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응환(金應煥, 1742년 ~ 1789년)은 조선의 화가이다. 자는 영수, 호는 복헌, 본관은 개성이다. 화원으로서 상의별제를 지냈다. 1788년, 정조의 명으로 금강산을 구경한 후 그림을 그리고 돌아왔다. 이듬해, 어명을 받고 지도를 만들 목적으로 몰래 일본에 건너가려 하다가 부산에서 병사하였다. 이때 김홍도가 어린 나이로 수행하였는데, 장사를 치른 후 혼자 쓰시마 섬에 가서 지도를 그려 왕에게 바쳤다. 작품으로 <칠보대>가 있다. [위키백과]
-----------------------------------------------------------------------------------
본관은 개성(開城). 자는 영수(永受), 호는 복헌(復軒), 담졸당(擔拙堂). 의원(醫員) 김진경(金振景)의 아들이다. 화원이었던 노태현(盧泰鉉)의 외손서(外孫壻)이고, 이명기(李命基)와 장한종(張漢宗)의 장인이며, 김득신(金得臣)과 김양신(金良臣)의 큰아버지이다. 후사가 없어 동생 김응리(金應履)의 아들 김석신(金碩臣)을 양자로 삼았다.
도화서(圖畵署)의 화원이었으며, 소촌찰방(召村察訪), 상의원별제(尙衣院別提)를 지냈다. 조선 후기 도화서 화원을 다수 배출한 화원가문을 이루었던 개성 김씨 집안에서도 핵심적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로서 이후 이 집안 출신 화원들에게 미친 영향이 상당히 컸다.
활동사항
1759년 영조정순후(英祖貞純后) 『가례도감의궤(嘉禮都監儀軌)』와 1762년 정조효의후(正祖孝懿后) 『가례도감의궤』 제작에 참여하였다. 1787년에는 익선관본(翼善冠本) 정조 어진(正祖御眞) 도사(圖寫)에 수종화사(隨從畵師)로 활약하였다. 1788년에는 정조의 명으로 김홍도(金弘道)와 함께 영동 9군과 금강산을 유력(遊歷)하며 실경을 그렸다. 이때 강세황(姜世晃)이 동행하였다.
그는 김홍도의 스승으로 전해지기도 하지만, 두 사람의 나이 차는 세 살밖에 되지 않아 와전된 기록으로 보인다. 안동 김씨 가문의 서외손(庶外孫)으로 시서화에 조예가 깊었던 성대중(成大中)과 친밀히 교유했다. 성대중으로부터 「복헌기(復軒記)」를 지어 받기도 하였다.
그는 남종화법(南宗畵法)의 산수와 진경산수(眞景山水)에 모두 능했다. 남종산수화는 주로 전기 작품의 주종을 이루며 진경산수화는 주로 후기 작품이다. 그의 남종산수화에는 강세황의 영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진경산수화의 대부분은 금강산을 그린 작품으로 정선(鄭敾)의 화풍을 계승하고 있다. 특히 그가 30세 되던 해인 1772년김홍도에게 그려준 「금강전도」에 정선 화풍의 영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 있다.
16년 뒤인 1788년 왕명으로 그렸던 「금강산도」에는 꽉 채운 구도라든가 갈필의 터치 그리고 부드러운 먹의 농담(濃淡) 변화와 담채(淡彩)의 효율적인 사용 등으로 독특한 화면을 이룩하였다. 그리고 남종산수에서는 강세황과 심사정(沈師正)의 영향을 강하게 드러낸다. 미법산수(米法山水) 계통의 발묵법(潑墨法: 글씨나 그림에서 먹물이 번져 퍼지게 하는 기법)을 구사하여 짙고 흐린 대비 효과와 미묘하게 변하는 먹빛의 변화를 잘 살렸다.
그는 정선의 영향을 발판으로 성장했던 대표적 화가로서 진경산수의 발전 및 남종산수의 전개에 기여한 바가 크다. 대표작으로 개인 소장 「금강산화첩」, 「금강전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강안청적도(江岸聽笛圖)」, 개인소장 『복헌백화시화합벽첩(復軒白華詩畵合壁帖)』 등이 있다.
참고문헌
- ・ 『표암유고(豹菴遺稿)』(강세황)
- ・ 『청성집(靑城集)』(성대중)
- ・ 『한국의 미』12-산수화 하-(안휘준 감수, 중앙일보사, 1982)
- ・ 『한국회화사』(안휘준, 일지사, 1980)
- ・ 『한국회화대관』(유복렬 편, 문교원, 1968)
- ・ 『근역서화징』(오세창, 계명구락부, 1928)
- ・ 「조선 후기 개성 김씨 화원 연구」(박수희, 서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5)
- ・ 「복헌 김응환의 산수화 연구」(한경민, 홍익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5)
- ・ 「조선후기의 진경산수연구」(이태호, 『한국미술사논문집』Ⅰ,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4)
- ・ 「복헌·백화시화합벽첩고」(최순우, 『고고미술』76, 한국미술사학회, 1966)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
김응환의 그림
수직준으로 처리한 암산과 미점준으로 처리한 토산, 김응환이 그린 〈헐성루도〉, 개인 소장
ⓒ 2015, All Rights Reserved.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진경산수의 발전 및 남종산수의 전개에 기여한 바가 크다. 본관은 개성. 자는 영수, 호는 복헌·담졸당. 아버지는 의원 진경이다. 도화서의 화원이었으며, 소촌찰방과 상의원별제를 지냈다.
1788년(정조 12) 왕명을 받고 김홍도(金弘道)와 함께 영동 9군과 내·외 금강산을 다니면서 그림을 그려가지고 돌아왔다. 1789년 왕명을 받고 몰래 지도를 그릴 목적으로 일본을 향해 출발했지만 부산에서 병으로 죽었다.
이 때 김홍도가 수행하여 장사를 치른 후 혼자 쓰시마 섬[對馬島]에 가서 지도를 그려 왕에게 바쳤다. 그의 금강산 그림은 정선의 진경산수 화풍을 계승한 것으로서, 1772년에 김홍도에게 준 〈금강전도〉와 1788년의 〈금강산도〉에 그 영향이 잘 나타나 있다. 대표작으로 〈금강산화첩〉·〈금강산도〉·〈강안청적도 江岸聽笛圖〉등이 있다.[다음백과]
-------------------------------------------------------------------------------
[정보] 책 - 천년의 화가 김홍도 [이충렬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9.12.6.]
김홍도의 일생을 기록한 전기 『천년의 화가 김홍도』. 김홍도의 삶은 그가 남긴 불멸의 작품 뒤에 오랫동안 숨어 있었다. 저자는 조선왕조실록이나 의궤, 승정원일기 같은 국가기록물이나
'♣ 역사(歷史) 마당 ♣ > - 인물, 단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친일 반민족 행위자, 삼양사 회장]김연수 (수당(秀堂), 金䄵洙) (0) | 2020.06.12 |
---|---|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독립운동가]이재유[李載裕] (0) | 2020.06.11 |
단원 김홍도의 죽음을 지켜본 인물: 전라도 관찰사 심상규 (0) | 2020.06.08 |
[병자호란 - 가짜 왕제 사건 관련으로 청군에게 죽임을 당한 인물]박난영 [朴蘭英] (0) | 2020.03.19 |
[병자호란 관련 - 강화부 방어 전투 책임 관련 처벌받은 인물]김경징/장신/강진흔 (0) | 2020.03.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