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악 감상실 ♣/[ 기타 음악가]

[스크랩] 발라키레프 : Russia 교향시 Symponic Poem, Op.10

Bawoo 2014. 4. 5. 15:53

발라키레프 : Russia 교향시

 Balakirev : Symponic Poem, Op.10 

 

 


Russia (2nd overture on Russian themes) symphonic poem, Op.10


In Bohemia
The USSR Symphony Orchestra / Evgeni Svetlanov, cond

 


발라키레프 : Russia 교향시

Balakirev : Symponic Poem, Op.10

Mily Balakirev (1837 - 1910) 러시아 

 

밀리 알렉세예비치 발라키레프 (러시아어: Милий Алексеевич Балакирев, 1837년 1월 2일 – 1910년 5월 29일)는 러시아의 피아노 연주자이자 지휘자, 작곡가이다. 작곡가로서는 피아노곡과 관현악곡에서 신선한 스타일을 창조하고, 러시아 국민악파의 지도자로서 러시아 음악사상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1837년 1월 2일에 니즈니노브고로드에서 태어나서 1910년 5월 29일에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별세하였다. 소년시절부터 음악적 재능을 발휘하여 피아노를 배웠다. 그에게 음악을 가르친 최초의 인물은 모차르트의 전기를 썼고 베토벤의 연구가이며

러시아 최초의 음악평론가인 알렉산드르 드미트리에비치 우루이비셰프(1794-1858)였다. 그의 집에서 연 음악회에서 발라키레프는 관현악의 지휘를 시작하였다. 카잔 대학의 수학과에서 2년간 배운 뒤 1855년에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옮겨, 거기서 글린카와 알게 되었다. 다르고미슈스키, 퀴(1856), 무소륵스키(1857)를 알게 된 것도 이 무렵이다. 정력적이며 비상한 권위에 찼고, 박학다식하고 날카로운 비판력을 지닌 그는 그 주위에 유능한 젊은 작곡가를 끌어들였다. 그리고 '새 러시아 악파', '마그차야 쿠치카'(힘찬 친구들)라고 불리는 집단을 결성하였다. 그들의 슬로건은 '표현의 진실과 음악에 있어서의 국민성'이었다. 1862년 로마킨과 함께 무료음악학교를 열고, 안톤 루빈스타인의 음악원에 대항하였다. 1867년, 프라하로 가서 글린카의 《루슬란과 류드미라》를 지휘하였고, 또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러시아 음악협회 연주회의 지휘자가 되었다.

 

 

작곡활동의 최성기(最盛期)는 6,70년이었다. 1874년부터 1881년에 걸쳐서 그는 정신적 위기에 빠졌다. 음악학교의 재정적 파산과 음악상의 반대자와의 투쟁에 지쳐 음악계로부터 멀어졌다. 그와 동시에 '힘찬 친구들'도 어느덧 흩어져 버렸다. 그 뒤, 재차 적극적으로 음악활동을 개시하였지만 이전과 같은 조직적인 활동은 아니었다. 1883년부터 1894년에 걸쳐서 궁정 성가대의 악장이 되고, 1894년부터는 창작에 몰두함으로써 오래된 작품을 다시 고쳐 만들고 새로운 곡을 썼다. 만년의 생활은 이미 커다란 역사적 업적을 끝낸 뒤의 조용한 여생이라고도 할 만한 것이다.

 

 

주요 작품은 《세 개의 러시아적 주제에 의한 서곡》(1858), 《리어왕》 음악(1856-1861), 서곡 《1천년》(후에 《루시》라고 개제, 1862), 교향시 《타마라》(1867), 피아노곡에서는 환상곡 《이슬라메이》(1869), 그 밖에 가곡이 있다. 

 

작곡가 러시아 5인조 (The Five) : '마그차야 쿠치카' (힘찬 친구들)

 

1860년대,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활동하는 일군의 작곡가들은 밀리 발라키레프라는 애국심 강한 멘토를 만난다. 발라키레프는 교향악이나 실내악 같은 전통 음악에서 탈피하기 위해, 국립 음악 학교를 세워 글린카와 다르고미즈스키에 의해 대중에게 알려진 러시아만의 음악을 새로이 개척하고자 했다. 발라키레프와 뜻을 같이한 음악가로는 우아하고 확고한 성격의 소유자였던 퀴, 해군 장교 출신의 림스키-코르샤코프, 그리고 내과의사이자 화학 교수였던 알렉산더 보로딘, 공무원이었던 모데스트 무소르그스키가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곧 저명한 비평가이자 음악적 동지였던 블라디미르 사타소프가 지은 별명으로 유명해졌는데, 그가 지은 별명은 바로 마그차야 쿠치카-5인조(The Five)였다.

 

발라키레프는 동양에 대한 판타지를 담은 '이슬라메이'를 작곡해 이름을 알렸고, 퀴는 특별한 경력이 없었으며 림스키-코르샤 코프와 보로딘, 무소르그스키는 독학으로 음악을 공부했다.(당시엔 그들을 '딜레탕트'라고 불렀다). 그 중 림스키-코르샤코프는 작곡의 열의가 강해 지독한 정신력으로 독학하여 현대 관현악의 체계적인 기초를 발전시킬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을 갖추게 됐고, 알렉산더 글라주노프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같은 출중한 제자들을 배출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세헤라자데'를 작곡한 음악적 능력은, 거칠고 원시적이며 자유분방한 작품을 창조했던 보로딘과 무소르그스키를 능가하진 못했다.

 

<Russian composer, Aleksandr Glazunov and Mily Balakirev>

 

발라키레프 (1837-1910년) : 그룹의 리더. 유일한 음악 전공자. 느린 속도로 작곡했다. 교향시 <타마라>는 7년 걸림. 교향곡1번은 36년 걸림. 피아노 소나타는 50년 걸림. 피아노곡 <이슬라메이>-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곡으로 알려져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음악을 가르쳐주는 것을 매우 좋아했고, 돈이 없어서 음악원에 가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무료 음악학교까지 설립했다. 강한 훈련으로 동료들을 아마추어에서 훌륭한 작곡가로 만들어 주었지만 병으로 난폭해지고 림스키코르사코프가 죽은 2년 뒤 그도 죽는다.

 

무소르크스키 (1839-1881년) : 육군 장교 출신. 알코올 중독자. 술 때문에 가장 빨리 죽음. 관현악곡<벌거숭이산의 하룻밤=민둥산의 하룻밤>. 오늘날은 림스키코르사코프의 편곡 버전이 연주되고 있다. <전람회의 그림> 10개의 소품으로 된 피아노 곡. 오늘날은 프랑스 작곡가 라벨이 오케스트라 곡으로 편곡한 곡이 연주된다.

 

보로딘 (1833-1887년) : 유명한 화학자이자 의사. 그룹에서 가장 나이 많음. 여성도 의사가 될 수 있도록 힘씀. 의사로 일하면서 폐병을 앓고 있는 피아니스트를 만나 결혼하고 부인의 간호를 위해 평생을 바친다. 부인의 건강을 위해 아이도 갖지 않고 두 아이를 입양한 멋진 사람이다. 현악 사중주 1번, 2번 녹턴-결혼 20주면 기념으로 만든 감미로운 곡.

 

퀴 (1835-1918년) : 비평가로 활동 작품의 수 가장 적다. 바이올린 소품 <오리엔탈>. 바흐처럼 시력을 잃어버림 사람들의 도움으로 음성으로 작곡

 

림스키코르사코프 (1844-1908년) : 해군 사관생도. 가장 나이 어렸으나 작곡 실력이 좋았다. 가장 왕성한 작품 활동을 펼친 사람이다. 스트라빈스키를 가르침. 저서 <관현악 법>은 오늘날까지 교과서로 사용되고 있다. 1887년 관현악 모음곡 <세헤라자데> -아라비안 나이트를 소재로 한 작품. 오페라 <살탄황제 이야기> 중 <왕벌의 비행>. 오페라 <이고르 공>중 <폴로베츠 사람들의 춤>. 감미로운 오보에 솔로를 감상할 수 있다. 1881년 심장병으로 쓰러져 병원으로 옮겼으나 죽음.

 

Mily Balakirev - Russia, symphonic poem (1864) 

 Work: Russia, symphonic poem (1864)

Orchestra: The State Academic Symphony Orchestra

Conductor: Evgeny Svetlanov

 

 

 

 

출처 : 멀뚱박사의 사랑방
글쓴이 : 멀뚱박사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