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 반 에이크 (Jan van Eyck) 반 에이크 형제(Van Eyck)는 네덜란드의 화가 형제다. 형은 후베르트(Hubert, 1370년 경~1426년)고 동생은 얀(Jan, 1390년경~1441년)이다. 동생 얀은 유화를 발명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것은 그가 색체 가루(안료)를 최초로 기름에 섞어서 사용했기 때문이다. 당시 화가들은 광물이나 식물 등에서 색체를 발견하고 이를 가공하여 안료를 직접 마련하였으며 그것을 주로 계란에 섞어 사용하였지만 계란에 섞은 물감은 빨리 마르는 단점이 있어서 에이크 형제는 기름을 사용하였다. 반 에이크 형제 모두 마사이크에서 출생하였다. 두 형제의 합작인 켄트 시에 있는 성 바본 성당의 대제단화는, 회화 사상 일찍이 찾아볼 수 없었던 기념비적 작품으로, 제작 도중에 형이 죽자 동생 얀이 1432년에 완성했다고 새겨져 있다. 반 에이크 형제는 소박하고 겸손한 신앙심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려 '근대 초상화의 아버지'라고 불리고 있다. 그들의 작품은 15세기 북부 유럽 르네상스에서 새 양식을 불러 일으켰다. 형 후베르트의 대표작으로 <기증자 부처의 초상>, <어린 양의 예찬> 등이 있으며, 동생 얀의 작품으로 <아르노르피니 부처의 혼인도>, <롤랑의 성모> 등이 있다.
EYCK, Hubert van - The Three Marys at the Tomb
1425-35 / Oil on wood, 72 x 89 cm
Museum Boijmans Van Beuningen, Rotterdam
플랑드르의 화가 에이크 [Jan van Eyck]
플랑드르의 화가. 태어난 때: 1395년 이전 신성 로마 제국 리에주 주교관할구 마세이크 에서 태어남 죽은 때: 1441. 7. 9 - 이전 브뤼주에서 사망
헨트 제단화 당시에 새로 개발된 유화 기법을 완성한, 주로 초상과 종교적인 주제들을 다룬 자연주의적인 패널에서 은폐된 종교적 상징들을 많이 사용했다. 걸작으로는 헨트 대성당에 있는 제단화인 〈어린 양에 대한 경배 Adoration of the Lamb〉(1432)가 있다.
얀 반 에이크는 1422년 10월에 네덜란드의 백작인 바이에른의 요한의 '명예 시종 겸 화가'로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볼 때 1395년 이전에 태어난 것이 틀림없다. 그는 1425년 그 백작이 죽을 때까지 계속 헤이그 궁전에서 일했으며 그뒤 잠깐 브뤼주에 머물다가 그 해 여름에 플랑드르의 가장 강력한 통치자이자 가장 중요한 예술 후원자인 부르고뉴의 선량공 필리프의 부름으로 릴에 가서, 죽을 때까지 그 공작 밑에서 일했다(→ 플랑드르 미술). 그는 필리프 공을 위해서 그뒤 10년 동안 많은 비밀 임무들을 수행했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이베리아 반도를 2차례 방문한 일이었다.
첫번째는 1427년 스페인의 이사벨라와 필리프 공의 결혼을 성사시키기 위한 것이었고, 2번째는 1428~29년에 포르투갈의 이사벨라에게 청혼하기 위한 것이었다. 필리프 공의 신뢰를 받던 그는 이 혼인 교섭들에 직접 참여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또한 공작에게 약혼녀의 초상화를 선사해야만 했다. 1431년 브뤼주에 집 1채를 구입하고 그 무렵 마르가레테라는 여자와 혼인했는데, 그녀에 대해서는, 1406년에 태어났고 그와의 사이에 2명 이상의 아이를 낳았다는 것밖에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그는 브뤼주에 살면서 계속 그림을 그렸고, 1436년 다시 필리프 공을 위해 비밀여행을 했다. 그는 1441년에 죽었으며 브뤼주에 있는 생도나티앙 교회에 묻혔다. |
The Ghent Altarpiece: Adoration of the Lamb
1425-29 / Oil on wood, 137,7 x 242,3 cm
Cathedral of St Bavo, Ghent
마지막 10년 동안에 그린 그림들만이 그의 작품으로 확실히 확인되었으므로 초기의 발전 과정은 이 후기 작품들을 미루어 추론할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에이크는 플랑드르 회화의 창시자로 찬사를 받아왔으며, 학자들은 중세의 사본 채식(彩飾)이 번창하던 마지막 단계에서 그의 예술의 원천을 찾았다. 그의 후기 그림에서 나타나는 자연주의와 우아한 구도는 부르고뉴의 공작들을 위해 일한 익명의 부시코 장인과 림뷔르흐 형제(폴·헤르만·예하네코인)와 같은 15세기초의 사본 채식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 1439년의 한 자료는, 얀 반 에이크는 필리프 공을 위한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한 채식자에게 보수를 지불했다고 전하고 있다.
그러나 그와 사본 삽화 간의 관련성에 대한 논의에서 중요한 것은 〈토리노·밀라노 기도서 Turin-Milan Hours〉(토리노 시립박물관)라는 문제의 책에서 한트 G.라는 서명이 확인된 몇 점의 세밀화를 그의 작품으로 보는 점이다. '에이크풍의' 이 세밀화들의 연대를 1420년대나 또는 그 이전으로 잡을 경우 그가 이것들을 그렸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최근에 이 세밀화들이 적어도 그보다 20년 뒤에 그려졌으며, 따라서 그것들은 그의 모방자가 그린 것이라는 견해가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얀 반 에이크의 초기 작품에서 〈토리노·밀라노 기도서〉를 빼면 그는 국제 고딕 양식의 사본 채식과 그다지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그의 화풍이 확립되는 데에 중요한 영향을 준 것은 확실히 투르네의 화가인 로베르 캉팽(1378~1444경)의 패널들이었는데, 플랑드르의 미술사에서 캉팽이 중요한 구실을 했음이 최근에야 비로소 밝혀지게 되었다. 에이크는 1427년 투르네 화가조합이 그를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을 때 캉팽과 만난 것이 틀림없으며, 캉팽의 미술에서 대담한 사실주의와 은폐된 상징적 표현법 및 밝은 유화 기법을 배운 것으로 보인다. 이 유화 기법은 이후에 에이크의 고유한 양식적 특징이 되었다. |
The Virgin of Chancellor Rolin
1435 / Wood, 66 x 62 cm
Musée du Louvre, Paris
투르네의 시민이었던 캉팽과는 대조적으로 그는 번화한 궁정에서 일하는 학식있는 대가였으며, 플랑드르 미술가로서는 처음으로 자신의 작품들에 서명을 했다. 그가 그린 패널의 대부분에는 '요하네스 데 에이크'라는 당당한 서명이 적혀 있으며, 몇 점의 작품에는 '최선을 다해'(Als ich chan)라는 그의 오만한 좌우명이 들어 있다. 캉팽의 명성이 사라지면서 그가 얀에게 미친 영향이 잊혀지고 그리하여 대부분의 캉팽 작품들이 얀의 것으로 여겨지게 된 것은 조금도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얀 반 에이크의 그림 중 9점에 그의 서명이 적혀 있고 10점에 연대가 적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이라는 것을 입증하고 그것의 연대를 추적하는 데는 몇 가지 어려움이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그의 걸작인 〈어린 양에 대한 경배〉라는 제단화에 휘베르트 반 에이크를 이 그림의 주요제작자로 소개하는 매우 미심쩍은 글이 적혀 있다는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미술사가들은 〈젊은 남자의 초상(진실한 추억) Portrait of a Young Man (Leal Souvenir)〉(1432)을 비롯해 〈조반니 아르놀피니와 조반나 체나미의 혼인(?) The Marriage of Giovanni Arnolfini and Giovanna Cenami(?)〉(1434)·〈성모와 카논 반 데르 파엘레 Madonna with Canon van der Paele〉(1434~36)·〈성모와 아기 예수와 성인들 Madonna and Child with Saints〉(1437)·〈성녀 바르바라 St.Barbara〉(1437)·〈샘가의 성모 Madonna at the Fountain〉 등 그다지 야심적이지는 않지만 얀의 양식 발전을 보다 확실하게 추적해볼 수 있는 작품들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이 그림들은 7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몰려 있지만, 얀이 로베르 캉팽의 조각과도 같은 묵중한 사실주의에서 좀더 섬세하고 다소 깐깐한 회화 양식으로 나아간 일관된 발전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헨트 제단화 Ghent Altarpiece〉에 1432년의 연대가 적혀 있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이 그림을 그의 양식 발전 과정상 최초의 것으로 보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는 것 같지만, 이 대작의 제작에 휘베르트가 참여했는지의 문제는 아직 풀리지 않았다. 제단화에 적혀 있는 구절은 이 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뚜렷이 밝히고 있다. "가장 위대한 화가인 휘베르트 반 에이크가 (이 작업을) 처음 시작했고, 2번째로 위대한 화가인 그의 동생 얀이 그 뒤를 이어 완성했다……." 이 주장을 기초로 하여 미술사가들은 휘베르트가 〈헨트 제단화〉에 이바지했다고 생각해왔으며, 심지어 〈수태 고지 The Annunciation〉(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무덤의 세 마리아 The Three Marys at the Tomb〉(로테르담 보이만스반뵈닝겐 박물관) 등 좀더 초기의 '에이크풍'의 몇몇 그림들까지 그의 것으로 간주하기도 했다. |
The Madonna with Canon van der Paele
1436 / Oil on wood, 122 x 157 cm
Groeninge Museum, Bruges
그러나 그 삽입 구절은 16세기에 전사된 것이고 그 이전의 자료들에서는 휘베르트에 대한 언급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예를 들면, 알브레히트 뒤러가 1521년 헨트를 방문했을 때 오직 얀 반 에이크만을 찬양했으며, 그뒤 1562년에 플랑드르의 역사학자인 마르쿠스 반 바르네웨이크는 그 제단화의 제작자로서 오직 얀만을 언급했다. 더욱이 최근의 문헌학적 연구는 삽입된 구절에 대한 신뢰성에 심각한 의혹을 던지고 있다. 따라서 휘베르트가 그 작품 제작에 참가했다는 것은 매우 의심스러우며, 그의 미술에 대한 어떤 지식도 현재로는 불확실할 뿐이다.
한편 휘베르트의 존재는 거의 의심할 여지가 없다. 헨트의 시문서를 보면 '거장 휘베르트'(meester Hubrechte de scildere)라는 기록이 3번이나 나오며 그의 묘비명의 사본에는 그가 1426년 9월 18일에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휘베르트 반 에이크가 얀과 관계가 있는지, 그리고 16세기에 왜 그가 〈헨트 제단화〉의 주요부분을 그린 것으로 여겨졌는지는 아직도 풀리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그와 휘베르트의 관계, 그가 채식자로 활동했을 가능성, 로베르 캉팽에 대한 재평가 등으로 인해 얀 반 에이크의 업적과 중요성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그는 초기 작가들이 주장했던 것처럼 유화를 그리지는 않았을지 모르지만, 재질감과 빛, 그리고 자연의 공간 효과를 충실히 묘사하는 기법을 완성했다.
그의 사실주의 기법을 능가하는 작품은 거의 없었다. 일찍이 1449년에 이탈리아의 인문주의자인 키리아쿠스 당코나는 그의 작품들이 '인간의 손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자연 그 자체의 힘으로' 만들어진 것 같다고 감탄했다. 그러나 캉팽처럼 에이크에게도 자연주의가 단순히 기술적 재주만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그에게 자연은 신을 구현한 것이었으며 그는 일상 사물들로 가장한 종교적인 상징들로 그림을 채웠다. 그의 풍경화와 실내화들을 그토록 자연스럽게 비추고 있는 빛까지도 신의 은유적 표현인 것이다.
얀 반 에이크의 기법이 세련되고 그의 상징적 표현이 난해하기 때문에 그의 후계자들은 그의 미술에서 일부만을 빌려 썼다. 캉팽의 수제자인 로히르 반 데르 웨이덴은 스승의 평범한 사실주의를 에이크풍의 우아함·섬세함과 조화시켰는데, 사실 캉팽도 말기에는 에이크의 우아한 양식을 어느 정도 받아들였다. 에이크의 공방에서 도제살이를 했으며 그가 죽은 뒤 〈성모와 아기 예수와 성인들과 기증자 Virgin and Child, with Saints and Donor〉(뉴욕 시 프릭 컬렉션)를 마무리한 페트루스 크리스투스조차도 웨이덴의 영향을 받아 에이크의 양식에서 복잡한 요소들은 곧 버렸다. |
Portrait of Cardinal Niccolò Albergati
1431-32 / Oil on wood, 34,1 x 27,3 cm
Kunsthistorisches Museum, Vienna
15세기 후반에 네덜란드의 화가들인 휘고 반 데르 후스와 유스투스 반 헨트가 에이크의 유산을 되살렸지만, 퀸틴 마시스나 얀 마뷔즈 같은 16세기초 플랑드르의 대가들이 얀의 작품에 관심을 기울였을 때 그들은 원래의 작품에 비견할 수 없는 단지 충실하기만 한 모사품들을 만들었다. 독일과 프랑스에서는 얀 반 에이크의 영향이 캉팽과 웨이덴의 보다 쉬운 양식들에 가려져 빛을 보지 못했으며, 오직 얀이 2차례 방문했던 이베리아 반도에서만 그의 미술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다. 이탈리아에서는 키리아쿠스와 인문주의자인 바르톨로메오 파초가 그의 뛰어남을 인정하여 로히르 반 데르 웨이덴 및 이탈리아의 미술가들인 피사넬로와 젠틸레 다 파브리아노와 함께 그를 당대의 주요화가로 평가했다. 그러나 르네상스기의 미술가들은 그밖의 화가들처럼 그를 모방의 대상보다는 감탄의 대상으로 생각했다.
그의 그림은 지금도 지대한 관심을 끌고 있으며 그 뛰어난 기교도 여전히 높이 평가받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많은 화가들에 의해 모사되어왔으며 수집가들이 탐을 내는 미술품이 되었다. 베르사유 조약을 보면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독일과의 평화조약을 맺기 전에 〈헨트 제단화〉를 벨기에로 되돌려줄 것을 명기하고 있다.
H.L. Kessler 글 |
Portrait of Christ
1440 / Oak panel, 33,4 x 26,8 cm
Groeninge Museum, Bruges
Small Triptych (outer panels)
c. 1437 / Oil on oak, 39 x 24 cm
Gemäldegalerie, Dresden
Annunciation
c. 1436 / Oil on wood, 39 x 24 cm
Museo Thyssen-Bornemisza, Madrid
Annunciation
c. 1436 / Oil on wood, 39 x 24 cm
Museo Thyssen-Bornemisza, Madrid
Diptych
1420-25 / Oil on wood transferred to canvas, 56,5 x 19,5 cm (each)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Crucifixion
1420-25 / Oil on wood transferred to canvas, 56,5 x 19,5 cm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Last Judgment
1420-25 / Oil on wood transferred to canvas, 56,5 x 19,5 cm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Madonna and Child at the Fountain
1439 / Oil on wood, 19 x 12 cm
Koninklijk Museum voor Schone Kunsten, Antwerp
Madonna in the Church
c. 1425 / Oil on wood, 32 x 14 cm
Staatliche Museen, Berlin
Madonna with the Child Reading
c. 1450 / Oil on wood, 26 x 19 cm
National Gallery of Victoria, Melbourne
Man in a Turban
1433 / Oil on wood, 25,5 x 19 cm
National Gallery, London
Portrait of a Goldsmith (Man with Ring)
c. 1430 / Wood, 16,6 x 13,2 cm (without frame)
Muzeul National de Arta, Bucharest
Portrait of Baudouin de Lannoy
c. 1435 / Oil on oak, 26 x 20 cm
Staatliche Museen, Berlin
Portrait of Giovanni Arnolfini and his Wife
1434 / Oil on oak, 82 x 60 cm
National Gallery, London
Portrait of Jan de Leeuw
1436 / Oil on wood, 24,5 x 19 cm
Kunsthistorisches Museum, Vienna
Portrait of Margareta van Eyck
1439 / Oil on wood, 32,6 x 25,8 cm
Groeninge Museum, Bruges
Small Triptych
c. 1437 / Oil on oak, 27,5 x 21,5 cm (central), 27,5 x 8 cm (each side)
Gemäldegalerie, Dresden
St Barbara
1437 / Grisaille on wood, 31 x 18 cm
Koninklijk Museum voor Schone Kunsten, Antwerp
St Jerome
1442 / Oil on parchment on oak panel, 20 x 12,5 cm
Institute of Arts, Detroit
Stigmatization of St Francis
1428-29 / Oil on wood, 12,5 x 14,5 cm
Philadelphia Museum of Art, Philadelphia
Suckling Madonna Enthroned
c. 1436 / Oil on wood, 65,5 x 49,5 cm
Städelsches Kunstinstitut, Frankfurt
The Annunciation (detail)
c. 1435 / Oil on canvas transferred from wood, 93 x 37 cm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The Ghent Altarpiece (wings closed)
1432 / Oil on wood, 350 x 223 cm
Cathedral of St Bavo, Ghent
The Ghent Altarpiece: St John the Baptist
1432 / Oil on wood, 149,1 x 55,1 cm
Cathedral of St Bavo, Ghent
The Ghent Altarpiece (wings open)
1432 / Oil on wood, 350 x 461 cm
Cathedral of St Bavo, Ghent
The Ghent Altarpiece: Adam; Cain and Abel
1425-29 / Oil on wood, 212,9 x 37,1 cm (with the top grisaille)
Cathedral of St Bavo, Ghent
The Ghent Altarpiece: Eve; The Killing of Abel
1425-29 / Oil on wood, 213,3 x 32,3 cm (with the top grisaille)
Cathedral of St Bavo, Ghent
The Ghent Altarpiece: God Almighty
1426-27 / Oil on wood, 212,22 x 83,1 cm
Cathedral of St Bavo, Ghent
The Ghent Altarpiece: Singing Angels
1427-29 / Oil on wood, 164,5 x 71,5 cm
Cathedral of St Bavo, Ghent
The Ghent Altarpiece: St John the Baptist
1425-29 / Oil on wood, 168,1 x 75,1 cm
Cathedral of St Bavo, Ghent
The Ghent Altarpiece: The Holy Hermits
1427-30 / Oil on wood, 148,6 x 53,9 cm
Cathedral of St Bavo, Ghent
The Ghent Altarpiece: The Holy Pilgrims
1427-30 / Oil on wood, 148,7 x 54,2 cm
Cathedral of St Bavo, Ghent
The Ghent Altarpiece: The Just Judges
1427-30 / Oil on wood, 145 x 51 cm
Cathedral of St Bavo, Ghent
The Ghent Altarpiece: The Soldiers of Christ
1427-30 / Oil on wood, 149,2x 54 cm
Cathedral of St Bavo, Ghent
The Ghent Altarpiece: Virgin Mary
1426-29 / Oil on wood, 168,7 x 74,9 cm
Cathedral of St Bavo, Gh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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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 출처: 화가 정보- 책'명화300선/ 자료 수집- 카페'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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