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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없는 사람들의 미국사:밀려오고 적응하고 내쫓기며… 이민자들이 만든 나라, 미국:로널드 다카키, 레베카 스테포프

Bawoo 2023. 8. 16. 12:13

 

저자:로널드 다카키, 레베카 스테포프
출간:2022.1.5.
 
[소감] 이민자들이 만든 나라 미국. 아직까지는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다. 중국이 부상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지도자들의 편협성으로 봐서는 대체 국가가 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 초강대국 미국이란 나라가 주류 백인 이외의 다른 민족(인종)에게 심한 차별을 했다는 것은 미국 역사에 관심이 있는 이들은 어는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이민족  차별사의 개괄적인 내용이 담겨있다. 원주민인 인디언은 물론 같은 백인인 아일랜드인부터 시작해서 일본인, 중국인, 멕시코인 등. 특이한 점은 베트남인, 아프카니스탄인은 비교적 더 차별받았다는 점(?). 아마 차별에 저항하는 힘이 커지면서 차별책을 점차 완화한 덕분일 것이다. 또다른 특이한 점은 우리나라 이민자에 대한 기록이 없다는 것인데 해제를 보면 따로 쓴 책이 있는 것 같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 "다른 해변에서 온 이방인들"

 [참고]
2차 대전 및 태평양 전쟁기 미국 정부는 일본계 미국인을 강제로 수용소에 수용하는데 이때 유럽 전장으로 이 일본계 젊은이들을 보냅니다. 이들은 차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싸워 큰 공을 세웁니다. 영화도 있는데 제목은 모르겠군요. 상세해설:  
또 나바호 족 인디언은 태평양 전쟁에 암호병으로 투입되어 혁혁한 공을 세웁니다. 이를 소재로 한 "윈드 토커"라는 영화https://youtu.be/oML7AvDzs9Q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 보면 전쟁이 끝난 후 차별 대우가 바로 개선되지는 않은 것으로 나오는군요. 또 중국인은 서부 개척시대에 철도 노동자로 유입되어 많은 기여를 했지만 이민수 제한을 당하다가 나중에 풀린 것으로 나오는데 공산 중국의 부상에 따라 중국과 대립각을 세우다 보니 중국 유학생을 제한하는 조치가 생겼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 책에 대한 상세한 해설은 아래 책소개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책소개

미국의 역사는 흔히 유럽인의 이주와 영국제국에 대한 저항 그리고 원주민의 정복과 이주민의 동화를 통해 승리와 번영을 누려온 국가 건설의 성공담으로 알려져 왔다. 이 책은 그러한 거대 서사가 협소하고 불완전하다고 말하며 이 역사로부터 배제된 사람들, 흑인과 아시아인, 멕시코인, 유대인, 무슬림, 아일랜드 여성을 비롯한 여러 이주민들과 아메리카 원주민의 역사로 미국사를 재조각한다.

이 책은 이들 소수 집단들이 미국의 경제적·문화적 바탕이 형성되는 데 얼마나 중요한 주체들이었는지를 밝히고 그럼에도 왜 여전히 미국 내에서 ‘없는 사람’, ‘낯선 사람’,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지 이들에 대한 혐오와 차별의 뿌리를 이야기한다. 하나의 종족이 한 사회에서 수적 다수를 차지하기 어려워지는 다문화 사회로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이 책은 나와 다른 사람을 어떻게 이해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지, 인종과 민족, 문화의 배경이 다른 사람들이 서로 어떤 연대감을 형성할 수 있는지 그 지향점을 제시하는 책이기도 하다. 『미국민중사』의 저자 하워드 진이 추천했으며 인종차별 타파에 기여한 도서에 주어지는 애니스필드-울프상과 미국도서상을 수상했다.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목차

들어가며 나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

1. 미국인은 누구인가
2. “야만인”을 멸하라
3. 노예제의 숨겨진 기원
4. 인디언 보호 구역으로 가는 길
5. 노예의 삶
6. 아일랜드인의 이주 물결
7. 멕시코 영토 정복 전쟁
8. 중국인, 황금 산을 찾아 떠나다
9. 인디언의 최후
10. 돈이 열리는 나무를 찾아온 일본인
11. 유대인의 러시아 탈출
12. 멕시코의 북쪽을 향해
13. 흑인, 북부로 진출하다
14. 차별받는 이민자들, 참전하다
15. 변화의 목소리
16. 새로운 이민의 물결
17. 우리는 모두 소수가 될 것이다

옮긴이의 말 잊힌 이들의 역사를 비추는 또 다른 거울
해제 모두 소수가 되는, 이주 시대의 공존

용어 해설
사진 및 삽화 저작권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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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책 속으로

우리는 개별 집단의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 이것들이 모두 모여 세계 시민 국가의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모든 미국인이 소수 집단에 속하게 될 날이 다가오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이 도전에 직면해야 한다. 그저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계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 이 책 『역사에 없는 사람들의 미국사』는 미래를 위해 과거를 탐구한다. (p. 11, 들어가며 나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

소수 집단의 이야기는 역사의 순간뿐 아니라 강력한 감정과 견해도 담아낸다. 해리엇 제이컵스는 노예 생활에서 탈출한 후 이렇게 썼다. “(나의 목적은) 내가 들은 것이 아닌 내 두 눈으로 본 것, 그리고 내가 감내한 것을 들려주는 데 있다.” 1920년에 어느 중국계 이민자는 자기의 이야기가 미국인으로 하여금 “중국인도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데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어느 유대인 이민자도 미래 세대가 “자신들의 출신을 알게 됨으로써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되리라는” 바람으로 “라자르와 골디 글라우버먼의 자손”에게 자서전을 바쳤다. (p. 25, 1. 미국인은 누구인가)

식민지 정착민들은 인디언의 죽음을 신께서 자신들에게 땅을 내어준 증거라 여겼다. 신이 정착민을 위해 “자리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인디언의 죽음은 필그림에게는 생명을 의미했다. 코드곶의 인디언 무덤들 틈에서 발견한 비축된 옥수수 덕택에 그들이 생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훗날, 전염병이 휩쓸기 전 인디언이 살았던 바로 그 장소들에 뉴잉글랜드의 여러 도회지가 들어섰다. (p. 40, 2. “야만인”을 멸하라)

제퍼슨은 인디언이 자신들의 땅을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약속도 했다. “당신들의 땅은 당신들의 것입니다. 우리는 땅에 대한 당신들의 권리를 결코 침범하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들의 땅이니 그대로 두는 것도 파는 것도 당신들에게 달려 있소.”15 그런 약속에도 불구하고 제퍼슨은 인디언이 백인에게 땅을 팔지 않을 수 없게끔 일을 꾸몄다. 인디언의 사냥을 방해하고 대신 농사를 짓도록 유인하는 것이 한 가지 계책이었다. 제퍼슨은 인디언이 사냥할 숲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면 백인에게 기꺼이 땅을 팔 것이라 내다보았다. 또 다른 계략은 교역소를 더 많이 지어 백인이 제작한 상품을 인디언에게 외상으로 파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면 인디언을 금전적으로 무너뜨릴 수 있을 것이었다. 인디언이 부채에 허덕이게 되면 자신들의 땅을 넘기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p. 44, 2. “야만인”을 멸하라)

대농장주들은 두 번째 길을 선택했다. 베이컨의 반란 후, 그들은 주요 노동력을 아프리카 노예에 의지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1675년에 버지니아 인구의 5퍼센트에 불과하던 흑인이 1715년 무렵에 25퍼센트, 1750년 무렵에는 무려 4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게 되었다.
법적으로도 노예의 권리에 한층 엄격한 제한이 가해졌다. 노예는 집단으로 모이거나 여행도 할 수 없었다. 자유민이나 노예를 막론하고 흑인이라면 무기도 소지할 수 없었다. 인종 간 성관계는 불법으로 규정되어 혼혈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 중 한 명이 백인이거나 자유민일지라도 노예 신분을 물려받았다. (p. 58, 3. 노예제의 숨겨진 기원)

철도 회사들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1871년 3월 3일 인디언토지전용법 통과를 강력히 추진했다. 이 법은 “미합중국 영토 내 그 어떤 인디언 자치국가나 부족도 미합중국과 조약을 맺을 수 있는 독립된 국가나 부족 또는 권력으로서 승인 또는 인정받지 아니한다”는 내용을 명시하고 있었다. 어느 철도 회사의 변호사가 짚은 대로, 이 법은 인디언 부족의 정치적 실체를 파괴해 버렸다. 반면에 철도 회사에게는 미 대륙을 횡단하는 철도 건설을 허락하고 서부에 새로운 개척지 건설의 길을 터주었다. 백인에게는 이 모든 일이 문명의 진보였다. (p. 75, 4. 인디언 보호 구역으로 가는 길)

봉기 전까지만 해도 터너는 겸손하고 고분고분하며 처신도 잘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쩌면 행복한 노예 “샘보”의 이미지에 딱 들어맞았다. 노예주로서는 그들의 노예를 샘보라 여기다 보면 양심의 가책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며, 노예가 잘 통제되고 있다고 안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샘보처럼 처신했던 노예라도 실은 주인의 호의를 얻거나 살아남기 위해 충성스러운 노예의 역을 맡아 연기한 것일 뿐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았던 것일 수 있다. 겉보기에 “착한” 노예도 자기들을 파괴할 음모를 꾸밀 수 있다는 것이 냇 터너의 봉기로 드러나자 백인은 이내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p. 84, 5. 노예의 삶)

그럼에도 재건기라 불리는 남부의 회복기에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꾸준히 자유를 잃고 있었다. 차별이 만연했다. 민스트럴쇼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을 딴 일명 짐크로법이라는 차별법이 남부 전역의 주에서 통과되었다. 열차와 극장, 병원과 식당에서 ‘흑인의 자리’를 따로 규정하여 분리를 강화한 이 법은 인종 분리의 뼈대가 되었다. 백인 정치인들은 흑인의 투표 자격을 박탈하기 위한 방법을 강구했다. 매년 수백 건의 법외 처형을 포함해 흑인을 배척하는 폭력이 발생하니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그들의 권리를 찾는 것조차 신중히 해야만 했다. 19세기 말 즈음이 되었어도, 흑인 입장에서 진정한 진보의 가능성은 슬프게도 까마득한 일이었다. (pp. 91~92, 5. 노예의 삶)

아일랜드 이민자들은 일자리를 두고 흑인과 경쟁하면서 인종으로 주의를 돌렸다. 그들은 “백인의 나라”에서 백인 노동자를 흑인에 우선하여 뽑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백인에 개신교도인 미국인 중에는 아일랜드인을 가톨릭 신자에 외국인이라 멸시하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아일랜드인 이민자들은 내부인이 되어 미국인으로 받아들여지고자 노력했다. 그러기 위해 그들은 같은 백인에게 본인들 역시 흑인에 적대적이라는 인상을 심어주었다. 아일랜드인으로서 백인 사회에 동화되거나 섞이기 위한 처신으로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나 아닌 나머지”로 차별화한 것이다. (p. 102, 6. 아일랜드인의 이주 물결)


멕시코인은 앵글로의 정복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았다. 국경선이 옮겨지고 나서 수천 명의 멕시코인은 느닷없이 미국 영토 안에 사는 처지가 되었다. 과달루페이달고 조약에 따라 새 미국 영토에 살던 멕시코인은 남쪽으로 가 새로 정한 국경을 넘어 멕시코로 들어가거나 미국에 남을 수 있었다. 미국에 남는다면 미국 시민으로서 권리를 보장받게 될 것이었다.
그들 대부분은 가족을 데리고 정든 땅과 집을 떠나고 싶지 않았기에 그대로 남았다. 그러나 점점 더 많은 앵글로들이 과거 멕시코의 영토였던 곳으로 흘러들어 오자, 그곳에 사는 멕시코인은 영어 말고는 쓸 줄 모르는 사람들에 둘러싸인 이방인의 심정에 휩싸였다. (p. 121, 7. 멕시코 영토 정복 전쟁)

“멕시코인들이 그들 소유지의 많은 부분을 팔고 있으며, 일부는 한때 그들의 소유였던 곳에서 날품팔이로 일하기도 한다.” 과거 멕시코의 영토였던 미국 내 여러 지역과 텍사스에서 멕시코인 대부분은 이제 더는 지주가 아니었다. 그들은 이미 노동자 신세가 되었다. (p. 124, 7. 멕시코 영토 정복 전쟁)

중국인 철도 노동자는 백인보다 낮은 임금을 받으며 일했다. 백인 노동자들이 센트럴퍼시픽 측에 중국인 고용을 멈추라고 요구하자, 공사 감독인 찰스 크로커는 그들이 중국인과 지낼 수 없다면 대안은 단 하나, 백인을 해고하고 중국인을 더 많이 고용하는 것뿐이라고 다그쳤다. 한
편 중국인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이며 백인과 같은 수준의 임금을 요구하자, 크로커는 파업 노동자들을 산에 떼어놓고 음식을 끊어버렸다. 일주일이 지나자 굶주린 노동자들은 현장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p. 136, 8. 중국인, 황금 산을 찾아 떠나다)

중국인이 생계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동안, 미국에서는 중국인이 사회적으로 맡아야 하는 역할을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그 가운데 중국인은 영구히 외국인노동자 계급으로 남아 백인 감독의 지시에 따라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이런 사고방식에는 ‘미국인’은 곧 ‘백인’이라는 인종주의적 관념이 뿌리 깊게 배어 있었다.
중국인 노동자로 구성된 대규모의 계급을 영구적으로 둔다는 발상을 모든 미국인이 마음 편히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북미 원주민에 따라붙는 부정적 사고방식과 이미지가 중국인에게도 따라붙었다. 중국인도 유치하고 부도덕한 이교도 야만인으로 취급받았다. 세 집단 모두 공통점이 있었으니 유색인종, 즉 비백인이라는 점이었다. 1854년, 캘리포니아주의 대법원이 “중국인과 다른 비백인”은 법정에서 백인에 불리한 증언을 할 수 없다고 판결한 사건에서 이 점이 명확하게 드러났다. 캘리포니아는 백인과 아시아인, 흑인, 또는 혼혈인 사이의 인종 간 결혼을 금지하는 법도 통과시켰다. (p. 138, 8. 중국인, 황금 산을 찾아 떠나다)

1902년, 의회는 인디언 땅의 백인 양도를 빠르게 앞당기는 새 법을 통과시켰다. 법의 골자는 개인할당지를 소유한 인디언이 죽으면, 그 토지는 소유자의 상속인에게 넘겨줄 수 없고 공개 경매에 부쳐 팔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상속인이 가족의 땅을 살 수 없다면, 그 땅을 잃게 된다.
어느 정부 관료는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기껏해야 몇 년 있으면 인디언의 모든 땅이 정착민의 소유로 넘어가게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p. 157, 9. 인디언의 최후)

농장주들은 노동자의 국적에 특히 주의를 기울였다. 그들은 노동자 사이에 분열을 조장할 의도로 노동 인력을 국적ㆍ민족ㆍ인종에 따라 다양하게 꾸렸다. 이것으로 노동자들이 단결하지 못하게 하는 한편 관리하는 입장에서는 그들을 통제하기가 수�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출판사서평

★ 『미국민중사』 하워드 진 추천
★ 애니스필드-울프상 수상
★ 미국도서상 수상

“손님, 우리나라에 오신 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한두 번 듣는 질문이 아니지만 저자는 매번 움찔하고 만다. “평생 살았어요. 미국에서 태어난 걸요.” 이렇게 대답하자 택시 안이 급속히 어색해진다.
하와이 사탕수수 플랜테이션 노동자의 후손이자 이민 3세대인 저자는 택시기사가 자신을 동료 시민으로 알아보지 못한 것이 그의 탓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가 학창시절에 배웠을 ‘미국사’에는 아시아인의 역사가 생략되어 있기 때문이다.
20세기 이후 세계 질서를 좌우해온 강대국 미국의 역사는 구대륙에서의 이주와 영국제국에 대한 저항 그리고 원주민의 정복과 이주민의 동화를 통해 승리와 번영을 누려온 국가 건설의 성공담으로 알려져 왔다. 이 거대한 하나의 역사로부터 배제된 사람들, 흑인과 아시아인, 멕시코인, 유대인, 무슬림, 아일랜드 여성을 비롯한 여러 이주민들과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으레 미국의 역사에서 없는 사람으로 취급되거나 다르고 열등한 ‘타자’로 등장한다. 어느 쪽으로든 미국의 국가적 정체성을 구성하는 일원으로 여겨지지 않는다는 것이 저자가 역사학자로서, 이민자 후손으로서 느낀 것이었다. 그러나 저자는 미국과 미국인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얼마나 다양한 집단들의 절망과 꿈, 희생과 성취가 깃든 지난한 시간이었는지를 강조하며 미국사는 비유럽계 미국인들의 ‘역사들’로 다시 쓰여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은 ‘이주’와 ‘정착’을 중심으로 미국사를 엮은 새로운 관점의 역사서이다.

‘미국’ 그리고 ‘미국인’은 누구인가?
‘이주’와 ‘정착’의 역동이 만든 나라 미국

이민자들에게 줄곧 ‘무임승차자’, ‘자국민의 안전과 일자리를 위협하는 자’의 이미지를 씌우는 반이민 정서가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현실과는 달리 이 책은 값싼 노동력으로 미국 사회의 근간 산업을 떠받치며 지금까지의 미국의 풍요를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이민자들이었음을 알게 한다. 미국 사회가 여러 이민자들의 노동력을 적극적으로 필요로 한 까닭에 오늘날 미국인의 조상을 추적해보면 그중 3분의 1은 유럽이 아닌 다른 지역 출신이다. 흑인, 라티노, 아시아계, 북미 원주민…을 제외하고는 ‘미국사’와 ‘미국인’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미국’ 그리고 ‘미국인’은 누구인가?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미국의 역사 내내 중추적 소수 집단이었다. 식민지에서 플랜테이션을 운영하던 영국인들은 순전한 백인 세상을 원했기에 처음에는 백인 노동자를 선호했다. 그러나 백인 노동자들의 무장봉기가 일어나자 이들은 아프리카로 눈을 돌린다. 이들이 찾은 대상은 장차 노예가 되어 무기 소유가 금지될 사람들이었다. 노예제가 시행되던 시기는 물론 노예제가 종식된 후에도 아프리카계 미국인에게는 인종 분리와 법외 처형, 인종 폭동으로 이루어진 암울한 역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여전히 미국의 제1 가치인 자유와 평등을 향해 끈질긴 투쟁을 벌이고 있다.
아시아계 미국인은 많은 유럽 이민자들보다 더 먼저 미국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중국인은 금광 노동자 또는 철도 노동자로 와서 후에는 농장과 공장의 노동자가 되었다. 그들은 임시 노동자로는 꼭 필요한 존재였지만 영주민의 신분으로는 환영받지 못했다. 경제 불황기가 되자, 미국 의회는 중국인입국금지법을 통과시키기에 이른다.
서구에 의한 강제 개항을 겪으며 본토에서 살기 어려워진 일본인들은 하와이 사탕수수 플랜테이션 노동자로 대거 유입되었다. 그리고 그들 역시 자신들이 일군 성과에도 불구하고 미국 사회에서 시민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쓰디쓴 처지를 일찍 깨달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던 1940년대, 정부는 12만 명의 일본계 미국인을 수용소로 보내 죄수처럼 감시했다. 그들 중 3분의 2가 미국 시민이었다.
한국에서는 1884년 갑신정변 후 미국으로 갔던 지식인들과 정치인들이 있었고 1903년부터 1905년까지 하와이 사탕수수 플랜테이션 계약노동자와 가족 7,000여 명, 그리고 1910년부터 1924년까지 이들 노동자와 결혼한 신부 1,000여 명의 집단 이주가 있었다. 이후 1965년까지는 사실상 아시아계의 미국 이민이 막혀 있었지만 이 시기 한국에서 미군과 결혼한 한국 여성(약 6,000여 명)과 미국 가정으로 입양된 아동(10만 명)이나 혼혈 아동은 미국으로 이주할 수 있었다. 1965년에는 이민법 개정으로 아시아에도 이민 문호가 개방되면서 한국계 미국인의 수도 해를 거듭하며 급증했다.
1975년에는 수만 명의 베트남 난민이 전쟁을 피해 미국으로 피신하면서 다시 한번 아시아계 이민 물결이 밀려왔다. 한국, 필리핀, 인도, 캄보디아, 라오스를 비롯한 아시아계 미국인은 미국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민족 집단이 되었으며, 2050년경에는 전체 인구의 10퍼센트에 이를 것으로 예측된다.
아일랜드인들은 19세기에 대거 미국으로 이주했다. 굶주림과 집 없는 신세에 내몰려 미국으로 온 400만 명은 가톨릭 신자로서 개신교 사회에 정착하고자 했기에 적개심과 편견의 희생양이 되었다. 그러나 아시아계 이민자와는 달리 백인이라는 이유로 미국의 시민이 될 수 있었다(1970년 귀화법에 따라 백인 이민자만이 시민권을 신청할 수 있었다). 1900년경이 되자, 아일랜드계 이민자는 중산층에 진입하게 되었다.
러시아의 유대인들도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들어왔다. 당시 러시아에서는 다수를 차지한 비유대인이 소수인 유대인을 대상으로 조직적 대학살을 벌이고 있었다. 의류 공장이 빼곡한 뉴욕시 맨해튼의 로어이스트사이드에서 유대인 여성들이 노동에 뛰어들었다.
멕시코계 미국인은 미국이 멕시코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1848년에 처음으로 미국의 일원이 되었다. 멕시코인이 미국으로 이주했기 때문이 아니라 미국의 국경이 멕시코 쪽으로 옮겨갔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오늘날 멕시코계 미국인의 대다수는 이민자의 후손이다. 멕시코인들은 빈곤에서 벗어나고 일자리를 찾고자 여전히 국경을 넘어온다. 서류를 갖추지 못해 미국에서 소위 “불법 체류자”로 불리는 사람 대부분이 멕시코 출신이다.
푸에르토리코 사람들도 1898년 푸에르토리코가 미국의 식민지가 되면서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미국 시민이 되었다(그러나 대통령 및 의회 선거권은 행사하지 못한다). 그들은 20세기 중반부터 그들의 터전을 떠나 미국 본토로 이주하고 있다. 이제는 카리브해의 섬 푸에르토리코에 남은 푸에르토리코인보다는 미국에 사는 푸에르토리코인이 더 많다.
무슬림도 여러 나라에서 미국으로 들어오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전쟁으로 피폐해진 아프가니스탄에서 난민이 되어 들어온 사람들은 9.11 테러 이후 미국의 반무슬림 정서와 폭력, 그리고 고국으로 돌아갈 길이 막연해진 현실 속에서 공포를 안고 살아야 했다.
북미 원주민의 경우는 미국 사회의 모든 집단과 다르다. 그들은 유럽인이 오기 수천 년 전부터 이 땅에 살던 토박이 아메리카인이다. 유럽인은 그들에게 ‘야만인’이라는 낙인을 찍고 땅을 무력으로 빼앗았다. 인디언 토벌 작전을 이끈 군인들은 영웅 대접을 받았다. 백인은 인디언을 통치하는 것이 곧 문명의 진보라 여겼으나 인디언에게 “유럽사람은 여전히 이방인이며 외지인”일 뿐이다.

일을 찾고 자리를 잡는 과정에서 이들 집단은 서로 만나고 섞일 수밖에 없었으며, 종종 인종적 갈등에 말려들었다. 19세기 미국에서 가장 열악한 일자리를 놓고 경쟁하던 흑인과 아일랜드인의 반목이 대표적이다. 아일랜드인은 자신이 백인이라는 이유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자신은 미국 시민이라는 이유로 더 나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배 계급은 노동자들의 단결을 막고 경제적인 이득 또한 취할 수 있다는 이유로 노동자 계급 간의 분열을 조장하고 이용하기도 했다. 아일랜드 노동자들이 저임금에 맞서 투쟁을 벌이면 지배 계급은 더 저렴한 중국인 노동자를 고용해 이들을 경쟁하게 만들었다.
소수 집단들은 서로 갈등을 겪기도 했지만 지배 계급의 계략을 눈치채고 연대하기도 했다. 멕시코인과 일본인 농장 노동자는 임금 삭감에 항의하여 함께 노조를 결성하고 연대 파업에 들어갔다. 이들 노조가 전국 규모 노동조합에 가입을 요구했으나 아시아인 노조원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답변을 받자 멕시코 지부 간부는 일본인 동료 노동자를 우리와 동등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어떤 강령도 거부할 것임을 단호히 밝히기도 했다. 경제적 계급의 차원에서 인종과 문화가 서로 다른 소수 집단이 연대감을 형성한 사례였다. 이 책은 이렇듯 ‘이주’와 ‘정착’ 속 여러 가지 역동을 짚어나가며 이들이 미국 사회에 자리 잡는 과정에서 소수 집단의 이야기가 미국의 경제적·문화적 가치에 얼마나 중요하게 기여했는지 보여준다.

모든 집단이 소수가 되어가는 시대
다문화, 다민족, 다양성 속 모두의 미국사

“우리 모두 소수가 되는 겁니다.” 1997년 저자 로널드 다카키는 빌 클린턴 대통령에게 이렇게 말했다. 2021년 인구통계 자료에 따르면, 인구 조사가 시작된 이후 미국에서 처음으로 백인 인구가 감소했다고 한다. 미국 전체 인구는 증가하였으나 이는 늘어난 소수 집단 인구 덕분이며 일부 지역에서는 백인이 더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저자가 20여 년 전 내다본 대로 미국 사회는 특정 집단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던 시대를 지나 “진정 소수 집단이 모인 국가”를 향해 가고 있다.
한 나라의 역사를 다양한 내부 집단의 ‘역사들’로 다시 쓰는 것은 이민 국가인 미국에나 해당하는 예외 상황이라고 여겨질지 모른다. 그러나 한국 또한 점점 더 다문화 사회로 향하고 있는 시점에서 다문화, 다민족, 다양성의 관점에서 미국사를 이해하는 일은 우리 사회의 변화 흐름을 짚고 더 나은 지향점을 찾는 일과 무관하지 않다. 한국에서 한 명 이상의 외국계 혈통 부모를 가진 다문화 학생이 전체 학생 가운데 차지하는 비중이 올해 처음 3퍼센트를 넘겼다고 한다. 갈수록 그 비중은 커질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전체 국민 가운데 다문화적 구성원이 점점 유의미한 숫자를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여전히 이민자와 이주노동자를 ‘우리와 다른 사람’, ‘우리의 안전과 몫을 위협하는 사람’으로 여기는 시선 속에서 이 책은 역사를 넘어 근미래에 관한 힌트를 비추어줄 것이다.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