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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만- 마의 산

Bawoo 2014. 12. 10. 22:18

                                                          마의 산

 

                                                                                                토마스 만

중세 유럽의 연금술사는 황금을 얻고자 증류기 비슷한 밀폐 공간에다 각종 금속을 섞어 넣은 다음 높은 온도의 열을 가하는 실험을 시도했다. 이런 ‘연금술적’ 발상이 뜻밖에도 20세기 독일 소설문학에서 언뜻 엿보이는데 토마스 만의 대표작 ‘마의 산’(1924)이 그러하다.

 

‘마의 산’이라니, 대체 무슨 산인가? 스위스 고산지대의 소읍 다보스에 있는 고급 호텔식 폐결핵요양소 ‘베르크호프’이다.  이제 막 造船기사 시험에 합격하여 곧 함부르크의 조선소에 취직할 23세의 청년 한스 카스토로프가 여기에 도착한다. 환자로 입원하러 가는 길이 아니라 이미 입원해 있는 사촌형을 문병하기 위해 3주 예정으로 이곳에 온 것이다.

 

입원해 있던 이탈리아 출신의 인문주의자 세템브리니는 카스토르프에게 ‘죽음’의 세계에 흘러 들어와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당장 ‘저 아래’의 시민 세계로 복귀하라고 충고한다. 그러나 러시아 여인 쇼샤 부인에게 마음이 끌린 청년은 우물쭈물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그만 병에 걸리고 만다. 함부르크의 시민이 ‘죽음’의 공간(마의 산)의 구성원이 된 것이며 토마스 만의 ‘죽음’의 연금술이 시작된 것이다.

 

하루에 다섯 끼씩 중후한 식사를 하면서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도 오늘과 똑같은 취생몽사 상태에 빠져 7년 세월을 허송하다가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나서야 하산하여 곧 참전한다. 포탄이 난무하는 전장에서 ‘보리수’ 노래를 부르며 진흙탕 속을 행군하는 주인공의 장래 전망은 매우 어두울 수밖에 없다.

 

1차 대전 이전의 답답한 분위기를 감안하면 시대소설이지만 베르크호프라는 ‘폐쇄 공간’이 ‘죽음’과 직결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일종의 시간소설이기도 하다.  이 소설의 축약판이라 할 수 있는 ‘눈(雪)의 장’에서 스키를 타고 설원을 헤매다 정신을 잃은 채 쓰러진 주인공은 몽환 상태에서 ‘인간은 선과 사랑을 위해서 자기 사고(思考)의 지배권을 죽음에다 내맡겨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바깥 세계와 차단된 ‘죽음’의 공간에서 역설적이게도 ‘삶’의 중요성을 깨달았다는 의미에서 이 소설은 독일 교양소설의 변종의 하나인 ‘성년식(成年式) 소설’로도 읽힌다. 그가 7년 동안의 취생몽사 끝에 마침내 얻게 된 깨달음이 전사 직전에 처한 그의 상황에서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러나 이 이야기를 읽는 독자들은 그의 ‘마의 산에서의 체험’을 추체험(追體驗)해 가면서 정신적 고양(高揚)을 얻게 된다. 토마스 만이 자신의 독자에게 이 책을 두 번 읽기를 권한 까닭도 이 간접 체험의 보편적 진실성 때문일 것이다. 이 작품을 찬찬히 읽는 독자는 서구 정신사를, 그 감성적 구체성 속에서, 축약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主人公은 그의 두 스승 세템브리니와 나프타의 激烈한 論爭을 거의 中立的인 態度로 敬聽하지만 讀者는 그들의 온갖 論據를 두루 거침으로써 自身이 한 段階 더 높은 敎養人으로 거듭난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하여 마침내 20世紀의 ‘練金術師’ 토마스 만을 만난 기쁨과 보람을 느끼게 될 것이다.

 

                                                                                              안삼환 서울대 교수·독어독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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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름. 난 병실에 누워 삶과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그때 떠오른 책이 독일의 대문호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이었다. 사실 필자가 '마의 산'을 처음 읽게 된 계기는 대학 시절 읽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 때문이었다. 당시 대학생들이 통과의례처럼 읽었던 '상실의 시대'에는 주인공 와타나베가 대학 캠퍼스에서 '마의 산'을 탐독하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왜 그가 '마의 산'을 읽는지, 도대체 왜 꼭 '마의 산'이어야 했는지 너무나 궁금했다. 그래서 읽어 본 '마의 산'은 쉽지 않은 소설이었다. 하지만 만만치 않은 만큼 오랫동안 마음에 남는 깨달음이 있었다. "장례식에는 사람을 고양시켜주는 무엇인가가 있어. 나는 정신적으로 고양되려면 옛날부터 교회에 가지 말고 장례식에 가야 한다고 가끔 생각한 적이 있어. 장례식에선 다들 엄숙하고 경건해지지. 평소처럼 쓸데없는 농담을 하는 사람도 없어. 나는 사람들이 가끔 경건해지는 모습을 보는 걸 좋아해." 사람들이 가장 경건해지는 순간은 죽음 앞에 섰을 때다.

 

 

소설 '마의 산'은 죽음에 대해 전혀 고민해 본 적이 없는 스물네 살의 주인공 한스 카스트로프가 죽음을 대면하면서 인식의 변화를 겪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카스트로프는 사촌 요하임 침센을 문병하기 위해 알프스 산속 다보스에 있는 베르그호프라는 결핵요양소를 방문하게 된다. 토마스 만은 이 '베르그호프'를 마의 산(魔의 山)이라는 공간으로 형상화해냈다. 베르그호프에서 카스트로프는 자신도 결핵환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요양원에 입원을 하게 된다. 하루아침에 죽음과 맞대면하게 된 카스트로프는 7년이라는 시간을 입원해 있으면서 삶과 죽음에 대한 사유를 넓혀 나간다.

요양원에서 만난 사람들은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스승들이다. 그들 중 이탈리아 출신의 계몽주의자 세테브리니는 카스트로프에게 평지로 내려가라고 권유한다. 하지만 카스트로프는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이미 죽음에 익숙해진 데다 같은 요양원의 쇼샤 부인에게 마음을 빼앗긴 상태였기 때문이다. 요양원에는 유대인 나프타도 있었는데 그는 기독교 독재와 폭력을 지지하는 중세적 인물이다. 인도네시아에서 커피사업을 했던 페퍼코른은 삶의 역동성을 중시하는 인물로 지적인 유희를 즐기는 세테브리니나 나프타와는 또 다른 속성을 지닌 인물이다.

카스트로프는 당시 유럽사회를 지배하던 관념을 대변하는 이들 세 사람을 지켜보며 삶과 죽음, 종교, 철학, 역사, 사회, 신화 등을 고민한다. 인식의 모험을 계속하던 카스트로프가 정신이 죽음에 지배되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을 내리고 완쾌되지 않은 몸으로 1차 대전에 참전하는 것으로 소설은 끝을 맺는다.

토마스 만이 12년에 걸쳐 집필한 '마의 산'은 사회적 휴머니즘이라는 토마스 만 문학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읽는 것만으로도 지적 유희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최고의 교양소설이기도 하다. 주인공들이 논쟁을 하는 모든 장면은 각기 하나의 담론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시간에 대해 서술한 다음 부분은 담론을 넘어 깨달음이다.

"시간 단위는 단순한 약속일 뿐이야. 시간에는 눈금이 없지. 세기가 바뀔 때 총을 쏜다거나 종을 울린다든지 하는 것은 우리 인간들뿐이야." [허연 기자 @ heoyeo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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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만의 장편 소설 마의 산을 읽다 보면 뭐든 골똘히 생각하는 주인공 한스 카스토르프가 귀엽게 느껴진다. 하지만 요양원을 찾아온 이유가 되었던 사촌 요하임이 폐병으로 죽고, 줄곧 토론 상대가 되어준 세템브리니도 요양원을 떠나고, 연모하던 쇼사 부인도 사라진 후 말이 없고 멍한 모습을 보인다. 요양원 생활이 7년이 넘었을 때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한스 카스토르프는 징집되어 전쟁터로 떠난다. 아래는 거의 웃긴 마음이 들게 만드는 전쟁의 비정을 묘사한 대목이다.

 

이들이 3천 명으로 증원병을 편성한 것은 언덕과 마을에 도달할 때면 이들이 1천 명으로 줄어들 것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3천 명으로 편성된 의미이다. 이들은 아무리 많은 인명 피해가 나더라도 싸워서 이겨야 한다. 대오에서 떨어져 나가 낙오하는 자가 있어도 계속 1천 명의 목소리를 합하여 승리의 만세를 외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들은 그러한 의도로 편성된 하나의 거대한 육체 인 것이다.

 

요양원에서의 생활은 책의 제목대로 마성(魔性)이 낀 산에서의 생활이었고, 기괴한 것들(세템프리니의 괘변이나 민헤어 페퍼코른의 에너지같은)을 접하며 주인공의 인식은 성장한다. 이제는 전쟁이라는 죽음의 축제를 맞이하여 다른 생명의 태어남을 보게 된다.

 

네가 겪은 육체와 정신의 모험은 너의 단순성을 고양시켜, 육체 속에서는 그렇게 오래 살 수 없겠지만 정신 속에서는 오래도록 살아남게 했어. 너는 예감에 가득 차 '술래잡기' 에 의해 죽음과 육체의 방종에서 사랑의 꿈이 생겨나는 순간들을 체험했어. 온 세상을 뒤덮는 죽음의 축제에서도, 사방에서 비 내리는 저녁 하늘을 불태우는 열병과도 같은 사악한 불길 속에서도, 언젠가 사랑이 샘솟는 날이 올 것인가?

 

세상을 뒤덮는 전쟁의 불길 속에서도 사랑이 샘솟는 날을 바라고 있다. 전쟁은 꼭 죽여야 할 이유도 없이 무고한 사람들을 집단으로 죽임으로써 인간 존재 의미를 뒤돌아 보게 만든다. 반면에 사랑은 절실한 인간 존재의 이유를 대답해 주면서, 동시에 거기 빠진 사람이 삶의 이유를 더 물을 필요를 안 느끼게 할 만큼 무아(無我)에 빠지게 한다. 이렇게 상반되는 이미지의 대비로 작가는 이 위대한 대작의 말미를 장식하고 있다.

[출처] 언젠가 사랑이 샘솟는 날이 올 것인가 - 마의 산 (토마스 만) IV|작성자 CamomileForever

 

* 이 책은 폐결핵을 앓은는사람은 절대 읽으면 안된다고 그래서 호기심 꾹 참고 안 읽은 책. 페결핵 때문에 2년반이나 하루에 20일 씩 약을 먹은 나로서는 어떤 내용인지 궁금은 했지만 책장도 펼쳐보지 못했었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