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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공산 중국군이 승리했다고 주장하는 전투]삼강령 전투

Bawoo 2021. 10. 22. 21:30

삼강령 전투

중국은 1952년 하반기 미군의 대대적인 공격에 맞서 상감령에서 의지와 끈기로 버텨내 결국 북한을 지켜내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중국의 관점에서 상감령전투는 흔했던 고지전 중의 하나가 아니라, 중국이 북한을 지켜낼 수 있었던 결정적 전투였다.  중국군사과학원에서 출간한 항미원조전사는 상감령전투에 대해 ‘1952년 10월 14일에서 11월 25일까지 43일간의 전투’라며 ‘전투가 전역(戰役) 규모로 발전되었다’고 설명한다. 또 유엔군과 국군의 전투 참가 병력은 6만 명이라고 주장하면서 기간 중 190만 발의 포탄을 쐈다고 간주한다. 포병 화력 운용 밀집도에 관한 한 제2차 세계대전 수준을 넘는 격전이었다는 것.  이에 비해 중국은 4만 명의 병력을 투입해 포탄 40여 만 발을 소모했다고 소개하면서 ‘전에 없던 일’이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전과에 대해서는 유엔군과 국군 2만5000여 명을 살상 또는 포로로 잡은 데 비해 중공군 손실은 1만1500여 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전문보기:국방일보]

<66>상감령전투의 진실

객관적으로 따져 본다면 과연 누가 승리한 전투이고, 패배한 전투일까. 일단 중국 측 선전이 과장된 것은 분명하다. 중국은 삼강령전투에 참전한 유엔군과 국군이 6만 명이라고 주장했으나, 실제로 국군 2사단과 미 7사단의 병력 합계는 2만 명 내외 수준이었다. 즉...[국방일보2011.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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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감령 전투도 빼놓을 수 없다. 국군은 저격능선 전투로 표현한다. 삼강령은 현재 철원군 김화읍 감봉리에 있다.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북한의 오성산과 남한의 계웅산 일대에서 1952년 가을부터 1953년 7월까지 국군 2사단, 미군 7사단이 중국군 15군과 맞섰다. 중국은 상감령 전투를 ‘한국전쟁에서 가장 치열하고 처절하게 싸워서 이긴 전투’로 평가하고 있다. 중국군은 1만5천명가량이 전사했고, 국군은 사망자·부상자를 합쳐 4800명에 그쳤다. 그래서 국군은 상감령 전투를 승리한 전투로 평가한다. 반면 중국은 중부전선의 가장 큰 산인 오성산을 방어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상감령 전투는 중국의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실려 있다.

[원문보기:https://www.hani.co.kr/arti/politics/defense/854283.html#csidxc4fbf96cd939a08bc0d6f3b58536f2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