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의 중심인물은 전처만 영감의 장손녀인 전태임과 그의 남편인 이종상이다. 이종상은 이태임의 할아버지 전처만이 찢어지게 가난하던 소작농의 아들 시절, 향반이던 할아버지 이 초시 때문에 아버지가 한 눈을 잃은 원한을 품고 인삼 밀매에 뛰어들어 거대한 부를 축적한다. 대신 향반 이 초시는 집안이 몰락하여 손자 종상은 어린 시절 전처만의 둘째 아들 가게에서 수습으로 일을 배우는데 이때 전처만의 눈에 뜨여 전처만의 소실인 해주댁에서 머슴일을 하게 된다. 종상은 전처만의 노여움과 아낌을 함께 받는 인물이 되는데 이의 계기는 인삼을 도굴하는 일본인의 증거를 잡아 관아에 고발했으나 오히려 고문을 당하게 된 데서 비롯된다. 전처만 영감은 종상을 집으로 데려와 치료를 받게 하는데 서울-경성-에 있는 양의에게까지 치료받게 하여 다친 다리까지 고쳐준다. 전처만 영감은 종상의 치료 결과를 보지 못하고 세상을 뜨는데 종상이 손녀 사위가 되리라는 짐작은 어렴풋이마나 했을 것이다. 그정도로 손녀 태임이 종상에게 쏟는 관심이 큰 걸 봤기 때문에.
태임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동복이부[同腹 異父:어머니는 같지만 아버지가 다름]인 태남을 때가 되면 챙겨 돌보라는 당부를 받는데 이 과정이 참으로 민망하다.
태임의 어머니는 전처만 영감의 장자와 결혼하는데 원래 병약한 몸인 것을 손자라도 보려는 전처만 염감 부부의 욕심 때문에 거의 돈에 팔려 시집을 온다. 그런데 남편이 태임 하나만 낳게 하고 일찍 죽어 거의 생과부로 지내게 된다. 태임 모는 삶의 의욕이 없는 채로 지내던 중 친정에 들렀다가 머슴 칠득을 범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여기에서 딸 태임의 동복이부인 태남을 낳게 되는데 전처만 영감은 이 태남의 뒷바라지를 태임에게 맡긴 것이다. 사실 며느리가 불륜을 저질러 낳은 자식이기에 전씨 집안하고는 아무 관계도 없는데 당부를 하고 세상을 떠난 것이다. 태남은 태임의 외삼촌 내외에 의해 배서방이란 가난한 농부 집에 넉넉한 양육비와 함께 맡겨지는데 배서방 부부는 귀한 양반집 자손이라는 말에 너무 귀하게 키워 비뚤어지고 만다. 그러나 태임은 망나니로 자란 태남을 데려와 출생의 비밀을 알려주게 되고 이때부터 사람이 변한다. 이 과정에서 아버지 재득을 만나 임종까지 지켜본 게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태남은 학교 스승이었으나 독립운동을 하러 만주로 떠난 스승의 영향을 받는데 종상의 양말 사업을 돕다가 만주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뒷바라지하면서 스승의 딸 진달래와도 결혼하여 경국, 경순 두 자녀를 둔다. 그런데 스승이자 장인인 진동열 선생이 일본군에게 비참한 죽임을 당하고 이에 충격을 받은 아내 달래는 정신이상이 되어 뱃속에 있던 딸 경순이 비정상적인 상태로 태어난다. 이때 친일파이면서 종상의 친구인 박승재의 며느리가 종상의 딸 여란과 같이 오는데 여란은 일본으로 가서 상철과 맺어지고 혜정은 태남과 두 아이를 돌보다가 진달래가 죽고나서 밀정 마도섭의 중신으로 부부로 맺어진다. 박승재의 며느리 혜정이 이혼하고 만주로 간 이유는 원래 원치 않는 불행한 결혼 생활이었는데 시댁에서 하숙을 하면서 학교를 다니던 종상의 딸 여란이 자기 남편에게 겁탈을 당하는 것을 모면한 사건이 생겼을 때 이를 밖에 안 알리려는 시아버지 박승재에게 이혼시켜 달라는 조건을 붙인 것이다. 아내 진달래가 죽고 계속 만주에서 종상, 태임의 도음을 받아 독립운동을 지원하던 태남은 밀정 마도섭의 덫에 걸려 매형 종상과 엿장수 진노인과 함께 옥에 갇히고 종상은 2년, 태남과 엿장수 신영감은 5년 형을 받는다. 학생시절부터 태임에게 열등의식을 갖고 있던 박승재는 이런 식으로 태임, 종상 부부에게 복수 아닌 복수를 한 것인데 뒤늦게 후회를 하고 종상의 보석을 위해 힘써 형을 다 살지 않고 나오게는 하지만 종상은 3개월만에 세상을 뜨고 마는데 이때가 63세이다. 태남은 출옥 후 누이 태임의 곁으로 돌아가 든든한 기둥이 되는데 이때 딸 경순이 정신대로 끌려가는 걸 피하려고 벼낱가리에 숨은 연습을 하는데 공교롭게도 조선인 순사보조가 찔러보는 칼에 찔려 죽고 만다. 작가는 일제 강점기 시절 있었던 정신대 문제를 이렇게 짚어 낸 것이다. 사실 이 작품에서 태임네 일가는 일제의 만행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설정이다. 그 이유가 개성 지역의 내로라하는 지주 집안인 것이 크게 작용한 것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데 징용 문제는 서삼촌 후성의 아들 광표가 징용으로 차출되었으나 도망 갔다가 해방 후 나타나는 설정으로 언급하고 있다. 작가는 이외에도 조선 말기부터 일제 강점기에 있었던 굵직굵직한 사건을 작품 중간중간에 언급하여 시대상을 조망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이 작품을 쓰려고 역사 공부를 많이 했음을 알 수 있었다. 심지어 1923년 관동대지진때 있었던 조선인 학살 문제도 다루고 있는데 이 사건은 시대의 흐름과 관계없이 자신들만의 여유로운 삶을 사는 여란부부를 태임이 힐책하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태임 부부는 지주이면서 성공한 사업가의 삶을 사는데 주변 친척들은 꼭 그렇지는 않아 집안이 서서히 몰락하는 과정을 밟는다. 특히 해방 후 북한에 공산 정권이 들어서면서 가속되는데 이때 소련군의 만행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고 있지만 정작 주체인 김일성 정권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어 이 점이 좀 아쉽다는 생각을 했다. 태임네가 친일을 했다고는 하지만 적지 않은 돈을 동생 태남을 통해 독립운동 자금으로 제공했고 남편 종상도 이게 발각되어 옥고를 치르고 출옥 후 3개월 만에 죽고 마는데 말이다.토지개혁은 남, 북 공히 실시되었으니 북한이 먼저였는데 무상몰수, 무상분배였다. 대지주였던 태임네는 당연히 피해를 입었을 것이넫 이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 이부동생 태남의 토지는 그대로 유지된 것으로 나오는데 이에 대한 언급이 항일독립운도을 한 것으로 추특할 수 있겠는데 이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도 없다.
[여담] 이 작품을 읽으면서 작가의 물흐르듯 전개하는 글솜씨에 내내 감탄했는데 이게 원고지 세대[개인 컴퓨터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전인 2000년 이전에 글을 쓴 세대: 본인 사견]인 때무에 문장 하나하나에 공을 들인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컴퓨터로 글을 쓸 경우 원고지보다 수정이 쉬워 문장을 쓰는데 들이는 노력이 상대적으로 덜하다는 뜻
[참고 1] "소설의 제목 ‘미망(未忘)’의 뜻은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음’이다. 그리고 소설 속에는 종종 제목의 동음이의어인 ‘미망(迷妄)’, 즉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는 상태’가 쓰이는 것을 볼 수 있다. 인물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의 시기에 닥쳐오는 혼란과 변화를 구시대(조선)보다 자유롭게 느끼며 폭발하는 개인적 욕망을 마주하면서도, 나라의 흥망 앞에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하는 일 같은 ‘떳떳한 것’에 대해 거듭 고민한다는 점에서 그 단어는 운명 앞에서 헤매는 인물들의 마음을 절실하게 나타낸다."
“내 작품 중 혹시 오십 년이나 백 년 후에도 읽힐 게 있다면 『미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작가의 말]
[출처:인터넷 교보문고]
노년층 인구가 천만 명을 넘었다는데 이를 고려한 출판 문화가 아쉽습니다. 다른 인문서는 그런대로 활자 크기가 읽을 만한데 문학 작품은 활자 크기를 너무 작게 출판하는군요. 읽고 싶은데 부득이 포기한 책이 너무 많습니다. 활자 크기가 작은 책을 접할 때마다 출판사에 전화해서 노년층도 고려해서 활자 크기를 좀 크게 만들어달라고 부탁하지만 이미 때가 늦은 것이고 또 뒤늦게나마 반영해 줄지도 의문이더군요. 어느 인문서 전문 출판사는 딱 잘라서 그럴 생각이 없다고 하던데 제작비 문제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몸을 젊은 시절로 되돌릴 수는 없으니 그저 아쉬울 뿐입니다. 혹시 출판사에서 이 글을 읽는다면 활자 크기를 좀 고려해 주면 좋겠네요. 노령 인구 천만 시대인데 이들을 배려하는 경영마인드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1931년 경기도 개풍군에서 태어나 소학교를 입학하기 전 홀어머니, 오빠와 함께 서울로 상경했다. 숙명여고를 거쳐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했지만, 6ㆍ25전쟁으로 학업을 중단했다. 1953년 결혼하여 1남 4녀를 두었다. 1970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나목』이 당선되어 불혹의 나이로 문단에 데뷔했다. 이후 2011년 1월 담낭암으로 타계하기까지 쉼 없이 작품 활동을 하며 40여 년간 80여 편의 단편과 15편의 장편소설을 포함, 동화, 산문집, 콩트집 등 다양한 분야의 작품을 남겼다.
모진 삶이 안겨준 상흔을 글로 풀어내고자 작가의 길을 시작했지만, 그것에 머무르지 않았다. 누구나 한번쯤 겪어봤을 내면의 은밀한 갈등을 짚어내고, 중산층의 허위의식, 여성 평등 등의 사회 문제를 특유의 신랄함으로 드러냈다. 그럼에도 결국 글이 가리키는 방향은 희망과 사랑이었다. 글은 삶을 정면으로 직시하여 아픔과 모순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기어코 따뜻한 인간성을 지켜내고야 만다. 오직 진실로 켜켜이 쌓아 올린 그의 작품 세계는, 치열하게 인간적이었던, 그래서 그리운 삶을 대변하고 있다. 2011년 1월 22일-향년 80세- 타계했다.[인터넷 교보문고에서 발췌]
목차
1권
초판 작가의 말 5
1 전씨가의 사람들 11
2 동해랑의 낙조 104
3 묵은 것과 새로운 것 258
2권
4 풍운의 화촉 7
5 어머니의 아들 255
6 풍진세상 371
3권
7 적선정 나으리 댁 사람들 7
8 아들딸의 시대 162
9 인삼장의 연회 297
종장 429
책 속으로
그는 태임이가 이 나라 여자들과는 다르게 살길 바랐다. 이 나라 여자들이 빈부, 귀천에 상관없이 공통으로 쓰고 있는 숙명적인 굴레에서 태임이만은 풀어 주고 싶었다. 그러나 여태까지 여자들이 살아온 것과 다른 삶이 어떤 것인지 또 어떻게 그런 삶을 예비해야 되는지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미구에 여자들의 삶도 달라지게 되리란 막연한 예감을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나라 안팎에 감도는 심상치 않은 풍운이 다만 왕의 성이 바뀌는 역성혁명으로 끝날 것 같지 않다는 예감과도 상통하는 그만의 현실감각이었다.
-1권, 34쪽
“그 사람은 당장 숨이 넘어갈지도 모를 만큼 위중한 것 같았어요. 그런 중에도 헛소리를 지르는 게 밖에까지 들렸어요. 그 도적놈들은 왜놈들이었다고 나막신 신은 걸 똑똑히 보았노라고 외치더군요. 그대로 죽게 할 순 없었어요. 누군가가 그의 말을 믿어 주지 않으면 그는 아마 죽어서도 눈을 못 감고 원귀가 되어 떠돌아다닐 것 같았어요. 그때 그에게 필요한 건 약이나 침보다 그의 말을 참말로 믿어 주는 사람이었어요. 전 들어가서 그에게 다짐했어요. 그의 말을 믿는다고, 그가 죽어도 내가 그 말을 증거하겠노라고요. 그게 뭐가 나빠요, 할아버지.”
-1권, 124쪽
좋은 날씨를 풍파 없이 화락한 금슬로 비유하고 바라는 것처럼 흔하고 듣기 좋은 덕담도 없었다. 이제부터 좋은 음식과 향기로운 술과 입심 좋은 덕담이 넘칠 차례였다.
홀로 승재만이 고약한 생각에 시달리고 있었다. 입신양명에 대한 사랑이 남녀 간의 사랑보다 훨씬 못할지 모른다는, 여지껏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새로운 의구심이 그것이었다. 그건 도저히 위로받을 수 없는 열등감이었다. 같은 처지로 알고 동고동락하던 종상이가 하룻밤 새의 개성 부자 노릇을 하는 걸 보고 느낀 배반감과 열등감에는 그렇게도 신효한 치료제가 돼 주던 출세에의 집념이 이렇게 보잘것없어질 줄이야.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 비하면 그건 구질구질하고 징그러운 욕심에 불과했다.
-2권, 137쪽
떡을 따라 우루루 안으로 들어온 여자들은 어른, 아이, 상전, 드난꾼 가릴 것 없이 목판을 하나씩 차지하고 둘러앉아 조랑이떡을 만들었다. 대개는 어른들이 손에 기름을 발라 가며 손가락 굵기로 가늘고 길게 밀어 놓으면 계집애들은 그걸 가져다가 날이 무딘 나무칼로 허리를 잘룩하게 눌러 주면서 잘라 내면 꼭 누에고치 모양의 조랑이떡이 되었다.
가래떡에 비해 손이 많이 가는 대신 나중에 썰 필요가 없이 그대로 떡국을 끓일 수 있는 송도 지방 고유의 떡 만들기였다. 손은 많이 가지만 특별한 솜씨를 요하지 않아 어른 아이가 함께 어우러져 하면서 구수한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는 것도 조랑떡 만드는 재미였다.
-2권, 443쪽
“기미년 만세 통에 여란이 학생은 서울에 없었죠? 우리 집은 종로통 복청다리 근처니까 만세 통 한복판에 산 셈인데 그때 서울 장안이 어땠는 줄 알아요. 참 장했다우. 특히 학생들 장한 건 말도 못 해요. 학생들이니까 그렇게 일제히 한꺼번에 일어날 수가 있지 백성들이야 마음은 있어도 제각각이지 합칠 재간이 없잖아요. 여학생들도 남학생들과 똑같이 발을 구르고 두 손을 높이 들어 태극기를 흔들고 만세를 부르는데 정말 장합디다. 조선 사람이 아니면 모를까 그걸 보고 같이 따라서 만세를 안 부를 수가 없었으니까. 다리 밑에서 거지가 쪽박을 두드리며 만세를 부르지 않나, 부엌에서 밥 짓던 여편네가 부지깽이를 휘두르며 뛰쳐나오질 않나, 그동안 가만히 죽어 지낸 게 부끄럽고 원통해서 제각기 나 여기 살아 있다고 외치고 나서는데 그 힘에 천지가 진동하고 고목나무도 살아나 춤을 추는 것 같더라구요.”
-3권, 45쪽
종상이에게 만주 땅은, 만주 땅 중에서도 조선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산다는 간도 지방은 꿈의 고장이었다. 힘이 부쳐서 이루 다 개간할 수 없다는 무진장 넓고 기름진 땅, 조선 사람이 모여 사는데도 일본의 경찰력이 미치지 않는 자치지역, 독립투사들의 의기가 충천하고 민족의 기상이 싱싱하게 살아 숨쉬는 곳, 그뿐일까 무력으로 당당하게 일본군과 싸워 대승한 별천지였다. 바로 두만강 너머에 그런 땅이 있다는 건 기적 같은 일이었고 언젠가는 마침내 그 기적적 기운이 햇살처럼 조선 땅에 퍼질 것을 믿고 싶었고 미리 확인해 두고 싶었다.
-3권, 89쪽
출판사서평
“내가 만들어 낸 인물들만이라도 그 그리운 산하를 거침없이 누비며
운명과 싸워 흥하고 망하고 울고 웃게 하고 싶다는 건
내 오랜 작가적 소망이자 내 나름의 귀향의 방법이었다.”-박완서
조선 말부터 일제강점기, 한국전쟁을 거쳐 분단에 이르기까지
박완서가 채집하고 체화한 한반도의 이야기
『미망』은 박완서 작가의 소망이기도 했다. 초판 작가의 말에서 박완서는 이제는 가지 못하는 고향 개성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내며 이렇게 쓴다. “내가 만들어 낸 인물들만이라도 그 그리운 산하를 거침없이 누비며 운명과 싸워 흥하고 망하고 울고 웃게 하고 싶다는 건 내 오랜 작가적 소망이자 내 나름의 귀향의 방법이었다.” 이를 증명하듯 소설에는 고향에 대한 작가의 커다란 애정을 보여 주는 개성 사람의 특질과 그 고장만의 상업과 사업가들의 방식, 특히 개성 지방의 물과 흙으로 키워 낸 인삼 농사에 대한 장면들이 눈앞에 그려지듯 생생하게 담겨 있다.
이렇듯 『미망』은 이제는 가지 못하는 고향을 되살리는 동시에 한 집안의 일대기를 통해 한반도의 역사를 보여 주는 소설이다. 소설에는 대한민국 이전의 조선, 그 이전의 고려 시절부터 맥을 이어 온 역사와 경제, 그리고 구시대의 가족과 그로부터 뻗어 나가 변해 가는 아들딸들의 시대에 대한 통찰이 담겨 있다. 역사의 큰 줄기를 관통해 가는 와중에 박완서 작가 특유의 여성주의적 관점에 더해 인물에 대한 냉철하고 가식 없는 평가, 욕망에 대한 가차 없는 판단이 빛을 발하는 부분들이 넘쳐난다. 말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집필했음에도, 『미망』 속 박완서의 문장에는 결연하고 전진하는 듯한 힘이 서려 있다.
시대의 바람에 속절없이 나부꼈던
잎새 같은 사람들이 남긴 잊을 수 없는 눈빛
『미망』의 주요 등장인물은 신분제가 들썩이던 시절 비범한 상업 감각으로 인삼 농사와 장사를 통해 집안의 부를 축적한 전처만 영감과, 그가 유난히 애틋하게 아끼는 손녀 태임, 그리고 태임의 남편이 되는 쇠락한 양반 가문 출신 종상, 태임의 어머니가 친정의 하인과 간음하여 낳은 태임의 이부 동생 태남, 이후 시간이 흘러 태임과 종상이 결혼하여 낳은 딸 여란으로, 이외에도 이 가문을 중심으로 4대에 걸친 인물들이 혼란한 역사 속에서 각자의 신념과 욕망을 찾아 헤매며, 그 와중에 서로 반목하고 연민하거나 경쟁하고 동지가 된다.
소설의 제목 ‘미망(未忘)’의 뜻은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음’이다. 그리고 소설 속에는 종종 제목의 동음이의어인 ‘미망(迷妄)’, 즉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는 상태’가 쓰이는 것을 볼 수 있다. 인물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의 시기에 닥쳐오는 혼란과 변화를 구시대(조선)보다 자유롭게 느끼며 폭발하는 개인적 욕망을 마주하면서도, 나라의 흥망 앞에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하는 일 같은 ‘떳떳한 것’에 대해 거듭 고민한다는 점에서 그 단어는 운명 앞에서 헤매는 인물들의 마음을 절실하게 나타낸다. 작가가 끝까지 밀고 나간 이 세밀하면서도 우직한 소설을 그때보다 먼 훗날의, 지금의 독자들이 함께 체험하기를 권한다.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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