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9번 <죄놈>
Piano Concerto No.9 in Eb major, K.271 'Jeunehomme'
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
피아노 협주곡 9번 E♭장조, K271은 감히 모차르트 최초의 위대한 걸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작품이다. 그는 음악으로 성인식이라도 치르듯 21세가 되는 1777년 1월에 이 곡을 작곡했다. 다양한 형식과 스타일이 실험적으로 제시된 이 곡에는 천재의 자신감이 넘치며 곡의 핵심에는 정가극 아리아 스타일의 비극적인 안단티노가 자리 잡고 있다. 약음기를 단 바이올린이 친밀하면서도 정열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의 협주곡에서 이렇게 감정이 절절하게 배인 악장은 없다.
대조적으로 마지막 론도는 마치 희가극을 보는 듯 기쁨으로 넘실거린다. 트릭은 이것이 다가 아니다. 정열적인 음악이 일순간 정지하면서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미뉴에트로 넘어가는데, 미뉴에트의 우아하고 노랫가락 같은 주제는 차라리 마법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갑자기 이 에피소드가 끝나고 론도 주제가 다시 등장하면서 흥분 속에서 곡이 끝난다
W.A. Mozart
Piano Concerto No.9 in E flat Major K. 271
"Jeunehomme"
Mitsuko Uchida - Piano
Jeffrey Tate - Conductor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남긴 유산들 가운데 피아노 협주곡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모차르트는 고전파를 대표하는 협주곡의 대가였고, 그 중에서도 피아노 협주곡은 그의 전성기를 대변하는 장르이다. 무엇보다 그는 피아노가 막 음악사의 전면으로 부상하던 시기에 이 악기의 기능미와 표현력을 최대한 활용하여 풍부한 가능성을 열어 보였고, 그 결과 베토벤을 비롯한 후대의 피아노 협주곡 작곡가들에게 크나큰 영향을 미쳤다. 여기서는 그 본격적인 출발점이 되었던 작품을 살펴볼까 한다. 바로 부조니(F. Busoni)가 ‘젊은이처럼 활기차고 노인처럼 현명한 작품’이라며 찬탄해마지 않았던 ‘죄놈 협주곡’이 그 주인공이다.
신동의 편력기
잘츠부르크의 궁정음악가였던 요한 샤흐트너의 증언에 따르면, 모차르트와 피아노 협주곡의 첫 인연은 놀랍게도 그의 나이 네 살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느 날 샤흐트너가 모차르트의 아버지인 레오폴트와 함께 그의 집을 방문했는데, 꼬마 볼프강이 책상에 앉아서 열심히 펜을 놀리고 있더란다. 레오폴트가 무얼 하고 있는지 묻자 볼프강은 맹랑하게도 ‘클라비어(독일어로 건반악기의 총칭)를 위한 협주곡을 쓰고 있어요.’라고 대답하는 게 아닌가! 레오폴트와 샤흐트너는 그 말을 듣고 웃음을 터트렸지만, 여기저기 잉크로 얼룩진 악보에 쓰인 음표들을 찬찬히 살펴보고 나서는 그것이 진짜 ‘협주곡’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아버지 레오폴드, 누이 난네를과 함께 연주하고 있는
어린시절의 신동 모차르트>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일화에 등장하는 협주곡은 전해지지 않는다. 아마도 이제 겨우 작곡에 걸음마를 시작하던 무렵의 볼프강이 고도의 작곡기법이 필요한 ‘협주곡’을 완성시키지는 못했던 것이리라. 실제로 모차르트가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하기 위해서는 그 후로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그가 피아노 협주곡을 처음 세상에 내놓은 것은 열한 살 때의 일이다. 하지만 당시에 작곡된 네 편의 협주곡은 다른 작곡가들의 소나타 악장들을 편곡하여 재구성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다시 말해서 모차르트는 피아노 협주곡 장르에 관한 한 ‘노출된 학습기’를 거치면서 사뭇 신중하게 접근했던 셈이다. 그가 열다섯 살 때 작곡한 세 편의 피아노 협주곡(K.107)도 마찬가지 경우인데, 번호가 붙지 않은 그 세 곡 역시 J. C. 바흐(J. S. 바흐의 막내아들)의 소나타들을 편곡한 것이었다. 모차르트가 온전히 자신의 힘만으로 완성한 피아노 협주곡을 처음 선보인 것은 열일곱 살 때였다. 1773년 12월에 완성된 [피아노 협주곡 제5번 D장조](K.175)가 바로 그것이다.
이 첫 오리지널 협주곡은 매우 흥미로운 작품이다. 그 정교한 양식과 대위법적인 피날레는 당대 최고의 작곡가들을 무색케 할 정도이며, 제1악장과 제3악장의 관현악 파트에 트럼펫과 팀파니가 포함된 부분은 피아노 협주곡 장르에 진정한 첫걸음을 내딛는 모차르트의 당찬 포부와 패기를 나타내는 듯하다. 다만 기법적인 면에서 새로운 점은 없고, 악상에서도 아직은 십대소년의 풋풋한 내음이 묻어난다. 이후 1776년에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떨어지는 피아노 협주곡 세 편(제6, 7, 8번)이 나온 다음, 마침내 모차르트 최초의 ‘걸작 협주곡’이 등장한다.
성년을 선언하다
1777년 1월에 모차르트는 법적으로 성년이 되었다. 그리고 동시에 음악적으로도 성년을 선언하게 된다. 그 즈음 작곡된 [피아노 협주곡 제9번 E♭장조]는 규모도 크고 내용도 이전에 비해 한결 성숙하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진정한 의미에서 비르투오소를 위한 협주곡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성격은 작품의 별명에도 드러나 있다.
◀ 1777년 [죄놈 협주곡]을 작곡한 해의 청년 모차르트 모습.
이 곡에 붙은 ‘죄놈’이라는 별명은 한 여류 피아니스트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추정된다. ‘마드무아젤 죄놈(Mlle. Jeunehomme)’은 프랑스 출신으로 1776년 말에서 1777년 초에 걸친 겨울 동안 잘츠부르크를 방문했으며, 모차르트는 그녀의 연주를 듣고 영감을 얻어 이 협주곡을 작곡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록 그녀에 관한 정보는 부족하지만, 이 곡으로 미루어 볼 때 그녀의 피아노 연주솜씨는 대단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제1악장 : 알레그로
이 [죄놈 협주곡]은 피아노 협주곡 역사상 가장 중요한 작품의 하나이다.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제1악장의 개시부인데, 첫 마디에서 오케스트라가 화음으로 된 팡파르를 울리자마자 곧바로 독주 피아노가 등장하여 오프닝 프레이즈를 완성하는 것이다. 마치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부드러운 힘겨루기를 하는 듯한 이 개시부는 기존 협주곡의 관례를 깬 것이다. 고전적인 협주곡에서는 오케스트라만에 의한 긴 도입부(제시부)가 나온 후에야 비로소 독주악기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차르트가 여기에서 보여준 독창성은 가히 경이적이라 할 만하며, 이러한 모험적 시도는 훗날 베토벤과 그 후예들에 의하여 발전적으로 계승된다.
제2악장 : 안단티노
아울러 이 작품은 정서적인 깊이라는 면에서도 돋보인다. 자못 심오한 표정의 아리오소 선율과 레치타티보 풍 패시지로 채워진 느린 악장에서 모차르트는 인간 내면의 깊숙한 곳으로 파고든다. 그 과정에서 부각되는 오페라적인 표현과 구성, 음색의 정교한 조탁은 그의 전성기의 협주곡들을 예견케 한다.
제3악장 : 론도. 프레스토
그런가 하면 마지막 론도 악장에서는 활기찬 흐름 위에 현란한 기교를 실어 비르투오소적 협주곡의 전형을 보여준다. 다만 그 중심부에 놓인 '미뉴에트 에피소드'는 템포, 박자, 분위기, 짜임새 등 모든 면에서 전후의 부분과 선명한 대비를 이루는데, 이 또한 모차르트답게 흥미롭고 독창적인 장면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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