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박예신
새벽낚시
물상들이 번져가는 어슬한 하늘 움켜쥔 새벽. 틈으로 푸른빛 스치더니 이내 어둠은
바다를 기억으로 길게 풀어놓는다. 꽤 괜찮은 미끼를 산 낚시꾼이라면 으레 찾는 그 곳.
긴 장대 쥔 어둑한 손들이 끊임없이 베어대는 채찍소리.
벌어진 암흑 사이로는 가늠키 어려운 뭔가가 일렁이는 듯.
침묵은 침묵을 질러대고 산전수전이 무언으로 공간에 쟁쟁한 순간.
뇌리에 깊이 묻어둔 별 몇 개는 음파에 부딪혀
검푸른 바다로 떨어지고 은빛으로 부서진다.
하얀 포말 사이사이에 끼어있는 은빛 조각들이
꾼들의 주린 눈동자 위에 가득 들어찰 때까지.
한 살배기의 미소가 언뜻 지평선에 걸쳐있다. 하지만,
아이가 휩쓸린 별과 아버지가 뿌려진 달은 슬프다.
혹은 애상을, 혹은 사라진 순간을 건진다고 하는
이른 새벽이 연주하는 푸른빛 안개.
감정이 씨줄과 날줄로 낚싯줄에 엉키거나
그물로 한 움큼 건져지는 민생의 곳.
내일도 이곳을 지배할 만감의 울림은
태양의 저쪽 편으로부터 타오르다가
서서히 붉게 사그라든다.
◇당선 소감 시는 우주 투영…시에 우주를 담고파, 마음 속 별들이 터질 때마다 글쓰기
박예신 1990년 부산 출생 대구대 영어영문학과 4학년 재학 매일신문 재난안전 수기공모전 우수
한 편의 시 속에는 우주가 투영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 속에는 자전하는 인생들과 얽히고설킨 산전수전이 클러스터를 이루고 있는 듯이 보였다. 어제와 오늘의 모습이 다른 우주 속에 시인들이 묻어둔 시어들을 하나하나 캐내어 이리저리 깎아보고 비춰보는 과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즐거웠다. 어느 순간 나 또한 시에 우주를 담고 싶었다. 쉽게 캐내지 못할, 그렇기에 값어치 있는 미묘한 원석들을 시 속에 가득 묻어두고 싶었다. 이것이 내가 시를 읽고 쓰기 시작한 이유다.
별안간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가 내게 당선 소식을 전했을 때 나는 머리를 어딘가에 쾅 하고 부딪히기라도 한 듯 정신이 아찔했다. 25년을 살면서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은 처음이었다. 덕분에 나도 모르게 작은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그것도 퇴근길 만원 버스 안에서. 단지 내 작품을 기한 내에 투고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성공했다고 느꼈던 나였는데, 2015년을 목전에 두고 이렇게 큰 상을 받아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나는 시를 전문적으로 배운 적도 없을뿐더러 대부분의 당선자처럼 문예창작과를 나온 적도, 문학 아카데미를 다닌 적도 없다. 나는 다만 이따금 마음속에 고이 숨겨둔 별들이 터져 나오려 할 때면 펜촉으로 풀어내곤 하던 평범한 영문과 학생일 뿐이다. 내가 아직껏 펜을 놓지 않게 된 것은, 8할이 어머니 덕분이다. 비록 어머니께서는 칠 형제를 거느린 가부장적인 가정에서 태어나는 바람에 글에 대한 뜨거움을 대부분 방직공장 굴뚝 밖으로 날려 보내야 했지만 그 불씨까지 꺼지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어머니의 사랑이라는 위대한 도구는 기어코 그 뜨거움을 되살려내었고 감사하게도 나는 그것을 값없이 선물 받은 것 같다. 비록 변변찮은 형편에 학원 한 군데 못 보내 주셨다며 미안해하셨지만 어머니께선 유년시절부터 끊임없는 독서, 글쓰기 그리고 시쓰기를 통해 나를 다듬어 주셨다. 아마 어머니 당신께서 받지 못한 것들을 자식에게만큼은 전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리라. 어머니께 이 모든 영광을 돌리고 싶다.
또한 부족하나마 나에게 문단에 나갈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해 주신 심사위원님들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묵묵히 문단을 이끌고 갈 우직한 한 마리 젊은 소가 될 것을 약속드린다.
◇심사평…시적 형상성에 재능이 자연스레 스며들어 가능성에 기대 걸어볼 만
예심을 거쳐 선자에게 의뢰된 작품들은 시심으로 보면 공들여 가다듬은 흔적이 역력하지만 감각이나 인식으로는 특별히 새로울 것이 없는 그만그만한 수준의 성취였다. 모름지기 신인이라면 참신함은 물론이지만, 시로써 자신에게 되물으려는 질문 또한 절절해야 할 것이다. 투고된 시편들의 스펙트럼이 연륜의 다채로움만큼 넓지 않았다는 것도 심사자에겐 유감이었다. 마지막까지 논의로 남았던 작품은 김태인 씨의 「안개 서식지」, 김정윤 씨의 「캥거루주머니 속으로」, 박예신 씨의 「새벽 낚시」, 이윤정 씨의 「모자는 만년필을 써본 적이 없다」 등이었다.
김태인 씨의 시편은 집요한 비유의 힘이 습작의 공력을 느끼게 하지만, 체화되지 못한 관념이 시를 유연하게 끌고 가려는 동력을 어딘지 모르게 경색되게 한다. 각박한 의욕보다 비약이 가능하도록 여백을 남겨놓는 지혜가 때로는 소중한 것이다. 김정윤 씨의 시편은 정감이나 의식이 가 닿는 지향에서 어느 정도 견고한 시의 토대를 느끼게 한다. 그러나 응시의 대상과 시적 의도가 각각 다른 주파수를 갖고 있는 듯, 일체화되지 못하는 어색함이 화려한 수사를 공허한 독후에 빠지게 만든다.
이윤정 씨의 시편에서는 서로 무관한 사물들이 포개지며 자아내는 맥락의 삼투가 돋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앞에 언급한 분들에 비해 당선의 수준에 훨씬 가까이 접근해 있었다. 사변적인 주제조차 사물의 구체성에 풀어 넣으려는 주체의 시선은 마지막까지 심사자의 판단을 기우뚱거리게 했다. 그러나 시의 대상들이 제 본분을 지켜내도록 비유의 상호성을 끈기 있게 살폈으면 하는 아쉬움을 안게 하는 것이 흠이었다.
박예신 씨의 시편은 시의 미학을 의식하는 문제적 시선이 옅은 대신 해맑고 풋풋한 정감이 잔뜩 묻어나는 시편을 선보인다. 이는 노력해서 얻어낸 습작의 결과가 아니라 그 나름의 재능이 시적 형상성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경우가 아닐까 판단되었다. 그리하여 이 응모자의 세계는 이즈음 신인들이 보여주는 장황하고 난삽한 수사적 중첩에서 한 걸음 비켜선다. 아쉽다면 수사적 평면성을 떨치고 저만의 개성으로 부피가 부조되는 시의 구상력을 함께 건사하는 일이다.
숙고 끝에 박예신 씨의 「새벽 낚시」를 당선작으로 밀어올린다. 습작의 연조로 보아 앞으로의 가능성에 기대를 걸어보려는 것이다. 당선을 축하하며, 각고의 정진을 당부한다.
김주연(문학평론가)`김명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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