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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감] 한국전쟁이 일어난 1950년에 태어난 나보다 11년 먼저 태어나 한국전쟁을 생생하게 겪은 저자의 자전성 작품. 소설로 분류했으나 저자가 말했듯이 소설이라기보다는 자전성 기록문학으로 봐야할 것 같다. 2022년 현재 84세이신 것 같으니 어쩌면 당신의 삶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쓰신 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작품은 저자가 직접 겪은 체험을 바탕으로 쓰였으나 소설적 기법면에서는 부족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가독성 면에선 최고였다. 전쟁의 와중에 이들 대가족-아버지, 어머니, 할머니, 형, 세 여동생, 동생들 돌보미 소녀 -이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궁금해서 읽는 내내 마음을 조렸는데, 일부 체험은 있으나 글쓰기 훈련이 안 되어 있는 작품의 경우 계속 읽기가 불편해 포기한 경험이 꽤 많이 있는데 이 작품은 글을 쓰는 솜씨에서도 흠을 잡기 어렵게 잘 썼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가장 핵심이 되는 내용은 30 후반에 죽임을 당한 어머니에 대한 것 아닐까 싶은데 수없이 많은 핍박을 받은 일제 강점기에도 유복한 환경-- 의사인 아버지는 충주 지주 집안, 어머니는 평양 명문가 집안- 에서 자랐으나 해방 후 혼돈기, 한국전쟁기를 겪으면서 다른 집안과 다름없이 비극에 휩싸인다. 그나마 어머니 한 분 잃는 거- 젖먹이 아이까지 있는 30후반인 나이이다-로 끝났지만 저자는 한창 어머니의 보호를 받을 나이인 11살에 겪었으니 그 아픔이 얼마나 컸을 것인가. 그것도 억지로 가입한 보도연맹에 연루된 아버지가 도피하는 바람에 빚어진 억울한 일이었으니. 아버지는 지방 소읍에서 인술을 펼친 착한 의사임에도 해방 후 혼란기에 벌어진 좌우 대립에서 벗어나지 못한 때문에 빚어진 참극이었다. 국가 권력을 남용하는 우익 최하부 조직원에 의해 빚어진.
한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에 대한 후일담이 형과 할머니, 고모, 동생들을 봐주던 소녀 빼고는 거의 없다는 점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70여 년이 지난 현재이니 최소한 직계 가족의 삶이 어떠했는가는 알게 해줬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인 아버지, 작자 본인, 세 여동생 등. 욕심을 부린다면 이모, 평양의 외할머니, 아버지에게 도움을 준 일제 강점기에 친일 경찰이었다가 해방후 고위 경찰이 된 대학 친구의 형과 친구 이야기 등.
그래도 그런대로 일제 강점기, 해방후 혼란기, 전쟁기의 생활상에 대해 알 수 있어서 좋았다. 국가 권력에 의해 폭력 앞에 일개인은 얼마나 무력하게 무너지는가를 보여준 또 하나의 좋은 사례. 요즘은 스케일이 큰 서사가 있는 작품 자체를 보기가 어려운 시절이라 더욱 그렇다.
[참고] 자전성 작품으로 기억에 남아있는 작품.
책소개
슬픔을 감싸주는 정교한 서사의 힘
비정한 역사 앞에서 개인의 삶은 얼마나 위태로운가
모든 것이 첨단을 향해 달리는 지금,
이 소설의 존재 이유는 거대한 역사 앞에
개인의 소중함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해방 공간, 6·25전쟁이라는 현대사의 격류에서 한 소년의 이야기는 가족과 개인이 거대한 역사 앞에 어떻게 사그라들다가 부활하게 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누군가에게는 생의 마지막까지 가슴에 붙잡고 있어야 할 소중한 사람이지만, 역사의 수많은 희생자들 중에 한 명으로만 기억하는 역사의 비정함에 맞선 이 소설은 시대를 초월하는 인간 본연의 존재와 존엄성을 다시 일깨운다.
소년이 노인이 된 지금도 소중한 사람의 자취를 찾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이 짓밟히는 일이 이 땅에서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뼈아픈 외침이자 못 지킨 약속에 대한 깊은 슬픔이다.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저자 : 송문익
강원도 회양에서 태어나 대부분의 성장기를 충북 충주에서 보냈다.
별명은 먼산바래기. 어릴 적, 어른들이 그를 그렇게 불렀다. 일찍부터 글쓰기를 좋아한 그는 자신의 시나 콩트 등을 교지에 싣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전문적인 문학 수업의 길로 들어서거나 자신의 직업을 문학 영역에서 찾지는 않았다. 한양대에서 공학을 전공한 후 University of Puget Sound, Tacoma에서 MBA 과정을 마치고 다시 US International University, San Diego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는다. 인하대학교에서 교수를 역임하였으며 현재 동 대학 명예교수이다.
그의 말을 빌리면, 지키지 못한 약속은 부끄럽다. 그러기에 이 책은 그의 고백록이다. 한 가족의 이야기이자 그 시대를 산 사람들이 흘린 눈물 자국이며, 다시 반복하지 말아야 할 역사의 한 페이지이기도 하다. 그는 왜 이 책을 써야 했을까? 그는 입을 열지 않는다. 대답은 독자들에게서 찾아야 할 것 같다.
책 속으로
삼월 중순이 되자 모란봉을 덮고 있던 눈은 말끔히 사라지고 들판에는 바야흐로 푸른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지금 대동강 변을 걷고 있었다. 전통적으로 결혼은 당사자들의 생각보다도 부모들의 허락이 더 중요했다. 그들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보석 씨, 부모님들은 저의 가문에 대해 아직 한 마디도 물어보지 않으셨잖아요? 혹시 기독교인들은 자녀를 결혼시킬 때 가문 같은 것은 별로 중요하게 생각지 않습니까?” 마침내 아버지는 마음속에 가두어 두었던 의문을 입 밖에 꺼냈다.
“기독교인들도 그런 것들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거로 알고 있어요.”
“그럼 왜 부모님들께서는 저의 가문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 않으실까요?”
“벌써 다 알아보셨을 거예요.”
- 64쪽
신포는 동해안의 작은 항구도시였는데 회양에서 훨씬 더 북쪽에 있었다. 우연이었겠지만 아버지의 새 임지를 찾아 우리 가족은 계속 북쪽으로 이동해야 했다. 하지만 신포는 이전의 다른 곳들과는 달랐다. 많은 사람이 어업과 이에 관련된 일에 종사하고 있었으며 상점과 식당과 술집들도 많았다. 거리를 걷는 주민들은 발걸음이 빨랐고 그들의 말에는 강한 억양의 사투리가 섞여 있었다. 아버지는 공의로 발령을 받은 후 정해진 근무시간도, 휴일도 없이 일했다. 따라서 가족들은 한밤중 다급히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맨눈으로 보이는 곳에 섬이 하나 떠 있었고 아버지는 이제 말 대신 통통배를 타고 왕진을 가야 했다. 바람이 불고 물결이 높이 이는 밤이면 엄마와 할머니는 행여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까 봐 피 말리는 긴장 속에 아버지를 기다렸다.
- 76쪽
어느 날 오후 아버지는 지서장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지서로 오라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지서에 가자 지서장은 예상치 못한 요구를 했다.
“선생님, 보도연맹에 가입해 주십시오.” 지서장이 말했다.
보도연맹은 1949년 6월 정부가 만든 전국적인 조직이었다. 여기서 보도라는 말은 보호하고 계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에 따르면 과거에 좌익 이력이 있던 사람들을 보호하고 계도하기 위한 것이 이 연맹의 설립 목적이었다.
“서장님도 아시다시피 나는 좌익이 아니었습니다. 대동청년단이 내게 씌운 혐의가 허위라는 것을 서장님도 잘 알지 않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허위든 아니든 그런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일단 혐의를 받았던 사람들은 다 가입해야 합니다.”
- 161쪽
이제 거리는 3m까지 줄어들었다. 엄마에게 안기려는 아기의 발버둥이 더 격렬해졌다.
그러나, 그러나 운전석의 헌병 때문에 엄마는 목소리를 낼 수가 없었다. 어찌해야 하나? 어떻게 하면 헌병 모르게 복님을 돌아서게 할 수 있을까? 얼굴에 성난 표정을 지으며 팔을 뻗어 주먹으로 복님을 때리는 시늉을 했다. 그래도 복님은 멈추지 않았다. 아아 이 일을 어쩌나! 이제 불과 2m. ‘오지 마! 가! 돌아가!’ 엄마가 두 손을 내밀어 복님을 떠미는 시늉을 하며 소리 없이 외쳤다. 이 순간, 복님의 눈에 엄마의 옆얼굴에 난 상처가 들어왔다. 그리고 엄마의 필사적인 몸짓과 군용 트럭, 알 수 없는 전율이 그녀를 흔들고 지나갔다. 깜짝 놀란 복님, 마침내 이 영리한 열 살짜리 소녀가 홱 돌아섰다. 그리고 멀리 달아나기 시작했다.
- 3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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