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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단편 소설 모음집] 통영: 반수연

Bawoo 2022. 4. 7. 11:08

통영:저자 반수연 |  | 2021.6.15.

[소감] KBS 라디오 독서실 "메모리얼 가든["https://www.youtube.com/embed/JTP7F4fgq3Y" ]을 통해서 알게 된 작가. 언젠가 대작 한 편 나오기를 기대했는데 단편 모음집이 먼저 나왔다. 좀 서운. 작품 내용은 전반적으로 어두운 분위기를 띄고 있어서 뒷맛이 개운치는 않았다. 이민자로서의 생활이 고달펐던 때문일까? 아무튼 힘든 가운데에서 뭔가 희망을 보여줘야 한다는 내 사고방식하곤 안 맞는 작품들이었다. 빼어난 끌쓰기 솜씨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대목. 표제작 "통영"은 장편소설로 쓰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작가의 실력으로 볼 때 아주 빼어난 작품이 나올 것 같다.[2022. 4. 7]

 

책소개:인터넷 교보문고

통영에서 나고 자란 반수연은 1998년 캐나다 밴쿠버로 이민을 떠난다. 2005년 희박한 모국어의 공기 속에서 쓴 단편 「메모리얼 가든」이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작가의 길에 들어선다. 『통영』은 그렇게 낯선 이국에서 쓴 일곱 편의 단편을 묶은 첫 소설집이다. 반수연의 소설에서 이민은 삶에 대한 근원적 메타포다. 그의 문장들은 강렬히 꿈꾸고 아프게 실패하고 부정하며 방황하다 결국 꿈이 남기고 간 자리로 돌아오고야 마는 인간의 오랜 운명을 이야기한다. 꿈꾸는 삶의 한 원형을, 견디고 버티는 삶의 피할 수 없는 본질을 이민자들의 형상을 빌려 차분하고 성찰적인 문장들로 축조해낸다.

 

저자 : 반수연
통영 출생. 1998년 캐나다 밴쿠버로 이민을 떠났다. 200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메모리얼 가든」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14년, 2015년, 2018년 재외동포문학상을 수상했다. 2020년 단편소설 「혜선의 집」으로 재외동포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출판사서평

실제로 경험하지 않으면 포착하기 어려운 놀라운 구체성들이 소설집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특히 이민 말년을 다루고 있는 「메모리얼 가든」과 「혜선의 집」은 꿈과 현실의 간극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생의 황혼 무렵을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소멸과 죽음의 그림자를 배음처럼 깔고서 절제된 문장과 안정된 호흡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꿈도, 가족도, 기회도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 그래도 나에게 그 모든 것들이 가능했던 시간이 있었음을 누군가는 알아주기를 바랄 때 찾아오는 죽음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탁을 느닷없이 건네며 조용하고도 묵직한 소란을 남긴다. 「메모리얼 가든」의 박 노인이 그렇다. 장례 코디네이터이자 묘지 세일즈맨으로 일하는 화자에게 매번 찾아와 계약과는 관련 없는 엉뚱한 이야기만 늘어놓던 박 노인은, 죽은 아내의 유해를 맡아달라는 곤란한 부탁을 남기고 양로원에 들어가버린다. 「메모리얼 가든」은 박 노인이 세상을 떠난 뒤, 그가 남긴 죽음의 무게를 떠맡게 된 화자의 심리적 변화의 시간들을 강렬하게 포착한다.
「혜선의 집」의 혜선은 암 투병으로 허물어져가고 있다. 미국 생활 십 년 만에 산 자신의 집, “어린 딸을 안고 계단을 쿵쿵 오르내리던, 거짓말처럼 젊고 바빴던” 시절이 걷잡을 수 없이 희미해져만 가고 있는 지금, 혜선의 불안감은 자신과 남편을 돌봐주는 여성들이 서서히 집을 빼앗고 차지할지 모른다는 의심으로 확장된다. 한때 유일하고도 확실한, 안전한 공간이었던 집에서 혜선이 불안정하게 휘청거리는 것은 깨어진 꿈과 현실 사이의 아득한 거리 때문이다.

무력감과 좌절감의 원인인 상실을 예방하는 방법은 분실하기 전에 한발 앞서 잃어버리고 폐기하는 것이다. 애초에 어떤 것도 갖지도 꿈꾸지도 갈망하지도 않는 것이다. 『통영』 속 이민자들에게는 상실의 경험이 있다. 「국경의 숲」의 레이첼은 연인을 잃고 홀로 딸을 키우며 살아간다. 「통영」의 현택은 고통을 잊기 위해 고향을 떠나 찾은 새로운 땅에서 사고로 손가락을 잃었고, 모친상으로 이십 년 만에 다시 고향을 찾는다. 한국을 떠나오면서 시간의 흐름은 분절되었고, 이민은 그들 삶의 너무나도 많은 부분들을 바꿔버렸다. 연인이 사라진 국경의 숲에서 딸과 함께 눈밭에 누워 “스노우 엔젤”을 그리는 레이첼과, 다친 손을 숨기려 주먹을 말아쥐고 장례식장 구석에서 잠이 든 현택의 모습은 상실을 견디는 인간의 안감힘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자이브를 추는 밤」의 화자가 잃어버린 것은 유독 돈독했던 아들과의 유대감이다. 커가며 매일 한 뼘씩 거리가 벌어지는 듯 멀어지더니, 어느새 애인과의 미래를 계획하는 아들 준이 화자는 손님처럼 어렵기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은 화자가 현실과 자기 안의 허기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도록 부드럽게 인도한다.

『통영』의 인물들은 스스로의 진실로부터 있는 힘껏 달아남으로써 되돌아온다. “상처를 준 사람과 장소에서 멀어지는 것은 완벽한 해답 같았”(「사슴이 숲으로」)다며, “진짜 실패를 피하려고 의도적인 좌절을 선택”(「나이프 박스」)함으로써 패배의 시간을 최대한 늦추고 지연시키려 한다. 『통영』 속 그 숱한 유배와 우회, 망각과 수치의 시간들은 어째서 하나의 욕망과 상처가 자신들에게 가장 중요한 생의 추동이자 이유였는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한 납득과 체념, 수용과 성찰의 시간이다.
「사슴이 숲으로」와 「나이프 박스」의 인물들은 실패하는 것이 두려워 오래 잊고 지내왔던 창작에 대한 열망, 갈증들과 다시 마주한다. 현실의 파국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선택한 미국에서 죽은 화가의 작업실을 정리하는 일을 떠맡게 된 「사슴이 숲으로」의 화자는 죽은 이의 물건들 사이에서 자신의 갈망을 재발견하고, 해묵은 마음들의 밑바닥을 딛고 일어선다. 등단한 지 십 년 만에 캐나다로 이민을 온 「나이프 박스」의 명희는 아이들을 모두 대학에 보내고 난 뒤에야 비로소 글을 쓸 시간을 얻게 되지만, 도피하듯 요리 학교에 등록해버린다. 그곳에서의 허방의 시간들은 상처가 품은 독기와 열을 가라앉히기 위한 신중한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요리 실습 마지막 날, 명희는 “나이프 박스”에 담긴 무수한 도구들, 잔뜩 무장된 핑계들을 기부 접수처에 내려놓은 채 물러섰던 최초의 자리로 돌아온다. 안전한 실패들에 기대어 진짜 실패로부터 달아나고자 했으나, 그 모든 일들을 통해 단단한 마음들을 재차 확인하며 최초의 열망 속으로 결연한 발걸음을 다시 내딛는 것이다.

『통영』에는 기나긴 회피와 회귀 끝에 패배하고 좌절한 자의 순수성과 진정성이 담겨 있다. 멀어지지 않고서는 한순간도 견딜 수 없었지만 결코 온전히 떠날 수도 없었던 맹목의 마음들 곁에서 반수연의 문장은 이들 달아나는 자들에게도 윤리가 있음을, 가장 힘들고 아픈 우회를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마음이 있음을 고백하고 증언한다. 그 치열하고 고집스러운 도망자의 윤리를, 불가피한 마음들로 엮인 고유한 매듭과 선연한 문양들을 그려낸다. 오래도록 부정해온 지극히 명징한 실패를 삶의 중심 한가운데에 우두커니 세워놓는다. 마음을 다해 도망쳐온 삶의 맨얼굴을 아프게 끌어안으며 그 불완전함과 비루함의 밀도로, 어둑한 꿈의 뒷모습을 캄캄히 들여다보고 위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