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시스 조제프 고세크
(François Joseph Gossec, 1734~1829)
1734년에 네델란드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고세크는 어려서 부터 음악을 좋아했다. 15세 때 안트워프 대성당의 성가대로 활동했고 프랑스혁명이 일어나자 헌병대 군악대장이 되어 수많은 애국가요를 작곡했다.
음악을 좋아하여 1751년 17세 때 라모(1683~1764)를 찾아 파리로 나와 라모의 후원자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프랑스의 첫 교향곡이라는 《제1교향곡》(1754)을 비롯한 많은 실내음악을 작곡하여 호평을 받았다. 그 후 콩티공(公) 집안의 음악감독이 되어 종교음악과 오페라를 잇달아 발표함으로써 명성을 얻었다.
1773년 ‘콩세르 데자마퇴르(Concerts des amateurs:아마추어 교향악단)’를 창설하고, 1778년에는 ‘콩세르 스피리튀엘(종교음악 연주회)’을 재건하였다. 또 1784년에는 왕실가곡학교, 1795년에는 그 후신인 파리음악원을 창립하였으며, 이들 음악학교에서는 작곡교수로 임명되어 활약하였다. 프랑스혁명에도 적극적으로 참가하였으며, 그가 작곡한 혁명가는 널리 애창되었다. 그는 프랑스 종교음악의 제1인자였고, 저서로
<음악원리>등이 있다. 1802년 레지옹 도뇌르훈장을 받았다.
1829년 95세로 사망하기전까지 30여개의 교향곡을 비롯하여 오페라 20여개등 다수의 종교곡과 실내악곡을 작곡하여 프랑스 교향곡의 발전에 중요한 구실을 하였다. 프랑스 최초의 교향곡 작곡가이며, 종교음악가이고 음악 교육에 대한 선각자의 한 사람으로 큰 업적을 남겼다. 그리고 프랑스 최초의 교향곡인 <제1교향곡>을 비롯하여 많은 실내 음악을 작곡하였으며, 종교 음악의 권위자였다.
<교향곡 모음>
=========Symphonie à 17 parties in F-major (1809)=================
He died in the Parisian suburb of Passy. The funeral service was attended by former colleagues, including Cherubini, at Père Lachaise Cemetery in Paris. His grave is near those of Méhul and Grétry.
Some of his techniques anticipated the innovations of the Romantic era: he scored his Te Deum for 1200 singers and 300 wind instruments, and several oratorios require the physical separation of multiple choirs, including invisible ones behind the stage. He wrote several works in honor of the French revolution, including Le Triomphe de la République, and L'Offrande à la Liberté.
While most people would have difficulty recognizing Gossec's Gavotte by its title, the melody itself remains familiar in the United States and elsewhere because Carl Stalling used an arrangement of it in several Warner Brothers cartoons.
He was little known outside France, and his own numerous compositions, sacred and secular, were overshadowed by those of more famous composers; but he was an inspiration to many, and powerfully stimulated the revival of instrumental music.
가보트 (Gavotte)연주 모음
프랑스·영국·독일어로는 가보트(Gavotte), 이탈리아어로는 가보타 (gavotta), 스페인어로는 가보타(gavota)라고 한다. 가보트는 바로크의 품위있는 2박 무곡이다. 통상 마디 중간에서 시작하고, 마디 중간에서 끝나는 네 마디 단위의 프레이즈를 가지고 있으며, 박자표는 ¢ 또는 2를 사용했다. 가보트에는 단순한 리듬 동기가 사용되었으며, 당김음이나 다른 복잡한 리듬은 좀처럼 사용되지 않는다. 가보트의 템포는 일반적으로 중간 정도의 빠르기 또는 명랑한 기분이 나는 정도의 빠르기를 사용하지만 부레나 리고동보다는 느리다. 16세기 후반과 17세기 초에 이 춤은 브랑르의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17세기 중반에 이르러 브랑르와 비슷한 음악적 특징들을 가진 새로운 춤이 나타났는데, 사람들을 이를 가보트라고 불렀던 것이다.
2) 춤곡 가보트 (Gavotte)
태양왕 루이 14세는 어린 시절부터 춤추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영화 '왕의 춤' 에는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루이 14세가 춤추는 장면이 등장하기도 하는데 이처럼 루이 14세 시대에는 춤과 함께 다양한 춤곡들이 발전했는데, 이 시대에 유행한 춤곡 중에 하나가 바로 '가보트' 이다. 프랑스 역사상 가장 화려했던 시절이라면 '가보트' 하면 스타카토로 연주되는 가볍고 경쾌한 음악을 떠오른다. 영국의 춤곡 '지그'와 비슷하게 뛰어오르는 듯한 흥겨운 리듬이 특징. '가보트' 라는 말은 프로방스 '도피네'라는 마을의 원주민을 일컫는 '가보'라는 말에서 유례되어 '가보 사람들의 전통 춤'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가보트' 라는 춤은 남녀가 서로 파트너를 바꿔가면서 추는 가벼운 춤으로 원래 이 춤을 출 때는 파트너가 바뀌기 전에 가벼운 키스를 주고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 춤이 베르사유 궁정으로 들어온 후로 키스하는 대신에 파트너끼리 꽃을 주고받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가볍고 경쾌한 춤동작에 걸맞게, '가보트'는 음악 또한 톡톡 튀는 리듬으로 경쾌하게 펼쳐진다. '가보트' 는 일반적으로 서로 대조적인 분위기의 두 부분, 제1 가보트와 제2 가보트로 이루어지고 그 중에서 후반부를 구성하는 제2 가보트를 '뮈제트' 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가보트' 는 17세기 중반, 프랑스 작곡가 륄리가 오페라에 사용하면서 유럽에 널리 퍼졌고 특히 바흐와 비버는 '가보트' 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자신의 작품에 가보트를 즐겨 사용하기도 했다.
Tambourin 연주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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