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도와 얀 스텐(Jan St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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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그림]서당의 등진 소년은 어떤 표정일까?
매를 든 선생님과 눈물 훔치는 아이 . 쌍둥이 같은 그림 한 쌍
화폭에 깃든 학생 웃음 . 새로운 시민사회 향한 신인류의 활력 담아내
<마을학교 선생님> 얀 스텐, 1663~65, 109×81cm, 유화, 아일랜드 국립미술관
얀 스텐은 ‘서양의 김홍도’고, 김홍도는 ‘한국의 얀 스텐’이다. 두 화가는 지구 반대편에서 백년의 시차를 두고 살았지만 많은 점에서 비교된다. 특히 두 화가는 자신이 속한 세계에서 풍속화를 새로운 회화 장르로 정립시켰다는 점에서 세계미술사에서 동등한 평가를 받을 만하다. 두 화가의 유사점은 심지어 화풍으로도 이어지는데, 얀 스텐의 ‘마을학교 선생님’과 김홍도의 ‘서당’은 거의 쌍둥이라 할 만큼 많이 닮았다. 선생님은 매를 들고 있고, 학생은 울고 있다. 얀 스텐의 그림은 막 손바닥을 맞고 있는 장면이고, 김홍도의 그림에선 종아리를 맞으려는 학동이 대님을 풀고 있다. 한 손으로 눈물을 훔치는 동작은 완전히 같아 보인다. 등장인물 수도 거의 같고, 그림 한 쪽에 선생님이 자리하고 반대편에 학생들을 배치한 구도까지 같다. 두 그림 모두 체벌의 이유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는 점에서도 비슷하다.
<서당> 김홍도, 18세기, 27×22.7cm, 지본담채, 국립중앙박물관
얀 스텐의 그림 앞쪽에는 개발새발 써놓은 시험지가 뒹굴고 있다. 학생이 쪽지시험에서 낙제점을 받은 것이다. 김홍도의 학생은 아마도 전날 배운 글을 배송(背誦)하지 못해 회초리를 맞을 기세다. 조선시대 서당에선 공부 시작 전에 훈장 선생님을 등지고 전날 배운 것을 암송하는 일일 테스트가 있었다. 회초리를 맞을 생각에 미리 겁을 먹고 눈물을 머금는 아이의 주변 학생들 표정은 모두 밝다. 이들은 모두 시험에 합격했거나, 암송에 자신이 넘쳐 보인다. 얀 스텐의 그림에서도 같은 설정을 찾을 수 있다. 울보 학생 옆에 서있는 여학생이 그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이 아이의 얼굴에 담긴 미소가 시험에 대한 자신감을 보여 준다. 두 화가 모두 공부 안하는 학생에 대한 엄격한 훈육을 그림의 주제로 삼고 있다. 그림을 이렇게 읽다보면 새로운 디테일에도 눈이 간다. 얀 스텐의 그림 속에는 선생님의 바로 옆에 서서 이 장면을 바라보는 어린 아이가 있다. 아마도 학급에서 제일 어린 학생으로 보이는데,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우는 학생을 향해 맺혀 있다. 눈앞에 벌어지는 광경을 통해 뭔가 깨달은 바가 있을 것이다.
같은 역할을 하는 학생을 김홍도의 그림 속에서도 찾을 수 있다. 그림 맨 아래에서 유일하게 우리를 향해 등지고 있는 학생이다. 왜소한 몸 크기 탓에 나이가 제일 어린 학생으로 보이는데 훈장 선생님과 우는 학동을 향해 머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있다. 흥미롭게도 우리는 이 아이의 표정을 알 수는 없다. 김홍도는 이 아이가 어떻게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을까 우리에게 상상해보라고 한다. 김홍도가 그림 속에 많은 힌트를 줬지만 정답은 얀 스텐의 그림에 나와 있지 않을까한다. 얀 스텐의 그림 속에 있는 어린 학생의 초롱초롱한 두 눈이 아마도 김홍도의 어린 소년의 눈일 것이다. 두 아이의 생각을 말풍선으로 담는다면 ‘나는 열심히 공부해서 저런 학생이 되지 말아야지’ 정도가 될 것이다.
서양의 풍속화나 한국의 풍속화 모두 중세적 삶이 새롭게 재편되는 시점에 태어났다. 얀 스텐이 그린 학교 풍속화가 일반 시민교육으로 확대된 네덜란드의 교육 현장을 담아낸 것처럼, 김홍도의 학교 풍속화도 정조대왕 치세 하에서 평민들에게까지 확대된 교육의 새로운 지평을 잡아내고 있다. 그러니 두 그림 속에 배어 있는 학생들의 웃음소리는 새로운 시민사회로 나가는 신인류의 활력인 셈이다. (한국교직원신문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김홍도 (金弘道) 1745 ~ 1806?
조선시대의 화가. 영.정조의 문예부흥기부터 순조 연간 초기에 활동했다. 어린 시절 강세황의 지도를 받아 그림을 그렸고, 그의 추천으로 도화서 화원이 되어 정조의 신임 속에 당대 최고의 화가로 자리 잡았다. 산수, 인물, 도석, 불화, 화조, 풍속 등 모든 장르에 능하였지만, 특히 산수화와 풍속화에서 뛰어난 작품을 남겼다.
얀 스테인 (Jan Steen) 1626 ~ 1679. 2. 3 네덜란드
17세기 네덜란드의 풍속화가. 네덜란드의 여러 도시를 이동하며 작품 활동을 펼쳐 지역 화파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양식을 구축했다. 농민이나 중산층의 꾸밈없는 생활 정경을 위트와 해학으로 그린 그의 작품은 떠들썩한 웃음이 있는 동시에 현실에 대한 자각과 도덕적 비평의 뜻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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