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ssy, Suite Bergamasque
드뷔시 ‘베르가마스크 모음곡’
Claude Debussy
1862-1918
Bruno Canino, piano
Sapienza - Università di Roma
1996
Bruno Canino - Debussy, Suite Bergamasque
이탈리아의 피아니스트 브루노 카니노(1935~ )는 1956년과 1958년에 부조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대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Trio di Milano의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드뷔시의 피아노 작품 전곡을 최초로 CD로 발표하였습니다.
프랑스 인상주의 음악을 대표하는 클로드 드뷔시의 <베르가마스크 모음곡>은 특유의 아름답고 간결한 멜로디로 그의 피아노 작품 가운데 가장 높은 인기를 누릴 뿐만 아니라, 그의 프랑스적 취향을 가장 직설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작으로 손꼽을 수 있다. 한편 조아키노 로시니의 유명한 명제인 ‘노년의 과오’를 인용하자면, 이 작품은 드뷔시의 ‘유년의 과오’라고도 말할 수 있을 듯하다.
아름답고 간결한 멜로디, 프랑스적 취향이 드러난 작품
‘프렐류드’(Prélude), ‘미뉴에트’(Menuet), ‘달빛’(Clair de lune), ‘파스피에’(Passepied) ― 이상의 네 개의 곡을 모아놓은 이 모음곡은 드뷔시가 23세인 1890년에 작곡했는데 이후 1905년에 돼서야 비로소 처음으로 출판되었다. 같은 해 작곡한 <마주르카>(Mazurka) 역시 1905년에 출판되었는데, 드뷔시는 자신이 젊었을 때 작곡한 작품들의 한계를 깨닫고 있었다. 그래서 시대 흐름에 따른 관점의 변화에 의거해 작품에 철저한 비판과 수정을 가했고, 그 후에 뒤늦게 출판하게 된 것이다. 모차르트에 비견할 만한 천재였으나 식도락의 즐거움에 빠져 30대 중반에 작곡을 중단한 로시니에게는 늙음 그 자체가 죄였겠지만, 드뷔시에게는 고유의 음악어법을 발견하기 이전, 젊음 그 자체가 과오였으리라. ▶프랑스의 시인 폴 베를렌. 드뷔시는 베를렌의 시집 <우아한 향연>을 참고해 곡의 제목을 붙였다.
안타깝게도 이 작품이 처음에 얼마나 작곡되었는지, 이후 출판된 무렵에는 어떤 부분이 수정되었는지 자세히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두 개 정도의 작품 제목이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원래 ‘파스피에’는 ‘파반’으로, ‘달빛’은 ‘감상적인 프롬나드’로 제목이 붙여져 있었다. 이들 원제는 프랑스의 시인 폴 베를렌의 시집 <우아한 향연>(Fêtes galantes) 중 ‘세레나데’에 나타난 언어 논리를 음악의 세계를 통해 암시하고 있으며, 드뷔시는 이 시집의 유명한 한 행을 참고해 곡 제목을 붙였다. 또한 <베르가마스크 모음곡>은 17세기 음악의 분위기와 프랑스 클라브생 주자들의 명석하고 즐거운 양식에 바탕을 두고 있는 곡이다. 그런 만큼 그 시대에 대한 동경과 아이러니를 섞어내 프랑스적 혼합체를 만들어내고자 했던 드뷔시의 신고전주의적 의도 또한 엿보이는 작품이다.
세기가 전환될 당시 드뷔시의 창작열은 불타올랐던 반면 개인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1894년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과 1900년 <녹턴>이 초연되며 대성공을 거두어 작곡가로서의 위상을 확립할 수 있었고, 1902년 오페라 <펠레아스와 멜리장드>가 대혼란 속에 초연된 이후 진정한 대가로 존경을 받게 되는 등 승승장구의 시기를 걸었다. 그러나 1903년 아내인 릴리 텍시에가 자살을 꾀할 정도로 아름답고 총명한 음악가이기도 한 엠마 바르다크와 사랑에 빠진 그는 언론과 친구들로부터 버림받아 사회로부터 매장 당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이 시기의 혼란은 그에게 내면으로 침잠해 들어가 창작의 원동력을 발견할 수 있었고, 그 결과는 교향시 <바다>에서 찬연한 모습으로 드러난다.
젊은 시절 바그너에 열광하고 무소륵스키에 감동받으며 자바와 일본 문화와 같은 이국적인 취향에 자극을 받았던 드뷔시는, 이후 단번에 기능적인 혁신가로 자신의 정체성을 극적으로 바꾸었다. 그는 쇤베르크처럼 조성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특정 화성의 울림과 그 기능을 중시했다. 그 결과 드뷔시는 ‘음색’을 음악의 중요한 요소로 새롭게 발견했고, 풍부하고 무한한 표현력을 갖춘 독자적인 음악어법을 구사하게 되었다.
Claudio Arrau - Debussy, 'Clair de lune' from "Suite Bergamasque"
Claudio Arrau, piano
La Chaux-de-Fonds, Swiss
1991.01.03
추천음반
1. 신고전주의적인 엄격함이 강조된 알렉시스 바이젠베르크의 녹음은 톤과 구조에 대한 완벽한 절제가 돋보이는 명연(DG)으로 강력하게 추천할 만하다.
2. 가장 프랑스적인 에스프리를 머금고 있는 연주로는 파스칼 로제의 연주(ONYX)를 꼽을 수 있다. 그는 이전에 DECCA에서 녹음한 적이 있는데, 이보다는 한층 원숙하고 개성적인 ONYX 녹음을 추천하고 싶다.
3. 고전적인 명연으로는 발터 기제킹의 녹음(EMI)과 현대 프랑스 피아니즘의 최강자인 장-이브 티보데의 연주(DECCA) 또한 훌륭하다.
글 박제성(음악 칼럼니스트) 클래식음악 전문지 <음악동아>, <객석>, <그라모폰 코리아>, <피아노 음악>과 여러 오디오 잡지에 리뷰와 평론을 쓰고 있으며, 공연, 방송, 저널 활동, 음반 리뷰, 음악 강좌 등 클래식음악과 관련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베토벤 이후의 교향곡 작곡가들>을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