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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가혹했던 전쟁과 휴전:마거릿 히긴스

Bawoo 2023. 6. 7. 11:19

 

 

한국에 가혹했던 전쟁과 휴전:마거리트 히긴스

출판:KORUS,발행:2023.04.10.
 
[소감] 한국전쟁(1950~1953)에 관한 기록은 무수히 많이 나와있다. 그중에 이 책은 최초 그것도 여성종군기자의 기록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기왕에 나와있는 책은너무 낡고 활자 크기가 작아 볼 생각이 안 들었었다. 그런  와중에 이용하는 도서관에서 발견한 신간.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빌려왔다. 한국전쟁 관련 책으로 꼭 읽어보고 싶던 기록이기 때문이었다. 
내용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의 확인 정도라고 생각했다. 전쟁에 관한 새로운 기록이기보다는 저자가 전장에서 보고 느낀 내용 중심이었다. 확전을 두려워하여 38선 근처에서 지루한 고지전을 하다가 종전(휴전)을 한 미행정부에 대한 비판이 인상적. 아무튼 한국전쟁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필독서 중 한 권으로 넣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전투에 직접 참가한 군인이 아닌 취재를 목적으로 한 기자 특히 여기자의 기록이기에. 
 
 
[참고]
 

 

 

3. 책 중에 장진호 전투 관련 내용이 나오는데 관심이 있는 분은 "브레이크 아웃 (1950 겨울, 장진호 전투)

", "데스퍼레이트 그라운드 (절망의 땅 장진호의 미 해병과 불굴의 영웅들)"라는 책을 추천합니다. 

 

책 소개:교보문고-전문을 보시려면 책 제목을 클릭

 

한국전쟁 휴전 70주년, 한미동맹의 중요성이 커지는 지금
여성 최초 퓰리처상을 받은 종군기자 마거리트 히긴스를 주목하라

2023년은 한국전쟁 휴전과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70주년이다. 이를 기념하여, 코러스 출판사는 미국의 전설적인 여류언론인이 남긴 한국전쟁과 휴전에 관한 글들을 엮어서 단행본 『한국에 가혹했던 전쟁과 휴전』을 펴낸다.

이 책은 편의상 제1부는 ‘자유를 위한 희생’, 제2부는 ‘한국에 가혹했던 휴전’이라는 소제목으로 나누어 편집되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제2부인 ‘한국에 가혹했던 휴전’이 본책(本冊)이고, ‘자유를 위한 희생’은 부록(附錄)으로 어우러진 신간이다. 그리고 책의 기획과 제목을 정하고, 주요 내용의 주석에 관한 조언은 물론 추천사까지 써준 분은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고, 번역과 주석은 이현표 전 주미국한국대사관 문화홍보원장이 맡았다.

출판사 서평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 공산군이 이승만을 제거하고 한반도를 적화하기 위해 중공을 등에 업고, 소련의 군비지원과 조종하에 침략전쟁을 도발했다. 스탈린과 김일성의 초상화를 앞세우고, 한민족의 국기인 태극기를 배신한 채 소련이 디자인해 준 인공기를 앞세우고!

(무릇 한민족이라면, 남북통일을 말하기 전에, 북한에 대해 소련이 만들어준 인공기를 폐지하고, ‘태극기’부터 통일하자고 제안해야 마땅하지 않을까?)

섹스 심볼 마린린 먼로를 뺨치는 관능적 육체와 미모에 최고의 지성까지 갖춘 종군여기자가 한국전쟁 발발 이틀 후부터 미군과 동거동락하며 전선을 누비고 있었다. 그 이름은 마거리트 히긴스(Marguerite Higgins, 1920-1966)!

270명의 종군기자 중에서 유일한 여성이었던 마거리트 히긴스는 전쟁 초기 6개월간,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기며, 한강 인도교 폭파ㆍ평택과 천안전투ㆍ대전전투ㆍ낙동강전투ㆍ인천상륙작전과 서울수복ㆍ장진호전투 등을 직접 목격한 산증인이었다.

특히, 전쟁 발발 나흘 후인 1950년 6월 29일 수원 비행장에서 히긴스는 전쟁상황 시찰 차 방한 중인 맥아더 장군을 만난다. 당시 둘이 만나는 사진은 충격적이다. 30세의 히긴스는 오른손을 허리에 얹고, 70세의 맥아더는 오른손으로 히긴스의 왼팔을 가볍게 잡고 말을 건네고 있다. 1945년 8월 일본 패망 후 맥아더 연합군 최고사령관 앞에서 감히 그런 포스를 취한 사람은 없었다. 이는 맥아더가 양손을 허리에 얹고, 일본 국왕은 차렷 자세로 선 사진과 비교된다.

아무튼 맥아더는 수원 비행장에서 히긴스에게 자기 전용기에 동승을 제안하고, 히긴스는 도쿄로 가는 도중 그를 단독 인터뷰해서 ‘한국에 지상군 파병’에 관한 특종을 건진다. 이후 그녀는 6개월 동안 맥아더 장군의 특별 배려로 전선을 취재하며, 여러 특종 보도를 하고, 1951년에는 한국전쟁에 관한 세계 최초의 단행본 『War in Korea』를 발간하여 여성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한다.

『War in Korea』에는 맥아더라는 이름이 다른 인명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많이 등장할 뿐 아니라, 히긴스와 맥아더의 사이가 무척 가까웠을 것이라는
의혹을 가질 만한 부분도 있다. 심지어 히긴스와 맥아더가 이 책을 공동 집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만든다.

『War in Korea』에는 한국전쟁을 다룬 수많은 국내외의 저술과 차별화되는 매우 시사적이고, 객관적이며, 흥미롭고, 유용한 정보들이 담겨있다.

첫째, 한국전쟁에 관한 저술 중 이렇게 빨리 나온 책은 없다. 히긴스는 1951년 1월 1일 책의 서문을 썼다. 1950년 12월까지 그녀가 전쟁터에 있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놀라운 일이다.

둘째, 전투하는 군인이 아니라 뉴스를 전하는 종군기자가 전장을 더할 나위 없이 객관적으로 기록했다는 점이다. 저자는 나름대로 아군이건 적군이건 공평한 잣대를 들이대고 한국전쟁을 보려고 시도했다.

셋째, 맥아더 장군을 비롯하여 이등병까지 미군을 폭넓게 인터뷰한 기록일뿐만 아니라, 이승만 대통령, 한국 언론인, 한국군, 심지어 북한군 및 중공군 장병과의 대화도 담고 있다. 이는 한국 전쟁터의 근처에도 가보지 않은 저자들이 쏟아낸 수많은 저술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넷째, 남성이 아니라 여성의 눈으로 본 기록이라는 점이다. 저자는 여성으로서 차별대우를 받으며 취재했음을 여러 곳에서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묘하게도 이런 차별은 이 책이 갖는 매력의 하나가 되고 있다.

다섯째, 소설보다도 더 긴장감 넘치고, 흥미진진하며, 생생한 실화라는 점이다. 나아가 섬세하고 감수성 넘치는 문학작품이다. 발간과 동시에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고, 독일어·프랑스어·스페인어 등 여러 개 언어로 번역된 것은 이런 이유에 기인한다.

여섯째, 단순한 한국전쟁 르포를 넘어서 전쟁, 자유민주주의, 국가존립의 이유, 국가 간의 동맹, 남녀차별의 사회적 문제, 인간적 유대감, 애국의 의미, 삶과 죽음에 관한 교과서 아닌 교과서라는 점이다.

코러스 출판사는 2009년 『자유를 위한 희생』이란 제목으로 『War in Korea』의 한글 번역판을 출간했다. 『한국에 가혹했던 전쟁과 휴전』의 제1부는 『자유를 위한 희생』의 초판 발행 14년 후인 올해에 기존에 미흡했던 번역과 역주를 대폭 보완한 것이다.

한편, 『War in Korea』는 한국전쟁 초기 6개월(1950년 6∼12월) 동안의 전장 르포다. 이는 3년 1개월 동안의 전쟁 중에서 6분의 1도 되지 않는 기간이어서 한국전쟁을 전부 아우르기에는 많이 모자랐다. 그런데 뜻밖에도 단편적이고 분량은 많지 않지만, 히긴스 기자가 한국전쟁의 휴전에 관해서 기록한 매우 소중한 자료를 발견했다.

그 귀중한 자료를 소개하기 전에 히긴스가 1951년 1월 1일 『War in Korea』 원고를 출판사에 넘긴 후부터 한국전쟁 휴전(1953년 7월 27일) 후인 1954년까지 7차례나 한국을 방문했다는 사실을 언급하고자 한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히긴스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폴란드·체코 등 동유럽 국가의 국민이 자유를 소비에트 공산 체제에서 질식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목격한 증인이었다.

히긴스는 한국전쟁 발발 이틀 후 비에 젖은 서울 거리를 군용차로 달리는데, 짐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갓난아이를 등에 업은 채 피란하는 수백 명의 여인이 손을 흔들며 환호하는 것을 보고, 간절한 소망을 갖게 된다.

“제발, 우리가 저 사람들을 낙담시키지 않았으면 좋겠어!”

또한 히긴스는 자신의 이 소망을 더 굳게 만드는 광경을 인천상륙작전 후 서울수복 과정 중 명동성당에서 목격하게 된다.

“성당은 아수라장이었다. 십자가는 제단에서 떼어졌으며, 모든 종교적인 상징들은 건물에서 제거되어 있었다. 그 대신 사방의 벽에서 스탈린과 김일성의 초상을 그린 대형 포스터들이 우리를 비웃듯이 내려다보았고, 미군을 죄 없는 한국 부녀자와 어린이를 살해하는 인면수심의 괴물로 풍자한 포스터들도 벽에 붙어있었다. 성당은 공산당 본부로 사용된 것이 분명했다.”

히긴스는 제2차 세계대전 후에 동유럽이 공산화되는 과정에서 지겹게 보았던 스탈린과 그 꼭두각시들의 초상화를 서울 명동성당에서 다시 목격하고는 스탈린의 세계 적화야욕을 한국에서 기필코 분쇄하지 않으면 미국이 위태롭게 된다는 사실을 통감한다.

참고로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패망하고, 미군과 소련군은 일본군 무장해제를 위해 38선을 경계로 한반도를 나누어 점령했다. 그런데 스탈린은 이를 악용해서 겉으로는 해방과 평화를 표방하고, 실제로는 한반도 적화에 착수했다. 곧 북한 전역에 스탈린과 김일성 초상화가 걸리고, 북한 공산화와 남조선 적화를 위한 병영화가 진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소련군의 인적·물적인 약탈도 심각했지만, 북한에서 태극기와 애국가를 폐지해서 한민족의 정체성을 약탈한 것은 가장 악랄한 만행이었다. 사실 해방 이후 북한은 남한과 마찬가지로 태극기와 애국가를 공유했다. 그러나 소련군의 지시로 북한은 1948년 7월 8일 태극기를 폐지하고, 7월 24일부터 소련이 디자인한 인공기를 시범 게양한 후, 9월 9일 정권 수립 때 인공기와 새로운 국가(國歌)를 채택함으로써 민족을 배신하고 소련의 위성국가가 되었다.

이처럼 동유럽에서의 경험보다도 훨씬 더 애처로운 한국인과 한국의 참상(慘狀)을 목격한 히긴스는 어느 종군기자도 감히 범접하지 못할 용기와 사명감으로 무장한 채 전선을 누비며,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겼다. 또한 종군기자로서의 임무를 끝내고도 한국인을 낙담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소망의 실현을 위해 나름대로 헌신했다.

히긴스의 소망이란 미국을 위시한 유엔이 한국인의 자유를 말살하기 위한 침략전쟁을 도발한 스탈린과 그 꼭두각시인 모택동과 김일성으로부터 항복을 받아내서 한반도에 자유 통일국가가 건설되는 것을 보는 것이었다. 이는 맥아더 장군의 소망이기도 했다. 그 때문에 종군기자로 활약 후에도 일곱 차례나 한국을 방문하여 전황과 휴전 협상을 확인하고, 최고위급 저명인사들을 만났다.

히긴스가 만난 인사는 나이순으로 맥아더 장군, 트루먼 대통령, 아이젠하워 장군, 밴 플리트 대장, 리지웨이 대장, 클라크 대장 등 한국전쟁과 휴전에 관해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미국의 최고위 인사는 물론, 영국군 고위 장교, 심지어는 중공군 소령도 포함되었다.

히긴스는 그들과의 인터뷰를 1955년 『NEWS IS A SINGULAR THING』이라는 저서에 실었다. 『War in Korea』에 없는 내용과 휴전에 관한 소회가 담긴 히긴스의 이 기록은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므로, 인물 별로 7개의 장으로 나눠서 『한국에 가혹했던 휴전』이라는 제목으로 번역자의 주석(註釋)과 함께 『한국에 가혹했던 전쟁과 휴전』의 제2부에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