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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 선생 시 - 秋 夜(가을밤)

Bawoo 2014. 6. 30. 23:12

 

      秋       夜(가을밤)

 

   [펌] 삼의당 김씨의 가을 밤의 달.

 

 

 情結林泉愛(정결림천애) : 사랑스런 임천에 정이 있어

 

門臨車馬音(문임차마음) : 문 밖에 오가는 수레와 말소리

 

竹欄勤點綴(죽란근점철) : 대난간을 열심히 엮어두고

 

花木强蕭森(화목강소삼) : 꽃나무 잎 시들어 앙상하도다

 

露枝枝色(량로지지색) : 찬 이슬 가지마다 빛 찬란하고

 

秋蟲喙喙吟(추충훼훼음) : 가을벌레 저마다 울음 운다

 

獨行還獨坐(독행환독좌) : 혼자 걷다 돌아와 혼자 앉으니

 

明月照幽襟(명월조유금) : 밝은 달이 깊숙한 가슴에 비춘다.

 

 

 

 

 

*다산 정약용 선생 초상*

 

*다산 선생 약력*

정약용(丁若鏞, 1762년 8월 5일(음력 6월 16일), 경기도 광주[1] ~ 1836년 4월 7일(음력 2월 22일))은 조선 정조 때의 문신이며, 실학자·저술가·시인·철학자·과학자·공학자이다. 본관은 나주, 는 미용(美庸), 는 사암(俟菴)·탁옹(籜翁)·태수(苔叟)·자하도인(紫霞道人)·철마산인(鐵馬山人)·다산(茶山), 당호는 여유당(與猶堂)[2]이며, 시호는 문도(文度)이다.

중농주의 실학자전제 개혁을 주장하며 조선 실학을 집대성하였고, 수원 화성 건축 당시 기중가설(起重架說)에 따른 활차녹로(滑車轆轤 : 도르래)를 만들고 그를 이용하여 거중기를 고안하여 건축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또한, 유교 경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통해 당대 조선을 지배한 주자학적 세계관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을 시도하였다. 문집으로 유배 생활 중 대부분이 저술된 《여유당전서[3]가 있다.

정조의 생모 혜경궁 홍씨, 정조의 다른 최측근인 홍국영과 인척관계이기도 하다.

1762년 음력 6월 16일경기도 광주군 초부면 마재(현재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서 태어난 후 진주 목사를 지낸 부친 정재원(丁載遠)에게서 학업하였다. 정재원은 첫 부인 의령 남씨와 사이에 큰아들 약현을 낳았고, 둘째 부인인 고산 윤선도의 오대손녀인 해남 윤씨와 사이에 약전, 약종, 약용 3형제와 딸 한 명을 낳았으니 약용은 넷째 아들이다.

일곱 살 때에 '산'이라는 시를 지은 것이 남아있는데, 열 살 이전의 어린 시절에 지은 시를 모아 삼미자집이라는 책을 내었다. 9세 때 모친상을 당해 맏형수 경주 이씨와 서모 김씨의 손에서 자랐다. 어릴 적에 천연두에 걸렸으나, 왕족 출신의 명의 이헌길의 진료로 살았다. 정약용은 훗날 이헌길의 《마진기방》을 바탕으로 한층 발전된 홍역 치료서 《마과회통》을 집필하고, 이것은 현대 의학이 들어오기까지 수많은 조선의 생명들을 구한다. 또한 정약용은 이헌길의 생애를 다룬 〈몽수전〉을 집필하기도 했다.

1776년에 승지 홍화보의 딸 풍산 홍씨와 혼인하여 6남 3녀를 낳았으나 생전에 4남 2녀를 잃었다. 누님의 남편으로 여섯 살 위인 이승훈, 큰형의 처남이며 여덟 살 위인 이벽과 친하게 지내면서 학문으로 명성이 높은 이가환과 매부 이승훈을 만났다. 이승훈은 조선에서 최초로 천주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다. 이가환은 이승훈의 외삼촌이었으며, 성호 이익(1629~1690)의 종손으로 당시 이익의 학풍을 계승하는 중심 인물이었다. 이들에게서 성호의 학문을 접하면서 실학 사상의 토대를 다졌다.

 

* 참고- 살다보면'이란 노래를 부른 권진원이란 가수가 위 시를 '달빛'이란 제목으로 개사해서 불렀다고 하는군요.

 

 < 자료 출처: 시-카페 "한시속으로", 초상 및 약력-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