인화하면서 충실하고도 생생하게 기록한다. 그의 캔버스는 가장 높은 자리에 있던 민간인과 주요 결정이 내려진 도쿄의 군부에서부터 함대와 육군의 사령탑, 그리고 전장을 모두 아우를 만큼 광범위하다. (…) 정확하고, 재미있으며, 생동감 있다는 점에서 최고의 의미로 대중적인 역사서다. _『뉴욕타임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내용이 풍부하고 읽기 쉽고 흥미로운 작품. (…) 톨런드의 책에서 최고의 부분은 전투 장면이 아니라 도쿄 정치 최상층부에 관해 그가 제시하는 정통한 견해다._『뉴스위크』
태평양전쟁에 관해 풍부한 정보가 담긴 해설서 가운데 가장 읽을 만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 윌리엄 샤이어의 『제3제국의 흥망』과 비슷한 시각을 지닌 작품으로, 톨런드의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신선하고도 극적이다. 『일본 제국 패망사』는 피비린내 나는 전투 이야기일 뿐 아니라 수많은 새로운 정보를 담고 있다._『시카고 선타임스』
태평양 전쟁의 흐름을 알기 위한 최적의 책을 한 권만 고른다면, 이 책을 선택할 것이다.”_다치바나 다카시·논픽션 작가
이 책은 ‘태평양전쟁의 전사前史’인 1931년 만주사변, 중일전쟁, 삼국동맹 조약, 미 교섭 결렬, 나치 독일의 유럽 침공, 진주만 기습 전야 등부터 시작해, 일본 육군의 말레이반도와 필리핀 상륙, 싱가포르 함락, 자바섬 장악, 미드웨이 해전, 사이판·레이테섬·이오섬 전투, 가미카제 특공대 출격, 오키나와 사투, 도쿄 공습,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천황 항복 등에 이르기까지 일본 제국의 상승과 쇠망 그 연대기를 모조리 기록했다. 장장 ‘15년에 걸친 아시아에서의 세계대전사’인 셈이다.
왜 지금 태평양전쟁인가
태평양전쟁은 비록 미국과 일본의 전쟁이기는 했지만 우리와도 결코 무관하지 않다. 수십만 명의 조선인이 군인과 노무자로 징용되어 머나먼 남방 전선으로 끌려갔으며 젊은 여성들은 소위 ‘정신대’라는 이름으로 일본군의 성노리개가 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또한 미 육군 제100보병...대대 ‘니세이 부대’의 소대장이었던 김용옥 대령처럼 미군으로 복무한 조선인이 있는가 하면, 중국에서는 광복군이 OSS 극동지부의 도움을 받아 국내 진공 작전을 준비했다. 전쟁 말기에는 한반도 상공에 미 폭격기들이 나타나고 폭탄이 떨어지기도 했으며 치스차코프 상장이 지휘하는 소련군 제25군 6개 사단 15만 명이 두만강을 건너 한반도를 침공해 일본군과 짧은 전쟁을 벌였다.
진주만 기습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미국과 중국을 상대로 적극적인 독립 청원 운동에 나섰다. 그 노력의 결실로 1943년 11월 카이로 회담에서 처음으로 조선의 독립이 공식적으로 거론되었다. 어떤 이들은 열강들이 말로만 조선 독립을 운운했을 뿐이라며 카이로 선언의 의미를 축소하기도 하지만 오키나와, 타이완처럼 중국이나 일본의 일부가 아닌 당당한 독립 국가로 인정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에게는 의미가 결코 작지 않다. 일본이 마지막까지 조선을 손에서 놓지 않으려 했다는 점에서 만약 카이로 회담에서 조선의 독립을 못 박아 두지 않았더라면 조기 종전의 압박을 받고 있었던 트루먼 행정부는 조선을 일본 영토로 인정할 수도 있었다. 우리가 교실에서 배우지 못하는 태평양전쟁의 또 다른 역사이기도 하다.
우리 역사와의 관련성 등 중요성에 비해 ‘통사’는 한 권도 없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중에는 태평양전쟁을 다룬 책을 찾아보기 어렵다. 제아무리 우리 사회가 전쟁사 불모지대라고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과 관련해서 영국의 명망 있는 군사 역사가인 존 키건 교수의 책을 비롯해 권위 있는 전문 서적들을 제법 찾아볼 수 있다. 심지어 대표적인 마이너 분야로 꼽히는 독소전쟁에 대해서도 리처드 오버리의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 데이비드 글랜츠의 『독소전쟁사 1941~1945』, 앤서니 비버의 『피의 기록 스탈린그라드』 등 몇 권의 책이 나와 있다. 반면 태평양전쟁과 관련해서는 가토 요코 교수의 『왜 전쟁까지』를 비롯해 주로 일본인들의 시각에서 제국주의 일본이 패망하게 된 이유를 분석하거나 일본 군인들의 수기가 대부분이고 막상 전쟁 전반을 다룬 통사는 단 한 권도 없다. 기껏해야 제2차 세계대전의 한 단락을 차지해 간략하게 설명할 뿐이다. 우리 역사와도 깊은 관련이 있는 태평양전쟁이 어째서 그토록 사람들에게 무관심하게 치부되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존 톨런드의 『일본 제국 패망사』의 번역 출간은 큰 의미가 있다.
저자인 존 톨런드는 미국에서 대표적인 논픽션 작가이자 역사가로 퓰리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의 여러 저서 중에서 『6·25전쟁(전2권)』과 『아돌프 히틀러 결정판(전2권)』은 국내에도 이미 출간되어 있다. 톨런드의 대표작 중 하나인 『일본 제국 패망사』는 일본이 진주만 기습을 일으키기까지의 복잡했던 과정과 주요 전투, 그리고 패망에 이르기까지의 상황을 드라마틱하게 묘사하고 있다. 특유의 필력과 세밀한 묘사, 흥미진진한 전개는 독자들로 하여금 완전히 몰입하게 만들어준다.
질 줄 알면서도 ‘요행’을 바란 무모한 전쟁
태평양전쟁은 기묘한 전쟁이었다. 캘리포니아 정도의 크기밖에 안 되는 나라가 무엇 때문에 진주만을 공격했고 열 배는 더 강한 적과 죽기 살기로 싸우는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행동을 했단 말인가?
실제로 결과는 그야말로 참담했다. 전 국토가 초토화되고 300만 명이 넘는 군인과 민간인이 죽었으며 원자 폭탄이라는 가공할 무기까지 얻어맞은 끝에 백기를 들었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일본 지도부도 처음부터 이렇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히틀러 또한 소련을 공격했다가 전세가 역전되면서 결국 패망했지만 어디까지나 소련의 역량을 오판했기 때문이지 처음부터 천운을 걸고 전쟁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히틀러는 물론이고, 참모총장인 할더를 비롯해 독일군 수뇌부와 미국, 영국조차 짧으면 한 달, 길어야 반년 안에 소련이 항복할 것이라는 예상이 대세였다.
반면 일본은 정반대였다. 연합함대 사령관이자 해군의 실질적인 총수였던 야마모토 이소로쿠 해군 대장이 대미 개전을 앞두고 고노에 총리가 미국과 전쟁을 했을 때 얼마나 승산이 있냐고 묻자 “처음 6개월에서 1년 정도는 우세하겠지만 그 뒤는 장담할 수 없다”라면서 전쟁을 반대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화다. 야마모토만이 아니라 미국과의 싸움은 어떻게든 피하고 싶다는 것이 해군의 속마음이었다. 오랫동안 태평양에서 미국과 경쟁했던 이들로서는 누구보다 미국의 역량이 얼마나 거대한지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전쟁의 주역으로서 가장 강경해야 할 해군이 시작하기도 전에 꼬리부터 내리는 판이었다. 해군 군령부 총장 후시미노미야 히로야스 친왕은 천황에게 “준비가 부족하니 경솔하게 전쟁에 나서면 안 된다”고 보고해 육군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하지만 육군 수뇌부 역시 앞에서는 기세등등하게 호전적인 말을 일삼으면서도 막상 뒤로는 우물쭈물하며 눈치를 보고 책임을 떠넘겼다. 해군은 해군대로 에둘러 얘기할 뿐, 육군 앞에서 우는소리를 할 수 없다는 자존심을 내세워 확실하게 “이 싸움은 승산이 없다”고 잘라 말하지도 못했다.
국가 전체의 판단능력 마비
군부의 입장이 싸우자는 것도, 싸우지 말자는 것도 아니다보니 일본 내각은 근 1년 동안 대미 개전을 놓고 지루한 논쟁을 벌였다. 그 한심한 작태를 보다 못한 천황이 황실의 전례를 깨고 군부의 모호한 태도를 질책하면서 전쟁을 피할 방법을 찾아보라고 명령할 정도였다. 또한 이들의 속내에는 동맹국인 나치 독일이 승승장구하는 마당에 기회를 놓치지 말고 재빨리 전쟁에 끼어든다면 그 승리에 편승해 한몫 챙길 수 있을 것이라는 기회주의적인 욕심도 깔려 있었다. 전쟁에는 자신이 없지만 욕심은 버릴 수 없고 독일이 있는 이상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하는 허황된 생각에 국가 전체의 판단능력이 마비된 셈이다.
패전 이후 일본 사회에서는 전쟁을 비판하고 반성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물론 여기서의 비판과 반성은 주변국에 대한 침략 전쟁과 전쟁 범죄가 아니라 질 것이 뻔한 이런 무모한 전쟁을 일으켜 나라를 결딴낸 그 책임이 누구한테 있는지였다. 일본군으로 복무해 직접 전쟁에 참여했던 군인들은 참전 수기에서 자신들이 몸소 체감했던 일본군의 수많은 병폐와 모순을 신랄하게 지적한다. 이런 모습은 똑같이 전쟁에는 졌지만 자신들의 군대가 세계 최강이었음을 은근히 자부하는 독일 참전 군인들의 회고록과는 대조적이다. 하지만 독일인들이 나치 시절의 과거사를 완전히 청산하고 주변국들과 협력을 강화하는 반면, 일본 정치인들은 극우 세력들의 표를 의식하는 데 급급한 나머지 걸핏하면 주변국을 자극하는 발언을 일삼아 제 무덤을 파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에 대한 경제 보복에까지 나섰다. 전후의 수많은 ‘반쪽짜리’ 반성조차 별다른 깨달음을 주지 못했음이 분명해 보인다.
이 책의 특징이자 장점
존 톨런드의 『일본 제국 패망사』의 원제는 “The Rising Sun”, 즉 “떠오르는 태양”이다. 일본 욱일기의 상승하는 의미를 패전과 패망이라는 하강하는 이미지와 중첩시켜 역설적 효과를 노린 표현이다. 한 편의 장대한 비극드라마를 감상하려는 ‘미학적’인 자세도 읽힌다. 서양인의 눈에 동양의 이해할 수 없는 무모함, 자존심, 자기희생과 기이한 욕망 등이 자못 ‘숭고’의 감정을 불러일으켰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국어판에서는 그런 감상적인 태도는 배제하고자 했고 원서의 부제에 해당하는 것을 제목으로 삼았다. ‘일본 제국의 쇠망’이라는 부제가 바로 이 책의 핵심 내용이기 때문이다.
가장 두드러지는 이 책의 특장점은 첫째, 전쟁의 전개과정을 일목요연한 통사적 구조로 묘사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시작부터 끝까지 전모를 낱낱이 꿸 수 있다.
둘째, 방대한 자료와 인터뷰, 관련 인물들의 적극적 협조를 바탕으로 쓰였다는 점이다. 수백 명의 사람을 만나 기록을 보여주고 인터뷰를 통해 교차·확인했다. 처음엔 입을 굳게 다물었던 일본의 전쟁 관련자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경쟁하듯이 당시를 증언하기 시작했다. 이 책의 현장감과 박진감은 이들의 생생한 기억에 많은 부분을 빚지고 있다.
셋째, 전쟁 당시 도쿄 최상층부에서 수많은 결정이 이뤄지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듯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어전회의와 연락회의의 기록들, 타다 남은 부분으로 추정되는 고노에 전 총리의 일기, 육군 원수 스기야마 장군의 1000페이지짜리 메모 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무엇보다 천황의 최측근이었던 기도 고이치 후작, 천황의 막냇동생인 미카사 친왕, 진주만 공격과 미드웨이 해전을 실질적으로 지휘했던 구사카 류노스케 제독, 도조가 가장 신뢰하는 친구였던 사토 겐료 장군 등이 자발적으로 불행한 과거에 대해 오랫동안 저자와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셋째, 이 책은 전쟁을 한 편의 드라마로 묘사하고 있다. 드라마에서 필요한 것은 사건의 플롯과 인물들 간의 갈등과 대결, 구체적인 상황에 대한 묘사다. 특히 태평양에서 벌어진 해전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는 압권이다. 미군의 상륙작전과 이에 맞선 일본군의 처절한 옥쇄공격의 전개과정을 읽는 것도 이 책의 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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