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ssic Music 의 殿堂 Arthill : 명화와 함께하는 명곡
☆ 슈만의 피아노 5중주 Op.44 vs William Bouguereau ☆
William Bouguereau (1825-1905):
part 2
Robert Schumann (1810-1856, 독일)
'슈만'은 1810년 6월 8일 독일 작센주의 츠비카우에서 태어나 1856년 7월 29일 엔데니히의 정신병원
에서 46세로 세상을 떠난, 독일 낭만주의 작곡가이다.
'슈만'은 라인강에 몸을 던져 스스로 자살을 기도하고, 사랑하는 클라라와 결혼하기 위해 은사인 동시에
장차 장인이 될 뷔이크와 법정에서 대결하는 등, 그의 전기에 심심치 않은 화제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사생활이 다사 다난 하기도 했으나 그는 낭만주의 음악을 위해서도 선 두에서 싸웠고 또 많은 업적도 남
겼다. 그러기에 '슈만'하면 독일 낭만파 음악의 대표적인 작곡가로 지목하게 되는 것이다.
'슈만'은 소년 시절부터 쟌 파울이라든가 호프만등의 문학작품을 가까이 함으로써, 낭만적인 환상을 풍부히
하고 감정을 윤택하게 만들었다. 자기 자신이 낭만적인 시를 쓰기도 하여, 그 의 음악은 자연 낭만적인
시정이 넘치게 되었다. 따라서 '슈만'의 음악은 순수한 음악적인 구 성보다는, 시적으로 노래를 하고 자기
의 낭만적인 환상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슈만'은 같은 시대의 리스트나 바그너 처럼 기교주의나 화려한
외면을 꾸미는 방향에는 공감을 갖지 못했고, 오히려 바하나 베토벤, 슈베르트 등으로 이어 내려온 전통
에 입각한 자기 나름의 방향에서 창작하는 것을 사명으로 생각했다. 한편 '슈만'의 음악은 규모가 큰 곡에
있어서는 고전적인 구성에 집착된 느낌도 있고, 피아노 외에는 악기의 취급이나 균형이 미숙하게 다루어
지며, 특히 관현악의 기교에 숙달되지 못하여 높이 평가되지는 않지만 내객에 내포된 낭만적인 환상과 정
열, 그리고 꿈과 동 경은 대단히 신중한 것이다.
'슈만'은 음악에 때해서는 조숙하여 7살때에는 교회의 오르간주자로부터 지도를 받은 것을 비롯해서 점
차 음악에 흥미를 가져 작곡도 하게 되었다. 부친은 음악 공부에 비교적 이해하는 태도였지만, 모친은 음
악가의 장래성에 불안을 느껴 음악 전공을 반대하였다. 그러다가 '슈만'이 16세때 누님이 정신병으로 죽
었고 이어 부친이 세상을 떠나자, 그는 보다 내성적이고 몽상적으로 되어 문학과 음악에 인생의 위안을
찾았다. 모친은 그를 법률가로 입신시키기 위해 라이츠찌히에서 법률공부를 시켰으나, 본인은 오히려 철
학이라든가 역사에 흥미를 가졌고, 프리드리히 뷔이크 밑에서 본격적인 피아노 공부를 시작했다. 이때 뷔
이크의 딸인 천재적인 피아니스트 클라라와 알게 되었다.
1830년 '슈만'은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연주를 듣고 감격한 나머지 피아노 연주자가 될 것을 결심하고, 모
친의 승낙을 얻어 뷔이크의 지도를 다시 받아 음악을 전공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미 20살이 된 '슈만'은
손가락이 잘 돌지 않아 너무 무리한 훈련을 한 결과 손가락을 다쳐서 사용불능이 되자 작곡으로 방향을
돌려 지휘자인 도른 에게 이론을 배웠고 바하의 작품을 연구하였다. 그리고 한편 피아노곡 등 작곡에도
열을 내었다. 1843년에는 멘델스존이 창립한 라이프찌히 음악원에서 교편을 잡았고 1847년에는 합창단
의 지휘자로, 그리고 1850년에는 <듓 세르돌르프>시의 관현악단과 합창단의 지휘자로 취임했다. 이러는
사이에도 창작에는 쉬지 않고 정열을 쏟아 많은 작품을 썼으나 정신병이 점점 악 화되어 1854년 2월 27
일에 라인 강에 투신자살을 기도했다가 구조되어 1856년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엔데니히 정신병원에서 보냈다.
<주요작품> "여인의 일생과 사랑" [1840] "시인의 사랑" [1840] "가곡집" [1840] "아베그 변주곡" [1830] "환
상 소곡집" [1837] "어린이의 정경" [1838] "낙원과 페리" [1843] "파우스트에서의 한 장면" [1853] "피아노
5중주 e 장조" [1842] (음악설명:웹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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