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아들 [Otsy i deti]
러시아의 작가 이반 투르게네프의 장편소설(1862).
투르게네프의 걸작으로 꼽히며 러시아의 구세대와 신세대를 탁월한 필치로 묘사하고 있다. 그는 실질적·유물론적·급진적인 신세대를 일컬어 허무주의자라 이름 붙였고 허무주의적 주인공 바자로프를 통해 보수적 지식인과 진보적 지식인을 모두 비난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양측에서 비난을 받아 이후 침체기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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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적인 젊은 이들과 지주급의 부모들에 갈등을 그렸다. 물런 지금도 아들이나 부모세대에
생각이 다르고 젊은이들은 좀 개혁적이고 미래 지향적일 것이다.
그 당시의 러시아 정세를 잘 알아야 소설을 이해할수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자라면서 조건없이 부모님 세대를 따를 것을 강요받았다. 그길에서 벗어나면 장래의 보장도
없고 출세도 불가능했었다. 누가 빨리 어른스러워지는가가 중요했다.
사회를 반대하고 급진적인 생각을 가졌겠지만 겉으로 나타낼수도 없었다.
바자로프 ( 아르까디의 친구, 의대생으로 장질부사에 걸려 죽었다. 사회개혁 운동가 ),
구세대랑 스라브주의자들 ( 보주주의자들 ), 아르까디 ( 뻬쩨르부르그 에서 대학을 마치고
고향으로 오다. 바자로프의 친구 ), 니꼴라이 뻬뜨로비치 끼르사노프 ( 아프까디의 아버지, 지주 ),
빠벨 빼뜨로비치 ( 아르까디의 삼촌, 보수주의자, 바자로프와 격심한 토론을 하고 격투를 했다 ),
니힐리스트 ( 허무주의자들, 무계급, 무질서를 주창함 ), 페니치까 ( 아르까디의 계모 ),
안나 세르게예브나, 까쨔 ( 안나의 동생, 아르까디의 부인이 됨 )
구세대의 부모들을 조롱하고 반대의견을 버릇없이 내세워도 아버지들은 굳건히 아들편에
스는 사랑을 본다. 그들의 생각이 옳다는것보다 더넓은 부모의 사랑이다.
자식들의 생각도 현실에 안먹혀 들어간다는데 고민이 있고 헤어나가기가 어렵다.
사회개혁을 그렇게 서서히 이루어졌다. 물런 그당시 러시아에선 급속도로 변화가 있었지만..
러시아에 시골풍경이 아름답게 묘사되고 있다. 당시의 계급차이도 잘 나타내고 있다.
일품은 바지로프와 보수주의자인 삼촌 빠벨 빼뜨로비치의 격열한 토론과 서부활극에서나 보는 총싸움이다.
책은 여러번 읽어야 재미를 느끼지만 어렸을땐 아들에 입장에서 읽었고 나이가 들어 부모에
입장에서 책을 읽게 된다.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다를수밖에 없다. 폭 넗게 본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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