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dwig van Beethoven
[Portrait of Beethoven by Joseph Karl Stieler, 1820]
(17 December 1770 – 26 March 1827) was a German composer and pianist. Beethoven remains one of the most admired composers in the history of Western music; his works rank amongst the most performed of the classical music repertoire, and span the transition from the classical period to the romantic era in classical music. His career has conventionally been divided into early, middle, and late periods. The "early" period, during which he forged his craft, is typically considered to have lasted until 1802. From 1802 to around 1812, his "middle" period showed an individual development from the "classical" styles of JosephHaydn and Wolfgang Amadeus Mozart, and is sometimes characterized as "heroic". During this time, he began to suffer increasingly from deafness. In his "late" period from 1812 to his death in 1827, he extended his innovations in musical form and expression.
Violin Sonata 전곡
[연주] 바이올린:A.Grumiau. 피아노:C.Haskil
[목록]
1. Violin-Sonata#1 (0:00) 2. Violin-Sonata#2 (18:14) 3. Violin-Sonata#3 (32:57) 4. Violin-Sonata#4 (51:36)
5. Violin-Sonata#5 "Spring" (1:08:08) 6. Violin-Sonata#6 (1:31:04) 7. Violin-Sonata#7 (1:51:10)
8. Violin-Sonata#8 (2:16:23) 9. Violin-Sonata#9 "Kreutzer" (2:33:43) 10. Violin-Sonata#10 (3:07:33)
[우리말 해설: 위키백과]
루트비히 판 베토벤은 1797년과 1803년 사이에 아홉 개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작곡하였고, 10년의 공백 후(1812년) 어떠한 일을 계기로 열 번째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작곡하였다. 베토벤은 하이든, 모차르트의 영향 속에서 그들의 전통을 토대로 바이올린 소나타를 작곡하기 시작하였으나, 새로운 세계의 개척을 과제로 삼아 바이올린이 반주 역할에 만족했던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이후 그는 바이올린의 역할을 가증시켰고, 동시에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두 악기를 대등하게 사용하는 기법을 추구하였으며, 그 결과로 크로이처 소나타에서 그러한 기법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슈베르트, 슈만, 브람스 같은 낭만주의 작곡가들은 베토벤이 크로이처 소나타에서 보여준 대등한 두 악기의 기법을 토대로 바이올린 소나타를 작곡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베토벤은 바이올린 소나타 역사상 결정적으로 변화의 방향을 제시한 작곡가로 높이 평가된다.
개요
베토벤은 1797-98년에 그의 첫 바이올린 소나타 세 곡, 즉 작품 번호 12 세트를 썼다. 이후부터 1803년 초 사이 동안은 여섯 곡이 더 등장하여 매체를 위한 시간이 상당히 단축되었다. 1812년에 베토벤은 그의 마지막 열번 째의 바이올린 소나타가 되는 단 한 곡만 썼다. 열 번째를 제외한 모든 곡은 작곡가가 서른 두살이 되기 전에 쓰여졌다. 하지만 그것들 모두는 여러 수준에서 베토벤이 초창기 18세기 고전주의의 고요한 세계에 묶어 놓은 고삐에 대하여 힘 쓰는 모습을 보여준다.[1]
베토벤의 이 열 개의 작품을 "바이올린 소나타"라고 부르고 있지만, 출판된 악보에서는 언제나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위한" 이라고 하는 식으로 제목이 식별되었다(반대가 아닌). 그러나 베토벤 이전의 고전주의 바이올린 소나타는 중심이 되는 악기가 완전히 피아노였으며,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소나타는 출판된 악보에서 "바이올린 오블리가토가 붙은 피아노 소나타" 라고 하는 식으로 제목이 식별되었다. 그만큼 바이올린의 비중은 낮았던 것이다. 베토벤 또한 그 연장선 상에서 바이올린 소나타를 쓰기 시작했으나, 이런 비대칭적 이중주의 구도를 탈피하고자 점진적으로 바이올린의 역할을 피아노에 필적할 만큼 가증시켰고, 열 개의 소나타에 그 과정을 담아냈다.
베토벤의 이른 첫 번째 소나타에서도 두 악기의 거의 동등한 협력관계를 볼 수 있다. 루이스 비앙콜리의 말에 의하면, 베토벤의 열 개의 소나타에서는 불균등한 소리 덩어리의 두 목소리를 극적인 협력관계와 일관된 단결로 결합하는 방법과 수단을 탐구한다.[1] 베토벤은 피아니스트로서의 탁월함으로 빈에서 유명했지만, 바이올린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어린 시절 본에서 바이올린 교육을 받았고, 빈에서 활동하면서부터는 이그나츠 슈판치히와 함께 더 많은 연구를 추구했다. 따라서 베토벤은 피아노 뿐만 아니라 바이올린의 표현적 잠재력과 기술적 과제를 탐구하기에 이상적인 위치에 있었다. 그의 바이올린 소나타 작품들 중 일부는 평범한 청취자에게는 "쉬운" 것처럼 들릴 수 있지만, 오늘날까지도 뛰어난 음악가들에게 공정성을 갖고 대할 것을 요구한다.[1]
바이올린은 베토벤의 일생 동안 구조의 변화(긴 넥, 지판 및 현; 더 높은 브릿지; 현에 대한 더 큰 장력)를 겪었으며, 결과적으로 더 넓은 범위와 음량을 얻었다. 악기에 대하여 기술적으로 수반되는 사항을 증가시킨 베토벤은 이러한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러한 베토벤 소나타의 복잡성에 대해 더 깊이 탐구하기를 원하는 연주자들은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바이올린 연주자 중 두 명인 요제프 시게티(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위한 열 개의 베토벤 소나타, 1965년)와 아브라함 로프트(바이올린과 키보드 2권, 1973년)가 쓴 책으로 안내될 수 있다.
소나타 목록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는 그의 다른 장르 작품들과 비교해 볼 때, 감미로움과 빛으로 충만되어 있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이는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서로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요인도 있겠지만, 작곡된 년대가 베토벤의 생을 통해서 비교적 이른 탓이 가장 큰 요인일 것이다.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는 다음의 표와 같이 정리될 수 있다.
시기 구분 카탈로그 번호 제목 악장 개수 작곡 연도 헌정자
본 1782 - 1792 | Hess 46 | 바이올린 소나타 가장조 (미완성 작품) | 2 | 1790-92 | 해당 사항 없음 |
첫번째 시기 | 작품 번호 12 | 바이올린 소나타 1번 라장조 | 3 | 1797–98 | 안토니오 살리에리 |
바이올린 소나타 2번 가장조 | |||||
바이올린 소나타 3번 내림마장조 | |||||
작품 번호 23 | 바이올린 소나타 4번 가단조 | 1800 | 모리츠 폰 프라이스 백작 | ||
작품 번호 24 | 바이올린 소나타 5번 바장조 | 4 | 1800–01 | ||
작품 번호 30 | 바이올린 소나타 6번 가장조 | 3 | 1801–02 | 알렉산드르 1세 | |
바이올린 소나타 7번 다단조 | 4 | ||||
바이올린 소나타 8번 사장조 | 3 | ||||
작품 번호 47 | 바이올린 소나타 9번 가장조 | 3 | 1802–03 | 루돌프 크로이처 | |
중기 | 작품 번호 96 | 바이올린 소나타 10번 사장조 | 4 | 1812 | 오스트리아의 루돌프 대공 |
후기 | 해당 사항 없음 |
첫번째 시기 소나타
모차르트, 하이든의 음악 양식을 연구하고 있던 시기에 베토벤은 그의 최초의 바이올린 소나타, 작품 번호 12 세트를 작곡하였다. 당시의 이중주 소나타에서 바이올린의 역할은 아드리비툼 또는 오블리가토에 지나지 않은 것이었으나, 베토벤은 그의 작품에서 두 악기를 주된 선율 파트와 반주 파트로 구분 짓기 어려울 만큼 동등한 위치에서 다루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베토벤은 이중주 소나타 분야에서 새로운 전통을 수립한 것으로 평가된다.
바이올린 소나타 4번과 5번은 원래 음과 양의 쌍을 이루는 것으로, 작품 번호 23으로서 함께 발표되었으나, 어떠한 이유로 그것들은 23과 24로 작품 번호가 곧 구분이 되어 발표되었다. 이 두 개의 작품은 시기적으로는 베토벤의 첫 번째 시기에 속하는 작품들이었으나, 이미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영향에서 벗어나 베토벤의 개성을 비로서 드러낸 작품들이었으며, 첫 번째 시기에서 중기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기간에서 높은 위치를 차지한 작품들로 평가된다. 두 개의 작품을 비교할 때, 5번은 4번과는 달리 밝고 화려한 색채와 자유분방한 서정성이 나타나 있는데, 그간의 3악장에서 스케르초를 가진 4악장으로 구성상의 확대를 꾀하였고, 전개부에서 혁신적 진보를 보이는 등 바이올린 음악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며 낭만주의 경향을 드러내었다.
바이올린 소나타, 작품 번호 30 세트는 전성기 기간의 양식을 바탕으로 비극적인 힘과 정열적인 박력을 동시에 나타낸다. 이 가운데 두 번째 작품, 7번은 새로운 시기의 정점에 있는 작품이지만, 그것의 차원과 정서적 추진력은 개발중인 이상적인 것을 분명히 반영한다.[2]
작품 번호 47로서 발표된 바이올린 소나타 9번은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시대를 막론하고도 최고의 걸작으로 꼽힌다. 이 작품은, 고도의 전문적인 연주 기교를 요하는 새로운 양상을 제기하며 일반적인 바이올린 소나타와는 거리가 먼 화려한 변주 효과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것은 단순히 외적인 연주 효과에 멈추지 않고 강렬하고 동적이며 극적인 정서에 대응하는 2악장의 조용한 우아함으로 그 시대 특유의 극적인 기복을 나타낸다.
중기 소나타[원본 편집]
작품 번호 96으로서 발표된 바이올린 소나타 10번은 베토벤의 마지막 바이올린 소나타로서 그의 열 개의 바이올린 소나타 중 유일하게 중기에 속하는 소나타이다. 첫번째 시기의 마지막 작품이었던 크로이처 소나타와는 약 10년의 공백이 있다. 이 작품에서는 이전의 5번 소나타와 7번 소나타처럼 전 4악장을 도입하여 풍부한 곡상을 담았고 전원적인 부드러운 세계를 조용하게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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