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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경제> 경기부양책 적극 고려할 때

Bawoo 2014. 7. 7. 10:53

외환위기 1년여 전인 1996년 가을. 경상수지 적자가 쌓이면서 나라 곳간이 비어가고, 기업은 빚이 늘고 있었다. 다급한 상황이었다. 정부는 ‘경쟁력 10% 높이기 운동’을 돌파구로 삼았다. 비용을 10% 줄이든지, 효율을 10% 올리든지, 어떤 식으로든 고비용·저효율 구조를 깨자는 것이었다. 취지는 나무랄 데 없었다. 김영삼 대통령이 제의한 이 운동에 정부는 그해 가을 내내 매달렸다. 부처마다 경쟁력을 10% 높이는 방안을 마련하느라 법석을 떨었다.

 그해 말 정부는 김 대통령 주재로 ‘경쟁력 10%’ 보고대회를 성대하게 열었다. 그때도 공공부문 개혁과 규제 완화가 화두였다. ‘4년 동안 공무원 1만 명을 줄이겠다’ ‘선진국 수준에 맞게 규제를 풀겠다’…. 장밋빛 구호가 넘쳤다.

 당장이라도 선진국이 되는 듯 들떴다. 오산이었다. 경제는 나아진 게 없었다. 오히려 한쪽에선 구멍이 더 커졌다. 96년 경상적자가 무려 231억 달러에 달했다. 금융회사들은 부족한 돈을 메우기 위해 해외의 비싼 자금에 손을 벌렸다.

 이듬해 초 한보·삼미를 시작으로 크고 작은 기업들이 줄줄이 부도를 냈다. 1년을 버티다 97년 11월 외환위기를 맞았다. 하루하루를 넘기기 벅찬 시절이었다. ‘경쟁력 10%’는 자취를 감췄다. 좋은 내용을 담고 있었지만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96년 하반기에 ‘경쟁력 10%’에 매달린 게 실수였다. 급한 대로 환부를 도려내는 수술부터 했어야 했는데, 체질을 바꾸겠다고 보약만 챙기고 있었던 것이다.

 요새도 경제가 어렵다. 설상가상 세월호 참사가 겹쳤다. 기업·개인이 집단 우울증에 빠진 듯하다. 외환위기 때가 급성이었다면 지금은 만성에 가깝다. 치료가 더 힘들다는 얘기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3.9%에서 3.7%로 낮췄다. 특별한 전기가 없는 한 성장률이 더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

 정부는 올 초 마련한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국면 전환을 위한 비장의 카드로 여기고 있다. 실제로 ‘3개년 계획’에는 경제 체질을 개선하고, 성장 잠재력을 높이는 데 필요한 대책이 망라됐다. 굵직한 실행 과제만 59개에 달한다. 공기업을 개혁하고, 규제를 완화하고, 서비스업을 육성하고….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것들이다.

 문제는 이 과제들이 시장에서 작동해 경제가 튼튼해지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점이다. 그때까지 어떻게 버티느냐가 관건이다. 경제가 더 악화되면 ‘3개년 계획’이 한순간에 뒷전으로 밀릴 수도 있다. 96~97년의 ‘경쟁력 10%’처럼.

 이런 사태를 막으려면 ‘3개년 계획’을 의지를 갖고 추진하되 당장 효과를 낼 수 있는 단기 처방을 병행해야 한다. 부양책 얘기가 나오면 부작용을 우려하는 시각이 많다.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곤란하고. 그러나 우리 경제는 좌고우면하며 시간을 축낼 정도로 한가한 상황이 아니다.

 전 세계는 우리를 훨씬 앞서 달리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모두 4조5000억 달러를 푸는 양적완화를 단행했다. 비정상적이고 논란이 큰 조치였지만, 그 덕에 미국 경제는 고비를 넘겼다. 일자리가 늘고, 주가는 사상최고치를 경신했다. 유럽은 경기 부양을 위해 지난달 마이너스 금리라는 초유의 실험을 택했다. 일본도 돈을 무제한으로 풀면서 강력한 성장 드라이브 정책을 펴고 있다. 물론 이런 조치가 성공으로 끝날지는 좀 더 두고봐야 한다. 하지만 앉아서 당하느니 뭐라도 해보겠다는 각국의 노력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우리는 어떤가. 박근혜 정부 1년여 동안 경제민주화와 경제활성화 사이에서 우왕좌왕했다. 경제를 살리는 데 집중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아까운 시간을 보냈다. 전 세계가 통화전쟁을 하는 동안에도 넋 놓고 있다가 가파른 원화 강세에 직면하고 있다.

 지금은 비상 상황이다. 통화정책(금리 인하)이든, 재정정책(추가경정 예산)이든, 또 다른 무엇이든,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과감한 부양책을 쓸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최경환 경제팀은 가능한 방법을 총동원할 태세가 돼 있다는 믿음을 시장에 심어줘야 한다. 새 경제팀 출범 초기가 경제의 골든타임이다.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출처 ;중앙일보 '서소문 포럼/고현곤 편집국장 대리 겸 경제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