水仙花(수선화)
추사 金正喜(김정희)
一點冬心朶朶圓 (일점동심타타원) 한 점의 겨울 마음 송이송이 둥글어라
品於幽澹冷雋邊 (품어유담냉준변) 그윽하고 담담한 기품은 냉철하고 빼어났네.
梅高猶未離庭砌 (매고유미이정체) 매화가 고상하다지만 뜨락을 못 면했는데
淸水眞看解脫仙 (청수진간해탈선) 맑은 물에 해탈한 신선을 정말 보는구나.
* 추사 김정희(金正喜,1786년~1856년) 선생 약력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서예가, 금석학자, 고증학자, 화가, 실학자이다. 자는 원춘(元春), 호는 완당(阮堂)·추사(秋史)·예당(禮堂)·시암(詩庵)·과파(果坡)·노과(老果)·보담재寶覃齋)·담연재(覃硏齋)·천축고선생(天竺古先生) 등이다. 노론북학파의 실학자였다. 한국금석학의 개조(開祖)로 여겨지며, 한국과 중국의 옛 비문을 보고 추사체를 만들었고, 난초 등 문인화에도 빼어났다.
1819년 병과(丙科)에 급제하고 효명세자의 사부, 충청우도암행어사, 성균관대사성과 병조참판, 이조참판 등을 역임했다. 1840년(헌종 6) 윤상도의 옥사에 연루되어 제주도로 유배되었다가 1848년 석방되었다. 1851년(철종 2) 영의정 권돈인의 예론(禮論)으로 예송 논쟁이 벌어지자 이에 연루되어 함경도 북청으로 유배되었다가 1853년 풀려났다.
선생이 그린 '세한도'는 국보 제 180호로 지정되어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으나 세계 동향을 읽는데는 어두운 안목을 가지고 있어 제주 유배 시절 서구 열강에게 속절없이 당하는 중국 청나라를 보면서도 '조선은 아무 피해가 없을 것'이란 안이한 견해를 갖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는 비단 추사 선생뿐이 아니라 소위 말하는 조선 지배 계층이 세계정세 흐름에 대해 얼마나 무지하고 안일하게 대응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어서 서구의 위협에 철저히 대비한 일본 지도계층과 확연히 구분된다. 이는 결국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비극을 겪게되는 한 원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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