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악 감상실 ♣/ - 구스타프 말러

[스크랩] 말러 교향곡 10번(Mahler, Symphony No.10 in F# major)

Bawoo 2014. 5. 8. 21:39

Mahler, Symphony No.10 in F# major

말러 교향곡 10번

Gustav Mahler

1860-1911

Eliahu Inbal, conductor

Royal Concertgebouw Orchestra

Concertgebouw Amsterdam

2011.06.30 

 

Eliahu Inbal/RCO - Mahler, Symphony No.10 (Deryck Cooke ver. III)

 

1910년 7월, 말러는 알프스의 휴양지 토블라흐에서 여름휴가를 보내고 있었다. 그는 이곳에서 9번 교향곡의 끝손질을 마무리하고, 구상하고 있던 다음 교향곡의 작업에 본격적으로 들어갔다. 그는 다섯 악장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의 쇼트스코어(약보)를 이미 만들어 놓고 있었고 오케스트레이션 스케치도 지어 놓고 있었다. 풀스코어(총보) 완성의 바로 전 단계에 도달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즈음 말러의 생활은 아내 알마와 젊은 발터 그로피우스의 애정행각 때문에 엉망이 되어 있었다. 말러에게 알마는 정신적 동반자였다. 그녀를 잃어버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죽음에 대한 강박관념과 함께 말러의 건강을 심하게 뒤흔들어 놓았다. 정신분석학을 개척한 의사 프로이트를 찾아가기까지 했다. 이처럼 심신이 고달팠음에도 그의 창조력은 이상할 만치 고양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 이듬해 55세 생일 직전인 5월 18일 훗날 ‘10번 교향곡’이라고 불리게 될 작품을 미완성으로 남겨둔 채 세상을 뜨고 만다.

미완성의 작품을 없애라는 유언을 거부한 미망인 알마

말러는 알마에게 악보를 없애라고 유언을 남겼지만 미망인 알마는 폐기하지 않았다. 이런 그녀의 처사에 대해 브루노 발터를 비롯하여 말러를 우상으로 여겼던 몇몇의 비난과 저항이 있었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발터는 말러 타계 이듬해 <대지의 노래> 초연을 이끌었고, 나중에 말러 음악 해석의 권위자가 된 지휘자이다. 알마는 말러의 직접적인 후계자인 빈의 삼총사 쇤베르크, 베르크, 베베른 중 한 사람이 미완성의 이 작품을 완성해야 한다고 내세웠지만, 제아무리 존경하는 선배의 유업일지라도 또 그냥 버려두기에는 아까운 작품일지라도, 거기에 보필을 한다는 것은 같은 길을 걷던 그들이 할 일은 아니었다. 창작가의 작품은 그의 분신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 작품의 완성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작곡가가 아니라 음악학자들이었다.

알마 말러(1879-1964). 그녀는 말러 사망 5년 뒤 1916년 발터 그로피우스(‘바우하우스’를 설립한 현대 건축계의 거장)와 결혼하였다. 1920년 그로피우스와 이혼한 뒤 1929년 작가 프란츠 베르펠과 결혼하였다. 그래서 그녀가 공식으로 남긴 이름은 알마 마리아 말러 그로피우스 베르펠이다. 말러의 친구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와도 염문을 뿌리기도 했던 알마는 숱한 남성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는데, 그 불은 현대 음악, 미술, 문학, 건축에서 불후의 명작으로 타올랐다.

데릭 쿡이 ‘연주용 판본’을 완성하다

10번 교향곡의 역사는 1차 세계대전 후에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알마의 부추김으로 이 작품의 1악장과 3악장이 1924년 10월 12일 빈 국립가극장에서 빈 필에 의해 프란츠 샬크의 지휘로 초연되었다. 초연을 바로 앞두고 말러 자필의 작품 전체 필사본이 출판되었다. 자필 악보 필사본이 출판되면서 이 유작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으나, 나치 시대가 오면서 말러의 음악은 가려지고 이 작품도 거의 잊히고 만다. ▶오스트리아에서 발행한 말러 탄생 100주년 기념우표, 1960.07.07

1960년 말러 탄생 100주년을 맞아 10번 교향곡의 새로운 전기가 왔다. 영국의 음악학자 데릭 쿡(Deryck Cooke, 1919-1976)이 필사본을 연구하여 해독하는 데 성공, 자신의 판본 악보로 구성해낼 수 있었다. 쿡은 자신의 작업에 대한 주위의 우려에 대하여 남겨진 악보가 단순한 스케치가 아니라 완전히 전체 모습을 갖춘 레이아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완성이란 것은 작곡가 자신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음을 분명히 해 두었다. 말러가 이 곡을 완성시켰더라면 평소 그의 작곡 성향으로 보아 분명 많은 부분을 다시 보완하고 수정했을 것은 명약관화하다. 이런 점에서 쿡은 자신의 작업이 완성이라든가 재구성이라기보다는 ‘연주할 수 있도록’ 또는 ‘악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 방법을 ‘모방 작곡’으로 일컬었다.

데릭 쿡은 연주가 가능한 악보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 악보(2악장과 4악장은 축약된 형태)에 의한 녹음이 1960년 12월 19일 BBC 라디오 방송을 통해 나가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알마는 10번 교향곡을 완성시키려는 음악학자들의 노력에 대해 그동안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녀는 한동안 말러 저작권의 소유자로서 이 작품의 연주를 금지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 방송을 듣고 그녀는 생각을 바꾸었다. 쿡의 성과에 호의를 나타내고 마음대로 보필해도 괜찮다고 조건 없는 승인을 해주었다. 쿡은 이 작품의 ‘연주용 판본’(performing version)을 완성하여 1964년 8월 13일 베르톨트 골드슈미트의 지휘로 초연에 올렸다. 데릭 쿡이 완성한 최초의 연주용 판본에 이르러서야 말러의 미완성 10번 교향곡은 세상의 음악애호가들에 남겨진 유산의 일부가 되었던 것이다.

쿡이 자주 언급했듯이 그가 이 악보를 만든 의도는 초고 그대로는 오케스트라 실연이 불가능했던 악보를 연주 가능하도록 하는 데 있었다. 성실하고 엄격한 쿡은 첫 연주용 판본을 완성한 후 이를 여러 차례에 걸쳐 보완하고 수정했다. 참고문헌을 찾고 말러의 표기법을 해독하는 것, 쇼트스코어에 쓰인 대로 특정 악기를 지정하는 것과 몇 군데 부가적인 음을 채우는 것 등 어렵고 고된 작업이었다. 1976년에 출판된 쿡의 풀스코어 개정판(두 번째 연주용 버전)은 말러가 오케스트레이션 초고에 남겨 놓지 못한 부분과 그가 밝혀낸 부분이 나란히 인쇄되어 출판되었다. 이런 노력은 어느 부분이 첨가된 부분인지를 명확히 하기 위한 것이었다.

미완성 작품의 연주에 원칙적으로 반대하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말러 음악에 대한 쿡의 기여를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쿡의 주석을 읽어보면 브루노 발터 등의 완강한 저항은 적절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말러가 작품을 완성했더라면 10번 교향곡은 물론 다른 형태가 되었을 것이다. 그가 각 악장을 좀 더 줄이거나 늘렸을지도 모른다. 또 말러의 정교한 관현악법과 연주 지시를 흉내 낸다는 것이 가당치 않은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쿡의 풀스코어를 통하여 연주되는 음악을 경험함으로써 우리는 말러가 최고의 창조력을 지닌 혁신적인 작곡가였음을 보다 더 분명히 알 수 있게 되었다. 쿡의 작업을 검토한 많은 음악학자들은 그의 작업을 인정했다. 어쨌든 쿡이 말러가 남긴 마지막 작품이 연주될 수 있도록, 그것도 그럴듯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쿡의 작업이 완전한 것이냐 아니냐는 문제가 아니다. 말러의 스케치를 직접 들을 수 있도록 작업을 했다는 것에 데릭 쿡의 공로가 있고, 그의 작업에 대한 판단은 그 다음의 일이다.

Leonard Bernstein/WPh - Mahler, Symphony No.10 (Adagio)

Leonard Bernstein, conductor

Wiener Philharmoniker

Konzerthaus, Wien

1974.10

1악장 아다지오를 3파트로 나누어 올린 동영상입니다. 연속 재생이 되나 파트에서 파트로 넘어갈 때 잠시 끊김이 있으니 양해 바랍니다.

작품의 구성과 성격

10번 교향곡은 매우 특이한 F샤프장조의 조성을 가지고 있다. 이 작품의 중심에는 ‘푸르가토리오’(Purgatorio, 연옥)라고 이름 붙인 짧은 간주곡 형태의 악장이 놓여 있다. 이 악장의 양쪽에는 두 개의 긴 스케르초 악장이 있고, 가장 바깥쪽 악장들은 아다지오 템포이다. 즉 이 교향곡은 대칭 구조의 다섯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악장과 5악장은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교향시를 이루고, 그 안쪽 2악장과 4악장은 10분 남짓한 스케르초이다. 이와 같은 대칭 구조는 작품에 긴장감을 가져오고 완성도를 높여준다. 이 다섯 악장은 그 순서가 분명히 지시되어 있는데, 학자들은 말러가 이 곡을 완성했더라도 어느 악장이 완전히 빠지거나 두 악장이 연결될 수는 있어도, 순서 자체는 변경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악장들이 가진 성격 때문에 다른 순서로는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알마가 정리하여 출판한 책 <구스타프 말러가 아내에게 보낸 편지들>의 표지.

두 번째 악장의 스케치에는 ‘2악장 스케르초 - 피날레’라고도 써져 있는데 필체를 자세히 살펴보니 ‘피날레’라는 단어는 나중에 덧붙여진 것으로 밝혀졌다. 작품을 완성할 자신이 없었던 말러가 두 악장만으로 곡을 마치려고 했던 모양이다. 두 느린 악장이 처음과 끝에 배치되어 있어 9번 교향곡을 연상시키지만 그 외의 공통점은 없다. 조성 배치도 9번 교향곡보다는 덜 파격적이다. F샤프장조인 1악장에 이어 완전히 다른 조성을 가진 악장은, e단조로 시작되어 d단조로 마치는 4악장 정도다. 마지막 악장 역시 그대로 이어져 d단조로 시작되기는 하지만 F샤프장조로 돌아오면서 종결된다.

첫 악장 아다지오의 구조는 정확히 정의 내리기 어려울 정도로 정형화되어 있지 않다. 크게는 두 가지 주제로 구성되어 있고, 이 주제 외에 비올라로 전달되는 주제도 지적할 수 있지만, 첫 번째 주제의 변형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두 주제는 변주되면서 여러 번 등장하는데 말러가 그때까지 보여주었던 어떤 변주곡 형태와도 다르다. 굳이 얘기하자면 쇤베르크, 베르크, 베베른 등이 주도한 빈 악파의 표현주의와 많이 닮았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이어지는 스케르초는 두 주제가 번갈아가며 등장하는 전형적인 말러의 스케르초 악장 구성을 가지고 있다.

마지막 세 개의 악장은 자전적인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처음에는 3악장의 표지에 ‘연옥’이 아니라 ‘연옥 혹은 지옥’이라고 쓰여 있었지만 나중에 지옥 글자를 줄로 그어버린 것으로 나타났다. 악보의 첫 페이지는 아래 부분이 찢겨져 있는데, 매우 개인적인 내용이 적혀 있어 말러나 알마가 찢어버린 것으로 추측된다. 4악장의 악보에는 ‘죽음이 나와 함께 춤을 춘다’라고 적혀 있으며, 이 문장 아래에는 죽음에 관한 섬뜩한 몇 문장이 덧붙여 쓰여 있다. 4악장의 마지막에는 엄청난 드럼의 타격이 있으며, 이 타격으로부터 그대로 마지막 악장으로 이어진다. 마지막 악장은 느린 도입부를 거쳐 다소 활동적인 중간부를 지나 다시 도입부의 주제가 돌아오는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오스트리아 빈의 그린칭 공동묘지에 있는 말러의 묘비와 쇤베르크가 그린 말러의 장례식 장면.

 

  해설ㆍ정리 : 라라와복래 2013.04.16

 

출처 : 클래식 사랑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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