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에서 내가 주목한 건 두 연인-리페이, 두러위안-의 사랑 이야기보다는 신장 위구르 지역에 거주하는 무슬림의 이야기였다. 이들이 받는 핍박을 여주인공 두러위안의 작은 아버지, 사촌오빠가 탐욕 때문에 무슬림에게 살해당하는 장면을 통해 더불어 사는 미덕을 강조한 것으로 보였다. 두러위안의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의 공동 소유인 호수에 둑을 쌓아 아래에 사는 무슬림들의 생존을 어렵게 하는 결과가 자신들이 죽음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두러위안의 아버지, 할아버지처럼 무슬림과 더불어 사는 삶을 택했더라면 물질적 풍요로움은 덜 했을지라도 칭송을 받는 삶을 살았을 텐데 말이다. 이외에도 친구 간의 우정, 남녀 간의 사랑, 가족애, 종족을 초월한 신뢰 등의 이야기가 뛰어난 묘사력이 돋보이는 문장 속에서 전반적으로 따뜻함을 자아내는 좋은 작품이라는 생각을 했다.
* 작품에 대한 해설은 아래 책소개, 출판사 서평을 참고 바랍니다.
저자 : 린위탕(林語堂: 임어당, 1895년 10월 10일 ~ 1976년 3월 26일)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중국인으로서 언어학자, 고전문학 연구자, 번역가, 소설가 등 아주 다양한 신분을 갖고 있다. 그는 중국 푸젠성(福建省) 룽시(龍溪)의 기독교 목사 가정에서 태어나서 상하이의 기독교대학인 세인트존스대학을 나왔다. 1919년 하버드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하여 비교문학을 공부하였으며, 1923년 독일 라이프치히대학교에서 비교언어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베이징대학교에서 교수생활을 하는 한편 중국어의 로마자 병음 연구에 종사하였으며 적극적인 문필활동을 펼쳐 나갔다.
린위탕은 스스로 “두 발은 중국과 서방의 문화를 디디고 서서(兩脚踏中西文化) 한 마음으로 우주의 문장을 평한다(一心評宇宙文章)”이라고 할 만큼 동서양 문화의 교류와 융합에서 선봉 역할을 많이 하였다. 뛰어난 영어 실력을 가지고 있었던 그가 처음 미국에서 출판한 『내 나라 내 국민(My Country and My People)』(1935)은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펄벅 여사가 서문을 써서 극찬할 정도였다. 펄벅 부부의 권유로 1936년에 미국으로 건너간 후에는 주로 영어로 저술활동을 하였으며 생애 동안 30권 이상의 영문 도서를 출판하였다. 그중 1939년에 간행한 『경화연운(Moment in Peking)』으로 노벨문학상 후보에 추천되기도 하였다.
저서에 『생활의 발견』, 『북경호일』, 『폭풍우 속의 나뭇잎』, 『경화연운』 등이 있다.
책소개
장편소설 『붉은 대문』은 《경화연운》, 《폭풍 속의 나뭇잎(A Leaf in the Storm)》과 더불어 린위탕의 ‘삼부작’으로 불린다. 그러나 『붉은 대문』의 인물이나 줄거리는 다른 두 소설과 별다른 관련이 없고 상대적으로 독립적이다.
이 소설은 상하이 《신공보》의 시안 주재 기자 리페이와 사범대학 여학생 두러우안의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날 비(飛)’를 사용하는 리페이는 이름자 그대로 역마살이 끼어서 신장 위구르 지역까지 취재를 갔다가 전쟁 때문에 위험에 빠지게 된다. 두러우안은 외유내강의 여성으로 사랑하는 리페이를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한다. 두 사람은 천신만고 끝에 마침내 행복한 가정을 이루게 된다. 이 소설은 단순한 연애 소설이 아니라 여러 가지 복선을 깔고 있으며 독자들에게 많은 사색의 공간을 남겨준다.
출판사서평
『붉은 대문』은 상하이 《신공보》의 시안 주재 기자 리페이와 사범대학 여학생 두러우안의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날 비(飛)’를 사용하는 리페이는 이름자 그대로 역마살이 끼어서 신장 위구르 지역까지 취재를 갔다가 전쟁 때문에 위험에 빠지게 된다. 두러우안은 외유내강의 여성으로 사랑하는 리페이를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한다. 두 사람은 천신만고 끝에 마침내 행복한 가정을 이루게 된다.
그러나 소설은 단순한 연애 소설이 아니라 여러 가지 복선을 깔고 있으며 독자들에게 많은 사색의 공간을 남겨준다. 첫 번째는 바로 근대에 관한 작가의 시선이다. 소설에서 두러우안의 사촌인 두주런은 미국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시안에 돌아와서 근대화의 선봉장으로 군림한다. 그에게 “중국의 이상적인 모습이란 깨끗한 것과 잘사는 것, 그리고 시멘트”였다. 그는 시안의 양옥에 살면서 시멘트 공장을 경영하는 한편 호수에 수문을 설치하여 절인 생선 사업의 이익 극대화를 도모한다. 그러나 주변에서 농사를 짓는 무슬림들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아 마침내 비극적인 죽음을 당하고 만다.
두 번째는 민족문제에 대한 작가의 태도이다. 이 소설의 가장 중요한 배경은 바로 1931년부터 1934년까지 진행된 위구르 무슬림의 반란이다. 이 반란으로 말미암아 종교적·민족적 갈등은 아주 심각한 대립을 보이게 되었고, 심지어 벨라루스 군대 등 외부 세력들까지 가담하게 된다. 주인공 리페이의 시선을 통해 작가는 전쟁에 반대하고 민족 간의 상호 존중과 화합을 일관되게 주창하고 있다.
세 번째는 신분 타파에 관한 작가의 긍정적 입장이다. 소설에서 추이어윈이나 춘메이 같은 여성들은 모두 비천한 출신이다. 하지만 추이어윈은 자신의 뛰어난 재능으로 상하이 부잣집 도련님의 사랑을 받게 된다. 춘메이도 역시 두씨 집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보할 수 있는 명분을 얻고 만다. 그리고 소설의 결말이 암시하다시피 춘메이는 판원보의 구애를 받아들여 새로운 사랑과 행복을 이루게 될 전망이다. 이 소설에서 린위탕은 또 ‘유머 대사’의 호칭에 손색없는 문필을 선보였다. 소설 곳곳에 날카로운 기지와 재치 있는 위트가 넘쳐나고 있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여러 가지 복선들은 사실 오늘날의 중국 현실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점들이 상당히 많다. 독자들이 보다 깊은 사색을 얻기를 기대해마지 않는다.
목차
작가의 말 6
제1부 대부관저 11
제2부 만주 손님 141
제3부 산차이 별장 247
제4부 금지옥엽의 수난 377
제5부 란저우 465
제6부 귀환 565
역자의 말 638
책 속으로
1
리페이(李飛)는 찻집 안쪽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 큰길과 맞은편 가게들을 내다보고 있었다. 찻집 바로 맞은편은 비단과 명주실을 파는 큰 가게이다. 2월의 날씨는 몹시 추웠다. 가게는 두텁고 육중한 바람막이 커튼으로 자욱한 모래바람을 막아내고 있었다. 그 오른편은 양고기 전문 음식점이다. 여름에는 문을 활짝 열려 있었지만 지금처럼 추울 때에는 판자와 작은 덧문으로 감싸고 윗부분에 유리로 창을 만들어 안쪽을 엿볼 수 있게 해 놓는다.
노새가 끄는 수레의 바퀴 자국이 선명한 가장자리 보행로는 세찬 바람으로 먼지가 자욱하다. 비라도 내리면 흙탕물은 보행로와 아스팔트길 사이에 있는 배수구로 흘러들지 못하고 보행로로 넘쳐흘러 길게 수레바퀴 자국을 만들어 낸다. 날이 개면 산들바람이 일으킨 먼지로 다시 행인들의 얼굴은 먼지투성이가 된다.
전통의 굴레에 얽매인 노새가 끄는 낡은 수레는 중앙의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피해 여전히 보행로로 다닌다. 아마도 성 정부에서 그들더러 아스팔트 도로로 다니지 말라고 명령을 내렸거나, 아니면 평생 진흙길만 달려 온 그들의 몸에 밴 습관 때문일 수도 있다.
거리의 폭은 12미터는 족히 되었다. 리페이는 길 가운데만 아스팔트로 포장한 이유가 궁금했다. 길 전체를 포장하는 데 비용이 너무 많이 들거나, 마부 따위의 천한 계급은 평생 진흙길을 달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더군다나 쇳덩이 수레바퀴가 바닥에 깔린 조약돌을 마구 깔아뭉개서 자동차와 인력거만을 위한 아스팔트 도로를 파괴할 수도 있는 노릇이다.
길은 도중에 공사를 멈춘 것 같은 어정쩡한 모양새이다. 60~90센티미터 두께의 흙을 깔아 놓은 보행로는 도시 미관을 지저분해 보이게 한다. 그는 이런 풍경들이 몹시 눈에 거슬렸다. 중도에서 포기한 반거충이들은 언제나 꼴 보기가 싫다. 사실 방금 전까지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유서 깊은 도시인 시안(西安)에서 태어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그는 고향이 새롭게 근대화되는 모습을 늘 보고 싶을 뿐이었다.
자신의 성장 과정과 더불어 고향이 나날이 발전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매우 흥미 있는 일이었다. 학교를 다닐 때 남북대로에 처음 설치된 가로등을 보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지금도 그날의 기억을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다. 새롭게 조성된 중앙공원, 아스팔트로 포장된 몇몇 도로, 고무 타이어 인력거와 자동차 등도 모두 그를 흥분시켰다.
어린 시절 외국인을 여러 명 본 적이 있었다. 주로 루터교회의 선교사, 의사와 교사 그리고 양복바지와 셔츠를 입은 다리가 긴 유럽 관광객이나 엔지니어들이었다. 그들의 얼굴빛은 덜 익은 소고기 색깔을 꼭 닮아 있었다. 그는 소고기 피부색의 기원에 대해 사색하기도 했다.
시안은 당나라의 수도로서 전통적인 모습을 간직한 한적하고 우아한 도시였다. 그런 시안이 새로운 시대에 맞춰 눈에 띄게 변모하기 시작했다. 이곳은 내륙에 위치한 중국 서부 지역의 중요한 심장부이다. 리페이는 시안을 중국 전통의 닻이라고 불렀다. 그는 탯줄을 묻은 시안의 모든 것을 사랑했다. 시안은 조용하게 바뀌지 않았다. 새로운 시대는 풍속과 정치 그리고 사람들의 옷차림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변화는 급격했고 곤혹스러웠다.
리페이가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멀지 않은 곳에서 악대의 연주 소리가 들려왔다. 오늘은 금요일이고 공휴일도 아닌데 무슨 행사일까? 궁금함을 견딜 수 없어 창가로 자리를 옮겨 살펴봤다. 경찰 악대가 앞서고 그 뒤로 한 무리 학생들이 둥다제(東大街)를 향해 행진하는 중이었다.
이 거리는 쑨중산(孫中山) 선생을 기념하기 위해 중산루(中山路)로 공식 개명되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둥다제일 뿐이었다. 국민당을 열성적으로 지지하던 어느 젊은 호사가가 중산루를 여전히 둥다제라고 부르는 사람들을 경찰이 처벌해야 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신문사에 보냈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경찰들마저 공문서 외에는 여전히 ‘둥다제’라고 하고 있으니 말이다.
리페이는 거리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것은 살아 움직이는 한 폭의 그림이었다. 먼지가 날려 학생들의 얼굴에 내려앉았고 햇살이 그들을 비추고 있었다. 높이 치켜든 대나무 장대에는 하얀 현수막이 걸려 있었고 학생들이 손에 쥔 종이 깃발도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모두 거창한 문구들만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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