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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츠제럴드 [F(rancis) Scott (Key) Fitzgerald]

Bawoo 2014. 11. 20. 23:04

피츠제럴드 [F(rancis) Scott (Key) Fitzgerald]

 

피츠제럴드

 

 

1896. 9. 24 미국 미네소타 세인트폴~ 1940. 12. 21 할리우드.

미국의 단편작가·소설가.

 

 

재즈 시대(1920년대)를 묘사한 것으로 유명하다. 대표작은 〈위대한 개츠비 The Great Gatsby〉(1925)이다. 그의 부인 젤다와의 생활은 미국과 프랑스에서 그의 소설만큼이나 유명했다. 피츠제럴드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하면서 귀족적이던 아버지와 정력적인 시골 출신 어머니 사이에 외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자신이 반쯤은 아버지 쪽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아버지 쪽 사람으로는 〈성조기여 영원하라 The Star-Spangled Banner〉의 작사가 프랜시스 스콧 키도 있는데 피츠제럴드라는 이름은 그의 이름을 본떠 지은 것이다. 한편 절반쯤은 '1850년대 기근으로 미국에 이민 온 아일랜드 촌놈' 이라고 생각했다. 그결과 그는 미국인의 삶에 대해 전형적인 양가감정(兩價感情)을 갖게 되어 미국적 삶이 천박한 반면 눈이 부실 정도로 희망에 넘치는 것으로 보았다.

그는 낭만적인 상상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한때 이를 '창창한 앞날에 대한 예민한 반응'이라고 표현했고, 그런 미래를 실현하기 위해 경험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세인트 폴 아카데미(1908~10)와 뉴먼 스쿨(1911~13)에서는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지 못했다. 그러나 프린스턴에서는 그가 꿈꾸던 성공을 거의 이룰 수 있었다. 그는 대학의 문학 서클에서 탁월한 인물이 되었고 에드먼드 윌슨과 존 필 비숍 등과 평생 우정을 나누게 되었다. 그는 당시 사회적으로 중요한 연극회(演劇會)인 트라이앵글 클럽의 주도적인 인물이 되었고, 대학 주요 클럽의 임원으로 선출되었다. 그리고 그때 당대의 미인이던 기네브라 킹과 사랑에 빠졌지만 그후 그는 그녀를 잃었고 프린스턴에서 정학을 당했다. 다음해 가을 프린스턴으로 돌아갔으나 그가 바라던 모든 지위를 잃었고 1917년 11월 학교를 떠나 군대에 입대했다. 1918년 7월 알래스카 주 몽고메리 근처에 주둔하고 있을 때 앨라배마 대법원 판사의 딸인 젤다 세어를 만났다. 그는 깊이 사랑에 빠졌고 벼락출세를 이루어 젤다와 결혼하겠다는 생각으로 뉴욕을 향했다. 그러나 고작 한 달에 90달러를 받는 광고직을 얻었을 뿐이었다. 젤다는 약혼을 파기했고, 피츠제럴드는 한동안 술로 세월을 보낸 뒤 세인트폴로 돌아가 옛날 프린스턴에서 시작했던 소설을 다시 썼다.

 

1920년 여름 〈낙원의 이쪽 This Side of Paradise〉이 출간되었고 그는 젤다와 결혼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미숙해 보이지만 젊은이의 새로운 도덕성을 조명한 이 소설은 그에게 명성을 가져다주었다. 그 명성에 힘입어 그는 〈스크리브너스 Scribner's〉와 같은 훌륭한 문학잡지와 높은 원고료를 지불하던 대중잡지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 Saturday Evening Post〉에 기고할 수 있게 되었다. 이같은 갑작스런 부의 축적은 그와 젤다에게 그들이 천부적으로 타고난 역할을 그림같이 해낼 수 있게 만들었고, 링 라드너는 그들 부부를 그들 세대의 왕자와 공주라고 평했다. 그들은 이 역할을 좋아했지만 그의 2번째 소설 〈The Beautiful and Damned〉(1922)의 마지막 부분에 보면 이를 두려워한 흔적도 보인다. 이 소설은 잘생긴 한 젊은이와 그의 아름다운 아내가 미래에 받을 막대한 유산을 기다리는 사이 점차 찌들은 중년으로 퇴락해가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들 부부는 마침내 그 유산을 물려받지만, 그들 두 사람의 관계는 이미 파괴될 대로 파괴되어 더이상 어떻게 해 볼 수조차 없는 상태에 이른다는 줄거리이다.

 

피츠제럴드 부부는 그들 자신도 그런 상태에 처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었는데, 그 두려움을 떨치려는 듯 1924년 리비에라로 이주했다(1921년에 태어난 별명이 '스코티'인 딸 프랜시스도 데려감). 그곳에서 그들 부부는 피츠제럴드의 마지막 장편소설 〈밤은 부드러워 Tender is the Night〉에 나오는 제럴드 머피 부처 같은 일단의 미국 사람들을 만났다. 파리에 도착한 뒤 그는 곧 그의 대표작 〈위대한 개츠비 The Great Gatsby〉(1925)를 완성했으며, 이 소설에는 작가의 분열된 성격이 잘 드러나 있다. '미국의 꿈'을 실현하겠다는 야망에 불타는 중서부 출신의 청년 제이 개츠비(주인공), 인자한 성품을 지닌 프린스턴대학교 출신의 닉 캐러웨이(작중화자) 등은 모두 그 분열된 성격을 이루는 구성요소이다. 〈

 

위대한 개츠비〉의 결말 부분에서 피츠제럴드는 개츠비의 야망(자기 자신의 이상을 지나치게 신격화하는 태도)을 신대륙 발견자들의 야망과 같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피츠제럴드의 가장 우수한 단편소설은 〈저 슬픈 젊은이들 All the Sad Young Men〉(1926)인데 그중에서도 〈부유한 소년 The Rich Boy〉·〈용서 Absolution〉 등이 뛰어나다. 또다른 장편소설은 이 단편집이 출간된 뒤 8년 만에 나왔다.

 

그후 10여 년 간 피츠제럴드의 생활은 무질서했고 불행했다. 그는 술을 많이 마셨고 젤다는 갑자기 밤낮을 가리지 않고 발레 연습을 했다. 결국 1930년 젤다는 신경쇠약 증세를 일으켰고, 1932년 이런 증상이 재발했으며 이후 평생 회복되지 못했다. 1930년대 내내 그들은 생을 보전하기 위해 함께 애썼고 그 싸움이 실패로 끝났을 때 피츠제럴드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젤다가 입원해 있는 정신병원으로 가는 조그만 길에 내 모든 희망을 버리고 왔다."

 

그는 1934년이 되어서야 다음 소설 〈밤은 부드러워〉를 끝냈다. 이 소설은 환자와 결혼한 한 정신과 의사의 이야기이다. 피츠제럴드의 말을 빌리면, 의사는 부인이 서서히 회복되자 그의 생명력을 소진해 '기진맥진한 사나이'가 된다. 비록 기술적으로 부족한 면이 있고 상업적으로도 실패했지만 피츠제럴드의 소설 중 가장 감명을 주는 소설이다.

 

작품의 실패와 젤다의 병으로 절망에 빠진 피츠제럴드는 회복 불가능한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다. 그러나 1937년 할리우드에서 영화대본작가로서 재기했고 그곳에서 당시 할리우드의 유명한 가십 칼럼니스트 실라 그래엄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가끔 술에 취해 불만을 터뜨리고 폭력을 쓰기도 했지만 죽을 때까지 그녀와 비교적 평온하게 살았다. 1939년 할리우드를 무대로 〈최후의 대군(大君) The Last Tycoon〉을 쓰기 시작했는데, 주인공 먼로 스타는 프로듀서인 어빙 탈버그를 모델로 한 것이다. 이 소설은 미국의 위대한 꿈과 이를 실현하려는 인물을 창조하기 위한 피츠제럴드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이 작품에서 보여준 상상력의 강도와 그 표현의 현란함은 그 이전의 작품에 못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이 소설을 절반 정도밖에 쓰지 못한 채 44세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죽었다. 피츠제럴드는 포크너, 헤밍웨이, 싱클레어 루이스, 존 도스 파소스, 에즈라 파운드, T. S. 엘리엇의 작가들이 출현했던 1920년대의 대표적 미국 소설가이다. 이 시대는 미국의 르네상스를 구가하는 재능 있는 작가들이 풍성하던 시대였다. 비록 1920년대 유행하던 생활방식이 환멸의 겉치레였다 해도 그것은 그가 후일 생을 위한 '낭만적인 준비'라고 불렀던 희망과 열정의 시대, 모든 과거는 지워버리고 무엇인가 더 나은 것을 위한 세계를 건설할 수 있다고 믿던 사람 중 하나였다. 피츠제럴드는 당대 다른 어떤 작가들보다 동시대인들의 생각과 느낌을 대표했던 작가이다. < 출처: 다음백과-A. Mizener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