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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리나 강의 다리-이보 안드리치

Bawoo 2014. 11. 26. 22:47

 

 

책소개

 

1961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이보 안드리치의 대표작. 다양한 문화와 종교를 가진 사람들의 공존과 충돌의 역사를 구 유고슬라비아 연방이 낳은 세계적 작가 이보 안드리치의 유장한 필치로 그려낸 보스니아의 얼굴과도 같은 소설이다. 이 작품은 이보 안드리치를 역사가로 느껴지게 할 만큼 각 시대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묘사하고 있다. 낙천적이며 삶을 즐기려 하는 카사바 사람들, 인종과 종교에 관계없이 우정을 나누는 사람들, 지배 세력의 횡포에 맞서는 민중의 모습이 드러난 200여 개의 다양한 에피소드는 이보 안드리치를 ‘발칸의 호메로스’라고 불리우게 할 만큼 뛰어난 서사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피로 얼룩질 수밖에 없었던 역사를 그리면서도 작품 전편에 걸쳐 흐르는 유머와 휴머니즘은 특정 민족의 역사를 다룬 작품을 넘어 세계적인 작품으로 인정받게 했다.

이보 안드리치는 작품의 시대성을 살리기 위하여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지배 당시 사용되었던 터키어를 비롯하여 이슬람 문화권의 어휘를 작품에서 그대로 사용하고 있으므로 그의 작품들은 번역하기 무척 어렵고 까다로운 작품들로 알려져 있다. 국내에서는 이미 1980년대와 1990년대에 각각 번역되어 소개되었지만 이보 안드리치 전문 연구자가 세르비아어 원전을 직접 번역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발칸 반도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가장 뛰어난 작품을 생생히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출처: 독서국민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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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화약고라 불리는 발칸반도.

제1차 세계대전의 원인이 되었고, 20세기 후반에도 인류와 유럽의 양심을 시험했던 보스니아 내전이나 코소보 사태가 일어난 곳.

예전에는 '유고슬라비아'라는 하나의 국가를 가진 지역이지만, 지금은 7개의 국경선과 6개의 공화국, 5개의 민족과 4개의 언어, 3개의 종교와 2개의 문자를 가진 말 그대로 '인종과 종교의 도가니'인 땅.

그러나 이 땅은 오래 전에는 카톨릭, 그리스정교와 이슬람, 유대교인들이 평화롭게 함께 살아온 생활의 터전이며,그들간의 사랑, 미움, 아픔, 믿음, 배신이 끊임없이 일어나던... 세상의 다른 땅과 전혀 다를 바 없는 곳입니다.

 

지금부터 약 400년 전, 오스만투르크가 큰 힘을 발휘하며, 지금의 발칸반도를 지배하던 시절입니다.

보스니아의 '비세그라드' 지역에는 오랜 옛날부터 흐르던 '드리나 강'이란 강이 있습니다.

이 강을 중심으로 사람들은 농업이나 어업 등 생업에 종사하고, 아이들은 헤엄치고 물고기를 잡으면서 보냈습니다. 강 반대편으로 가려면 낡은 나룻배를 이용하여 가야했죠. 폭우가 쏟아질 때면 당연히 반대편으로 건너가지 못했고..

 

그런데 이 곳에 다리가 세워집니다.

이 지역출신으로서, 어린 시절 터키제국의 수도로 끌려갔지만, 술탄의 용감한 장군이 된 한 인물이 고향 땅에 다리를 건설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웅장한 다리는 현재까지도 남아서 이 지역의 역사를 묵묵히 지켜보고, 이 지역 민중들의 즐거움과 고통을 함께 합니다.

이 다리에서는 사랑이 이루어지고, 꿈이 생겨났습니다. 홍수가 질 때 이 다리를 건너 높은 곳에 대피한 주민들은 종교와 인종에 관계없이 서로를 위로하고 힘을 주면서 담배를 나누어 피는 공존을 배웁니다.

물론 안타깝고 비참한 일도 많았습니다.

다리가 지어질 때.. 그 격심한 노동의 고통을 참지 못하여 다리를 무너뜨리고자 하던 한 농부의 참혹한 처형도 반란을 꾀한다는 죄명으로 잡힌 죄없는 농부와 나무꾼에 대한 교수대도 모두 이 다리 위에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서로의 종교를 가지고, 서로의 민족을 가지고 상대편을 미워하고 상대편을 몰살시키려 하던..

제1차 세계대전의 포탄을 맞아 다시 중간이 폭파되어 잘려나가는 아픔을 겪습니다.

 

이처럼 [드리나 강의 다리]에는 특별한 줄거리가 없습니다.

이 다리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 모든 소소한 일상의 사건들, 그리고 400년간 일어났던 문명의 충돌과 종교간/인종간 갈등의 역사, 다양한 문화의 형성과 반목... 이 모두가 이야기거리입니다.

 

1989년이었을 겁니다.

세르비아 대통령이었던 밀로세비치는 옆의 나라인 보스니아의 세르비아계 주민들을 보호한다는 명분하에 전쟁을 일으키고, 보스니아 수도인 사라예보를 공습하였으며, 더 나아가 세르비아 점령지역에서 '인종청소'를 자행하여 히틀러가 행했던 것과 같은 죽음의 수용소를 짓고, 무고한 이슬람 주민들을 무참하게 학살하였습니다. 그 와중에 특히 여성과 어린이들이 당한 고통과 참상은 전유럽과 세계를 경악시킨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뉴밀레니엄을 맞기 위해 전세계가 들떠있던 1998년의 '코소보 사태'

알바니아계 주민들의 독립요구에 무력진압을 선택한 세르비아의 강경진압으로 인해서 2,000여명이 사망하고 30만명에 달하는 난민이 발생하는 비극적인 일이 다시 발생하였습니다.

 

서로 간의 이해와 공존, 융합은 정말 먼 이야기이고, 우리 인류에게 불가능한 일일까요?

이 책을 읽으면서 서로간의 공존이 있을 때에는 정말 마음이 따뜻해지지만,

반면 문화적, 종교적 차이로 인해서 서로를 배척할 때에는 슬픔과 고통을 마음속으로 경험하게 됩니다.

범세르비아주의니, 범슬라브주의니 하는 사상은 역시 그 상대방의 생존과 발전을 인정하는 가운데만 의미있는 외침이 될 것입니다.

 

인간의 역사가 피로 얼룩진 이 20세기의 비극의 역사 속에서

모두가 공통된 운명을 가진 공동운명체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것을 지키기 위하여 지금보다 더 노력하지 않는한 지구의 역사에서 자연적 재해가 아닌, 자기 자신의 실수와 잘못으로 멸종해 버리는 첫번째 생명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됩니다.<출처:http://blog.daum.net/yalyaly/4656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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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년의 역사에서 한 사람은 뭐가 될까? 뭐로 남을까? 기억될 만한 전설(얘기)로 회자되거나, 잊혀지거나가 될 것이다. 이보 안드리치(1892~1975)의 보스니아 3부작 중 첫번째 작품이다. 발칸반도의 보스니아에서 태어난 이보 안드리치는 우여곡절 끝에  드니나 강의 다리가 만들어지는데서부터, 그 다리가 공격으로 부분 잘리게 된 상황까지의  역사를 <드리나  강의 다리>를 통해 들려준다. 꼭 드리나 강의 다리가 역사를 사물마냥 바라보는 것처럼  담담하게 기록하고 있다. 물론 여기에 인간의 고통이, 애환이, 사랑이, 즐거움이, 용기가 없지는 않다. 그러나 대개는 지나가는 행인처럼, 지나가는 이들의 감정이 있고, 존재하는 것은 드리나 강의 다리로 사물화된  것뿐이다. 거기에 남는 것은 망각의 노래로서의 얘기.

"망각은 모든 것을 치유시켜주었으며 노래는 망각의 가장 아름다운 방법이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노래 속에서 오직 사랑하는 것만을 기억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하늘과 강과 산 사이 카사바에서 대를 이어간 세대를 혼탁한 물결이 휩쓸고 간 것에 그다지 슬퍼하지 않는 태도를 터득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곳에서 삶은 끊임없이 닳고 소모되지만 그러면서도 역시 지속되고 '마치 드리나 위의 다리처럼' 단단하게 서 있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는 기적이라는 카사바의 무의식적인 철학이 그들에게 스며든 것이었다."(117쪽)

 

<드리나 강의 다리>는 카메라가 근접하여 보여주는 '다리'에서 "이 다리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시절로 돌아가야 한 것 같다"(25쪽)에서 시작한다. 때는 터키 제국시대로 간다. 1516년 어느 아침, 10살짜리 소년이 (글에) 보인다. 드리나  강이 길을 잘라버리는 것은 비셰그라드의 나루터였는데,  그 곳에는 야마크라는 이름을 가진 심술 많고 게으른 뱃사공이 있었다. 그 뱃사공은 자신이 배를 띄우고 싶을 때만 배를 띄운다.  사람들은 멍하니 나루터와 뱃사공을 쳐다볼 뿐, 다른 방도가 없었다고 한다. 이때 10살짜리 그 소년이 지나간다. 그가 바로 터키 제국의 정치가 메흐메드 파샤 소콜리가 된 이다. 그는 어릴 적 뱃사공이 강을 건네주지 않아 매서운 칼바람에 하룻밤을 보냈다. 그 소년에게는 세월이  흘러도 지속되는 고통(통증) 이 남아있다. 그 고통이 사라질까 하여,  드리나 강에 다리를 세우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하여 소년의 상상에 의해서만 존재했던 드리나 강의 다리는, 우여곡절의 사연을 만들며 완성된다.  5년동안 지속된 공사 상황에서는  노동력과 임금을 착취한 아비다가, 두 아이의 육신이 필요하다는 설왕설래이 이어 쌍둥이를 사산한 어떤 여인, 다리를 파괴하려는 자에 대한 끔찍한 처벌 등을 겪고 난 후, 13개의 아치가 있는 거대한 돌다리가 완성된다. 그 다리는 그후 유사이래의 대홍수에도 끄떡하지 않고 버티다가, 결국 <드리나 강의 다리>마지막 연대기 해인 1914년,  교각의 일부가 끊기는 역사를 맞이하게 된다

 

보스니아에 대한 역사적 앎이 부족한 관계로, 책을 읽으며 깊숙이 참여하지 못한다. 거대한 서사시를 너무 단순화하는 감이 있지만, 역사적 앎의 단절로 인해 아직까지는 흥미는 배가되지는 않는다. 물론 시간을 두고  한 두 번 더 읽어보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400여년간의 인간의 역사에는 역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지금에도 흥미롭다.  다리가 만들어지는 사연부터 그렇다.   어릴 적 외상에 대한 단절을 위해 다리를 건설하는 것부터, 대홍수에서 끄떡없는 다리, 시집가는 날 다리위에서 강으로 몸을 던져버린 색시 파타, 사랑하던 여인을 소실로 보낸 후 왜 살아야하는가를 의문하던 남자의 난간 위 아슬아슬한 춤, 노름에 빠진(홀린)  밀란 글라시촤닌의 환각, 상관있을까를 의문해보게 하는 반복적인 이름들, 카사바라는 곳에서 살았을 이름없을 사람들은 역사를 모르고서도 흥미롭다.

 

이보 안드리치가 얘기하는 것은 다음으로 일단은 정리된다.                                      

“그러나 불행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으며 (물론 기쁨도 마찬가지지만) 대신에 지나가거나 적어도 망각 속에 흩어지거나 자취를 감추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다리 위에서의 삶도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반복되었으며 다리는 해를 거듭하거나 세기가 바뀌어도 , 인간사의 가장 힘겨운 변화들에도 변화하는 법이 없었다. 매끈하고 완벽한 아치 아래 강물이 도도히 흘러가듯이 이 모든 것들도 그 위에서 지나가는 것이었다.”(147쪽)
“모든 인간 세대는 문명에 대한 자신들만의 환상과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 흥망에 자신이 참여했다고 믿으며 또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이 그 멸망의 증인이라고 믿는다. 사실, 문명이란 장소에 보는 시각에 따라 불타고 그을리고 또 사라지고 하는 법이다. "(349쪽)

문명이란 사라진다. 그러나 삶은 계속된다.

그리하여  얘기는 남는다...

누군가는 그걸 쓴다...그리고 누군가는 그걸 읽는다(듣는다).,<출처: 카페'비평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