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술(美術) 마당 ♣/- 화가[畵家]

[미국]Winslow Homer

Bawoo 2020. 9. 19. 21:15

호머(Winslow Homer)

(February 24, 1836 – September 29, 1910) was an American landscape painter and printmaker,

best known for his marine subjects.

 

19세기 후반의 미국 미술에서 가장 강렬하고 표현이 풍부한 작품들, 특히 바다를 주제로 한 그림들로 유명하다.

그는 스케치와 수채화에 능했으며, 이것을 바탕으로 그린 유화 〈멕시코 만류 The Gulf Stream〉(1899)는 자연을 직접 관찰하는 데서 오는 상쾌하고 자연스러운 느낌을 준다. 그가 다루는 주제들은 겉보기에는 매우 단순하지만 위험한 순간에 처한 인간들을 통해 그들이 냉담한 우주에 맞서 인간성을 입증하려는 노력을 보여준다.

호머는 뉴잉글랜드의 유서 깊은 가문에서 태어났다.

6세 때 그의 가족은 당시에는 시골 마을이었던 케임브리지로 이사했으며, 그는 이 시골에서 행복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그는 아마추어 화가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미술을 좋아하게 되었고, 19세 때 보스턴에 있는 존 버퍼드 석판화 공방의 견습공이 되었다. 처음에는 주로 다른 미술가들의 그림을 모사하는 일을 했지만, 몇 년 안 되어 〈발루스 픽토리얼 Ballou's Pictorial〉·〈하퍼스 위클리 Harper's Weekly〉 같은 잡지에 독창적인 드로잉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1859년 호머는 보스턴에서 뉴욕 시로 자리를 옮겨 자유기고 삽화가로 활동을 시작했다.

다음해 그는 국립 디자인 아카데미에서 처음 전시회를 열었다.

남북전쟁이 일어나자 호머는 전선에서 그린 드로잉들을 〈하퍼스 위클리〉에 기고했는데, 대부분의 다른 종군 미술가들과 달리 전투 장면보다는 일상적인 야영생활 장면들을 더 많이 다루었다. 전쟁이 오래 가자 그는 점점 그림에 몰두했고, 1865년 국립 디자인 아카데미의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전쟁이 끝난 직후 국립 디자인 아카데미에 전시한 〈전선에서 온 포로들 Prisoners from the Front〉은 국민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던 화해의 분위기를 훌륭하게 포착해 그린 것으로 열렬한 호응을 얻었다.

호머의 화실은 뉴욕 시에 있었지만 그 도시는 거의 그의 주제가 되지 못했다. 그는 날씨가 따뜻해지면 몇 개월 동안 펜실베이니아와 허드슨 강 유역, 뉴잉글랜드를 여행하면서 야영생활도 하고 사냥·낚시를 즐기면서 스케치를 했다. 1866년 그는 프랑스에 가서 1년 정도를 보냈다.

그곳에서 프랑스 자연주의와 일본의 판화 및 그당시 유행하던 삽화에 영향을 받았지만, 미국으로 돌아온 뒤 그의 작품은 대체로 약간 더 밝아진 것 외에 별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채찍을 휘둘러라 Snap the Whip〉·〈뉴저지의 긴 지류 Long Branch, New Jersey〉 등의 초기 그림들은 즐거운 장면들을 그리고 있는데, 전자는 수업이 끝난 뒤 초원에서 떠들며 노는 아이들을 그린 것이며 후자는 바닷가를 따라 거니는 당대의 여인들을 그린 것이다.

초기의 그림 가운데 몇몇 작품에는 인간의 고독을 암시하는 불안한 요소가 눈에 띄는데, 이것은 좀더 감동적인 그의 후기 작품을 예고하고 있다.

1873년 호머는 수채화를 그리기 시작했고 이를 통해 자연을 신속하고 참신하게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까다로운 재료를 통해 그는 미술에서의 새로운 문제들을 연구하고 해결했는데, 그뒤 몇 년 동안의 그림들은 수채화의 활기찬 효과를 반영하고 있는데 〈산들바람 Breezing Up〉은 대표적인 예이다.

호머는 미술가로서 서서히 성숙했지만 꾸준하게 발전했다. 그의 유화들은 더욱 규모가 커졌고 인물들은 더욱 고독해보였으며, 자연의 세부에 대한 그의 관심은 더욱 커졌다. 그는 평범하고 고립되어 있으며 연약한 여자들을 많이 그렸는데, 이들은 점점 더 고립된 개인의 모습을 띠었다. 1870년대 후반부터 호머는 여름마다 자연을 직접 보고 그림을 그리는 수채화에만 매달리기 시작했다. 분위기를 자아내는 효과와 반사된 빛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지면서 이미지는 더욱 복잡해졌지만 그와 동시에 그는 그림의 통일성을 강화할 수 있었다.

호머는 초기에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았지만 중기까지는 실질적인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1880년경 그는 점점 비사교적인 경향을 보이며 다른 사람들과의 교제를 의식적으로 피하기 시작했다. 1881년 그는 갑작스럽게 영국으로 가서 2년간 북해에 면한 외딴 항구인 타인마우스에서 그림을 그리면서 지냈다. 여기에서 45세의 그는 그의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를 맞이했다. 그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바다와 싸우는 타인마우스의 억센 어부들의 생활에 흥미를 느꼈지만 그리지는 않았다.

대신에 그는 그물을 수리하고 집을 지키면서 그들의 남편들이 바다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타인마우스의 굳세고 용감한 여인들을 묘사했다. 영국 해안지방의 대기를 묘사하기 위해서는 새롭고도 어려운 기법을 구사해야 했지만, 호머는 일련의 수채화에서 색채를 제한하는 대신 다양한 명암을 사용했으며 산광(散光)을 뛰어나게 묘사했다. 1883년 미국으로 돌아간 뒤 바다는 그의 작품에서 주요주제가 되었다. 그는 메인 주의 황량하고 쓸쓸한 바닷가에 있는 어촌인 프라우츠넥으로 이사했다. 그는 널리 여행을 다녔지만 스케치를 그림으로 옮기기 위해서는 바다 쪽으로 커다란 발코니가 나 있는 프라우츠넥의 작업실로 되돌아가고는 했다.

그는 자연의 힘에 부딪쳤을 때의 인간의 운명에 강한 관심을 가져 그것을 주제로 많이 사용했는데, 그에게 고독은 이미 단순히 좋아하는 것을 넘어서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되었다.

1883년 여름, 호머는 애틀랜틱시티에서 반바지 모양의 구명부대를 사용해 바다에 빠진 사람을 구조하는 장면을 보았다. 이듬해 그는 의식을 잃은 한 여성을 난파선에서 바닷가로 옮기는 극적인 장면을 그린 대규모의 인상적인 그림인 〈구명 밧줄 The Life Line〉로 널리 인기를 끌었는데, 이무렵 그는 구조를 주제로 한 여러 점의 그림을 그렸다.

그뒤 몇 년 동안 호머의 관심은 바닷가에서 바다로 옮겨갔다. 그는 어선단을 따라 뉴펀들랜드의 그랜드뱅크스로 여행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아마 여기에서 영감을 얻어 세찬 바다에 맞서 힘과 지혜와 경험을 길러가는 용감한 사람들을 그린 것으로 보인다. 이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그림인 〈안개주의보 Fog Warning〉(1885)에서는 밤이 찾아들고 안개가 자욱한 바다에서 평저선을 탄 한 외로운 어부가 모선으로 안전하게 돌아가기 위해 남은 거리와 시간을 재고 있다.

호머가 1880년대 중반에 그의 작업실에서 그린 웅장한 서사화들은 초기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참신함이 결여되어 있었다. 그무렵 그는 캐나다에서 카리브 해 사이를 여행하면서 화려한 색채의 수채화들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이 그렸다. 호머의 작품들에 나오는 어부들과 그들의 아내들은 자연 세계에 직면해 영웅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호머는 때때로 비뚤어진 편견으로 인간을 바라보았다.

침울한 가을 풍경을 배경으로 한 1891년의 〈사냥꾼과 개들 Huntsman and Dogs〉에서는 목재로 평탄하게 고른 언덕 사면에 불을 지펴놓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 무뚝뚝한 표정의 사냥꾼이 식량을 얻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전리품으로 동물을 죽이는 자연의 약탈자로 묘사되어 있다.

1893년의 〈여우 사냥 The Fox Hunt〉에서는 인간이 완전히 배제되었다.

여우가 눈 덮인 땅에서 열매를 찾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밖을 헤매고 있으며 한떼의 굶주린 까마귀들이 이 여우를 공격하기 위해 모여들고 있다. 잇달은 생사의 싸움은 곧 끝나겠지만, 멀리 겨울 바다가 절벽에 부딪치는 자연의 맥박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북동풍 Northeaster〉(1895)은 이 주제를 더욱 순화시켜 나타내고 있는데, 관객만이 압도적인 바다와 움직임이 없는 바위투성이의 바닷가 사이에 벌어지는 끝없는 싸움을 지켜볼 뿐이다.

〈북동풍〉에서 호머는 그의 많은 후기 작품들에서처럼 주제를 뛰어넘는 인상적이고 생생한 효과를 얻기 위해 그의 유화들에서 느껴지는 힘에 그의 수채화들이 지니고 있는 참신함을 성공적으로 결합했다.

〈멕시코 만류〉는 그의 절정기에 그려진 것이다. 작은 범선의 갑판 위에 한 흑인이 폭풍이 돛을 갈가리 찢고 돛대를 부러뜨리며 키를 낚아채고 있는 상황에서 힘없이 누워 있다. 〈산들바람〉의 소년들이나 〈안개주의보〉의 어부와는 달리 이 사람은 그의 배를 조종할 힘이 전혀 없다.

그의 운명은 자연의 힘에 맡겨져 있을 뿐이다. 상어들이 이 배를 에워싸고 있고 멀리 폭풍우가 쏟아지고 있으며 먼 수평선에 있는 1척의 배는 무심하게 그냥 사라지고 있다. 스티븐 크레인의 이와 비슷한 단편소설인 〈무갑판선 The Open Boat〉에서처럼 자연은 인간의 생사에는 냉담한 듯하다.

호머는 노년기에 들어 예전보다 훨씬 더 무뚝뚝하고 고립되었지만 1900년대 내내 활발하고 대담하게 계속 그림을 그렸다.

후기 그림들은 순수한 바다 풍경을 더 강조했지만 주제에서는 초기 작품들과 비슷했으며, 참신한 구도와 화려한 색채를 통해 추상적·표현적인 미술의 가능성에 점점 관심을 보였다. 호머는 1910년 프라우츠넥에 있는 그의 작업실에서 죽었다. 1890년대까지 주요 미국의 화가들 중 한 사람으로 평가되었으며 작품들은 최고가로 팔렸지만, 죽음은 아주 간략하게 알려졌을 뿐이다. 미술 업적은 죽은 뒤 몇 년이 지나 비로소 제대로 평가를 받게 되었다.[다음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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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slow Homer

Winslow Homer (February 24, 1836 – September 29, 1910) was an American landscape painter and printmaker, best known for his marine subjects. He is considered one of the foremost painters in 19th-century America and a preeminent figure i...영어 위키백과

The Bathers, wood engraving, Harper's Weekly, 1873

 

Prisoners from the front (1866;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Long Branch, New Jersey (1869; Museum of Fine Arts, Boston).

 

Crossing the Pasture (1871–72; Amon Carter Museum of American Art).

 

A Visit from the Old Mistress (1876;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Artists Sketching in the White Mountains (1868; Portland Museum of Art, Portland, Maine).[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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