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악 감상실 ♣/* 작 품

[스크랩] 베토벤 : 웰링턴의 승리 (전쟁교향곡) / Wellington`s Victory Op.91

Bawoo 2014. 4. 4. 23:05

베토벤 : 웰링턴의 승리 (전쟁교향곡)

Wellington's Victory Op.91 (Battle Symphony) 

 

 

1부 Wellington's Victory

 
2부 Wellington's Victory

Berlin Philharmoniker / Herbert von Karajan, Conductor

 

베토벤 : 웰링턴의 승리 (전쟁교향곡)

Wellington's Victory Op.91(Battle Symphony)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년~1827

 

교향곡인가? 교향시인가?

 

이 곡은 교향곡이라고 불릴지 아니면 교향시라고 불리어야 할지, 아직까지 논란이 대상이 되는 곡으로, 어쨌든 이 곡의 원제는 '웰링턴의 승리' 또는 '빅토리아의 전투'라고 불리는 곡입니다. 그렇지만 자필 악보에는 '전쟁 교향곡'이라는 타이틀로 출판되었습니다. 곡의 구성의 보면, 4악장이 아닌 1부,2부의 두 부분으로 구성이 되었다는 점에서 교향곡보다는 교향시에 가까운 곡으로, 최초의 교향시라고 할 수 있는 곡입니다.

 

각각 1부 : 전쟁터, 2부 : 승리의 교향곡이라는 표제를 가지고 있으며, 연주시간은 15분정도로 짧은 곡입니다. 이 곡은 멜첼이 만든 오케스트라 소리를 내는 자동합주용 기계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를 위하여 만든 곡으로, 원곡이 이 악기를 위한 곡이고, 관현악곡으로 편곡한 곡이 바로 이 전쟁 교향곡입니다. 그러나 후에 멜첼과 베토벤사이에 이 교향곡의 저작권에 문제가 생겨 소송까지 이르지만, 베토벤의 소유로 인정받습니다. "전쟁교향곡"이라고도 불리워지는 "웰링턴의 승리"는 1813년 6월 12일 영국의 Arthur Wellesley (후에 Duke of Wellington) 장군이 스페인 Vitoria의 Basque City 근처의 전투에서 프랑스의 나폴레옹군을 격파시킨 전투를 기리기 위하여 작곡된 곡으로 1813년 12월 8일 빈 대학 강당에서 베토벤 자신의 지휘로 교향곡 8번과 같이 초연되어 대 성공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전반부는 전투장면을 묘사한 것으로 영국군 진영의 북소리와 나팔소리, 영국군의 행진, 프랑스군 진영의 북소리와 나팔소리, 프랑스군의 행진, 프랑스군의 도전과 영국군의 응전 그리고 전면 전투의 순으로 진행이 되며, 후반부는 단악장 형태의 교향곡입니다.

 

 

들으시는 연주는 1960년 6월 9일 London의 Wembly Town Hall에서 Antal Dorati의 지휘로 London Symphony Orchestra에 의하여 녹음되었고, 전쟁 장면을 실감나게 표현하기 위하여 작곡자 Beethoven 자신이 지시했던대로 오케스트라의 배치를 했다고 하며, 총포 소리도 프랑스 진영과 영국 진영의 소리를 일일이 구분하여 Beethoven 자신이 스코어에 표시했다고 합니다. 또한 음악 중에 인용된 소총 소리와 대포 소리는 미국 West Point의 육군사관학교에서 전문가들의 지도하에 6-Pound Smooth-Bore Bronze Cannons, 12-Pound Howitzer, French Charleville-Pattern Muskets, British Brown Bess Muskets 등 실제 소총과 대포를 발사하여 녹음한 소리라고 합니다.

 

 

 교향곡과 교향시 (절대음악과 표제음악과 관련하여)

 

아직도 구분 방법에 있어 논란이 많지만, 표제음악은 음악 외적 요소가 주제로 들어간 음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예를 들어, 복숭아 요플레의 맛에 감동을 받아 이것을 주제로 곡을 썼다 하면 표제음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근데 그 곡의 작곡가가 '이건 절대음악이야!' 하면.. 절대음악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절대음악은 순수 음악적 요소만으로 만들어진 곡을 말합니다. '도도솔솔라라솔'을 주제로 하여 이러저러하게 곡을 썼다 하면 절대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교향곡은 쉽게 말하자면 관현악으로 연주하는 소나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크 시대에 바이올린 합주곡 등으로부터 조금씩 발전해왔는데요, 고전주의 하이든과 모차르트에 이르러 오보에, 호른 등의 목관/금관악기가 들어가고 베토벤에 이르러 지금과 같은 편성이 되어 있다. 그리고 낭만주의 때에는 규모가 더 커지기도 하고, 더 많은 악기가 추가되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4개 악장으로 구성되었는데 종종 5, 6악장으로 된 곡들도 있다. 고전주의 시대는 '음악 자체의' 형식을 확립해나가던 시기였기 때문에 대부분이 절대음악인데, 교향곡은 고전주의 시대에 그 모양새가 제대로 갖추어졌으니 대부분이 절대음악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교향시는 교향곡이 보통 4개 악장으로 구성된 데에 비해 단악장으로 되어있다. 그러니까, 악장이 하나 뿐인 것이다. 독일 지역을 중심으로 발달한 음악으로부터 독립하고자 유럽 주변 국가의 민족주의 음악가들이 애호했다. 시벨리우스 등의 작곡가들... 낭만주의 시대에 리스트가 처음 만들어낸 것이고, 낭만주의 시대는 내 감정을, 자연의 아름다운 풍경을, 기타 무언가를 음악으로 표현하려고 했던 경향이 있는 시대이다. 그런 만큼 교향시는 표제음악의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웰링턴 전투 (비토리아 전투)

 

1815년 나폴레옹이 엘바섬을 탈출해서 프랑스의 군권을 장악하고 황제가 되었고 워털루평원에서 나폴레옹은 대전투를 벌이게 되는데, 나폴레옹은 그루시에게 군대를 주어서 프로이센의 블뤄허의 군대를 격파하게 하고,, 자신은 프랑스군 7만 2000명을 거느리고 웰링턴군 6만 8천을 총공격 하였다. 그 무렵에 나폴레옹은 전날 밤의 비로 인해 땅이 진흙탕처럼 변해버려 대포의 이동이 늦어지는 것 때문에 나폴레옹은 공격 개시 시간을 아침에서 오전 11시로 늦추게 되었고 이것이 나중에 프랑스군 패배의 결정적인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웰링턴군과 나폴레옹군은 치열한 격전을 벌이고 이것은 영웅과 영웅의 대전투였는데 웰링턴군과 나폴레옹은 거의 막상막하로 치열한 전투를 벌였고, 웰링턴은 숫적으로 밀리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또 다른 실수를 저지르는데, 그루시를 너무 총애했고 그루시는 무력하게도 블뤄허를 놓치고 말았다. 오후 3시 네이의 기병은 돌격전에 실패했다. 기어이 오후 6시 칠순의 프로이센의 명장 블뤄허군 4만 5천명이 도착했고, 10만에 가까운 연합군에 공격을 받고 프랑스군은 대패했고, 결국 나폴레옹은 실각했다. 그 후 영웅이 된 웰링턴은 1815년 귀국했고, 허약한 영국의 육군으로 승리를 이끌었다는 명예를 얻게 되었다.

 

1821년 나폴레옹이 유배 중 52세로 죽었으며 그 후 웰링턴 장군은 1828년 영국의 총리가 되었으나, 형인 아서 웰즐리 [ 1760 ~ 1845]의 모함 등으로 1830년 실각해서 1852년 불명예 중 83세로 죽었다.

 

Beethoven - Wellington's Victory 1/2 

  

Beethoven - Wellington's Victory 2/2 

 

 

 

 

 

출처 : 멀뚱박사의 사랑방
글쓴이 : 멀뚱박사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